365일 한시-왕유王維 산속山中

산속 山中/당唐 왕유王維

荊溪白石出 형계는 흰 바위 드러나 있고
天寒紅葉稀 찬 날씨에 단풍잎도 다 졌네
山路元無雨 산길엔 본래 비 안 내렸지만
空翠濕人衣 푸른 안개 사람 옷에 스미네 흰 바위 드러나 있고

이 시는 《왕유집》의 고본에는 없고 명대 간행본에 드디어 나타난다. 소동파가 <왕유의 남전연우도 그림에 쓰다[書王摩詰藍田烟雨圖]>에 이 시를 소개해 놓았는데 어떤 사람은 이를 위작이라고 주장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삼민서국본 《왕유시문집》을 역주한 진철민(陳鐵民)은 해제에 이런 내력을 소개한 뒤에 《냉재야화(冷齋夜話)》에 이 시가 수록되어 있고 시에 나오는 지명 형계(荊溪)를 근거로 들어 이 작품을 왕유의 진작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 시는 왕유(王維, 701~761)가 종남산 망천(輞川)에 살 때 지은 시로 초겨울의 산속 경치를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형계는 왕유가 거처하고 있는 남전현(藍田縣)의 진령산맥 서남에서 서북 방향인 장안으로 흘러가는 물이다. 여기에 바위가 돌출해 있다고 한 것은 소동파가 <후적벽부>에서 말한 “산이 높으니 달이 작게 보이고, 물이 줄어드니 바위가 드러난다.[山高月小, 水落石出]”라고 한 것처럼, 가을에 물이 줄어들어 흰 바위가 드러났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 외에 계곡에 흰 바위가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고, 물이 너무 맑아 흰 바위의 색깔이 그대로 잘 보인다는 의미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시의 정황으로 보면 처음의 견해가 가장 타당해 보인다.

날씨가 차갑고 단풍이 드물다고 한 것은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로 접어드는 풍경임을 말해준다. 그런데 마지막 두 구에 산길엔 비가 원래 내리지 않았는데 푸른 안개가 사람의 옷에 스민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인가? 아마도 이 산에 소나무와 측백나무 같은 상록수가 역시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을에 날씨가 좋아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숲에 남기(嵐氣)가 아른거리고 안개도 끼어 옷에 이런 습기가 배어드는 것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공취(空翠)는 바로 숲속 공기에 배어있는 푸른 남기나 안개를 말한다.

이 시는 흰 바위, 붉게 단풍든 나뭇잎, 푸르스름한 이내와 안개 등 색채 감각이 뚜렷이 드러나 있어 역시 왕유 시의 화의(畵意)를 보여준다. 왕유 스스로 “이승에서는 잘못하여 시인이 되었지만 전생은 필시 화가였을 것이다.[當代謬詞客, 前身應畵師]”라고 말한 것처럼 스스로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런 것이 자연 시에도 반영되어 왕유 그림에는 화의가 충만한 작품이 많다. 그래서 소동파가 왕유의 시를 두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고 평한 것이다. 이 때문에 남종화에서 왕유를 종주로 삼는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을 다룬 시는 조락의 계절에 맞게 근심이나 쓸쓸한 분위기의 시가 많다. 그런데 이 시는 초겨울 산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을이 되어 계류가 줄어들자 수면 아래 있던 흰 바위들이 드러나 아름답다. 또 소나무 측백나무 숲에 푸른 안개가 끼어 사람이 지나가면 마치 미세한 비에 옷이 젖는 것과 같이 옷에 물기가 스며든다. 왕유는 이 당시 불교를 신봉하여 소식(素食)을 하고 흰 옷을 주로 입고 다녀서 그런 것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따금 붉은 단풍잎이 떨어진다. 왕유는 지금 초겨울 산에서 이런 희고 붉고 푸른 색채를 즐기며 산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의 《속국역한문대성(續國譯漢文大成)》에서는 이 신의 진위를 알 수 없다고 하였지만, 시의 내용으로 볼 때도 왕유 시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明 董其昌 荆溪招隐图

365일 한시 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