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외사女仙外史 제2회

제2회 포대현에서 항아가 인간 세상에 내려오고
임환의 집에서 후예가 모친의 태로 들어가다
蒲臺縣嫦娥降世, 林宦家后羿投胎


산동(山東) 제남부(濟南府) 포대현(蒲台縣)에 이름이 당기(唐夔)이고 자(字)는 요거(堯擧)인 효렴(孝廉)이 있었으니, 송(宋)나라 인종(仁宗: 1023~1063 재위) 때에 지간원(知諫院)을 지낸 당개(唐介)의 후손이었다. 당개가 대전에서 황제를 모시던 시절에 재상 문언박(文彦博)이 금실로 치장한 등롱을 만들어 들고 궁중으로 들어가 정사(政事)를 논의한 일을 탄핵한 일이 있는데, 바로 황제의 면전에서 문언박을 힐난했기 때문에 대신을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좌천되어 영주별가(英州別駕)에 부임한 적이 있다. 인종은 그의 강직함을 아껴서 도중에 해를 당해 죽지 않을까 염려하여 환관에게 호위하라고 분부했다. 이로 인해 강직한 그의 명성이 천하를 진동하여 ‘진짜 어사[眞御史]’라고 불렸다. 그의 고향은 본래 강릉(江陵)에 있었지만 후손들은 제남까지 와서 살게 되었다. 송나라가 남쪽으로 도읍을 옮기자 금(金)나라와 원(元)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한 자손들이 대부분 바닷가에 은거하여 훈장 노릇을 하는 바람에 대대로 명성을 날린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명나라 태조가 나라를 열자 당기의 부친 당준회(唐遵晦)가 부름을 받아 박사(博士)가 되었고 당기도 고을의 천거를 받았다. 생모 도씨(陶氏)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는데, 계모가 성격이 포악하고 자비롭지 못해서 걸핏하면 화를 내니 당기는 늘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어야 했다. 또한 매사에 계모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고 자신의 생각을 누른 채 진심으로 따르며 받아들이니 계모도 감화되었다. 이 때문에 친척들이 모두 그를 ‘진정한 효자[眞孝子]’라고 칭송했다. 그러다가 부친이 병들자 40여 일 동안 허리띠를 풀지 않은 채 밤이면 반드시 향을 사르면서 자신이 대신 앓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원했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계모도 죽자 태백산(太白山) 남쪽에 안장하고 무덤 옆에 오두막을 지어 삼 년 동안 지키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평소 몸가짐에 기품이 있었고 의롭지 않은 것은 취하지 않았으며 어두운 방안에서도 누구를 속이거나 하지 않았다. 저자에서 거래할 때에도 깎지 않고 부르는 대로 값을 치르니, 그를 속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한 번은 길에 떨어진 금을 주웠는데 아무리 수소문해도 주인을 찾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주인이 무정주(武定州) 사람인데 이미 객사(客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그 아들에게 금을 보내 주었으니 고을 사람들은 모두들 또 그를 ‘진짜 효렴[眞孝廉]’이라고 부르며 칭송했다. 다만 마흔 살이 되도록 대를 이을 자식이 없는지라 공명(功名)을 이루려는 마음도 옅어져서 경사(京師)에 가서 진사(進士) 시험에 응시하지도 않았다. 하루는 그가 부인 황씨(黃氏)에게 말했다.

“불효에는 세 가지가 있지만 후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크다고 했소. 이제 나도 늙어 가는데 아직 자식이 없으니 어쩌면 좋겠소?”

“당신이 평생을 살면서 위로 하늘에도 아래로 남들에게도 아무 부끄러움이 없었고, 조상들의 신령이 있으니 후사가 끊어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이미 나이가 많아 기혈이 점점 쇠약해져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에는 문제가 있지요. 그러기에 첩을 들이라고 몇 번이나 권했는데도 도무지 제 말을 듣지 않으시네요. 이젠 너 이상 늦출 수 없어요.”

“정말 현숙한 부인이구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부부만 단둘이 있어도 여러 자식들을 잘 낳아 기르는 경우도 있고, 첩을 열 명이나 들여도 끝내 자식이 없는 경우도 있더구려. 굳이 첩을 들여야 자식을 낳는다면 첩을 들일 여력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는 죄다 후사가 끊어졌어야 하지 않겠소? 게다가 들인 첩의 덕성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만약 주제를 모르고 윗사람을 기만한다면 오히려 우리 두 사람이 첩에게 시달리게 될 게요. 그리고 그 첩도 자식을 낳지 못한다면 그 때는 또 어찌 하겠소?”

“이처럼 사려가 깊으시니 과연 훌륭하시군요. 듣자 하니 동쪽 성문 밖에 구천현녀낭낭(九天玄女娘娘)의 사당이 있는데, 그 안에 있는 아들을 보내 주는 송자낭낭(送子娘娘)이 아주 영험하다고들 하더군요. 매달 초하루에 우리 부부가 향을 사르고 절을 올려 아들을 내려 달라고 기원하면 되지 않을까요?”

“신명(神明)이라는 게 있긴 하지만 여신선(女神仙)이라서 나는 가기 불편하니 당신 혼자 가시구려. 나는 초하루에 상청관(上淸觀) 옥제전(玉帝殿)으로 가서 향을 사르고 축원을 올리겠소. 후사를 구한다고 하지 않더라도 상제께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예를 올리는 것도 해야 하는 일이 아니오? 그리고 집안의 사당에 모신 신주(神主) 앞에서 아침저녁으로 절을 올리고 하늘에 계신 조상의 영령들께 후사를 내려 달라고 기원하도록 하겠소. 당장 내일부터 시작합시다.”

이렇게 해서 그들 부부는 매달 초하루가 되기 사흘 전부터 정성스럽게 재계하고 각자 맡은 곳으로 가서 향을 사르고 자식을 내려 달라고 기원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두 해가 지난 갑신년(甲申年) 5월에 황 부인은 갑자기 음식을 먹으면 신물이 올라오며 구토가 나오려 하는 것이 마치 임신을 한 듯한 모습이어서, 당기는 즉시 의사를 불러 진찰해 보게 했다. 의사는 맥의 박동이 평상시와 다를 바 없어서 머뭇거리며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저 ‘맥결(脈訣)’에 따르면 수태한 지 다섯 달이 지나야 맥에도 변화가 나타난다고 되어 있다는 말만 했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당기의 집안에 있던 노매(老梅)라는 늙은 하녀가 마침 차를 내오다가 그 소리를 듣고 대뜸 이렇게 말했다.

“다섯 달이 되면 선생을 모실 필요 없이 나도 알아볼 수 있을 거유.”

그러자 당기가 호통을 쳤다.

“멍청한 할멈, 헛소리 말게!”

의사도 스스로 멋쩍어져서 차를 마시고 나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유산을 방지하는 약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임신한 지 열 달이 되었는데도 전혀 낌새가 없자 황 부인이 무척 걱정스러워하니, 당기가 위로했다.

“천지간에 열 달을 넘겨서 태어나는 것도 많으니 일단 차분히 기다려 봅시다.”

“기일을 넘겨 태어나면 괴물이 나오지 않을까 무섭네요.”

“요 임금도 열네 달 만에 태어났는데 설마 그 분도 괴물이었겠소?”

그러자 노매가 말을 받았다.

“마님께서 열네 달 만에 도련님을 낳으시면 틀림없이 황제가 되시겠군요.”

황 부인이 꾸짖었다.

“이런 멍청한 할멈 같으니! 그러니 평생 시집을 못 가는 게지.”

“호호, 시집을 간다면 진주처럼 훌륭한 인물을 낳았겠지요. 옛말에 진주는 늙은 조개에서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당기가 말했다.

“여보, 평소에 저 할멈한테 글을 가르치고 전고(典故)라도 몇 개 들려주어서 마음에 새기게 한 바람에 이제 제법 고상한 표현도 할 줄 알게 되었구려.”

“그야말로 정현(鄭玄) 집안의 하녀 같군요!”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 하자.

어느새 8월이라 가을도 깊어지니, 임신한 지 무려 열다섯 달이 되었다. 14일 밤 5경(五更, 새벽 3~5시) 무렵이 되자 황 부인 앞에 갑자기 어느 아낙이 나타났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사당 안에 있던 송생낭낭이었다. 그런데 그 아낙이 안고 있던 아이를 황 부인에게 건네주었다. 황 부인이 두 손으로 받으며 사내인지 계집애인지 묻자 송생낭낭이 말했다.

“사내보다 나은 계집애라오!”

황 부인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비로소 꿈이었다는 것을 알고 당기에게 들려주며 스스로 해몽을 했다.

“이건 분명히 딸을 낳을 거라는 징조예요.”

황 부인은 이미 몸이 조금 불편하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당기는 미리 사람을 보내 산파를 불러 왔다. 그러다가 유시(酉時, 오후 5~7시)가 되자 산통이 시작되었는데 순식간에 오색구름이 방을 에워싸고 기이한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한 가운데 공중에서 은은하게 생황과 퉁소 소리와 함께 난새와 학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미 아이를 낳아 대야에 담겼는데도 아이가 울지 않는 것이었다. 당기가 괴이하게 여겨서 산파에게 물었다.

“설마 사산(死産)을 한 건가?”

“복을 타고나신 아가씨인지라 울려고 하지 않으시는 게지요!”

당기는 그제야 기이한 꿈의 징조에 감탄하면서 두 손으로 대야를 들고 종이를 바른 창문에 희미하게 반사되어 비치는 석양빛에 비쳐보니 온 몸이 옥을 깎아 만든 것 같은 계집애였다. 그래서 송생낭낭이 꿈속에서 했던 말에서 뜻을 따서 아이의 아명(兒名)을 새아(賽兒)라고 짓고 미리 준비한 포대기로 잘 싸서 잘 누인 후, 산파에게 수고비를 주고 돌려보냈다.

한편 새아가 태어나던 시간에 그 이웃마을에서는 오색구름과 노을이 동쪽에서부터 당기의 집을 향해 날아가고 자욱한 운무 속에서 천상의 음악소리가 바람을 타고 울려 퍼지는 것을 많은 이들이 보고 들었다. 모두들 놀라서 당 효렴의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틀림없이 큰 복을 타고났을 거라고 했다. 소문은 삼삼오오 사람들의 입을 타고 퍼져서 온 고을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었다. 이에 여러 이웃들이 다투어 추렴해서 양을 끌고 술독을 짊어진 채 일제히 당기의 집으로 찾아와 축하하니, 당기가 말했다.

“계집애 하나를 낳았을 뿐인데 이웃 분들께 이렇게 후한 선물을 받을 만한 일이겠습니까?”

그러자 개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 노인이 나섰다.

“허허! 효렴 어른의 영애께서는 선녀였을 겁니다. 어르신 댁에서 덕을 쌓았으니 하늘에서 특별히 선녀를 내려 보낸 것이지요. 저번에 오색구름 속에서 신선의 음악이 울리는 것을 보고 듣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늙은이가 여든 살이 넘도록 살았지만 이런 기이한 일은 여태 보지 못했습니다. 장래에 아주 지위 높은 부인이 되실 거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당기는 또 겸손하게 몇 마디를 했고, 이웃들은 차를 마시고 돌아갔다. 당기가 안으로 들어가 황 부인에게 말했다.

“옛날 예법에 따르면 아이를 낳고 사흘이 지나면 국과 떡을 준비하고 친척을 모셔 놓고 잔치를 열었다고 했소. 이제 마을사람들이 먼저 와서 축하하니 내 마음이 불편하구려. 술자리를 마련해서 그분들을 초청해 성의 보답하고, 다시 친척들을 모셔서 새아를 보여주는 게 어떻겠소?”

“당연히 그래야지요.”

이에 하인을 시켜서 닭고기며 돼지고기, 과일 등을 사 오고 우선 이웃들에게 초청장을 돌렸다. 이튿날 오후에 이웃들끼리 약속을 정해 일제히 잔치에 찾아왔다. 개중에 당기의 먼 이웃으로서 악(岳) 아무개라는 장님이 있었는데 항상 “나는 팔자를 점칠 줄도 알고 천기를 읽을 줄도 안다.”라고 허풍을 치는지라 사람들은 그를 ‘괴짜 악씨[岳怪]’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가 점친 길흉의 징조나 날씨는 상당히 들어맞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그 스스로 ‘반선(半仙)’이라고 불렀다. 사람들과 당기가 인사를 나누고 나서 서열에 따라 자리를 나누어 앉고 나자, 괴짜 악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봉사가 오늘 당 선생 영애의 팔자를 점쳐 보겠습니다.”

그러자 이웃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반선’ 당신의 제대로 맞히나 보려고 했소. 점이 틀리면 큰 주발에 차가운 술을 가득 따라 벌주를 내리겠소!”

당기가 말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폐를 끼치는구려!”

그러면서 새아가 태어난 일시를 얘기해 주었다. 괴짜 악씨는 입안에서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이리저리 짚어 보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크게 소리쳤다.

“이 팔자는 점을 칠 수가 없소이다! 옛날 관우(關羽) 나리는 무오년(戊午年) 무오월 무오일 무오시에 태어나셔서 천고에 길이 남을 위대한 성현이자 호걸이 되셨소. 지금 영애께서는 을유년(乙酉年) 을유월 을유일 을유시에 태어나셨으니 설마 영애께서도 관우 나리와 같은 일을 해 내시는 걸까요? 팔자가 너무 기이한지라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 자세히 살펴봐야 되겠소이다.”

그러자 모두들 그를 비웃었다.

“반선께서 팔자를 점치지 못했으니 일단 앉으시구려. 서 있는 손님은 내쫓기도 곤란한 법이 아니오?”

괴짜 악씨는 초조해서 고개를 숙인 채 재삼 점을 쳐 보더니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여러분이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황후나 황비(皇妃), 일품부인(一品夫人)의 팔자는 정해진 틀이 있어서 쉽게 점칠 수 있소. 하지만 지금 영애의 팔자는 죄다 금(金)으로만 되어 있어서 죄다 화(火)로만 되어 있는 관우 나리의 팔자와 비슷하단 말씀이오. 오행의 기운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하오. 만약 전부가 화라면 천하를 단련하려 할 것이고, 전부가 금이라면 천하를 죽이려 할 것이오. 게다가 태음성(太陰星) 즉 달이 운명을 주관하고 있고 또 금에 속하오! 스물한 살에서 마흔 살 때가지는 또 금의 운수가 진행되니, 대단한 병권(兵權)을 쥐게 될 것 같소. 지위의 높음으로 말하자면 황후보다 어느 정도 더 낫다고 할 수 있소. 하지만 얼마나 높은 지위에 오르고 어떤 병권을 쥐게 될 것인지 묻는다면 그건 반선도 점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신선도 알아내지 못할 게요.”

당기가 말했다.

“그렇다면 고약한 팔자라고 할 수 있으니, 오히려 가문의 불행이 되겠구려!”

그러자 사람들이 위로했다.

“이게 다 괴짜 선생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 양반이 영애의 귀한 운명을 점친답시고 또 괴상한 짓을 저지른 게지요.”

괴자 악씨도 변명하고 나섰다.

“제가 언제 고약한 팔자라고 했습니까?”

그러는 사이에 술상이 차려져서 모두들 실컷 마시고 잔뜩 취했다. 잔치를 파할 무렵이 되자 괴짜 악씨가 떠나기 직전에 다시 당기에게 말했다.

“애석하게도 이 봉사가 벌써 나이가 많아져서 영애께서 고귀한 자리에 오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어떤 이가 이죽거렸다.

“아니 반쯤 신선이라면서 어째서 자기 수명조차 모르는 게요?”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악 선생은 원래 반쪽 신선이라서 과거 절반의 나이만 알 뿐이지 미래 절반의 나이는 모르는 모양이구려.”

이에 모두들 껄껄 웃으며 헤어졌다.

이튿날은 여러 친척들이 찾아와 축하했으니 과부가 된 당기의 숙모와 같은 증조할아버지의 후손들인 형제들 및 세 명의 조카들, 그리고 황 부인의 동생과 그 아내, 여동생과 그 남편까지 모두 십여 명이었다. 집안 어른인 시숙모가 왔으니 황 부인도 억지로 힘을 내서 일어나 맞이해야 했다. 인사가 끝나자 새아를 안고 나와 친척들에게 보여주니, 모두들 한 번씩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가 웃지도 울지도 않은 채 아무 소리를 내지 않자 모두들 벙어리가 아닌지 의심했다. 당기가 낌새를 눈치 채고 친척들에게 말했다.

“어제 괴짜 악씨가 술자리에서 여차여차 아주 놀라운 얘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밖에다 소문을 내시면 안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혹시 아이가 벙어리가 아닐까 의심하는 것 같아서 해명하려고 이 얘기를 해 드렸습니다.”

친척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아주 가까운 친척들에게는 알려 드려야 믿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당연히 그랬어야지요.”

밤이 되자 잔치를 파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아침에 삼천 명이 태어나면 저녁에 팔백 명이 죽는다.[朝生三千, 暮死八百]”라는 속담처럼 사람은 결국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법이지요. 바로 제녕주(濟寧州)의 임(林) 참정(參政)도 이달 15일 묘시(卯時, 오전 5~7시)가 되기 전에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위로 두 형이 있어서 항렬이 세 번째가 되었으며 이름은 임유방(林有芳)으로 지었다. 임유방은 태어날 때 가운데 손가락에 영락없이 ‘예(羿)’ 자로 보이는 문양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후예(后羿)가 전생(轉生)한 존재임을 알지 못했다.

《통감(通鑑)》에 따르면 예는 활을 잘 쏘아서 요 임금 때에 열 개의 해가 한꺼번에 나타났을 때 예가 활을 쏘아서 아홉 개를 떨어뜨렸으며, 그로부터 240여 년 뒤에는 하(夏)나라의 군주인 상(相)을 내쫓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랐다고 했다. 또 《열선전(列仙傳)》에 따르면 그는 서왕모에게서 불사약을 얻었는데 그의 아내 항아가 훔쳐 먹고는 하늘을 날아 달나라로 들어가 버렸다고 했다. 후예는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미녀들을 널리 구해 후궁을 채우고 황음무도한 나날을 보내다가 나라의 정치를 팽개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그 신하인 한착(寒浞)에게 살해당했다. 상제께서는 그가 해를 쏘아서 하늘에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라 군주를 시해하고 또 음란한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저승 관청에 보내서 죗값을 치르게 하고 영원히 사면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자비롭기 그지없는 지장왕보살(地藏王菩萨)이 소겁(小劫)에 해당하는 오백 년이 될 때마다 반드시 몸소 지옥으로 찾아가 심문해 보고 조금이라도 상황을 감안하거나 인정을 베풀 만한 경우라면 모두 긍휼히 여겨 처벌을 낮춰 주었으니, 인간 세계의 조정에서 죄를 심의할 때 상황이 가련하거나 범죄 여부에 의혹이 있을 경우 처벌 수위를 낮춰 주는 ‘긍의감등(矜疑减等)’ 등의 조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결국 귀신 죄수들을 제도하려는 뜻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후예는 오랫동안 저승 관청에 갇혀 고초를 겪다가 마침 지장왕보살이 강림하자 이렇게 하소연했다.

“생전에 저는 평생 도(道)를 좋아해서 서왕모께 불사약을 하사받은 적도 있습니다. 비록 아홉 개의 해를 쏘았지만 그건 요 임금의 분부에 따른 것이었고, 하나라 군주 상을 시해한 것도 제 운수에 제왕 노릇을 해야 할 일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 또한 신하에게 시해 당했으니 피장파장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못하게 하는 건가요? 보살님, 부디 죄에서 벗어나 환생하게 해 주십시오!”

그의 진술을 들은 지장왕보살은 내심 가련한 생각이 들어서 저승 관청의 부서에 사건을 다시 조사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저승 관리가 이렇게 보고했다.

“이건 상제께서 내리신 처벌이옵니다. 저자의 음란함과 살생의 본성이 너무 강해서 인간 세상에 해를 끼칠까 염려하여 전생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옵니다. 저자의 인과(因果)를 놓고 보면 아직 아내인 항아와 반 년 동안 부부로 지낼 인연이 남아 있고, 그가 아끼던 신하인 계애(季艾)에게도 십만 냥의 빚을 아직 갚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상제께 이런 사정을 아뢰시면 관용을 베풀어 주실 수도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그 운수에 맞춰 주어야 마땅하지. 항아는 조만간 인간 세계에 내려가야 하고 계애도 전생하여 벼슬살이를 하고 있으니 후예를 계애의 집에 태어나게 해서 이 빚을 갚게 하고, 나중에 항아와는 예전처럼 부부가 되어서 혼인의 인연을 마무리 짓게 해야지. 내가 상제께 아뢰면 될 걸세.”

그래서 후예는 귀신으로 이미 수천 년을 지낸 뒤에야 비로소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아비 임 참정은 바로 여섯 세상 이전의 계애였다.

독자 여러분, 불경에서 말하는 ‘인과’라는 것이 가까이는 그저 삼생(三生) 이내에만 있을 뿐이지만, 멀리까지 따지자면 수십 겁 이전과 수십만 겁 이후에도 그것을 떨어쳐 낼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하오. 그것은 천지를 아우르고 고금을 포괄하니 천태만상 어느 것도 이것을 피할 수 없소. 사람은 오륜(五倫)과 삼당(三黨), 구족(九族) 사이에서 태어나 종종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나는데, 그것들은 각기 이전의 원인이 있어서 생긴 것이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오. 남녀 간의 일만 하더라도 남녀가 서로 정을 주었다가 죽으면 다른 생에서는 반드시 부부가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사랑을 나누게 되지요. 그런데 만약 남자가 여자의 사랑을 저버리거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다른 생에서도 부부의 인연을 빌려서 전생의 죄업에 대한 응보를 주고받게 되는 것이지요. 정을 주는 것은 원인[因]이고 사랑을 나누거나 죄업에 대한 응보를 받는 것은 결과[果]이지요. 다음 생에서 만나지 못하면 또 그 다음 생을 기다려서 반드시 서로 만나게 되어서 인과응보를 마무리 지은 뒤에야 끝나지요. 그런데 응보를 받는 사람은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해요. 단지 이번 생의 수십 년 안에 일들을 하나하나 따져 해결하려 하는 것은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면서 하늘이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

《동명기(洞冥記)》에 따르면, 당나라 현종(玄宗)은 양귀비(楊貴妃)를 그리워하다가 슬픔을 어찌 할 수 없어서 술사(術士)로 하여금 기(氣)를 운용하여 찾아보게 했다고 하오. 그리하여 술사가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 십주(十洲)와 삼신도(三神島)까지 빠짐없이 뒤졌으나 모두지 동적을 찾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바다 밖의 어느 산에 이르렀는데 옥으로 장식된 화려한 누각과 아름다운 건물들을 둘러싼 멋진 숲이 있고 난새와 봉황의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것이었소. 건물의 지불 아래 편액에는 ‘옥비선원(玉妃仙院)’이라고 새겨져 있었지요. 도사가 다가가서 붉은 옻칠을 한 대문을 두드리자 어린 하녀가 나와서 누구냐고 묻기에 황제께서 보낸 사람이라고 대답했소. 하녀가 옥비──이 사람이 바로 양귀비인데──에게 보고하자 들여보내라고 했지요. 양귀비는 현종의 안부를 묻더니 반 조각으로 부러진 비녀와 금으로 장식한 찬합 반쪽을 술사에게 몸소 주면서 7월 7일에 현종이 쌍성(雙星)을 향해 축원하면 내생에는 계속 부부로 만나게 될 거라고 얘기해 주었소. 다만 이런 생각 때문에 이 산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장차 내생에서 현종과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얘기였소. 대체로 현종과 양귀비의 부부 인연은 이미 끝났지만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뿌리가 아직 끊어지지 않았으니, 그것을 일컬어 원인이라고 하지요. 그것을 땅에 심으면 어쩔 수 없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되겠지요.

하물며 후예와 항아는 부부의 인연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어찌 되겠소? 항아가 이미 신선이 되어 사랑의 인연은 오래 전에 소멸되었지만 이번에 인간 세계에 내려오게 된 것은 본래 재앙의 운수[劫數] 때문이었던 것이오. 항아가 아직 후예에게 빚이 있다면, 후예에게 있는 사랑의 뿌리는 또 재난을 겪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테지요. 이제 마침 인간 세상에 함께 태어났으니 월하노인(月下老人)의 붉은 끈은 진즉 두 사람의 발을 묶어 놓았겠지요. 반년 동안 부부로 지냄으로써 빚을 깨끗이 갚아야 한다는 것을 말할 필요도 없고, 잠시 동안의 부부 인연이라도 결국 완전히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법이지요. “이슬처럼 짧은 시간 동안 부부로 지내더라도 전생의 인연으로 정해진 것[露水夫妻, 也是前緣分定]”이라는 속담이 거짓이 아니라오. 여기서 한 마디 짚고 넘어갈 것이 있소. 그러니까 항아가 인간 세계에 내려와 새아가 되지 않았더라면 임씨 댁의 셋째 도련님은 당연히 후예가 아니었을 테고, 새아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항아라면 후예는 틀림없이 임씨 댁 셋째 공자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오.

아무튼 뒷이야기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