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의 노래涼州詞/당唐 왕한王翰
葡萄美酒夜光杯 야광 술잔 가득 담긴 맛 좋은 포도주
欲飲琵琶馬上催 잔 들자 비파 연주 마상에서 경쾌하네
醉臥沙場君莫笑 모래 바닥 취해 누워도 비웃지 마시길
古來征戰幾人回 예로부터 전장 나가 몇이나 살아 왔나
이 시는 왕지환(王之渙)의 작품과 함께 <양주사(涼州詞)>의 대표적인 시이자 변새시의 절창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앞 두 구는 서역에서 들어온 술잔과 악기가 등장하여 변방의 이국적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시는 시인의 체취와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당나라 시대의 시인들은 매우 활달하고 감정의 분출을 아끼지 않았는데 왕한(王翰, 687~726)의 경우는 더욱 광달(曠達)하였다. 그는 자신의 재주를 믿고 거칠 것 없이 행동했는데 술을 실컷 취하도록 마시고 자신의 집 마구간에 명마를 잔뜩 사육하고 집에 기악(妓樂)을 두었다. 날마다 영걸들을 모아 새를 날려주고 북을 치면서 즐겼다. 《당재자전(唐才子傳)》에 나오는 내용이다.
왕한이 이렇게 한 것에 대해 당시 가깝게 지내던 문인 두화(杜華)의 어머니는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3번 이사를 갔다던데 우리가 만약 이사를 간다면 왕한의 옆집으로 가면 된다.”라고 한 것을 보면 그가 친구와 사람들과 사귈 때 인정과 의리를 앞세우고 재물을 따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 당시의 재상 장열(張說) 역시 그를 일종의 협객으로 평하였다. 왕한은 시에 장려(壯麗)한 말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 시 역시 그러한 특징이 있다.
출정하기 전날 저녁에 벌어진 호화로운 연회에서 병사들이 마음껏 취하는 풍경을 시로 읊고 있다. 이날 한 잔 마시면 바로 전장에 나가 그 생사를 알 수 없다. 작중 화자의 표현대로라면 고래로 전장에 나가서 거의 살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곧 죽을 운명에 놓인 사람들이 짧은 순간의 연회를 즐기는 상황인 것을 알 수 있다.
명나라 이반룡(李攀龍)이 비개(悲慨)한 것이 취와(醉臥) 2 글자에 있다고 한 것이나, 청나라 때 주지형(朱之荊)이 “시의 뜻이 말구에 있는데 음주를 인용한 것은 침통한 말이다. 호화롭게 마시는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알고 있지만 이는 고인의 뜻이 아니다.”라고 한 말은 모두 이 시의 본의가 비통한 것을 지적한 말이다. 청나라 시보화(施補華)가 “슬픈 말로 시를 쓰면 읽기에 쉽고 해학적인 말로 시를 쓰면 시가 묘하다는 것을 배우는 사람에게 깨닫게 한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이 시에 묘사된 연회의 성격을 정확히 짚어낸 평어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제 2구를 “술을 이제 막 들려 하는데 말 위에서 출정을 알리는 비파소리를 급하게 울린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데, 이는 앞이나 뒤의 문맥과 잘 안 맞는 해석이다. 출정하기 임박해서 도대체 어떤 장군이 포도주에 야광배로 연회를 저토록 성대하게 벌이겠는가? 그리고 군율은 지엄한데 어떻게 취해서 쓰러지니 말리지 말라 하겠는가? 군율에 따라 참형에 처해질 뿐이다.
이 시는 저녁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나는 본다. 그 이유는 바로 야광배(夜光杯) 때문이다. 야광배는 밤에 빛이 나는 술잔이 아니고 술잔에다 포도주를 담아 놓으면 달빛이 비쳐 포도주 색이 은홍색으로 빛나 감미롭게 보이며 술의 향기와 맛을 더욱 좋게 하는 옥으로 된 술잔을 말한다. 오늘날 와인 소믈리에들이 와인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잔이며 와인을 따르는 방법 등을 고안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변방의 저녁에 연회를 해야 이 야광배가 의미가 있는 것이지 출정을 앞둔 낮에 연회를 하면 이런 잔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여기서 ‘최(催)’는 출정을 재촉한다는 말이 아니라 악곡의 빠르기가 빨라진다는 의미이다. 우연히 말 위에서 라는 표현이 있어 그런 착오를 한 것인데 본래 서역에서 온 비파는 말 위에서 연주하기에 좋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병영의 군사들이 다 같이 모여 건배를 하는 순간에 말을 탄 군악대에서 일시에 음악을 연주하는 연회의 가장 인상적인 첫 장면을 시에 담은 것으로 이해된다.
살아서는 돌아올 가망이 없는 출정을 앞두고 벌어진 호화로운 연회에서 짧은 연회를 즐기며 또 취해서 모래 바닥에 누워 자는 광태를 부려보기도 하지만 이런 해학과 호기가 오히려 더욱 슬프게 다가오는 데에 바로 이 시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시의 분위기를 외면상 광달한 태도로 보이도록 만든 것은 시의 내용을 더욱 비통하게 만들기 위한 시인의 의도 때문인 것이다.
《수호전》에 보면 무송(武松)이 서문경과 반금련을 때려 죽여 형 무대의 원수를 갚고 맹주(孟州)로 귀양 가 옥사에 갇혔을 때, 금안표(金眼彪) 시은(施恩)이 사식을 넣어 준다. 옥사 동료들은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좋은 음식을 준다는 내력을 알고 있기에 모두 무송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그 음식을 먹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송도 낙담하여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마음을 돌려 죽을 때 죽더라도 먹고 보자며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는 장면이 나온다.
이 시의 장면이나 정서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죽음을 앞 둔 사형수들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옥문을 나서는 것이나, 곧 죽을 줄 알지만 적진에 나아가는 군인이 마지막으로 잘 차려진 음식을 한 번 먹는 광경을 떠올려보면 이 시에 묘사된 포도주와 야광배의 호화로운 연회에 담긴 슬픔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를 변방 군인의 호화로운 연회 자체로 이해하거나 출정하기 전이라 이해한다면 이것이 시인의 뜻이겠는가?
365일 한시 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