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왕발王勃 산중에서山中

산중에서 山中/당唐 왕발王勃

長江悲已滯 장강 보며 오래 체류한 것 슬퍼지니
萬里念將歸 만 리 먼 길 늘 고향에 갈 생각하네
況屬高風晚 더욱이 마침 늦가을 바람마저 불어와
山山黃葉飛 이산 저산 누런 낙엽 날리고 있거니

왕발(王勃, 약650~676)은 14세에 <등왕각서(滕王閣序)>를 쓸 정도로 탁월한 문재와 호방한 정신을 가진 인물이지만 처신은 다소 신중하지 못했던 듯하다. 왕발은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조산랑(朝散郞)이라는 벼슬을 하며 당 고종의 여섯째 아들 이현(李賢)의 패왕부(沛王府)에 발탁되어 수찬(修撰)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20세에 장난으로 닭싸움을 소재로 하여 격문 같은 걸 썼다가 고종의 진노를 사서 축출되고 말았다. 그래서 왕발은 장안을 떠나 3년 정도 파촉을 돌아다니며 높은 산에 올라가 강개에 젖어 제갈량의 공업을 생각하는 시도 짓고 하였는데 이 시는 그때 쓴 작품이다.

이 시는 첫 구가 묘미가 있다. 흔히 첫 구를 ‘장강도 슬퍼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번역하고 장강에 나의 마음을 투영한 것으로 이해하는데 이는 시의 문법을 모르는 것이다. 또 ‘장강이 나의 오랜 체류를 슬퍼한다.’ 라고 보기도 하는데 이 역시 원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 말은 제목에서 밝혔듯이 높은 산중에서 보니 장강 물은 넘실거리며 유유히 흘러가건만 나는 가지도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오래 지체된 자신의 지금 상황이 슬퍼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이해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는 한시의 대구와 상징 때문이다. 우선 이 시는 앞 2구가 완전히 대구가 되어 있다. ‘이체(已滯)’와 ‘장귀(將歸)’를 보면 대구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본래 ‘장귀(將歸)’라는 말은 초(楚)나라 송옥(宋玉)이 쓴 <구변(九辯)>의 첫머리에 “슬프구나! 가을 기운이여! 싸늘한 바람에 풀과 나무 온통 시들어 버렸네. 처량히 멀리 있는 나그네가 높은 산에 올라 강물을 굽어보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친구를 보내는 것과 같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 憭慄兮若在遠行, 登山臨水兮送將歸.]”라고 하는 대목에 나온다.이는 한시의 대구와 상징 때문이다. 우선 이 시는 앞 2구가 완전히 대구가 되어 있다. ‘이체(已滯)’와 ‘장귀(將歸)’를 보면 대구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왕발은 변려문에 능하므로 이 글을 반드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글에 보면 높은 산에 올라 강물을 보며 떠나가는 친구를 전송하는 말이 있는데, 왕발을 바로 이 의경(意境)을 차용하였기에 제목을 산중(山中)이라 하고 첫 구에 장강을 제시한 것이다.

또 하나는 한시의 누적된 상징 세계인데 이는 현대시와 같아서 어떤 초목이나 강산, 지명, 인명뿐만 아니라 시상을 떠올리는 방식도 누적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시인들이 고향이 그리우면 그 심정을 고향으로 향해 가는 물이나 새에 의탁하거나 아니면 물이나 새는 그 쪽 방향으로 가는데 자신은 못 간다는 식으로 시상을 일으킨다. 바로 이런 2가지 이유 때문에 첫 구는 반드시 ‘장강을 내려다보니 내가 돌아가지 못하고 오래 이곳에 지체하는 것이 절로 슬퍼진다.’는 의미로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1, 2 구를 합치면 결국 ‘나는 장강 만리에서 늘 고향에 갈 생각을 하고 있지만 오래 지체하게 되니 슬퍼진다.’라는 의미가 된다. 즉 장강과 만 리는 명사이지만 이 시에서는 ‘장강 가에서’나 ‘만 리에서’와 같은 일종의 부사구나 ‘장강을 내려다보니’와 ‘고향에서 만 리 떨어진 곳에서’와 같은 부사절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시의 문법이다.

황촉(況屬)은 ‘하물며 마침’이라는 말이다. 황(況)은 앞의 상황보다 더한 점층적인 상황을 말할 때 사용하는 글자이며, 촉(屬)은 296회 위응물의 시에서 소개하였듯이 음이 ‘촉’인데 ‘마침 ~ 하는 때이다.’라는 의미이며 어떤 행위가 더욱 절실해지는 상황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뒤의 2구는 당연히 앞에서 말한 고향에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슬픈 마음을 더욱 부추기는 상황이 반드시 와야만 한다. 이 시에서는 그것을 늦가을 바람이 불어와 만산에 누런 낙엽이 날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고풍(古風)은 가을의 고기압을 몰고 오는 바람을 말하니 결국 가을바람이란 말이고 만(晩)은 이런 가을이 늦었다는 말이니 늦가을을 의미한다. 저녁이 아니다.

장안을 쫓기듯이 떠나 먼 파촉에서 오래 체류하고 또 향수를 부추기는 가을을 만났으니 그 비추(悲秋)의 심정이 가슴에 파고들 것이다. 이 시는 자신의 현재 심경을 전대 시의 전통과 연결하면서도 새롭게 자신의 방법으로 감회를 피력한 것이 특징이다. 여행자가 낙엽 지는 산에서 강물을 보면서 한 번 읊어볼 만한 시이다.

元 趙孟頫 《蜀道難》 北京故宮博物院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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