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에 처사 육우와 차를 마시며九日與陸處士羽飮茶/당唐 교연皎然
九日山僧院 구월 구일 산 속의 사찰
東籬菊也黃 동쪽 울타리에 국화 누렇네
俗人多泛酒 속인들은 대개 술에 띄우니
誰解助茶香 누가 차향을 도울 줄 알까
교연(皎然,730~799)은 당나라 중기의 시승이다. 본명은 사청주(謝清晝)로 6조 시대의 저명 시인 사령운의 10세손이다. 그는 오흥(吳興), 지금의 호주(湖州) 출신으로 평생을 오흥 동계 초당(東溪草堂)에 있으면서 안진경(顏真卿), 위응물(韋應物), 이양빙(李陽冰), 고황(顧況) 등과 창화하여 강동의 명승(名僧)으로 이름이 났다.
이 시에 나오는 육우(陸羽,733~804)는 훗날 <<다경(茶經)>>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 그는 본래 복주(復州) 경릉군(竟陵郡), 즉 지금의 천문(天門) 출신으로, 3살 때 호숫가에 버려졌다. 용개사(龍盖寺)의 주지인 지적선사(智積禪師)가 그를 거두어 자신의 성을 붙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육우는 유학을 배우고 싶어 절간을 뛰쳐나갔는데 우여곡절 끝에 경릉태수(竟陵太守) 이제물(李齊物)의 도움으로 학문을 배웠다. 안사의 난으로 강남 오흥으로 피신하여 초막을 짓고 상저옹(桑苧翁)으로 자호하였다. 바로 이때 시승 교연(皎然)과 친분을 맺은 것이다.
교연은 육우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고 안진경 같은 당대의 명사들도 소개해 주었다. 뿐만아니라 나중에 육우가 저술한 <다경>을 인쇄하도록 목판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 한 편의 시는 차를 잘 아는 두 사람이 만난 것을 보여주는 문화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 시에 동리국(東籬菊)이라는 말을 통해서 이미 도연명이 국화와 은자의 이미지로 자리 잡은 것을 보여주며, 당시 서민층에는 차가 일반화되지 않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는 차를 쪄서 벽돌처럼 만든 뒤에 그걸 불에 구워 가루를 내서 달이는 방식으로 마셨기 때문이다. 바쁜 서민들이 마시기에는 아무래도 번거롭다. 이 시에서 ‘국화를 차로 만들어 먹는다.’고 하지 않고 ‘차향을 돕는다’고 한 것은 아마도 차를 달일 때 국화 잎을 넣거나 다 달인 뒤에 국화 잎을 띄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최근 대만이나 중국에는 차에 관한 연구서와 도록들이 꽤 나와 알려고 들면 차에 대해 깊이 알 수도 있다. 거친 노동과 험난한 인간사를 풀어가는 데는 술이 꼭 필요하지만, 마음의 안정과 사색에는 차가 좋은 친구이다. 사찰에 가면 보통 다원이 있는데 가을에는 일부러라도 한 번 들러 나태와 멍한 시간을 좀 누릴 필요가 있다.
365일 한시 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