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백박白樸천정사 · 가을天淨沙 · 秋

천정사 · 가을天淨沙 · 秋/ 원元 백박白樸

孤村落日殘霞 외딴 마을 지는 해 스러지는 노을
輕煙老樹寒鴉 맑은 연기 늙은 고목 가을 까마귀
一點飛鴻影下 저 멀리 기러기 한 마리 내려앉네
青山綠水 푸른 산과 초록의 물
白草紅葉黃花 흰 풀과 붉은 나뭇잎과 누런 꽃

<천정사(天淨沙)>는 원나라 희곡에 들어가는 노래, 즉 곡패(曲牌)의 이름이다. 그 형식에 대해서는 백박(白樸, 1226~약1306)이라는 시인과 함께 지난 164회에서 소개하였다. 최소한의 것만 언급하자면 ‘천정사(天淨沙)’는 ‘맑은 가을 하늘 아래의 모래사막’이라는 의미로 이 노래가 본래 북방 사막에서 유전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천정사’는 이런 뜻은 의미가 없고 곡조의 이름만이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 이 시의 실질적 제목은 <가을>이고 그 곡조가 <천정사>라는 의미이다.

지금 이 곡패는 1,2,5구에는 평성 운자를 놓았고 3구는 측성 운자를 놓았으며 4구는 운자 없이 4자로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운자와 장단귀의 운용이 시와 다르기도 하지만, 사(詞)와 곡(曲)이 시(詩)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사패(詞牌)와 곡패라고 하는 미리 정해진 악보에 맞추어 가사를 창작한다는 점이다. 사와 곡은 이처럼 기존의 악보가 있고 그 악보에 맞는 가사를 짓는 것이므로 엄밀히 따지면 가사와 곡을 함께 감상해야 한다. 지금은 부득이 가사만 감상하기에 이해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사와 곡은 문학 작품으로서의 의미도 있고 아예 읽을 목적으로 창작하기도 하므로 그 나름대로 또 감상할 수 있다.

이 시는 대개 2글자씩 단어를 조합하여 풍경을 묘사하고 있고 오직 운자가 바뀌는 3번째 구만 문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 시어들은 모두 해가 질 무렵의 고적하고 스산한 늦가을의 정취를 드러낸다. 저 아득히 먼 하늘에서 한 점처럼 보이던 기러기가 내려오는 광경은 그러한 정적인 가을 풍경 묘사 속에 눈에 띄는 동적인 사물이다.

한아(寒鴉)를 물명으로 보아 갈까마귀 등으로 보기도 하지만 시에 나오는 것들은 대개 늦가을이나 겨울철에 보이는 까마귀를 이르는 말이다. 내려앉는 기러기를 영(影)이라 표현한 것은 ‘기러기의 그림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점처럼 떨어지는 ‘기러기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저 멀리 떨어지는 기러기 한 마리는 나의 고독이다. 청색, 녹색, 백색, 홍색, 황색 등은 가을이 베푸는 자연의 색이다. 게다가 저녁노을의 스러지는 잔영은 황혼이 베푸는 색깔이다. 늦가을의 황혼 무렵이 보여주는 이 다채로운 색채는 나의 고독 때문에 더욱 사무치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이 시의 중심은 3구에 있다.

이번 가을 태풍이 지나가면 머지않아 찬 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질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색채의 향연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질지 모른다. 금강산과 칠보산에 가면 물과 바다와 나무와 하늘이 펼치는 색채의 향연이 이 시보다 더 황홀할 것이다. 머지않아 가게 되기를 기원한다.

張大千

365일 한시 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