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고향 생각 秋思/당唐 장적張籍
洛陽城裏見秋風 낙양성에 가을바람이 온 것 보고
欲作家書意萬重 편지를 쓰려니 생각이 너무 많네
復恐匆匆說不盡 급히 쓰다 빠뜨린 말 있을지 몰라
行人臨發又開封 행인이 가기 전에 다시 펴서 보네
이 시는 113회에 <춘별곡(春別曲)>을 소개할 때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장적(張籍, 약 768~830)을 대표하는 이 시는 《춘향전(春香傳)》에도 나온다. 거지꼴로 위장한 어사가 춘향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중로(中路)에서 이 구절을 근거로 들며 향단이에게 받아 뜯어 본 것이다. 낙양에 거주하고 있는 시인이 가을이 찾아온 풍경을 보고 고향 소주(蘇州)에 있는 집-일설 안휘성 오강진(烏江津)-을 그리워하며 쓴 시이다.
<추사(秋思)>라는 제목으로 쓴 이백과 백거이의 시를 앞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이들 시는 모두 가을의 경물 변화에 자극을 받아 상념에 젖어 드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시는 가을에 집으로 편지를 보낸다는 내용인데 왜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추사(秋思)>라는 제목을 붙인 것일까?
시는 편지를 보내는 이야기로 되어 있지만, 시인의 마음은 가을이 촉발한 고향 생각에 중심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 시인보다 500년 정도 앞선 같은 소주 출신의 문인으로 장한(張翰)이 있다. 이 사람이 가을바람에 경물이 변하는 것은 보고 고향 소주의 순채 국과 농어 회가 생각나, ‘인생은 자신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왜 수천 리 밖 타향에서 벼슬에 얽매여 명예와 관직을 구한단 말인가!’ 이런 멋진 말을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간 일이 있다.
이 시는 이런 고사를 바탕에 깔고 있다. 자신은 장한처럼 과감하게 벼슬을 내던지고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이렇게 편지 한 장 보내는 것으로 향수를 달래고 있으니 자연 생각이 많다. 생각은 많은데 행인의 시간에 맞추다 보니 시간이 없어 허둥대기 마련이다. 행인이 출발하기 임박해서 다시 편지를 뜯어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시는 첫 구의 견(見) 자가 묘미가 있다. 가을바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데도 눈에 보인다고 말하였다. 이는 가을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이 떨어지고 풀이 마르며 추위가 엄습하는 등, 가을 풍경이 완연해진 것을 의미한다. 가을 풍경을 본다고 말하지 않고 가을바람을 본다고 말하여 가을바람과 가을 풍경을 동시에 느끼게 하였다. 공감각적 표현이다.
편지를 고향 방면으로 가는 사람에게 부탁할 때 다시 펼쳐 본다는 진술은 허둥대는 상황이 연상되어 슬며시 웃음을 짓게 한다. 편지 사연은 많은데 급히 쓰다 보니 혹 빠진 내용이 없지 않을까 해서이다. 시인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앞에서 충실하게 서술하고 있어 평범한 듯 하지만 상당히 구조적으로 잘 짜인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당시(唐詩)는 경치를 묘사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데 비해 이 시는 서술에 의존하고 있다. 또 자신의 마음이나 심리를 드러내지 않고 이야기를 만들어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일반적인 당시와는 상당히 다른 기법이다. 또 시인이 제목을 추사(秋思)라고 제시하여 시에서 전달하는 이야기와 함께 시인이 다 말하지 않은 정서적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점이 이 시의 특징이다. 다만 제목을 글자대로 번역하여 ‘가을날의 심사’ 등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원의를 전달할 길이 없어 <가을날의 고향 생각>으로 과감하게 바꾸었다.
가을에는 누구에게라도 한 통의 편지를 쓰기에 좋은 때이다. 지금 생각하니 편지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편지지를 마주하고 생각하는 그 시간이 좋은 것 같다.
365일 한시 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