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운수 트인 사내가 우연히 동정홍을 사고
페르시아인이 타룡의 껍질을 알아보다
第一卷 轉運漢遇巧洞庭紅 波斯胡指破鼉龍殼
이제 또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그는 하는 일마다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어 찢어지는 가난으로 고생을 겪다가 까마득하게 꿈도 꿀 수 없는 그런 곳에서 난데없는 재물을 얻어 거부로 변하게 된다. 종래에 희한한 일이고 자고로 처음 듣는 얘기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시가 있다.
분수 안의 공명(功名)과 궤짝 속의 재물은 총명하건 멍청하건 관계없다네. 정말로 재운과 관운이 있다면 바다 밖에서라도 보물을 보내준다네.
명대(明代) 성화(成化) 연간12에 소주부(蘇州府) 장주현(長州縣)13의 성문밖에 어떤 사람이 살았다. 성은 문(文)이요 이름은 실(實), 자는 약허(若虛)였다. 나면서부터 지혜로워 일을 하면 뭐든지 잘했고 배우기만 하면 바로 익혔다. 거문고와 바둑과 서예와 그림, 악기와 가무 모두 조금씩 할 줄 알았다. 어려서는 어떤 사람이 그의 관상을 보고 거부가 될 상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또한 자신의 재능을 믿고 그다지 열심히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앉아서 먹기만 하면 산 같은 재산도 바닥이 나는 법, 조상이 물려준 천금이나 되는 가산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런 뒤에야 가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장사로 늘 몇 배의 이윤을 남기는 것을 보고 자신도 장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을 해도 늘 되는 게 없었다.
하루는 북경에서 부채가 잘 팔린다는 말을 듣고 곧 동업자 한 명과 함께 부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금칠이 되어 있는 정교한 상품(上品)은 먼저 유명인들에게 선물을 보내 시와 그림을 부탁했다. 심석전(沈石田), 문형산(文衡山), 축지산(祝枝山)14 등이 붓 몇 번 휘둘러주면 바로 은자 몇 냥 값어치가 되었다. 중품(中品)은 가짜를 잘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 화가의 서화를 흉내 내어 사람들을 속여 가짜를 진짜로 해서 팔았다. 그 자신도 이런 일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품(下品)은 금칠도 서화도 없어 대충 몇 십 전에 팔리는 것이었으나, 여기서도 곱의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그는 날짜를 택해서 보따리를 꾸려 북경으로 갔다. 뜻밖에도 북경은 그 해에 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 매일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려서 전혀 덥지 않아 마수걸이도 매우 늦었다. 가을이 와서 아침에 선선해지면서 철은 늦었지만 다행히 하늘은 맑았고, 소주에서 만든 부채를 사서 소매 속에 넣어두고 부치려는 겉멋 든 자제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부채를 사려고 찾아와서 상자를 열어보자 비명이 절로 났다. 원래 북경에서는 칠팔월에 곰팡이가 잘 스는 데다가 지난여름의 눅눅한 기운이 더해져서 부채의 풀과 먹물이 착 달라붙어 펼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힘을 주어 펼쳐보니 여기는 달라붙고 저기는 찢어져 글자와 그림이 있는 값나가는 것은 하나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망가지지 않은 것은 글씨가 쓰여져 있지 않은 하품의 부채였으니 그것이 값이 얼마나 나가겠는가? 급한 대로 그거라도 팔아 여비나 마련하고 돌아왔으니 본전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하였다.
매년 사업이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자신만 본전을 까먹은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사업을 했던 동업자까지 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별명을 붙여서 ‘재수 없는 사람’이라 불렀다. 몇 해 가지 않아 집의 재산은 몽땅 거덜이 났고 장가도 가지 못했다. 종일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이리저리 부딪히고 하였으나 무슨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입으로는 싱거운 소리를 잘하고 곧잘 사람을 웃겨서 친구들이 좋아하여 놀러갈 때는 꼭 그를 데리고 다녔다. 그래봤자 그저 입에 풀칠하는 정도였지 제대로 살아갈 만큼은 못되었다. 하물며 그는 떵떵거리며 살아왔던 터라 놈팽이들 패거리와 잘 어울려 지내지도 못했다. 그를 동정하는 사람들은 그를 글방 선생으로 추천하려 했지만, 고지식한 사람들은 그가 정통한 지식이 없다고 꺼렸다. 어중간해서 높은 자리도 낮은 자리도 다 맞지 않았다. 그 후로는 식객 노릇하는 자나 선생노릇 하는 자들이 그를 보면 얼굴을 찌푸리고 “재수 없다”다며 그를 비웃었음은 물론이다.
그의 이웃들 중에는 해외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루는 우두머리격인 장대(張大), 이이(李二), 조갑(趙甲), 전을(錢乙) 등 모두 사십여 명이 무리를 지어 장삿길을 나서려고 했다. 그는 이것을 알고 혼자 생각했다.
‘나는 완전 망해서 생계도 막막하다. 그들을 따라 항해하면서 외국 구경 하는 것도 태어나서 한 번 할 만한 일이다. 더구나 그들은 분명히 나를 못 본체는 하지 않을 것이니 집에서 쌀 걱정, 땔감 걱정 하지 않는 것만 해도 즐거운 일 아닌가.’
한참 궁리하고 있는데 마침 장대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원래 이 장대는 이름이 장승운(張乘運)이었는데 해외 장사를 전문으로 하여 진귀한 보물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더구나 천성이 호탕하고 사람을 선뜻 잘 도와주는 성격이라 마을 내에서는 그에게 장식화(張識貨)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문약허는 그를 만나자 자신의 생각을 모두 말해주었다.
장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좋지요. 우리는 배 위에서 따분해 견디기 어려운데, 만약 문 형이 동행하여 배에서 웃고 떠들다 보면 지겨울 틈도 없을 것 아니요? 우리 여러 형제들 모두 좋아할 것이오. 다만 한 가지, 우리들은 모두 물건을 가지고 가는데 형씨는 전혀 가진 게 없으니 공연히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우리들이 상의해 얼마간 모아서 문 형을 도와 줄 터이니 대충 물건들을 장만해서 가는 것도 좋겠소.”
“두터운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저 형님처럼 저를 선뜻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을지 그게 걱정입니다.”
“우선 말이나 해보지요.”
하고 장대는 가던 길을 갔다.
그때 어느 장님 점쟁이가 징을 두드리며 걸어왔다15. 문약허가 주머니를 더듬어보니 동전이 하나 있어 점쟁이를 붙들고 재운을 물어보았다.
점을 친 후 점쟁이가 말했다.
“이 괘는 범상치가 않습니다. 엄청난 재운이 있어요. 이만저만한 운이 아닙니다.”
문약허는 혼자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빌붙어 외국으로 나가 놀면서 세월을 보내려고 하는 것뿐인데, 내가 할 수 있는 돈벌이가 어디 있을 것이며 무슨 후원이 있겠는가? 설령 후원을 해준다 한들 그게 얼마다 되겠어? 그런데 어떻게 재운이 트인단 말인가! 이 점쟁이도 엉터리구만!’
이때 장대가 화가 잔뜩 나서 걸어왔다.
“돈과는 연이 없나봅니다. 이 사람들 정말 웃기네. 문 형이 간다고 하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소. 그런데 돈 좀 보태 달라 하니 그러겠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요. 지금 내가 친한 형제 두어 명과 은자를 한 냥 모아왔소. 이걸로는 무슨 물건을 떼지는 못할 것이니 마음대로 간식이나 사서 배에서 드시오. 식사할 것은 우리들한테 있으니까.”
문약허는 거듭 감사하다 하면서 은자를 받았다.
장대는 앞서 가면서 말했다.
“빨리 짐을 싸시지요. 곧 출항합니다.”
“챙길 것도 별로 없습니다.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문약허는 손에 은자를 들고 보다가 웃고 또 웃다가 다시 보았다.
“이걸로 무얼 살 수 있을까?”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가는데 길거리에 온통 광주리에 무언가를 가득 담아 파는 것이 보였다.
붉은 빛은 치솟는 불길 같고 크기는 낮게 달린 별 같구나. 껍질이 벌어지지 않아 아직 신맛이 남아있네. 서리가 내리기 전에는 많이 따서는 안 되지. 소(蘇) 씨 집 우물가의 귤나무는 원래 드물지만16, 또한 이(李) 씨의 천 그루 나무 종놈도 아니로다17. 광동(廣東) 것과 비교하면 난형난제인 듯 하고, 복건(福建) 것과 비교해도 별반 다를 게 없네.
태호(太湖)에는 동정산(洞庭山)이 있는데 온난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복건이나 광동 지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광동 귤과 복건 귤이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는데, 동정에도 똑같은 귤나무가 있었고 그것들과 매우 비슷했다. 색깔도 완전히 같았고 향기도 같았다. 다만 처음 나왔을 때는 맛이 약간 시지만, 후에 익으면 역시 매우 달았다. 복건 귤과 비교하면 가격은 십분의 일에 불과했고, 이름을 동정홍(洞庭紅)이라 하였다. 문약허는 이 광경을 보고 생각했다.
“은 한 냥이면 백 근을 사고도 남겠다. 배에서 갈증을 풀 수 있고 또 사람들에게 한 두 개씩 나누어주어 도와준 것에 보답할 수도 있겠군.”
그는 그것을 사서 대나무 광주리에 담고 짐꾼을 고용해 짐과 함께 배로 운반하였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웃었다.
“문 선생의 보물이 왔구려!”
문약허는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으나 꾹 참고 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시는 감히 귤을 샀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배는 출항하여 점점 해안을 벗어났다. 그 광경은 이러했다.
은빛 파도는 눈을 말아 올리는 듯하고, 눈부신 물결은 은을 헤집는 듯하구나. 물살이 바뀌면 해와 달도 놀라는 듯, 파도가 넘실대면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
사나흘 동안 바람을 따라 항해를 했는데, 얼마나 먼 길을 지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홀연 어느 곳에 이르렀는데, 배에서 바라보니 사람들이 매우 많고 성곽이 높이 솟아있어 어느 나라의 수도에 닿은 것임을 알았다. 뱃사람들은 배를 바람과 파도를 피할 수 있는 조그만 포구 안으로 저어가서 닻을 내리고 말뚝과 쐐기를 박아 배를 매어두었다. 배 위의 사람들은 모두 해안에 내렸다. 한번 둘러보니 원래 전에 왔었던 곳으로, 길령국(吉零國)이라 불리는 나라였다. 원래 중국 물건을 이곳으로 가져오면 값이 세 배가 되었다. 반대로 중국 물건을 이곳 물건으로 바꾸어 중국에 가져와도 역시 그러하였다. 한번 왕복하면 곧 여덟아홉 배의 이윤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하려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장사를 해본 적이 있어 각자 아는 거간꾼과 여관, 통역 등이 있었다. 그래서 상륙하자 그들을 찾아 물건을 팔러 갔다. 문약허 혼자 남아 배를 지키고 있었다. 길도 모르고 갈 곳도 없었다.
무료히 앉아 있는데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저 귤 광주리는 배에 오른 뒤부터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는데, 설마 사람들 열기에 상해버린 것은 아니겠지? 사람들이 없으니 한번 봐야겠다.’
선원을 시켜 갑판 아래에서 뒤져내어 광주리를 열어보았다. 겉으로 보니 모두 싱싱해 보였으나 안심할 수 없어 아예 끄집어내어 모두 갑판 위에 늘어놓았다. 역시 출세할 운인지라 때맞추어 복이 모여들었다. 온 배 위에 시뻘겋게 늘어놓으니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온통 시뻘건 불이요 밤하늘의 뭇별 같았다. 해안가를 걷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물었다.
“저 신기한 물건은 뭐요?”
문약허는 대답하지 않았다. 중간에 약간 시들시들한 것이 보여 골라내서는 눌러 까서 먹었다. 해안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모두들 놀라 웃으며 말했다.
“원래 먹는 것이구만.”
그 중 호기심 많은 사람이 와서 값을 물었다.
“하나에 얼마요?”
문약허는 그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었으나, 뱃사람이 알아듣고는 거짓말로 그를 속이며 손가락 하나를 세우고 말했다.
“하나에 일전이오.”
물었던 사람은 긴 옷을 들춰 비단으로 싼 붉은 복대를 드러내고는 한 손으로 은전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맛이나 보게 하나만 주시오.”
문약허가 은전을 받고 손대중을 해보니 대략 한 냥 정도의 무게였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은자는 값어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군. 무게를 달아보지도 못했고. 우선 하나만 그에게 주고 어떻게 하나 보자.’
좀 크고 먹음직스럽게 붉은 것을 하나 집어 건네주었다. 그 사람은 그것을 손에 받아들면서 발을 굴렀다.
“정말 탐스럽네!”
그러면서 쩍 하고 쪼개니 상큼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주위에서 냄새를 맡은 많은 사람들도 모두 탄성을 질렀다. 귤을 산 사람은 뭐가 뭔지도 몰랐지만 배 위에서 먹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서 껍질을 벗기고는 조각을 나누지도 않고 한꺼번에 입안에 쑤셔 넣었다. 단물이 목구멍에 들어차자 씨도 뱉지 않고 삼켜버렸다. 그는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맛있네! 맜있어!”
그러고는 또 복대 안으로 손을 넣어 은전 열 개를 꺼내며 말했다.
“윗사람에게 갖다 바치게 열 개 사겠소.”
문약허는 뜻밖의 횡재에 기뻐하며 열 개를 골라 주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렇게 사가는 것을 보고는 하나를 사려는 자도 있었고 두세 개를 사려는 사람도 있었는데 모두 같은 은전을 냈다. 귤을 산 사람은 모두 신이 나서 돌아갔다.
원래 그 나라는 은을 돈으로 삼았는데, 은전에는 무늬가 있어서 용봉무늬가 가장 귀한 것이고 그 다음이 사람, 그 다음이 짐승무늬였고 또 그 다음이 나무였다. 가장 값어치 없는 은전이 수초(水草) 무늬였으나, 모두 은으로 주조한 것이고 은의 분량은 같았다. 방금 귤을 사간 사람들이 낸 것은 모두 똑같은 수초무늬 은전이었다. 그들은 하등의 돈으로 좋은 물건을 샀다고 좋아한 것이었다. 그저 작은 이익이라도 추구하는 마음은 그들도 중국인과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삼분의 이가 팔려나갔다. 어떤 사람은 수중에 돈이 없어 크게 후회하면서 급히 돈을 가지고 왔다. 문약허는 남은 것이 이미 많지 않자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지금 남은 것은 내가 먹을 거요. 팔지 않겠소.”
그 사람은 일전을 더 얹어주겠다고 하여 은전 네 개로 두 개를 샀다. 그 사람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재수가 없네. 너무 늦게 왔어.”
주변 사람들은 그가 돈을 올려주는 것을 보고 원망하며 말했다.
“우리도 하나 사려고 했는데 왜 값을 올려주고 그래?”
“당신 방금 그 사람이 팔지 않겠다고 한 말 못 들었소?”
의론이 분분한 가운데 처음에 열 개를 사갔던 사람이 청총마를 타고 나는 듯 배 옆으로 달려왔다. 말에서 내려 사람들을 헤치며 배 위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낱개로 팔지 마시오! 낱개로 팔지 마! 내가 몽땅 사겠소. 우리 두목이 칸18에게 바치려고 하오!”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는 멀리 물러서서 지켜보았다. 문약허는 영리한 사람이라 돌아가는 형세를 보고는 이미 상황을 간파하였다. 그가 좋은 고객임을 알아보고 급히 광주리를 기울여 모두 다 꺼내보니 오십여 개만 남아있었다. 하나하나 세어보고 또 허세를 부리면서 말했다.
“방금 말했소. 남겨서 내가 먹으려 하니 팔 수 없다고. 당신이 값을 더 얹어주면 몇 개는 더 팔아주겠소. 방금 이미 하나에 이 전씩 받았소.”
그 사람은 말 등에서 큰 주머니를 끌어내려 돈을 끄집어냈는데, 아까 것과는 다른 나무 무늬 은전이었다.
“이 돈에 하나씩 파시오.”
“싫소. 아까 것과 같은 걸로 내시오.”
그 사람은 웃으며 다시 용봉무늬 돈을 끄집어내어 말했다.
“이런 것에 하나씩이면 어떻소?”
“싫소. 아까랑 같은 걸로 합시다.”
그 사람은 또 웃으며 말했다.
“이 돈 하나면 아까 것 백 개에 해당하는 것이요. 그러니 이걸 당신에게 줄 수는 없지. 그저 당신에게 농담 한 번 한 거요. 그런데 당신은 이런 은전은 싫다 하고 오히려 그런 하찮은 것을 원하다니 정말 어리석군요. 당신이 그 과일들을 내게 다 준다면 수초무늬 동전 하나씩 더 얹어줄 수도 있소.”
문약허가 세어보니 52개가 남아 있어 그에게 정확히 수초무늬 은전 156개를 달라고 하였다. 그 사람은 대나무 광주리 채로 달라고 하고 돈을 한 닢 더 주었다. 그러고는 광주리를 말 위에 묶고 희희낙락하며 달려갔다. 구경꾼들은 더 이상 팔 것이 없음을 보고는 와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문약허는 사람들이 흩어진 것을 보고 배 안으로 들어가서 돈 하나를 달아보니 8전 7분 남짓한 중량이었다. 몇 개를 달아보아도 모두 똑같았다. 다 세어보니 모두 천 개쯤 되었다. 두 개는 배 주인에게 상으로 주고 나머지는 자루 안에 넣어두었다. 그는 한바탕 웃으며 말했다.
“그 맹인 점괘가 용하네!”
그는 너무나 기뻐 동승한 사람들이 돌아기만을 기다렸다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12 성화(成化)는 명 헌종(憲宗) 주견심(朱見深)의 연호로, 재위기간은 1465-1487년이다.
13 명대에는 오현(吳縣, 중심지는 지금의 쑤저우시蘇州市이다)이 두 개의 현(縣)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장주현이 동쪽, 오현이 서쪽이었다. 현의 행정은 모두 소주성(蘇州城) 안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역시 동과 서로 나누어져 있었다. 민국 초기에 다시 오현으로 합쳐졌다.
14 이들은 모두 명대 장주(長洲)의 유명 화가들이다. 심석전은 심주(沈周, 1457-1509)이고 석전은 그의 호이다. 문형산은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이며, 축지산은 축윤명(祝允明, 1461-1527)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로 명대 중기 소주 지역의 중요한 화가들이었다.
15 옛날에 맹인 점쟁이들이 동이나 나무 판을 두드려 소리를 내었는데, 여기서 징은 이 물건을 가리킨다. 이것을 손에 들고 걸어가면서 소리를 울려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고 한다.
16 《신선전(神仙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한대에 신선이 된 소탐(蘇耽)에게 모친이 “네가 승천을 하면 나 혼자 어찌 사느냐?”고 물었다. 소탐은 내년에 역병이 들 것이니 집에 있는 우물의 물과 그 옆의 귤나무 잎을 함께 먹으면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과연 다음 해에 역병이 돌아 모두들 소탐의 모친을 찾아 우물물과 귤나무 잎을 먹고 병을 고쳤다고 한다.
17 정사 《삼국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오(吳)나라 단양(丹陽) 태수 이형(李衡)은 식구들 몰래 무릉(武陵)으로 사람을 보내 천 그루의 귤나무를 심었다. 그러고는 죽기 전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주(州)에 천 명의 나무종놈[木奴]이 있는데, 너에게 옷과 밥을 달라 하지도 않을 것이며 매년 비단 한 필은 바칠 것이니 그것으로 먹고 살거라.” 나중에 그 귤나무에서 매년 비단 쳔여 필에 해당하는 수입이 나와 집안이 윤택해졌다고 한다. 이후 ‘木奴’가 귤의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18 원문은 ‘克汗’으로, 가한(可汗)이라고도 한다. ‘Khaghan’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며 이후에는 ‘Khan’으로도 불렸다. 원래 유연(柔然), 돌궐(突厥), 몽고(蒙古) 등 북방 유목민족의 최고 지도자를 일컫는 명칭이었다. 여기서 해양국가의 군주를 ‘克汗’이라 칭한 것은 저자가 이를 외국 군주에 대한 통칭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