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가도賈島 이응의 유거에 대해題李凝幽居

이응의 유거에 대해題李凝幽居/당唐 가도賈島

閑居少鄰竝 한가한 거처 곁에 이웃도 적고
草徑入荒園 수풀 길 거친 정원으로 통하네
鳥宿池邊樹 새는 못가 나무에 잠들어 있고
僧敲月下門 승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過橋分野色 다리 건너니 들판 색 구분되고
移石動雲根 바위 옮겨가니 구름도 따르네
暫去還來此 잠시 떠나가지만 다시 오리니
幽期不負言 은거의 약속 저버리지 않으리

이 시는 가도(賈島, 779~843)가 친구 이응의 은거지를 방문하고 지은 시이다. 어떤 이들은 이때 이응을 만나지 못했다고 하지만 시 내용을 보면 이응과 만나 며칠 지내다가 다시 헤어지면서 이 시를 지어 준 것으로 보인다. 가도는 지금의 북경 인근에 해당하는 범양(范陽) 사람으로 승려가 되었다기 나중에 환속하여 낮은 벼슬을 지낸 시인이다.

이 시는 가도의 시 중에 가장 유명한 시이자 한유(韓愈)가 평한 ‘가도의 시는 메마르다[瘦]’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메마르다’는 말은 부연 설명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꼭 필요한 말조차 생략하여 시의 의미를 잘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글자나 단어를 정련하여 갈고 닦았기 때문에 음미하면 깊은 맛이 난다는 의미도 된다.

주변에 이웃도 거의 없고 방문객도 없어 출입하는 오솔길이 풀로 덮여 있고 정원도 제대로 손본지 않아 거칠게 된 것이 유거(幽居), 즉 은자의 거처임을 말해 준다.

가도는 이 시를 처음 쓸 때 ‘지변수(池邊樹)’를 지중수(池中樹)로 썼다가 고쳤다. 또 고(敲) 자 역시 퇴(推) 자로 썼다. 문을 미는 게 좋을지 두드린다고 하는 게 좋을지 몰라 손동작까지 해 가면서 나귀를 타고 장안 거리를 가다가 퇴근하는 한유의 행차와 부딪치는 사고를 범하였다. 잡혀 온 이상한 중 가도를 앞에 두고 한유가 화를 내자 가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유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해다.
“고자가 낫다! 두드린다고 해야 주변이 조용하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고 친구 집을 방문하니 문을 두드려야 예에도 맞다!”
가도는 그 말에 감탄하였고 두 사람은 한유의 관사로 와서 며칠 동안 시에 대해 토론하였다. 이것이 퇴고(推敲)의 고사이다.

흔히 이 말은 ‘글을 다듬는다’는 관용어로 쓰이고 있을 뿐 본래 말의 실체는 다소 사라진 느낌이다. 맥락으로 보면 이 말은 시인이 시어의 정련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도의 고민도 고민이지만 한유의 말과 대접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시의 감상과 해설은 매우 고도의 정밀성을 요구한다는 뜻이 된다,

한유가 가도의 시를 평한 메마르다[瘦]’는 특징은 5, 6구에 가장 잘 드러난다. 예전에는 산보다 물이 더 자연적인 경계가 되었다. 물에 따라 사는 사람도 나뉘고 그에 따라 작물 재배도 달라진다. 다리를 건너자 들판의 색이 달라졌다는 것은 이런 물에 의해 들판의 농사 환경이 달라져 들판 풍광이 서로 구분되는 것을 말한다.

바위가 옮겨가니 구름이 움직인다는 말의 실제 상황은 이응의 유거처로 오는 도중에 바위가 여기저기 있어 다소 험준했다는 말로 보인다. 운근(雲根)은 구름이 바위에 부딪쳐 일어난다고 하는 발상에서 유래한 말로 ‘구름이 생겨나는 곳’이나 ‘바위’를 뜻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가도가 오는 도중에 몇 개의 바위를 지나게 되었으니 그러면 결국 구름이 일어나는 곳도 따라서 움직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해석은 이익(李瀷, 1579~1624)의 《성호사설》 운근(雲根) 조에 기초한 것인데, 이익 역시 가도의 이 시구를 인용하면서 ‘극히 어렵고 깊다[極艱深]’고 하였다. 구름이 날아 움직이는 상황에 따라 바위가 마치 옮겨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묘사했다고 보는 설은 일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이석(移石)‘과 시인의 행동이 관련이 없어 대구가 정교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마지막 구절을 보면 본래 가도가 이응과 함께 은거하자고 약속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가도는 지금은 잠시 이곳을 떠나지만 나중에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한다. 이응이 누군지 분명치 않지만 장적(張籍)의 시에도 나오는데 양양(襄陽)의 남곽(南郭) 밖에 있었다고 한다. 가도는 한유를 만나 환속을 하고 낮은 벼슬을 하다 죽었으니 결국 이 약속은 지키지 못한 것이 된다.

대개의 한시가 그렇기도 하거니와 이 시는 특히 시어에 공을 들인 탓에 한참 동안 마른 명태를 씹듯이 그 맛을 음미해야 한다. 요즘 쓰는 글들은 한 번 볼 때는 매력적이고 이목을 끌기도 하는데 두 번 세 번 보거나 음미하면 내용이 부실하거나 전후가 모순되어 실망하거나 허망한 경우가 많다. 고전은 이와 달라 처음에는 다소 딱딱해 보이지만 그 지루함을 참고 차분히 씹어보면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깊은 맛을 알게 된다. 한시는 더욱 그렇다.

明 盛茂烨, <夏山访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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