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권하는 시勸學詩/무명씨無名氏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 성공 어렵나니
一寸光陰不可輕 일분의 시간이라도 허투루 쓰지 말라
未覺池塘春草夢 연못의 봄풀 꿈에서 깨지도 않았는데
階前梧葉已秋聲 뜰 앞 오동에선 이미 낙엽이 떨어지네
이 시는 인터넷이나 여러 선집에 작가가 주자(朱子)로 되어 있다. 학문을 강조하는 교훈적인 좋은 내용이라 주자가 말했음직하고 평측을 따져 봐도 상평성 경(庚)자 운을 1, 2, 4구에 놓았고 측기식(仄起式)으로 구성하여 아무 문제가 없다.
일촌(一寸)은 현대 도량향으로 환산하면 1분 30초 정도 된다. 일분, 이분도 아껴 쓰라고 하면 현실감이 있다. 추성(秋聲)은 오동잎이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시가 20년 정도 전에 주자의 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주변에 공부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나눈 적이 여러 번이다. 지난번에 우연히 어떤 모임에 갔더니 누가 이 시를 말하기에 내가 주자시가 아니라고 말했더니 당장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해 보여준다. 나는 조용히 집에 가서 주자 문헌을 살펴보라고 말했다. 주자의 문헌 어느 곳에도 이 시는 실려 있지 않다고.
근원을 따져 가면 《명심보감》 증보편의 <권학편>에 실린 <주자권학문> 뒤에 소개되어 있어 세상에 주자의 시로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자전서》, 《주희집》 등 주자의 문헌 어디에도 이 시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청대 이전 문헌에서 이 시를 다룬 문헌이 없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문집에도 이 시가 언급된 곳이 없다. 비슷한 구절에 무리하게 끌어다 붙여 잘못 단 주석들이 눈에 띌 뿐이다.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일까? 작고한 이우성(李佑成) 선생이 청주판 명심보감을 1990년에 영인한 일이 있는데 그 서문과 해제에 의하면 재미나는 사연이 있다. 당신이 1970년대에 동해안의 한 고가에서 1454년(단종2) 충청감사 민건(閔騫)이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명심보감을 찾아 영인하려 하였는데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아주 적은 분량만 인쇄하였고 다른 출판사에 맡겼다가 화재를 만나 불타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일본의 쓰쿠바대학(筑波大學)에서 이 판본을 발견하고 영인하게 되었다 하며 필리핀에서 네덜란드어로 번역된 동양 최초의 책이 이 《명심보감》이라 한다.
그런데 이 판본을 살펴보면 문제의 이 권학문 시가 없다. 그 초략본인 1664년 태인(泰仁)에서 간행된 것에도 1637년 태인본을 성실히 베낀 판본에도 이 시는 없다. 이 시가 언제부터 등장한 것인지는 좀 더 찾아보아야 하겠지만 근세의 어느 때로 보인다. 1992년에 성백효 선생이 번역한 《명심보감》은 후대에 증보한 사람을 알 수 없는 판으로 번역을 하였는데 이 책이 널리 통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가 《명심보감》에 끼어들어간 것은 증보편이 삽입되는 시기일 것이다. 《명심보감》 본래의 판본에는 없었고 그 이전 다른 문헌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 시는 <<명심보감>>을 증보한 누군가가 슬쩍 끼워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동환(金東煥)의 「抄略本『明心寶鑑』의 刊行 經緯와 그 內容 」에 의하면 이러한 증보판 계열은 일제 시대에 주로 나온 것이다. 《명심보감》은 본래의 저자가 명나라 범립본(范立本)인데 고려 시대 추적(秋適)이라 해 놓았고 본래 책에 없는 내용을 마구 삽입하는 행위는 오늘날 인터넷에 남의 글을 함부로 도용하고 편집하는 행위와 같다. 일종의 영리나 사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이것을 규명하는 것과 그럼 누가 작가인지를 밝히는 일은 별도의 일이고 이것만으로도 이 시가 주자의 시라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을 우선 알 수 있다.
세간에는 이 시 외에도 많은 시들이 작가 고증이 없거나 잘못 된 채 유통되는 것들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매화는 일생을 가난하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고,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아름다운 곡을 간직하고 있다.[梅一生寒不賣香, 桐千年老恒藏曲]’라는 것인데 인터넷에 보면 수많은 신문과 블로그 등에 이 시를 인용하면서 상촌 신흠의 《야언(野言)》을 들고 있다. 그러나 <<야언>>에는 이 시가 없다. 또 어떤 이는 이 시가 조지훈의 《지조론》에 있다고 한다. 조지훈전집 어디에도 이 시는 없다. 이 말 역시 모르고 한 말이다. 이 시는 윤오영의 수필에 나온다. 그가 어떤 시골에 갔더니 조그만 궤짝에 이 시가 적혀 있어 소개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이 시는 그 궤짝을 만든 사람에게 누가 지어주었거나 항간에 떠돌던 시인 것이다.
전에 황진이의 반달[詠半月]이라는 시가 <당시선>에 나오므로 당나라 시인의 시를 황진이 시로 우리나라 사람이 착각한 것이라는 원로 한학자의 글이 있었다. 나에게 마침 그 책이 있어 전 편을 조사했더니 그 시가 없다. 나중에 학술 논문을 보니 똑 같은 주장을 하는 글이 있어 내가 이메일로 정중하게 가르침을 청했더니 시간이 바빠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글을 썼다는 답을 들었다.
또 예전에 한문을 가르치던 한 선생님이 ‘푸른 하늘 종이 한 장에 내 뱃속의 시를 쓴다.[靑天一張紙, 寫我腹中詩]’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이백의 시라 했다. 내가 이백의 전집을 사서 찾아 봐도 그런 시가 없어 이상하게 생각했다. 마침 올 봄에 국립박물관에서 근대서화전을 하기에 가 봤더니 당시 신문에 기자가 쓴 글 제목이었다.
예전 문집 속에는 그 주인공이 마음에 들어 베껴놓은 것을 문집을 편찬할 때 미처 고증하지 못하여 그 작가의 시로 들어간 것들이 좀 있다. 예전에는 참고할 문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시를 번역하거나 감상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진위 여부를 가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시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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