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망호루에 올라 술에 취해 쓰다六月二十七日望湖樓醉書/송宋 소식蘇軾
黑雲翻墨未遮山 먹물을 쏟은 듯 먹구름 산을 채 못 덮어
白雨跳珠亂入船 후드득 구슬 같은 빗방울 배로 쏟아지네
卷地風來忽吹散 갑자기 몰아치는 바람 구름 다 날려버려
望湖樓下水如天 망호루 아래 호수 물결 하늘과 한 빛이네
이 시는 소식(蘇軾, 1036~1101)이 37세 때 항주 통판(杭州通判)으로 있던 1072년 6월 27일에 쓴 시이다. 망호루는 항주 서호의 단교(斷橋)가에 있다. 달리 간경루(看經樓), 선덕루(先德樓)라고도 하는데 오대 시대에 오월왕 전홍숙(錢弘俶)이 창건한 누각이다. 이곳은 위치가 좋아 망호루란 누각 이름처럼 서호를 감상하기에 아주 좋다.
작시 배경을 일부 설명하고 있는 제목과 시의 내용을 볼 때, 시인은 처음 서호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소나기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 다급하게 근처 망호루로 비를 피한 뒤에 술을 한 잔 하면서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에 놀란 마음을 담아 이 시를 썼을 것이다. 본래 이 제목 아래 5편의 7언 절구가 있는데 이 시는 그 중 첫 째 수이다.
여름철 산에 소나기구름이 몰려와 미처 산을 다 가리기도 전에 뱃전에 먼저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장면이 실감난다. 예전에 시골서 일하다 보면 먼 산에 구름이 갑자기 시커멓게 몰려올 때가 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내 던지고 집으로 도망치듯 달려오면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런 신기한 자연 현상은 여름철 호수나 산에서 잘 발생한다. 전에 황산(黃山)에 가보니, 금방 눈앞에 펼쳐진 산들이 순식간에 지워지더니 다시 햇살이 빛나며 산봉우리들이 드러나곤 하는 광경을 자주 목도하였다. 여름철 자연 현상은 거짓말같이 변화하여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는데 이 시는 바로 이 점을 소재로 하고 있다.
조금 전 배에서 겪었던 소동이 거짓말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호수와 하늘은 맑기만 하다. 망호루에 올라 아직도 빗방울이 다 마르지 않은 축축한 옷을 입고 있을 소동파가 이런 체험을 하고 어찌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잔 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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