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6언 시夏日六言 其三/송宋 육유陸游
溪漲清風拂面 계곡물 불고 맑은 바람 얼굴 스치고
月落繁星滿天 달은 기울고 수많은 별 하늘 가득
數隻船橫浦口 몇 척의 배 포구에 가로놓여 있고
一聲笛起山前 한 가락 피리 소리 산 앞에서 나네
이 시는 1125년 육유(陸游, 1125~1210)가 85세 때 고향 산음(山陰)에서 지었다. 4수 연작 중 3번째 시이다. 앞 2구는 2자씩 말이 되며 2, 4로 끊어지고 뒤의 2구는 3, 3으로 끊어진다.
계곡물이 불었다고 하니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아 기온도 떨어지고 물소리도 크게 들린다. 이런 때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시인은 밤공기를 쐬러 밖으로 나와 있다. 상현달은 벌써 서산으로 지고 있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아름다운 수를 놓고 있다.
이와 함께 달빛 비치는 포구에는 배들이 이리저리 정박해 있고 멀리 산기슭에서 누군가 피리를 분다. 고요한 밤 아름다운 선율이 시원한 바람을 타고 물소리와 함께 흐른다.
월락(月落)은 ‘하늘의 달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이 말은 ‘달이 진다’는 의미와 ‘달빛이 호수나 강에 비친다.’는 2 가지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달이 진다는 말이다. 가령 내일이 음력 6월 8일로 상현인데 낮 1시 28분에 달이 떠서 밤 0시 35분에 진다. 그믐으로 갈수록 월몰 시각이 자꾸 늦어진다.
나도향이 <그믐달>에서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믐달은 보는 사람이 적어서 외로운 달이다.”라고 한 것은 이런 달의 변화와 그 달을 보는 사람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쓸 수 있는 수필이다. 시의 상황을 보면 이 시는 소서 절기 어름에 밤 12시를 전후한 무렵에 쓴 시로 추정할 수 있다.
비가 온 뒤의 청량한 여름밤 한적한 수변 마을의 정경을 900년 전 시인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시는 식물의 씨앗처럼 정경과 정서를 간직한 채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살아난다. 한시의 경우, 씨앗을 싹 트게 하는 것은 번역자나 연구자의 책임이 크다.
365일 한시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