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개인 봄날雨晴/당唐 왕가王駕
雨前初見花間蕊 비 오기 전 꽃잎 속 꽃술 첨 봤는데
雨後兼無葉裏花 비 온 뒤엔 잎 사이 꽃도 하나 없네
蛺蝶飛來過牆去 나비들 꽃 찾아 왔다 담장 넘어 가니
卻疑春色在鄰家 봄빛이 이웃집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비가 오기 전엔 우리 집 화원에 꽃들이 만발했다. 어느 날 보니 꽃 잎 속 꽃술까지 보여 내일 또 감상하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비가 왔다. 오늘 드디어 날이 개어 나가 보니 꽃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꽃잎 속 꽃술은 고사하고 잎만 무성하고 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에 왔던 나비들이 꽃을 보러 왔다가 우리 집에 꽃이 없으니 담장을 넘어 이웃집으로 날아간다. 봄빛이 이웃집으로 죄다 옮겨 간 것일까?
‘초견(初見)’은 처음으로 보았다는 말인데 비가 오고 난 뒤엔 다시 못 본 아쉬움이 있다. ‘겸무(兼無)’는 꽃잎 속 꽃술은 고사하고 꽃 자체도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비가 아무래도 며칠 내린 모양이다. ‘꽃술을 처음 보았다’는 말과 ‘꽃조차도 하나 안 보인다.’는 말이 한옥의 사개 물림처럼 묘하게 물려 있다. 꽃술을 한 번 더 못 본 아쉬움과 핀 꽃이 비바람에 모두 땅에 떨어진 안타까움이 함께 물려 있다.
나비가 비 오기 전의 기억을 더듬어 우리 집의 꽃을 찾아 왔다가 꽃이 없자 담장을 훨훨 넘어 이웃집으로 간다. 이웃집에 봄빛이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나이기도 하지만 나비이기도 한다. 나비의 생각이라면 3,4구가 도치된 구이고 시인의 생각이라면 인과로 된 구이다. 나비와 시인의 생각 어느 쪽으로도 독시가 가능해 묘한 정취가 어리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 짧은 봄을 아쉬워하는 시인의 마음까지 보태져 여운은 더욱 길어진다.
시의 제목 우청(雨晴)이 다른 판본에는 춘청(春晴)이라고도 되어 있는데 시 내용으로 볼 때는 춘청(春晴)이 더 어울려 이것으로 제목을 삼았다. 이 외에도 청경(晴景), 춘색재린(春色在鄰) 등을 제목으로 한 곳도 있다.
왕가(王駕)는 자가 대용(大用)으로 생몰년을 알 수 없는데, 당나라 하중부(河中府), 즉 지금의 산서성 영제현(永濟縣) 사람으로, 890년에 진사에 급제하여 예부원외랑을 지냈다. 구판본 《천가시》에는 그 때 장원을 했다고 되어 있다. 나중에 관직을 그만두고 수소선생(守素先生)이라 자호하였으며, 사공도(司空圖), 정곡(鄭谷)등과 시우(詩友)로 지냈다.
365일 한시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