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 남쪽 어느 집 정원에 쓰다題都城南莊 /당唐 최호崔護
去年今日此門中 지난해 오늘 이 대문 안에서
人面桃花相映紅 사람 얼굴 복사꽃이 함께 붉었네
人面不知何處去 그 사람 얼굴은 어디로 갔을까
桃花依舊笑春風 복사꽃은 예전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네
최호(崔護, 772~846)는 당나라 때 경조윤, 어사대부, 절도사 등 고관을 지낸 시인으로 이 시는 그가 진사 시험에 합격하던 796년, 그의 나이 25세 이전에 지은 시이다.
남의 집 장원(莊園)에 이런 야릇한 시를 왜 썼을까? 매우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최호라는 사람은 자질이 매우 준수하지만 까칠 해서 남과 함부로 사귀지 않았다. 진사 시험에 떨어진 뒤에 청명절에 혼자 도성 남쪽을 거닐다가 꽃과 나무가 우거진 집을 발견했다. 아주 조용했다. 한참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어떤 여자가 문틈으로 물었다.
“뉘시오?”
최호는 어디에 사는 누구라고 말한 다음, 봄날 혼자 걷다가 술을 마셔 목이 마르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여자가 물 한 대접을 떠다 주며 자리에 앉으라고 하였다. 그 여자는 늘어진 복숭아나무에 기대어 물끄러미 최호를 지켜보는데 매우 호의적이었다. 여인의 자태는 복숭아꽃처럼 아리따웠다. 그런데 최호가 말을 걸어보아도 대답은 하지 않고 눈으로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최호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간다고 하니 여자가 대문까지 나왔다가 정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들어갔다. 최호도 아쉬운 듯 돌아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에 다시 그 집에 가지 못하였다. 이듬해 청명, 홀연히 최호는 그 여자가 생각나 그 집에 다시 가 보았다.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최호는 이 시를 대문 왼쪽 짝에다 썼다.
며칠 뒤에 우연히 도성 남쪽에 왔다가 다시 그 집에 가보았다. 그 집에서 곡하는 소리가 났다. 최호가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노인이 나와 물었다.
“그대가 최호인가?”
“네. 제가 최호입니다.”
노인은 다시 곡을 하면서 말하였다.
“그대가 우리 딸을 죽였네.”
최호는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노인이 말했다.
“우리 딸이 계년(笄年, 15세)으로 글자는 알지만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네. 그런데 작년부터 늘 무엇을 잃은 사람처럼 황홀한 상태로 있었네. 며칠 전에 함께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는데 왼쪽 대문에 적힌 글자를 보고 들어가더니 병이 나 마침내 음식을 먹지 않다가 며칠 만에 죽었네. 내가 늙었는데도 이 애가 시집가지 않은 건 장차 군자를 구해서 나의 몸을 의탁하려 한 것인데 오늘 불행히도 죽었으니 이것이 그대가 죽인 것이 아니고 뭔가.”
말을 마치고 노인은 다시 통곡을 했다. 최호 역시 큰 충격을 받아 안으로 들어가서 곡을 하였는데 아직도 침상 위에 여자가 단정히 누워 있었다. 최호가 여자의 머리를 넓적다리 위에 뉘고 곡을 하면서 축원을 했다.
“최호가 여기 있소! 최호가 여기 있소!”
그러자 한참 만에 여자가 눈을 뜨더니 반나절 만에 다시 살아났다. 여자의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여 딸을 최호에게 시집보냈다.
《설부(說郛)》권80 정감(情感) 조에 실린 이야기이다. 물 한 사발과 시 한수로도 사람의 정감이 통하면 이런 인륜대사가 이루어진다는 예증이라 할 수 있다. 이 내용은 《사문유취(事文類聚)》 《천중기(天中記)》 등 여러 문헌에 전하는데 그 중 《설부》의 내용이 가장 상세하여 그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였다. 이 시의 남녀 두 주인공은 모두 용모가 뛰어나고 눈이 높은 선남선녀인데 희한하게 물 한 대접으로 저렇게 만나기도 하니, 인연인지 운명인지 우연인지 알 수가 없다.
몇 년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신안해저선에서 나온 유물을 크게 전시하였는데 붉은 단풍잎 문양에 시가 적힌 접시가 나와 화제가 되었다. 나도 그 시가 흥미로웠는데 중문학자 이창숙 선생이 <단풍잎이 맺어 준 사랑>(문헌과핵석 79)이라는 글로 담아내었다. 많은 사람이 살다 보니 기이한 인연이 많기도 하지만 기이한 중에서도 기이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사문유취》 원문을 붙인다.
崔護渴水
崔護舉進士不第. 淸明獨遊都城南, 得村居花木叢萃. 叩門久之, 有女子自門隙問之. 對曰 : “尋春獨行, 酒渴求飮.” 女子啓關以盂水至, 獨倚小桃柯佇立, 而屬意甚厚. 崔辭起, 送至門, 如不勝情而入. 後絕不復至, 及來歲淸明, 徑往尋之, 門庭如故, 而戶扃矣. 因題詩于其左扉云. “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後數日復往, 聞其中哭聲, 問之. 老父云 : “君非崔護耶? 吾女自去年, 恍惚如有所失, 及見左扉字, 遂病而死.”
崔請入哭之, 尙儼然在床. 崔舉女首枕其股曰 : “護在斯, 護在斯.” 須臾開目, 半日復活. 父大喜, 以女歸之.
365일 한시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