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정자에서水檻遣心 二首(其一)/당唐 두보杜甫
去郭軒楹敞 성도에서 외진 곳 정자 앞 툭 트이고
無村眺望賒 마을도 없으니 멀리까지 다 보이네
澄江平少岸 맑은 강물 넘칠 듯해 언덕이 낮고
幽樹晩多花 으슥한 숲은 늦게서야 꽃이 많네
細雨魚兒出 가랑비에 물고기 물위로 출몰하고
微風燕子斜 미풍에 제비는 비스듬히 날아가네
城中十萬戶 성 안은 10 만 호
此地兩三家 이곳은 두세 집
이 시는 761년 두보 50세에 지은 시이다.
내가 두보 초당에 가 본 것은 2003년과 2007년이다. 2003년에는 53일간 황화와 장강 유역의 문화재와 산천을 답사할 때 갔고 2007년엔 지인들과 함께 갔다. 아마도 이 수함(水檻)은 그 초당 건물 주변에 있었을 것이다. 바쁜 일들을 마무리 하는 대로 다시 문인들의 유적과 고금의 명소를 찾아 바람처럼 다니고 싶어진다.
수함(水檻)은 물가에 세워진 건물의 난간을 말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말로는 ‘물가 정자’이다. 정자를 세우면 자연 난간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정자는 기본적으로 전망이 좋은 곳에 세운다. 정자를 세우는 목적이 멀리 바라보거나 주변의 풍광을 관람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풀고 기분을 전환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또 정자는 술을 마시며 놀거나 아취 있는 모임을 열기도 하고 손님을 접대하거나 글을 읽기도 하는 등 일종의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살림을 하는 생활공간과는 다소 위치나 거리 면에서 호젓한 곳에 자리 잡는다.
이 시의 제목에 견심(遣心)이라 한 것은 ‘마음을 풀어내다.’는 의미로 금방 말한 정자의 목적 그대로다. 비슷한 말에 견흥(遣興)이란 말도 있다. 이와 달리 즉경(卽景), 즉사(卽事) 이런 말도 있는데 눈앞의 경치나 당장 닥친 일에 대해 시를 쓴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결과를 놓고 보면 표현만 다르지 결국 의미는 같은 말이다. 이 시의 총 8구중 앞 2구는 정자의 전망을 말하였고 그 다음 4구는 주변의 다양한 경관을 묘사하였다. 멀고 가깝고 세밀한 여러 경관이 드러나 있다. 마지막 두 구는 맨 앞의 두 구와 호응하며 이 시를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는 전 8구의 4짝을 모두 대구를 맞추어 썼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이해할 때는 이 시가 정자에서 기분을 풀기 위해 쓴 작품이라는 점과 8구에 모두 대구를 맞추어 쓴 시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軒楹’은 바로 수함 건물 자체를 말한다. ‘澄江平少岸’은 ‘비가 와서 수면이 높아 양안과 비슷한 높이가 되어 그 언덕이 평소보다 낮아져 보인다.’는 말이고, ‘幽樹晩多花’는 정자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다소 음지라 다른 곳보다 늦게 꽃이 핀다는 말로 보인다. 특히 뒤의 구절을 ‘저녁이 되자 꽃이 많이 피었다.’라는 뜻이나 ‘저녁인데도 꽃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라는 의미로 번역한 것이 많은데 이는 무리해 보인다. 특별한 꽃을 제외하고는 황혼 무렵이면 꽃이 대개 질 시간이다. 꽃이 질 시간에 많이 핀다는 것이 이해가 가는가? 또 울창한 나무에는 과연 꽃이 저녁까지 많이 남아 있는가? 앞에 ‘유(幽)’ 자를 쓴 것이 이유가 있다. 이 말은 앞의 강안(江岸)을 받은 말로 완화계(浣花溪)를 말하는데 이곳이 다소 음지가 아닐까 추정한다.
조선 시대 잠곡 김유의 집구시(集句詩)에도 보면 “靑松寒不落, 幽樹晩多花”라는 구절이 있어 ‘만(晩)’을 ‘저녁에도’라고 이해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두목의 시에 “늦가을 단풍이 너무 좋아 수레를 멈추고 보니, 서리 맞은 단풍이 봄꽃 보다 붉네.[停車坐愛楓林晩, 霜葉紅於二月花,]”라고 할 때의 ‘만(晩)’자와 같다. 여기서는 계절중의 늦가을을 의미한다. 이런 용법이 두보의 이 시에 쓰인 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약간 차이나는 점이라면 두보의 이시에서는 ‘다른 곳보다 늦게’라는 의미로 보인다.
이 시와 같은 제목에 쓴 다른 시에 “촉 지방은 항상 밤에 비가 내리는데 강 정자에는 이미 아침에 비가 개었네.[蜀天常 夜雨, 江檻已朝晴.]”라는 대목을 생각해도 꽃을 묘사한 시간을 황혼 무렵으로 잡는 것은 이상하다. 보통 봄 꽃을 노래하면 양지에 일찍 핀 꽃을 대상으로 하거나 늦봄의 흐드러진 꽃을 소재로 삼지만 이처럼 음지에 늦게 피는 꽃을 주목한 점에서 두보의 폭넓은 안목을 새로 깨닫게 된다.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이 만(晩) 자를 가장 유의하여 살펴보았다.
또 ‘細雨魚兒出’은 가늘게 비가 내려 수면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물고기들이 출몰하며 입을 뻐끔거리는 것을 말하며, 微風燕子斜는 작은 제비가 가볍게 부는 바람에도 바람을 타서 똑 바로 날아가지 않고 비스듬하게 날아가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연자(燕子)’는 제비로 보면서도 ‘어아(魚兒)’를 ‘물고기 새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물고기 새끼라면 비가 올 때 왜 하필 작은 새끼들만 출몰하는가? 많은 시인들이 왜 하필 큰 고기는 다 놔두고 일부러 작은 물고기만 잡아오는 것인가? 여기서 ‘아(兒)’는 허사로 한국어로 치면 일종의 접미사이다. 즉 구아(狗兒), 묘아(猫兒), 화아(花兒), 자아(字兒) 이런 말과 같다. 비근한 예로 남아(男兒)라는 말도 이런 유형이다. ‘남자의 새끼’가 아니다. 남자가 아기를 낳는가?
이런 말 중에 명사 뒤에 일종의 양사가 붙는 말도 많다. 예컨대 소를 ‘우두(牛頭)’라고 하고 쌀을 ‘미두(米斗)’라고 하는 경우나 음식물을 찬미(饌味), 책을 서권(書卷)이라 하는 경우이다. 요즘도 시골에 가면 노인들이 옛날을 회고할 때 ‘쌀말이나 팔아먹을 정도는 되었지.(한 말 정도의 쌀을 살 경제적 능력은 되었지.)’ 이런 말을 들을 텐데 바로 그런 용법이다. 예전에 번역하는데 금나라 사신이 자꾸 ‘우두(牛頭)’를 요구하여 이상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게 ‘소머리’가 아니고 그냥 ‘소’였다.
각설하고, 이 시는 5, 6구의 대구가 그 묘사의 세밀함과 정묘함으로 고금에 사랑을 받는데 내가 보기엔 그 앞 3,4 구 역시 못지않게 좋은 것 같다. 두보의 시는 한 번 봐서 바로 이해가 안 되는 곳이 많다. 자신의 지식 범주를 벗어나기 때문인데 바로 그런 곳에 묘한 구석이 많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두보시를 번역하고 해설을 하였다고 하여 후인들이 자신이 할 일이 없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가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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