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추위 세 수苦寒三首 중 셋째/ [宋] 양만리
얼음이 채소에 섞이고
채소가 얼음에 섞여
마음으론 김치 좋으나
이빨은 외려 싫어하네
잇몸이 좀 시려 옴을
잠시 참을 수 있어야
흉금에 깨끗한 눈을
천 층 쌓을 수 있으리
氷和菜把菜和氷, 心喜冬菹齒却憎. 且忍牙車寒一點, 敎他胸次雪千層.
김치가 우리 고유의 음식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김치와 비슷한 채소 절임 음식이 다른 나라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사람들은 한국 김치를 한궈파오차이(韓國泡菜)라고 부른다. 그럼 중궈파오차이(中國泡菜)도 있는가? 물론 있다. 배추나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한국의 겉절이 비슷하게 만든 음식이 그것이다. 이 시에 나오는 동저(冬菹)를 『두시언해』에서는 ‘겨디히’라고 번역했다. 현대어로 풀이하면 ‘겨울지’ 정도가 되겠다. ‘지’는 오이지, 짠지의 ‘지’로 김치를 나타내는 우리 고유어다. 중국에서도 겨울에 채소 절임 음식을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옛날 시골에서는 기나긴 겨울 밤 야참을 즐겨 먹었다. 5시 쯤 저녁을 먹고 나서 밤 9시가 넘으면 배가 출출해지기 마련이다. 겨울 야참 메뉴로는 고욤이나 감, 무나 배추뿌리, 생고구마나 삶은 고구마, 김치나 물김치 등이었다. 고욤이나 감은 가을에 따서 단지에 담아 집 밖이나 광에 보관한다. 그럼 시간이 오래돼 홍시로 변하고 날씨가 추워지면 거기에 얼음이 끼어 얼음 홍시가 된다. 배추뿌리는 요즘 김장용 배추뿌리가 아니라 옛날 배추뿌리를 말한다. 거의 작은 무만큼 뿌리가 굵었다. 이것을 무, 배추와 함께 땅을 파고 구덩이에 묻어두었다가 겨울밤에 꺼내 깎아먹으면 시원하고 아삭거리는 맛이 천하별미였다. 고구마도 생으로 깎아먹거나 삶아서 김치와 함께 먹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겨울밤의 진미는 큰 김칫독에 담아 밖에 묻어둔 김장김치였다. 시원한 국물이 우러나고 살얼음까지 낀 김장김치는 알맞게 시큼한 맛까지 깊이 들어 긴긴 겨울밤 출출한 배를 채우기에 이보다 더 좋은 특미가 없었다. 가슴 밑바닥까지 시원해지고 뱃속 모든 창자의 체증까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요즘 김치냉장고는 매우 편리하기는 해도 땅에 묻어서 천지자연의 깊은 맛까지 빨아들이는 옛날 김칫독의 기능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이 시는 겨울밤에 얼음 낀 김치를 먹는 느낌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이빨이 좋지 않아 얼음 낀 김치를 마음으로는 먹고 싶어 하지만 이빨이 시려서 쉽게 먹을 수 없다. 하지만 시인은 잇몸이 시려오는 고통을 좀 참을 수 있어야 가슴 속에 눈처럼 깨끗한 기상을 천 층 높이로 쌓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에게 깨끗하고 고매한 기상이 부족함은 얼음 낀 김장김치를 먹지 못해서일까? 나는 송나라 시인 중에서 양만리를 최고로 친다. 아니 감각적이고 세밀하고 청신(淸新)한 시어 구사만 놓고 보면 전체 한시 작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할 만하다.(사진출처: 红厨网)
한시, 계절의 노래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