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凉州)의 노래/ 당唐 왕지환王之渙
黃河遠上白雲間 황하는 멀리 백운 사이로 올라가고
一片孤城萬仞山 만 길 산자락에 선 외로운 성 하나
羌笛何須怨楊柳 굳이 구슬픈 양류곡을 연주할 것 있나
春風不度玉門關 어차피 봄바람은 옥문관에 오지도 않는데
이 시는 변방을 지키는 군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담고 있다. 이 시를 쓴 왕지환(王之渙, 688~742)은 변새시인으로 유명하다. 이 시는 <등관작루(登鸛雀樓)>와 더불어 그의 대표작이다. <등관작루>는 스케일도 크고 교훈성도 높아 고금에 애송된다. 이 시 역시 황량한 가운데서도 웅혼하고 장엄한 기상과 함께 비애미를 발산하고 있다.
2011년에 중화서국에서 당시배항방(唐詩排行榜)이라는 흥미로운 책을 발간하였다. 당시 100수를 고금의 서적에 인용한 지수, 논문 지수, 문학사, 인터넷 이용 지수 등 여러 지표를 이용해 100대 순위를 마치 가요계 순위 차트처럼 제시하였는데, 1위가 최호의 「황학루」, 2위가 왕유의 「송원이사안서」, 그리고 바로 3위와 4위가 왕지환의 「양주사」와 「등관작루」였다.
가장 많이 순위에 오른 시인은 두보로 17수, 왕유가 10수, 이백이 9수, 이상은이 6수, 두목이 6수, 맹호연이 5수 등의 순위였는데 왕지환은 전체 작품에는 밀리지만 3위와 4위를 차지하고 있다. 5위는 두보의 「등악양루」이다. 우리 한국인에게 중국 한시 순위를 꼽게 하면 이 작품은 높은 등수에 들지 못할 것 같은데 이 시가 중국인에게 애송되는 것에서 중국인의 성정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듯하다.
이 시에서 말하는 고성(古城)은 지금의 감숙성 무위(武威)에 있었던 양주성(凉州城)을 말한다. 당시삼백수에서는 유영제(劉永濟)라는 학자가 옥문관은 돈황에 있어 황하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첫 구에 황하라 쓴 것은 잘못이라고 비평하였다. 그 때문인지 황하를 황사(黃沙)로 봐야 한다거나 시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여기 저기 보이는데 이는 사려 깊지 못한 착오로 보인다.
이 시의 제목과 앞 두 구에서 묘사한 것을 보면 ‘고성’이 옥문관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옥문관은 곽말약(郭沫若) 선생이 그린 <<중국사고지도집(中國史稿地圖集)>>에 보면 지금의 돈황 근처에 표기되어 있다. 여러 사진 자료를 참고하면 지대는 높지만 평탄한 곳이다. 지금의 무위시 일대의 지형을 살펴보면 이 시 첫 두 구의 묘사가 크게 무리하지 않다. 또 옥문관이 양주성의 서쪽에 위치하여 논리적으로 모순될 것 같지만 넓은 지역 명칭으로 보면 표현상 흠 될 것이 없다.
첫 구를 ‘황하가 멀리 백운 속에서 흘러오고’라고 이치에 닿게 번역하지 않고 ‘상(上)’의 의미를 살린 것은 이 시인이 고성 쪽으로 시선을 두면서 드넓은 개활감(開豁感)과 함께 고성의 지형을 황량한 가운데서도 장엄하게 묘사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 시인은 황화물이 내려오는 상류 방향으로 물의 흐름을 거슬러 시선을 두고 있다. 황화물이 내려오는 아득히 먼 곳에 흰 구름이 떠 있고 그 곳에 아주 높은 산이 있으며 바로 거기에 양주성이 있다는 말로 변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3구의 동사는 ‘수(須)’로 ‘필요로 하다’는 뜻이다. 앞에 붙은 何가 의문문을 만들며 뒤의 ‘怨楊柳’는 수의 목적어가 된다. ‘怨楊柳’는 다시 ‘양류를 원망하다’고 풀어도 되고 ‘원망스러운 양류’라고 풀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양류’가 뭐냐는 것이다. 양류를 통상 <절양류(折楊柳)>라고 하는, 앞에 나온 피리의 곡조 이름이라 하는데 대체로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원양류’ 전체가 곡조가 아닐까도 생각하는데 아직 그런 주석을 보지는 못했다. 시경 「소아 采薇」 시에도 “昔我往矣엔 楊柳依依러니 今我來思엔 雨雪霏霏로다.- 내가 군대 올 때는 버들이 하늘하늘 하더니 지금 내가 제대하려니 눈이 펄펄 오는구나.” 이런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군대를 보낼 때 부르는 시인데 당나라 때는 벌써 이별할 때 버들류의 柳와 머물류의 留 발음을 이용하여 떠나가는 사람에게 버들을 꺾어 주는 풍습이 있을 때이다. ‘절양류’ 노래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대체로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무사히 돌아오라는 내용을 담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곳이 변방 지대이니 변방에 있는 악기를 이용하여 고향을 그리는 노래를 부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구는 이런 노래가 다 무슨 소용이냐? 버들에 싹이 돋지 않는다고 원망해 봐야 무슨 소용이람? 나라에선 우리를 조금이나마 생각해 주는 줄 알아? 우리는 개돼지야! 이런 원망의 외침이다. 3구의 전환도 좋고 마지막 구의 강한 비판을 지닌 심화도 좋다. 이래서 춘풍(春風)에는 버들에 싹이 돋게 하는 자연의 봄바람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날로 치면 정부의 관심이라는 속뜻도 담긴 것으로 본다.
이 시는 앞에서 본, 이른 봄을 노래한 시들과는 이질적인 정서를 지닌 작품이다. 장르나 연대순으로 배열하면 그런 것이 눈에 안 띄는데 계절별로 배치하는 바람에 그 정서적 이질감이 확연히 드러난다. 고도 경제 성장의 축제를 즐기는 사람이 있지만 누군가는 돌아가는 기계나 전철에 치어 죽는 음지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을 한문으로는 ‘향우지탄(向隅之歎)’이라 한다.
사람들이 마루에 모여 모두 즐겁게 술을 마시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홀로 쓸쓸히 구석으로 돌아앉아 운다는 말로 <<설원(說苑)>>이란 책에 나온다.
앞 두 구의 장엄한 묘사와 뒤 구의 비애감이 묘하게 어울려 중국 인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지 이 시는 고금에 걸쳐 중국인에게 널리 사랑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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