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양거원楊巨源 장안성 동쪽의 이른 봄城東早春

장안성 동쪽의 이른 봄城東早春/ 당唐 양거원楊巨源

詩家淸景在新春 이른 봄은 시인이 좋아하는 맑은 경치
綠柳纔黃半未勻 버들에 반 정도 노란 싹이 틀 무렵
若待上林花似錦 상림원 꽃 화사한 비단처럼 만개할 땐
出門俱是看花人 문 밖에 온통 꽃구경 인파로 북적이지

이 시를 대략 7년 전에 한 번 번역하고 해설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시의 표면적인 어구를 충실이 반영하는 번역을 했다면 이번에는 최대한 한국어의 자연스러움을 살리는 방향으로 시인의 의사를 반영했다. 그 때 번역한 “시인들의 맑은 경치 이른 봄에 있으니 /갓 싹이 튼 노란 버들 아직 고르지 않네. /상림원 꽃 비단처럼 화사할 때를 기다린다면 /문 나서면 온통 꽃구경하는 사람으로 넘칠 테지”와 비교해 보기 바란다. ‘시인들의 맑은 경치가 이른 봄에 있다’는 말을 나는 ‘시인들은 꽃이 만개하는 만춘이 아니라 처음 싹이 트는 조춘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半未勻은 ‘반은 아직 균일하지 않다.’ 즉, 아직 황색으로 버들가지가 변하지 않은 것이 절반은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둘 째 구는 버들의 반 정도만 겨우 노란 빛으로 싹이 텄다는 뜻이다. 앞 두 구는 보는 이에 따라 더 좋은 표현이나 견해가 있을 수 있으니 좋은 의견을 주기 바란다.

『천가시(千家詩)』에 주석을 낸 왕상(王相)의 견해는 이렇다. 재상이 인재를 발탁하는 것은 그 인재가 아직 비천할 때에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공업이 드러나서 모든 사람이 알 때 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이른 봄은 인재가 아직 그 능력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이며 궁궐 후원에 꽃이 필 때는 사람들이 다 알 때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항상 일이 지나간 뒤에 깨닫는다는 경어(警語)로도 읽힌다.

예전에 번역을 하면서 이런 설명을 붙였다. 내가 다시 보아도 이 시는 봄을 감상하는 유미적인 면은 그것대로 좋고 또 후반 두 구는 심층적 의미로 읽을 수 있다고 본다. 독자들 역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 시를 여러 모로 감상해 볼 것을 권한다. 전에 명 말기에 공안파 산문가들이 쓴 글을 보니 이 시와 동일한 발상을 가진 작품들이 더러 있었다. 문인들의 시선과 취향은 고금에 통하는 바가 있는 듯하다.

양거원(楊巨源)은 700년 무렵 당나라 중기 시대의 인물로 70살에 나이가 차서 퇴직할 정도로 벼슬을 오래하였으며 전당시에 157수의 시가 남아 있다.

<<고문진보>>에 한유가 쓴 <소윤 양거원을 전송하는 서문(送楊巨源少尹序)>에 “國子司業楊君巨源이 方以能詩로 訓後進이러니 一旦에 以年滿七十으로 亦白丞相하고 去歸其鄕이라.”는 구절이 있다. 즉 “국자감 사업 양거원이 시를 잘하여 후학을 가르쳤는데 어느 날 나이 70이 되어 승상에게 아뢰고 조정을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말이다. 당대의 지명도에 비해 지금 우리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인물로 느껴진다.

당대에 상당한 지명도가 있던 인물도 그러한데 후인들이 우리 들 중에 몇 사람이나 기억할까. 우리가 아는 지식의 범주가 매우 좁다는 것은 그만큼 알아야 할 것들이 늘어간다는 말이니 후인들이 전인을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나는 잘 못하지만 자신의 생활을 잘 관리하고 시간과 돈, 건강을 잘 안배하여 이 시에서 말한 경치를 한 번 느껴보는 것도 요즘 말로 일종의 소확행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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