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夜半/ [唐] 이상은
삼경도 후반이라
수만 인가 잠든 시간
이슬은 서리 되고
안개 속에 달 떨어지네
싸우는 쥐 마루에 오르고
박쥐는 나가는데
창에 기댄 옥금이
때때로 소리내네
三更三點萬家眠, 露欲爲霜月墮煙. 鬪鼠上堂蝙蝠出, 玉琴時動倚窗弦.
옛날에는 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눴다. 그 중 한밤중은 삼경(三更)으로 지금의 밤 11시에서 1시까지다. 또 1경(更)을 3점(點)으로 나눴으므로 1점(點)은 지금의 40분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3경 3점은 밤 0시 20분에 해당한다. 요즘 도시의 밤은 너무 밝고 소음도 많아서 한밤중이 되어도 그 옛날 정적을 느낄 수 없다. 가히 밤이 사라진 시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어릴 적 산골 밤을 떠올려 보면 밤의 정적이 어떤지 쉽게 연상할 수 있다. 당시 겨울에는 대개 저녁 5시에서 6시 쯤 저녁을 먹은 후 호롱불을 켜고 놀다가 밤 9시에서 10시가 되면 모두 잠자리로 들었다. 방문 밖에는 겨울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며 불고, 앞산 뒷산에서는 밤 짐승 울음소리만 들렸다. 방안 천장에는 쥐떼들이 찍찍 거리며 우르르 몰려다녔고, 아랫목에 묻어 놓은 술단지에서는 뽀록뽀록 술 괴는 소리가 들렸다. 이 같은 밤 소리들은 소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밤의 고요를 더욱 강화하는 정적의 소품이라 할 만했다.
이 시에도 밤의 정적을 드러내는 어휘가 가득 차 있다. 삼경도 훨씬 지난 시간 수천 수만에 달하는 모든 인가는 단잠에 빠져 있다. 추운 밤 삼경에 이슬은 얼어붙어 서리가 되고 자욱한 안개 속으로 달은 떨어져 끝없이 침몰한다. 모든 사람이 잠든 시간에는 쥐와 박쥐가 활동을 시작한다. 쥐는 집안으로 들어오고 박쥐는 집을 나간다. 이 순간 창에 기대 놓은 금(琴)에서 때때로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 옥금(玉琴)은 옥으로 장식한 금일 수도 있고, 옥 같은 소리를 내는 금일 수도 있다. 시의 의미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 하나로 한정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금(琴)이 왜 때때로 소리를 내는가?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는 황소바람 때문이리라. 백거이는 「금(琴)」이라는 시에서 “무엇하러 번거롭게 손으로 타나, 바람이 현에 스쳐 소리 내는데(何煩故揮弄, 風弦自有聲.)”라고 했다. 세밀하면서도 미묘한 자연 음악이다. 때가 정적에 싸인 한밤중이므로 이 미묘한 소리가 더 분명하게 귓전을 스친다.
중당 시대 한유는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서 “무릇 만물이 그 평정 상태를 잃으면 운다(大凡物不得其平則鳴)”라고 했다. 시인 이상은은 만물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도 잠 못 이룬 채 바람이 금(琴)을 스치며 내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것은 금의 불평인 동시에 시인의 불평이기도 하다. 두 소리는 공명한다. 망국을 향해 치닫는 당나라 말기에 한평생 불우한 삶을 살다간 이상은은 늘 불면의 밤을 지새며 정적 속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것은 시대의 소리이기도 했고 내면의 소리이기도 했다. 오늘 밤도 잠 못 이룰 모든 분들에게 이상은의 이 시를 바친다.(사진출처: 新浪博客 清音雅韵艺术中心)
한시, 계절의 노래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