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잡흥田家雜興/저광희儲光羲
(1)
春至鶬鶊鳴, 봄이 와 꾀꼬리 울면
薄言向田墅. 서둘러 들판으로 향한다.
不能自力作, 혼자 힘으론 경작할 수 없어
黽勉娶鄰女. 힘써 이웃집 처녀 아내로 맞이했다.
既念生子孫, 자손 낳을 생각도 하고
方思廣田圃. 농토를 넓힐 뜻도 가졌다.
閑時相顧笑, 한가할 땐 서로 돌아보며 웃고
喜悅好禾黍. 벼와 기장 잘 자라 기뻐했도다.
夜夜登嘯臺, 밤마다 소대에 올라가
南望洞庭渚. 남쪽으로 동정호 물가를 바라보았다.
百草被霜露, 온갖 풀은 서리와 이슬로 젖고
秋山響砧杵. 가을 산엔 다듬이 소리 울린다.
却羡故年時, 지난해 거둔 수확 넉넉하여
中情無所取. 마음속엔 별다른 욕심 없도다.
[해제]
이 시는 성당 시인 저광희의 <전가잡흥> 8수 가운데 제1수다. 저광희는 개원(開元) 21년(733)에서 개원 22년(734), 그리고 개원 28년(740)에서 천보(天寶) 5년(746)에 이르기까지 두 번에 걸쳐 종남산에 은거했다. 두 번 다 왕유와 교류하면서 두 사람은 깊은 우정을 맺게 되었다. 이때부터 저광희는 한적한 전원생활을 만끽하며 전원시 창작에 전념한다. 그의 전원시는 수량도 많을뿐더러 선명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 특색 가운데 하나가 그의 시에 어부, 나무꾼, 목동, 연밥 따는 아가씨, 늙은 농부 등 다양한 인물형상이 출현한다는 점이다.
이 시에서는 농민의 평범한 소망을 담았다. 별다른 욕심 없이 부지런한 아내를 맞이하여 자식을 낳고 땅을 개간하여 농토를 넓혀보겠다는 소망. 그리고 가을걷이가 끝나고 혹독한 겨울이 닥쳐도 먹고사는데 큰 문제가 없다. 지난 가을에 거둔 곡식이 아직 넉넉히 남아 있으니. 시어가 순박하고도 진솔하다.
(4)
田家趨壟畝,농민은 밭이랑으로 달려가고
當晝掩虛關. 낮에는 빗장 걸지 않고 문을 닫았다.
鄰里無煙火, 이웃엔 밥 짓는 연기 나지 않고
兒童共幽閑. 아이들만 모두 조용히 지낸다.
桔槔懸空圃, 두레박은 빈 밭에 걸려 있고
鷄犬滿桑間. 닭과 개는 뽕나무 사이에 그득하다.
時來農事隙, 농한기 다가오면
采藥游名山. 약을 캐러 명산을 유람한다.
但言所采多, 많이 캐겠다고 말하면서
不念路險難. 길이 험난함을 생각지 않는다.
人生如蜉蝣, 인생이란 하루살이 같은 것
一往不可攀. 한번 가면 부여잡을 수 없도다.
君看西王母, 그대 보았는가, 서왕모가
千載美容顔. 천년 동안 아름답게 가꾼 얼굴을.
[해제]
이 시는 부지런하며 순박한 농민과 그들의 생활 정경을 묘사했다. 농한기에 농민들은 산에 올라가 약초를 캐느라 문을 닫는 농가에는 밥 짓는 연기가 나지 않으면 아이들만 놀 뿐이다. 채소밭에도 사람이 없고 빈 두레박만 그곳에 걸려 있으며, 닭과 개들이 곳곳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산에 올라가 약초를 많이 캐면 수입이 많이 늘기 때문에 길이 위험한 것도 감수한다.
이 시에서는 채마밭에 물을 대는 관개 도구를 소개하고 있다. ‘길고(桔槔)’는 한쪽 끝에는 두레박, 다른 한쪽 끝에는 돌을 매달아 샘에서 물을 퍼내는 틀을 말한다. 왕유의 <망천한거(輞川閑居)>에도 나온다. 이보다 발전한 관개도구가 수차(水車), 용골차(龍骨車)다. 이 도구는 동한(東漢), 삼국 시대 때 개발되었으나 밭농사를 위주로 하는 북방 지역에서는 널리 쓰이지 못하다가 중당 이후, 특히 송대에 널리 유행했다고 한다.
(8)
種桑百餘樹, 뽕나무 백여 그루 심고
種黍三十畝. 기장 서른 이랑에 뿌렸다.
衣食既有餘, 옷과 식량은 이미 넉넉하니
時時會親友. 때때로 친구를 만난다.
夏來菰米飯, 여름엔 [줄풀 열매로 지은]고미밥으로
秋至菊花酒. 가을엔 국화주로 대접한다.
孺人喜逢迎, 아내도 손님맞이 좋아하고
稚子解趨走. 어린 아이는 급히 달려 나올 줄 안다.
日暮閑園里, 해가 저물자 한가로운 뜰에서
團團蔭榆柳. 느릅나무, 버드나무 그늘에 빙 둘러 앉는다.
酩酊乘夜歸, 거나하게 취해 밤 타고 돌아오니
凉風吹户牖. 서늘한 바람 창문에 분다.
清淺望河漢, 맑은 시냇가에서 은하수 바라보고
低昂看北斗. 북두칠성을 우러러 보기도 한다.
數瓮猶未開, 여러 술독 아직 개봉도 하지 않았는데
明朝能飮否. 내일 아침엔 마실 수 있으려나.
[해제]
이 시의 화자는 옷감을 짜기 위해 누에를 키울 뽕나무를 넉넉하게 심고 일가족이 일 년 동안 먹기에 충분할 만치 기장도 파종해놓았다. 별다른 재난이나 흉년을 만나지 않으면 평온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못 만났던 친구도 가끔 불러 여름이면 고미밥을 지어 대접하고, 가을엔 국화주 담가 함께 마신다. 아내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게다가 아이는 인사성이 바르다. ‘추주(趨走)’란 아랫사람이 윗사람 앞을 지날 때 허리를 굽히고 빨리 지나가는 예절을 말한다. 해가 지면 나무 그늘에 빙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술을 마신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정겨운 시다.
오언고시 상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