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咏雪/청淸 정섭鄭燮
一片兩片三四片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네 송이
五六七八九十片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송이
千片萬片無數片 천 송이 만 송이 무수한 눈 송이
飛入梅花都不見 매화로 날아들어 모두 보이지 않네
정섭(鄭燮, 1693~ 1765)은 호가 판교(板橋)라서 흔히 정판교로 더 알려져 있다. 판교 정섭은 양주팔괴 중의 한 사람인데 난초와 대나무를 특히 잘 그렸다.
팔대산인의 작품은 내가 직접 진작을 감상한 적이 있지만 정판교의 작품은 직접 본 적이 없다. 아마 머지않아 많이 감상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다. 팔대산인이나 정판교는 작품을 보면 매우 독특하면서도 화격이 높고 웬지 수재의 그림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사람이 그린 그림에는 대개 글이 적혀 있는데 그 글씨를 보면 일가를 이룬 것 같다.
지난번에 소개한 <대나무와 바위>가 이 사람의 자화상 같은 시라면 이 시는 이 사람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한 송이, 두 송이 눈이 날리는 것 같은데 시를 다 읽고 나면 하늘에서 내린 눈이 매화인지 매화가 눈 같다는 말인지 흐릿한 호도(糊塗)의 체험을 하게 된다.
시에서 쓰인 28자 중 매화(梅花) 두 글자만 빼고 제목까지 모두 눈에 대해서 말한 것인데 이 시에 온통 매화 향기가 그윽한 이유는 무엇인가?
방 안을 모두 비웠을 때 햇빛이 가득하다는 장자의 ‘허실생백(虛實生白)’의 경지인가? 숨기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작은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는 <<중용>>의 ‘막현호은 막현호미(莫見乎隱莫顯乎微)’의 경지인가? 어리둥절한 가운데 정섭이 옆에 다가와 씩 웃는 것 같다.
365일 한시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