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산 석문정사藍田山石門精舍/왕유王維
落日山水好, 해 지자 산수 아름답고
漾舟信歸風. 배 띄우고 돌아가는 바람에 맡긴다.
玩奇不覺遠, 기묘한 풍경 즐기노라 먼 줄 모르고
因以緣源窮. 수원(水源) 따라 끝가지 가본다.
遙愛雲木秀, 멀리 구름까지 솟은 나무의 수려함에 빠져
初疑路不同. 처음엔 길 잘못 든 줄 알았다.
安知清流轉, 어찌 알았으랴, 맑은 시내 돌자
偶與前山通. 우연히 앞산과 통한다.
捨舟理輕策, 배 버리고 가벼운 지팡이 짚으니
果然愜所適. 과연 다다른 곳 마음에 드노라.
老僧四五人, 늙은 스님 네댓 사람
逍遥蔭松柏. 한가로이 송백 그늘 아래 노닌다.
朝梵林未曙, 새벽 독경에 숲속은 아직 밝지 않고
夜禪山更寂. 밤중 참선에 산속은 더욱 적막하다.
道心及牧童, 수도하는 마음 목동에게도 미치고
世事問樵客. 세상일 나무꾼에게 묻는다.
暝宿長林下, 해 저물자 깊은 숲에서 묵으며
焚香卧瑶席. 향 사르고 정갈한 돗자리에 눕는다.
澗芳襲人衣, 시내 향기는 사람 옷에 스며들고
山月映石壁. 산의 달빛은 석벽을 비춘다.
再尋畏迷誤, 다시 찾아올 때 길 잃을까 두려워
明發更登歷. 날 밝으면 다시 이리저리 둘러보리라.
笑謝桃源人, 무릉도원 사람들과 웃으며 헤어지나
花紅復來覿. 붉은 복사꽃 피면 다시 와서 만나리라.
[해제]
이 시는 왕유가 만년에 남전산의 망천장에서 은거할 때 쓴 기유시(紀游詩)다. 남전산은 섬서성 남전현 동남쪽에 있으며 정상이 평평하고 수레를 엎어놓은 모습과 같다하여 복거산(覆車山), 혹은 평정산(平頂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남전현은 서안시에서 22Km 떨어져 있으며 진령(秦嶺) 북록, 관중평야 동남쪽에 있다. 이곳은 아름다운 옥의 산지로 유명하여 옥산으로도 부르며 역사가 유구하고 인문·자연경관이 많으며 생태환경도 양호하다. 이곳엔 남전미옥 외에도 망천(輞川)의 왕유가 손수 심었다는 은행나무, 육조 때 건축하고 제2의 돈황석굴이라 불리는 수륙암(水陸庵), 망천용동(輞川溶洞), 채문희기념관(蔡文姬紀念館), 그리고 매혹적인 탕천호(湯泉湖), 왕순산(王順山) 삼림공원 등 인문자연 경관은 명승지가 되었다. 이곳은 백만 년 전의 ‘남전원인(藍田猿人: Lantian man)’의 유적지로도 유명하다.
명대에 형성된 ‘남전8경’은 망천연우(輞川烟雨), 석문탕천(石門湯泉), 옥산병수(玉山并秀), 파수환청(灞水環青), 녹원추제(鹿原秋霽), 수령춘방(繡嶺春芳), 진령운횡(秦嶺雲横), 남교선굴(藍橋仙窟)을 말한다. 왕유는 이 가운데 ‘석문탕천’ 근처에 세워진 불사를 유람하고 이 시를 지었다. 당나라 초기에 어느 스님이 이곳에 왔다가 폭설에도 눈이 녹는 것을 보고 파봤더니 온천이 흘러서 이곳을 개발했다고 한다.(≪구도경(舊圖經)≫) 현종 때는 이곳에 ‘대흥탕천(大興湯泉)’이란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이 시에서 왕유는 배를 타고 석문천을 유람하면서 주위 경관을 만끽하며 가노라니, 앞에 산이 가로막아 배를 버리고 산속의 암자에 든다. 이 암자에는 마침 노승 네다섯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왕유는 이 불당에서 하루를 묵으며 산사 체험을 한 다음, 도연명의 <도화원기> 고사를 운용하여 내년 복사꽃이 필 즈음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기약한다.
오언고시 상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