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예술기법 36 소밀상간법疏密相間法

【정의】

‘수궁운기법’ 물이 다한 곳에서 구름이 인다는 뜻이다. 곧 소설의 정절이 변화 발전하는 가운데 바람과 구름이 일고 다시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듯 작자가 독자가 생각지 못한 기발한 발상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진성탄金聖嘆은 주쟈좡祝家莊을 두 번째 치는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문에는 수궁운기법이란 게 있는데, 뜻하지 않게 이곳에서 물이 극에 달하고 구름이 일어 갑자기 변화를 보이고 있다行文固有水窮雲起之法, 不圖此處水到極窮, 雲起突變也.”

【실례】

《수호전》 제64회에서 장순張順은 쑹쟝宋江의 등창을 치료하기 위해 졘캉 부建康府에 있는 신의神醫 안다오취안安道全을 모셔오라는 명을 받고 밤낮을 도와 길을 재촉한다. 그러나 강을 건너다 뜻하지 않게 졔쟝구이截江鬼 장왕張旺이라는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겨우 도망을 친 뒤 빈 손으로 안다오취안을 만난다. 그러나 안다오취안은 리챠오누李巧奴라는 창기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고, 리챠오누는 안다오취안을 보내려 하지 않는다. 쑹쟝의 병세는 위중한데 안다오취안은 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이거야말로 ‘물이 극에 달한’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장왕이 한밤중에 리챠오누를 찾아오고 이로 인해 이야기는 갑자기 반전해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전개된다. 장순은 리챠오누를 죽여 안다오취안을 궁지에 몰아넣은 뒤 다시 장왕을 해치운다. 장순은 원수를 갚고 안다오취안을 량산보梁山泊로 데려갈 수 있게 되었지만, 어쩌겠는가? “안다오취안은 서생 출신이라 걸음이 능하지 못하여 30리도 못 갔는데 더는 걷지 못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물이 극에 달한’ 것이다. 이때 생각지도 못하게 다이쭝戴宗을 만나게 되니 사세가 급박해 량산보에서 급하게 그를 보냈던 것이다. 다이쭝은 신행법으로 안다오취안을 먼저 데리고 떠나니 마치 바람과 구름이 일고 다시 새로운 파도가 밀려들어온 것이다.

【예문】

이튿날은 눈이 멎고 날이 개었다. 왕딩류王定六는 장순張順에게 은전 10여 냥을 주어 졘캉 부建康府로 보냈다.

장순이 성 안으로 들어가 화이챠오槐橋 옆으로 가니 안다오취안安道全이 문 앞에서 약을 파는 것이 보였다. 장순은 문 안에 들어서며 안다오취안에게 인사했다.

안다오취안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내외과 의술이 다 비상하여 그 이름이 먼 곳까지 알려져 있었다. 이때 그는 장순을 보고 아는 체를 하였다.

“동생, 여러 해 만일세!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예까지 왔나?”

장순은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쟝저우江州에서 소동을 일으킨 일이며 쑹쟝宋江을 따라 산에 올라간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한 다음 쑹쟝이 등창이 나서 신의神醫를 모시러 오던 중에 양쯔 강에서 목숨까지 잃을 뻔하고 빈손으로 왔다는 사실을 죄다 이야기했다.

“쑹 공명으로 말하면 천하에 드문 의사이니 가 봐야겠지만 상처한지라 집을 돌볼 사람이 없어 멀리 떠날 수 없네.”

장순은 간절히 청탁하였다.

“만약 형장께서 가 보시지 않는다면 저도 산으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럼 좀 생각해 봐야겠네.”

장순이 여러 말로 애걸해서야 안다오취안은 응낙했다. 그런데 안다오취안은 늘 졘캉 부에 사는 리챠오누李巧奴라는 창기한테로 출입했다. 그는 리챠오누의 아름다운 자색에 끌려 그를 제 권속처럼 보살펴 주었던 것이다.

그 날 밤 안다오취안은 장순을 데리고 리챠오누의 집으로 가서 술을 마시는데 리챠오누는 장순을 아저씨로 모셨다. 술이 서너 순배 돌자 안다오취안은 거나해져서 챠오누에게 말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는 이 동생을 따라서 산둥으로 떠나겠는데, 늦으면 한 달, 빠르면 스무 날 남짓 걸려서 돌아오겠는데, 그때 와서 다시 임자를 만나겠네.”

“가지 마세요. 저의 말을 듣지 않고 기어이 가시면 앞으로는 저의 문전에 발길도 못 돌리게 할 테야요.”

“진작 약주머니도 다 준비해 놓았으니 내일 꼭 떠나야겠네. 다녀온다 해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마음을 놓게.”

리챠오누는 아양을 떨며 안다오취안의 품에 안겨 종알거렸다.

“그냥 고집을 부리고 가시면 저는 방자를 놓아 당신을 저승에 보내겠어요.”

장순은 그의 말을 듣고 계집을 한 입에 씹어 삼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저물녘에 안다오취안이 대취하여 쓰러지자 그는 챠오누의 방에다 침대에 눕혔다. 그런데 챠오누가 와서 장순을 보고 말한다.

“저의 집에는 주무실 곳이 없으니 혼자 돌아가세요.”

“형님이 술을 깨면 같이 가겠소!”

챠오누는 장순을 쫓아 보낼 도리가 없는지라 미운 대로 그를 문간방에서 자게 했다.

장순은 마음을 졸이다 보니 잠들 수 없었다. 그런데 초경 쯤 되어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에 벽 틈으로 내다보니 웬 자가 쑥 들어와 뚜쟁이 노파에게 쑥덕거린다. 그러자 노파가 그 자를 보고 묻는다.

“자네는 어디 가 있었길래 그 새 보이지 않았나? 오늘 밤에는 태의가 취해서 방에 누웠는데 어떻게 한담?”

“난 비녀와 팔찌를 사라고 아씨에게 드릴 금 열 냥을 가져왔으니 제발 만나게 해 주소.”

“그럼 내 가서 그 애를 불러올 테니 내 방에서 기다리게.”

장순이 등불에 비치는 그 사람을 내다보니 그는 다름 아닌 졔쟝구이截江鬼 장왕張旺인데 강에서 재물을 빼앗아서는 이 집에 와서 써 버리는 것이었다. 장순은 그를 보자 분이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귀를 세워 들으니 뚜쟁이 노파가 방 안에 술상을 차려 놓고 챠오누를 불러 장왕과 상반하게 한다. 장순은 당장 그 방으로 뛰어들어 손 쓸 생각이었으나 그러다 실수하면 도적놈을 놓칠 것 같아서 그만두고 꾹 참았다. 3경 쯤 되니 부엌에서 일보던 두 심부름꾼도 취해 버렸고 뚜쟁이 노파도 취해서 등불 옆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장순이 가만히 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번쩍번쩍하는 식칼이 놓여 있고 뚜쟁이 노파는 옆에 놓인 긴 걸상에 누워 있었다. 장순은 들어서자마자 제꺽 식칼을 들고 먼저 노파부터 찍어죽였다. 이어 심부름꾼을 죽이려는데 워낙 날이 무딘 식칼인데다 한 사람을 찍고 나니 날이 무뎌졌다. 그 두 심부름꾼이 막 고함을 치려는데 마침 옆에 나무 패는 도끼가 놓여 있는지라 장순은 도끼를 집어들고 한 번에 하나씩 찍어 죽였다. 계집이 방 안에서 소리를 듣고 황망히 문을 열고 마주 나오니 장순은 그도 가슴팍을 찍어 땅바닥에 쓰러뜨렸다. 이 광경을 본 장왕은 뒷창을 열고 담을 넘어 도망쳤다. 장순은 분통이 치밀어 옷깃을 찢어 가지고 피를 묻혀 흰 벽에 “살인자는 안다오취안이다!”라고 수십 곳에 써 놓았다.

5경이나 날 밝을 무렵이 되어서 안다오취안이 술에서 깨어 챠오누를 부르니 장순이 대답했다.

“형님, 소리치지 말고 나와서 이 사람들을 보시오.”

그 소리에 안다오취안이 일어나 본즉 죽은 시체가 넷이나 된다. 그는 너무도 놀라 부들부들 떨면서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형님, 저 벽에 쓴 걸 보시오.”

“자네는 나를 못 살게 만들었네.”

“이제는 두 길밖에 없으니 마음대로 택하시오. 만약 형님이 떠들면 저는 달아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형님은 살인죄를 지고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무사하기를 바라면 어서 집에 가서 약주머니를 가지고 급히 량산보梁山泊로 올라가 우리 형님을 구해주시오.”

“동생, 원 이렇게 지독한 법이 있나?”

날이 밝자 장순은 그 집에서 노자를 얻어 가지고 안다오취안과 함께 그의 집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약주머니를 가지고 성을 벗어 나와 곧바로 왕딩류의 주점으로 갔다. 왕딩류는 그들을 맞이하면서 알리는 것이었다.

“어제 장왕이란 놈이 이리로 지나갔는데 그만 형님이 없을 때였습니다.”

“내가 큰일을 하는 터에 언제 사소한 원수를 갚고 있겠나.”

장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딩류가 다급히 알린다.

“장왕이란 놈이 왔습니다.”

“아직 놀래지 말고 그 놈이 어디로 가는가 살피게.”

장왕은 여울목으로 배를 살피러 가고 있었다.

“장형, 우리 집 친척 두 분을 건네 주오.”

왕딩류가 소리치니 장왕이 대꾸한다.

“배를 타겠으면 빨리 오라고 해라.”

왕딩류가 장순에게 어서 나가 배를 타자고 알리니 장순이 안다오취안을 보고 사정한다.

“안형, 옷을 바꿔 입읍시다. 그래야 배를 탈 수 있습니다.”

“그건 어째서 그런가?”

“글쎄, 그럴 만한 연고가 있으니 더 묻지 마시오.”

안다오취안은 두말 없이 옷을 벗어 바꿔 입었다. 장순은 두건을 쓰고 채양이 달린 전모로 얼굴을 가렸고, 왕딩류는 약주머니를 메었다. 그들이 나루터에 이르자 장왕이 배를 기슭에 가져다 대는지라 세 사람은 배에 올랐다. 장순이 고물로 걸어가서 널빤지를 들고 보니 칼이 그냥 거기에 있는지라 선창으로 되돌아왔다. 장왕이 삐걱삐걱 노를 저어 배를 강심으로 몰아갔을 때 장순은 웃옷을 벗어 던지고 소리쳤다.

“사공, 선창에 물이 새니 빨리 들어와 보소!”

장왕은 그것이 꾀인 줄 모르고 머리를 선창 안으로 들이미는데 장순이 덥석 그의 머리를 거머쥐고 호통친다.

“이 강도놈아! 전일 눈 오는 날 네 배에 탔던 손님을 알 만하냐?”

장왕이 그를 쳐다보고 찍소리도 못 하니 장순은 또 호통친다.

“이놈아, 너는 나의 황금 백 냥을 빼앗고 내 목숨까지 해치려 들었지! 그 말라깽이 애송이는 어디로 갔느냐?”

“호한, 소인은 재물을 얻고 독차지할 욕심이 생겼는데 그 애가 나누어 갖자고 말썽을 부릴까 봐 죽여서 강에 쳐 넣었습니다.”

“이놈, 나를 알 만하냐?”

“알 만합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시오.”

“쉰양 강潯陽江 변에 태어나서 샤오구 산小孤山 아래서 자라 고기 장사를 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더냐? 쟝저우에서 소동을 일으키고 량산보로 가 쑹 공명을 따라 천하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니 누구나 다 이 어른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 날 네놈이 날 속여 배에 앉히고 두 손을 묶어 강에 쳐 넣지 않고 어쨌느냐? 나에게 물 재주가 없었더라면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게다! 오늘 원수를 상면한즉 용서가 당키나 한 소리냐!”

장순은 이렇게 꾸짖고 그를 선창 안으로 끌어들인 뒤 말발쪽 묶듯 그의 손발을 한데 묶어 양쯔 강에 쳐 넣었다.

“너에게 칼 맛을 보이지 않겠다.”

장왕은 황혼 속에 갑자기 물귀신이 되고 말았다. 왕딩류는 그 광경을 보고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장순은 배 안에서 전일 빼앗겼던 금과 은 부스러기를 찾아 보따리에 쌌다. 그들 셋은 배를 저어 강기슭에 가져다 댔다. 이때 장순은 왕딩류를 보고 권했다.

“동생의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네. 마음이 있거든 주점을 거둬 가지고 부친과 함께 량산보에 올라 대의를 좇게나.”

“저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치자 장순과 안다오취안은 북쪽 강 언덕에 올랐다. 왕딩류는 두 사람과 갈라져 다시 마상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서 짐을 꾸려 가지고 그들을 뒤쫓아갔다.

장순은 안다오취안과 함께 언덕에 오르자 약주머니를 메고 걸음을 다그쳤다. 그런데 안다오취안은 서생 출신이라 걸음이 능하지 못하여 30리도 못 갔는데 더는 걷지 못하게 되었다. 장순은 그를 시골 주점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술을 사서 대접했다. 그들이 한창 술을 마시는데 밖에서 웬 길손이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동생, 왜 이리 늦었나?”

장순이 쳐다보니 그는 선싱타이바오神行太保 다이쭝戴宗인데 길손처럼 차리고 뒤를 쫓아왔던 것이다. 장순은 서둘러 다이쭝과 안다오취안을 서로 인사시키고 나서 쑹 공명의 소식을 물었다.

“지금 형님은 정신이 혼미하여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사경에 처해 있네.”

장순은 그의 말을 듣자 눈물이 비 오듯 하였다.

“살갗 혈색은 어떱디까?”

안다오취안이 물으니 다이쭝이 대답했다.

“살갗은 파리한데 긴 밤 동통이 멎지 않아 신음 소리만 내니 생명을 부지할 것 같지 못합니다.”

“아픈 데를 안다면 고칠 수는 있는데 다만 기일을 어길까 봐 걱정됩니다.”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이쭝은 갑마 두 개를 꺼내어 안다오취안의 다리에 처매 주고 자기는 약주머니를 메고 장순에게 말했다.

“나는 태의를 모시고 먼저 갈 테니 자네는 천천히 오게.”

두 사람은 주점을 떠나 신행법을 써서 먼저 떠났다.( 《수호전》 제64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