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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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외조모께서 해주신 이야기이다.

조화순(曹化淳)이 죽자 그의 가족들은 명대(明代)의 옥대를 함께 순장했는데, 그로부터 몇 년 뒤 무덤 앞에 늘 백사 한 마리가 보였다고 한다. 후에 묘가 물에 침식되고 관이 무너져 내렸다. 관을 이장하던 날 보았더니 다른 순장품은 모두 있는데 옥대는 보이지 않았다. 뱀은 마디마디 무늬가 그려져 있는 것이 옥대처럼 생겼다. 설마하니 조화순의 흉포한 혼백이 그대로 옥대에 옮겨져 뱀이 되었단 말인가?

先外祖母言. 曹化淳死, 其家以前明玉帶殉, 越數年, 墓前恆見一白蛇. 後墓爲水齧, 棺壞朽. 改葬之日, 他珍物具在, 視玉帶則亡矣. 蛇身節節有紋, 尙似帶形. 豈其悍鷙之魄, 托玉而化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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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부 장설봉(張雪峰) 선생은 성정이 고결하다. 서재 안의 안석과 벼루는 아주 반듯하게 놓여 있고 서적은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으며 방문은 늘 걸쇠로 잠가두어 그가 직접 와야만 열 수 있었다. 정원은 나무와 꽃이 무성하고 이끼로 덮여 있었다. 하인들은 시중을 들라는 분부가 없으면 감히 한발 짝도 그곳에 함부로 들여놓을 수 없었다.

외삼촌 장건정(張健亭)이 열한두 살 때 외조부께서 외출한 틈을 타서 몰래 뜰 안 나무 아래로 가서 바람을 쐬었다. 그러다가 서재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 할아버지가 벌써 돌아오셨나 하면서 숨죽인 채 창문 틈을 통해 서재 안을 훔쳐보았더니, 마치 그려놓은 듯 예쁘게 화장을 한 여자가 대나무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의자 맞은편에 5척 높이의 큰 거울이 있었는데, 거울에 비친 그림자는 바로 여우였다. 장건정은 두려운 나머지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여자의 행동을 훔쳐봤다.

여자는 갑자기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급히 일어나 거울 주위를 네 바퀴 돌더니 호-하고 입김을 불자 거울이 안개처럼 흐려졌다. 한참 뒤에 여자와 돌아와 대나무 의자에 앉자 거울의 입김도 점점 사라지는데, 다시 그 모습을 보니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다. 장건정은 여자에게 발각될까 두려워 조용히 빠져 나왔다. 후에 그는 아버지 요안공(姚安公)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었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손자들에게 《대학(大學)》「수신편(修身篇)」을 말씀하시면서 그 일을 예로 들어 말씀하셨다.

“명경(明鏡)이란 본래 텅 비어 있는 것으로 어떤 사물도 그 모습을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일단 요기(妖氣)에 가리게 되면 사물은 도리어 본모습을 잃어버린다. 하물며 사심이 생기면 편파적으로 되는데, 이는 사전에 자신의 눈을 가리는 것이 아니냐?”

아버지는 또 말씀하셨다.

“사심은 자신의 시야를 가릴 뿐만 아니라 공심도 가리게 된다. 소인이 기회를 잡는 것 때문에 군자가 격해지면 고집이 무너지고 결국 시비를 전도하게 된다. 옛날 포효숙(包孝肅: 包拯)의 수하들은 공개적으로 권모술수를 사용해 곤장을 쳐야 할 죄인은 도리어 때리지 않았으니, 이 역시 요기(妖氣)가 거울을 가리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마음을 바로잡고 성의를 다하려면 반드시 먼저 사물의 원리를 구하고 많은 지식을 얻어야한다.”

外祖張雪峰先生, 性高潔. 書室中几硯精嚴, 圖史整肅, 恆鐍其戶, 必親至乃開. 院中花木翳如, 莓苔綠縟. 僮婢非奉使令, 亦不敢輕踏一步. 舅氏健亭公, 年十一二時, 乘外祖他出, 私往院中樹下納涼. 聞室內似有人行, 疑外祖已先歸, 屛息從窗隙窺之, 見竹椅上坐一女子, 靚粧如畫. 椅對面一大方鏡, 高可五尺, 鏡中之影, 乃是一狐. 懼弗敢動, 竊窺所爲. 女子忽自見其影, 急起繞鏡, 四圍呵之, 鏡昏如霧. 良久歸坐, 鏡上呵跡亦漸消. 再視其影, 則亦一好女子矣. 恐爲所見, 躡足而歸. 後私語先姚安公. 姚安公嘗爲諸孫講《大學》 「修身」章, 擧是事曰: “ 明鏡空空, 故物無遁影. 然一爲妖氣所翳, 尙失眞形. 况私情偏倚, 先有所障者乎!” 又曰: “非惟私情爲障, 卽公心亦爲障. 正人君子, 爲小人乘其機而反激之, 其固執決裂, 有轉致顚倒是非者. 昔包孝肅之吏, 陽爲弄權之狀, 而應杖之囚, 反不予杖, 是亦妖氣之翳鏡也. 故正心誠意, 必先格物致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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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꽃 파는 할멈이 해준 이야기이다.

북경의 한 집이 버려진 채소밭 근처에 있었는데, 옛날부터 여우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한 아름다운 여자가 밤에 낮은 담을 넘어가 이웃집의 젊은이와 사통했다. 이 여자는 일이 들통 날 까 걱정되어 처음에는 이름을 속여 말하더니, 두 사람의 감정이 점점 여물어 서로 헤어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자 스스로 채소밭에 사는 여우라고 속여 말했다. 젊은이는 여자의 미색에 빠져 역시 여자를 의심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

얼마 뒤 갑자기 여자가 집 위에서 기와를 던지며 욕하기 시작했다.

“내 이곳 채소밭에 산 지 꽤 오래되었다. 나의 어린 딸들이 장난삼아 기와와 돌을 던져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은 간혹 있지만, 사실 요사를 떨어 사람을 유혹한 일은 없다. 너는 어찌하여 나를 욕되게 하느냐?”

그리하여 일이 들통 났다.

기이하도다! 여우가 남자를 호릴 때 사람의 이름을 빌리는 일은 종종 있지만, 이 여자는 도리어 여우의 이름을 빌렸다. 사람들은 요사를 잘 떠는 사람을 여우에게 비유하는데, 이 여우는 사람보다 더 곧구나!

有賣花老婦言. 京師一宅近空圃, 圃故多狐. 有麗婦夜踰短垣, 與鄰家少年狎. 懼事洩, 初詭托姓名, 歡昵漸洽, 度不相棄, 乃自冒爲圃中狐女. 少年悅其色, 亦不疑拒. 久之, 忽婦家屋上擲瓦罵曰: “我居圃中久. 小兒女戲抛磚石, 驚動鄰里, 或有之, 實無冶蕩蠱惑事. 汝奈何汚我?” 事乃洩. 異哉! 狐媚恆託於于人, 此婦乃託於狐. 人善媚者比之狐, 此狐乃貞於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