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여덟 가지八物>

<여덟 가지八物>

‘군자는 원망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직 소인만이 원망하는 일이 있으며, 군자는 덕을 입었으면 반드시 덕으로 보답하고 소인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 있다.[1] 군자는 원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원한을 갚지 않는 것이다. 아니, 원한을 갚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올곧음’[直]으로 원한을 갚는다.

그 사람이 증오스럽고 물리쳐야 한다면 증오하고 물리치는 도(道)로 갚으며,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하고 등용할 만하다면 좋아하고 등용하는 도로 갚는다. 일반적으로 증오하여 물리치고 좋아하여 등용하는 것이 바로 솔직[直]한 것으로, 이는 천하의 상식[天下之公是]과 부합한다. 증오하여 물리치거나 좋아하여 등용할 도리를 온 천하가 모르고 있어도, 군자는 반드시 물리치고 반드시 등용하는데, 이 또한 정직으로, 이는 천하의 공정한 이치[天下之公理]와 부합한다. 이런 것을 ‘올곧게 대처한다’[以直]고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것을 ‘올곧음’이라 한다면, 비록 나에게 원한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이렇게 보답하고, 비록 ‘성인은 일찍이 원한을 갚은 적이 없다’는 말을 하더라도 괜찮다. 만약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고 한다면, 이는 그럴 마음이 있는 것이요, 이미 작위(作僞)가 있는 것이다. 성인은 그러지 않는다.

내가 덕을 입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보답할 마음을 가진다. 그런 경우에는 비록 ‘성인은 작위의 마음을 가지고 사사로이 누구에게 특히 잘 대해준다’는 말을 해도 따질 것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성인은 정의[義]를 중시하는 존재이다. 정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그에게 ‘어린 후계자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2]할 수 있다. 하물며 지기(知己)의 어린 후계자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정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그에게 ‘목숨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하물며 덕 있는 사람의 목숨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덕으로 덕에 보답한다’[以德報德]고 한 것이다. 필시 그 사람에게만 보답해야 할 덕이 있으니, 그러므로 세상이 그에게 의지하고, 국가가 그에게 부탁하고, 강상(綱常)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인륜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소인같은 경우에도 덕에 보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답할 만하면 보답하고, 보답할 만하지 않으면 보답하지 않으면서, 훗날의 가치가 어떨까 살펴볼 뿐이다. 자기에게 화가 이를 것 같으면 온갖 계책을 세워서 핑계를 대거나 떠넘기고, 종적없이 도피해 버린다. 비록 덕이 있다 해도 어떻게 알리오?

소인의 경우 오직 원한을 갚겠다는 한 가지 생각만은 시종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왕성한 권세가 있고 재물이 많다면, 또한 내가 그 위력을 빌어 행세할 수 있으므로, 원한이 거꾸로 덕이 되는 것 또한 항상 있는 일이다. 열 명이든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만 명이든, 권세와 재물이 있는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을 것이다.

이로써 군자와 소인의 경계가 분명히 판가름난다. 그러므로 군자인지 소인인지 보려는 사람은 오직 그가 ‘원한을 갚고 덕을 갚는’[報怨報德] 것이 어떤가 따질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일찍이 이것을 통해 고금의 군자와 소인을 판정했고 그때마다 남이 한 말은 살펴보지 않았다. 이밖에 군자와 소인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나는 소인들이 지닌 것이 더욱 영리하여 쓸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묻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소인을 왜 그렇게 지나치게 엄하게 대하십니까? 악을 증오하고 원한을 갚는 것 역시 도리어 왜 그렇게 지나치게 심하신지요?”

이에 나는 말했다.

“그렇지 않다. 내가 비록 악을 엄하게 증오하지만, 그러나 그 마음 씀씀이의 은미한 구석을 실제로 살피지 않으면 감히 증오할 수 없다. 설령 이미 그 사람을 증오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 사람이 혹시 단 반 마디라도 훌륭한 말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타당한 행실이 있으면, 나의 옛 원한은 모두 사라지고 그 사람을 친애함이 뒤따른다. 만약 그 사람이 정말로 현명하다면, 처음부터 그의 현명함을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것이며, 그가 자주 등용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하늘이 재능 있는 사람을 태어나게 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마음속으로 오직 그 재능이 쓰이지 못할까 염려할 뿐이니, 어찌 감히 원망하겠는가? 이런 까닭에 사람들이 비록 나를 원망한다 해도 나를 해치거나 나에게 앙갚음하려는 사람은 적었다. 나의 마음이 정직하기 때문이다.”

혹자가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재능 있는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너무 많은 사람을 받아들이시고 너무 많은 사람을 사랑하시다가, 조금 있으면 또한 너무 성급하게 버리시어, 끝까지 받아들이는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왜 미리 따져보고 결정해서 칭찬을 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처음에는 너무 많이 모였다가 결국 얼마 남지 않게 되는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지 않다. 사람을 알아보기란 정말 어렵다. 나는 감히 의심스럽다고 해서 소홀하게 대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사람을 너무 많이 받아들인다고 보는 것이다. 진정 재능있는 사람을 얻기란 참으로 어렵다. 나는 또한 감히 그럴 듯하다고 해서 믿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끝까지 받아들이는 사람이 너무 적다고 보는 것일 뿐이다.

첫눈에 보자마자 인정하여,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종신토록 어긋남이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

구장유(丘長孺)․주우산(周友山)․매형상(梅衡湘) 같은 사람들은 본래 한 번 보자마자 종신의 친교를 맺어서, 더 이상 시험하는 일이 없다. 양정견(楊定見)․유근성(劉近城) 같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떨어지지 않고 함께 다니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믿지 않을 것이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환난(患難)을 함께 하고, 이해(利害)를 함께 하고, 남들의 비난을 함께 받으며 지내온 후에야 끝내 나를 배반하고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내가 사람을 넓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말 당연하다. 만약 내가 사람을 넓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오늘날 어찌 이 두 사람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유근성은 독실한 사람이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는다. 양정견은 기개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안목으로는 항상 당시대에만 국한되어 논의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두 사람은 모두 마성(麻城) 사람이다.

주우산도 마성 사람인데, 마성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한다. 매형상도 마성 사람인데, 마성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한다. 만약 구장유가 마성에 있었다면, 마성의 속된 악한 무리들이 그를 보고 무조건 집안을 망칠 자식으로 여겼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주우산은 사람들이 말하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이라서, 중요하지만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옷감이나 잡곡․곡식”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매형상은 이른바 백락(伯樂)을 만나지 못한 천리마[3]요 왕무자(王武子)에게 희생당한 팔백리박 준마[4]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는 것도 또한 당연하다.

구장유는, 비록 세상에 도움되는 점이 없다 할지라도, 기린․봉황․난초․지초(芝草) 등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장유의 사람됨을 보면, 부모 형제가 그에게 의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장 가깝다는 처자식도 그에게 의지할 수 없다. 처자식이 의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스스로에게 의지할 수 없으니, 그의 쓸모없음은 극에 달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본디 그는 상제(上帝)께서 정성들여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사람으로, 함부로 무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가까이 할 수도 멀리 할 수도 없고, 공경할 수도 업신여길 수도 없는 그 사람을 어찌 보통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항상 기린․봉황․난초․지초 등에 견주는 것이다. 이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양정견․유근성 두 사람은 비유를 들자면 누각․전각 등과 같다. 좀처럼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는 아주 귀하게 여길 만한 것이다. 게다가 고명한 집안 출신이요, 좋은 사람 많이 나는 지방 출신이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 좋고 싫은 감정이 명백한 사람들이다.

혹자가 말했다. “공(公)께서 매형상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것은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권지’(權智)가 너무 엄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오로지 ‘권지’(權智)에만 내맡기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또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장강(長江)․회수(淮水)․황하(黃河)․바다 등의 큰 물처럼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형상은 비록 통이 큰 사람이지만, 사실상 마음은 세세하고 신중하여, 조맹덕(曹孟德)[5] 등과 견줄 바가 못된다. 조맹덕 정도는 되어야 장강․회수․황하․바다 등의 큰 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느닷없이 형상을 그렇게 추켜세우는가?

오호! 나는 원래 이 몇 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각각 서로를 알지 못한다. 일월성신(日月星辰)과 같이 환한 밝음이 없다면 곽임종(郭林宗)․허자장(許子將)․사마덕조(司馬德操) 같은 사람이 나오더라도, 어떻게 이들을 모두 거두어들여 함께 등용할 수 있을까?

혹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이 몇 사람 같아야만 세상에 쓰일 수 있습니까?”

이에 나는 말했다. “그렇지 않다. 이들은 크게 쓰일 수 있는 사람들이요, 얻기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요, 이 세상이 많이 얻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당신은 그저 마성에서 일시에 이 몇 사람이 나타난 것을 보고 아주 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여 이 몇 사람을 찾았는지 모른다. 그밖의 다른 사람과 같은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다 있고 시시때때로 등용할 수 있어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새․짐승․풀․나무 등이 대지에 두루 널리 자라나서 사람들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를 모시고 있는 사람들과 내가 밤늦도록 여기까지 담론을 나누고, 다음날 우연히 승암(升菴)[6]의 <봉부>(鳳賦)를 읽었다. 그리고 느낀 바가 있어 논한다.

“《서경》(書經)에서 기린과 봉황은 무리 중에서 특출한 것이라고 했다. 기린과 봉황이 희귀한 것은 사실 새나 짐승의 무리 중에서 희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초(芝草)가 빼어난 것은 사실 초목의 부류 중에서 빼어난 것이다. 비록 희귀하고 빼어나다 하나, 사람의 세상에 무슨 이익이 있는가? 내 말의 뜻은 ‘천지 사이에는 원래 세상에 이익은 없지만 귀하게 여길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세칭 골동품이 이와 같다. 저 골동품이라는 것들이 당장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슨 이익이 있는가? 성현이 세상에 태어나면,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세상에 이익이 없는 경우는 없었다. 진정 이익이 있다면, 비록 마차를 끄는 소나 새벽을 알리는 닭이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고 할지라도 모든 것을 진귀하게 여겨야 한다.”

<봉부>를 읽고 나서, 이로부터 좀 더 보충하여 ‘여덟 가지 사물’[八物]에 비유하여 사람의 부류를 논하고자 하며, 조수초목(鳥獸草木)과 같은 사람을 여기에 포함시켰다. 아! 이 ‘여덟 가지’가 모두 갖추어졌으니, 고금의 인물이 모두 이 안에 들어 있다. ‘여덟 가지’란 무엇일까? 조수초목(鳥獸草木)이요, 누대전각(樓臺殿閣)이요, 지초서란(芝草瑞蘭)이요, 삼송괄백(杉松栝柏)이요, 포백숙속(布帛菽粟)이요, 천리팔백(千里八百)이요, 강회하해(江淮河海)요, 일월성신(日月星辰)이다.

‘새․짐승․풀․나무’[鳥獸草木] 등의 종류는 아주 많다. 그런데 깃털 달린 어느 새 한 마리, 어느 초목 한 포기도 인간 세상에 쓰일 만하지 않은 것이 없다. 쓰일 만 하므로, 필요에 따라서 선택하여 사용하여, 버리는 것이 없다. 이것이 한 가지이다.

‘궁․절․누각, 산 속의 오두막집이나 초가집’[宮寺樓閣, 山舍茅廬] 등의 건축물은 터를 잡고 있는 점은 같은데 각각 높이가 다르고,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세워진다는 점은 같은데 크기가 다르고, 거처로 사용된다는 점은 같은데 넓이가 다르다. 다 같이 사람이 사는 곳이지만 사는 곳마다 차이가 있다. 궁궐은 그 중 아주 좋은 곳이다. 예를 들어, 새 중에서 빈홍,[7] 짐승 중에서 사냥개, 풀 중에서 국로,[8] 나무 중에서 종승[9] 등은 다른 것과 똑같이 ‘새․짐승․풀․나무’에 속하지만 또한 다른 새․짐승․풀․나무와 달라서, 새․짐승․풀․나무 부류 중에서 유독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한 가지이다.

지초(芝草)는 평범하지 않고 서란(瑞蘭)은 향기가 좋다. 그런데 소인은 이것들을 싫어하고, 군자가 이것들을 좋아한다. 만약 세상에 군자가 없으면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니, 지초나 서란은 있어도 소용이 없다. 노리개에 비유하면, 눈으로 보아서 즐거우면 그만이다.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주려는 경우에는 노리개가 무슨 쓸모가 있는가? 좋은 음악에 비유하면, 귀로 들어서 즐거우면 그만이다. 사람들을 배부르게 해주려는 경우에는 좋은 음악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그러나, 비록 따뜻하게 해주거나 배부르게 해주지는 않는다고 해도 세상에서 희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것이 한 가지이다.

푸르른 소나무나 잣나무는 곳곳에 언제나 있어, 세월이 흐르면 동량의 재목이 된다. 아! 그것들이 어디에나 항상 있다고 해서, 어찌 소홀히 대할 수 있겠는가? 과일 나무와 비교하자면, 봄에는 그만큼 보기 좋은 꽃도 피우지 못하고, 가을에는 그만큼 탐스러운 열매가 열리지도 않는다. 아! 그것들이 볼 만한 것이 없다고 해서, 어찌 소홀히 대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맑고 절개있는 사람이 있어서, 서리와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지만, 동량의 임무를 맡길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세상의 영원히 푸르른 풀처럼, 어쩌면 그렇게 많고도 많은가? 아! 또한 어찌 세상에 많다고 하여 흉내낼 수 있겠는가? 해강봉(海剛峰) 같은 사람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 또한 한 가지이다.

지혜로운 자[智者]는 기이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옷감이나 곡물같은 사람[布帛菽粟]은 진기하게 여길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한다. 현명한 자[賢者]는 특이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옷감이나 곡물같은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직 위대한 지자[大智]․위대한 현자[大賢]만이 이와 반대이다. 그러므로 옷감이나 곡물 등이 사람들을 쉽게 배부르게 해주고 쉽게 따뜻하게 해주듯 저절로 자기 몸에 젖어들고, 또한 옷감이나 곡물 등이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배부르게 해주고 똑같이 따뜻하게 해주듯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 이른바 평이하고 간략한 가운데 이치를 깨닫고 ‘무위’(無爲)이면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이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이런 사람들이다. 이 또한 한 가지이다.

말․소와 기린․봉황은 세속의 눈으로 보면 서로 너무 큰 차이가 난다. 그러나 말 중에는 천 리 길을 하루에 달리는 말이 있고, 소 중에는 800리 길을 하루에 달리는 소가 있다. 기린이니 봉황이니 하는 것이 비록 기이하고 특이하다 해도 이런 말이나 소와 비교하면 어찌 기이하거나 특이하다고 여길 수 있을까? 사람 중에서도 세상에 뜻을 펼 막중한 임무를 자임한 사람이 대체로 천 리를 달리는 말이나 800리를 달리는 소와 비슷하다. 그런데 세상에 그들을 알아줄 백락(伯樂)이 없어서, 그저 보통 말이나 소로 볼 뿐, 그것이 천 리를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정말 개탄할 일이다. 이 또한 한 가지이다.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가난하게 할 수도 부유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 있다. 장강․회수․황하․바다[江淮河海]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움을 주는 것이 50%요, 해를 입히는 것 또한 50%이다. 이로움을 주는 것과 해를 입히는 것이 각각 50%인데,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지금 세상에서 사람을 등용하는 사람은 그 장강․회수․황하․바다같은 사람을 등용하는 해만 알 뿐 그 이로움을 살피지 않는다. 이는 천하의 강물을 막아놓고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송(宋)나라의 왕개보(王介甫)[10]는 양산박(梁山泊)을 터서 좋은 밭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그 물을 둘 곳이 없었다. 유공보(劉貢父)[11]가 큰 소리로 “양산박을 하나 더 파서 그 물을 거기에 두면 될 것이오”라고 외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장강․회수․황하․바다 같은 인물들도 해가 있다고 해서 등용하지 않는데, 장차 그들을 어디에 두려는가? 이 또한 한 가지이다. 요즈음 사람들로는 아직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지혜가 해나 달과 같고 별처럼 밝게 빛나면 대지를 훤히 비추어 주어, 이런저런 온갖 만물이 드러난다. 옷감이나 잡곡․곡물같은 사람에게 서리나 눈에도 푸르른 소나무나 잣나무같은 지조가 없다고 절대 책망하지도 않고, 800리․1천 리를 달리는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 특이한 향도 없고 진기한 꽃도 피우지 못한다고 절대 책망하지도 않는다. 이름난 강물과 거대한 물결이 간혹 범람하여 용솟음치고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장강대하(長江大河)의 힘을 빌어 배를 띄워 노를 저어 물건을 운송하기도 하고 논밭에 물도 대는 것이다. 높은 누각이나 시원한 전각이 우뚝 솟고 휘황한 것이야 그 누가 바라지 않겠는가마는, 다만 거기에는 새․짐승․물고기․자라 등과 모두 함께 어울리고 산천 초목 역시 많이 알게 하는 것이 없지 아니한가? 저마다 타고난 쓰임에 따라서 그렇게 있게 한 것으로, 모든 것이 자기의 쓰임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없게 할 수 있는 것이다.……[12] 그러므로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모든 것을 훤히 비추는 것은 정말 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한 가지에 실로 여덟 가지의 특성이 모두 들어 있다. 그러니 당연히 이 부류의 사람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사람으로는 또한 지금까지 아직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아! 이것은 팔물탕(八物湯)이다. 이것을 약으로 쓰면 기혈(氣血)이 한꺼번에 보충되기 때문에 몸에 이익이 있고, 이것을 세상을 구제하는 데 쓰면 백공(百工)에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통치에 이익이 있다. 사람을 등용하는 권한을 쥔 사람이 과연 이 여덟 가지를 알고 있는가? 저 사람은 내게 원한이 있다느니 저사람은 내게 덕을 베풀어준 것이 없다느니 하는 것일랑 따지지 말라. 천금을 주어도 말하지 않을 좋은 약을 만드는 비법이나 장생불로하는 묘방이 있다고 해도, 그저 질투하고 미워하는 것만 알고, 오직 자기 보다 뛰어날까 염려할 뿐이다. 아! 이 ‘여덟 가지 사물’[八物]을 비유한 인물론을 통해 보고 나서, 사람을 등용하는 이 세상 사람들이 좁음을 알았다. 하물며 게다가 질투심과 증오심에 빠진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八物>

嘗謂君子無怨,唯小人有之;君子有德必報德,而小人無之。夫君子非無怨也,不報怨也;非不報怨也,以直報怨也。茍其人可惡而可去,則報之以可惡可去之道焉;茍其人可好而可用,則報之以可好可用之道焉。其惡而去之也,好而用之也,直也,合天下之公是也。

其或天下不知惡而去之、好而用之也,而君子亦必去之、必用之,是亦直也,合天下之公理也。夫是之謂「以直」。旣謂之直,則雖無怨於我者,亦必如是報之矣,則雖謂聖人未嘗報怨焉亦可也。若曰「以德報怨」,則有心矣,作僞矣,聖人不爲也。至於人之有德於我者,則志在必報,雖以聖人爲有心,爲私厚,不計矣。何也?聖人義重者也。義重故可以托孤,而況托知己之孤乎?義重故可以寄命,而況寄有德之命乎?故曰「以德報德」。唯其人有必報之德,此世道所以攸賴,國家所以有托,綱常所以不墜,人倫所以不滅也。若小人非不報德也,可報則報,不可報則亦已而勿報,顧他日所值何如耳。茍禍患及身,則百計推托,逃避無影矣,雖有德,將安知乎?唯有報怨一念,則終始不替。然茍勢盛於我,財多於我,我又可藉之以行立,則怨反為德,又其常也。蓋十百千萬咸如斯也。此君子小人界限之所以判也。故觀君子小人者,唯觀其報怨報德之間而已。故余嘗以此定古今君子小人,而時時對人言之不省也。除此之外,君子小人有何分別乎?吾見在小人者更為伶俐而可用也。

或曰:「先生旣如此說矣,何先生之待小人也過嚴,而惡惡執怨也反過甚乎?」余曰:「不然,我之惡惡雖嚴,然非實察其心術之微,則不敢有惡也。縱已惡其人,茍其人或又出半言之善焉,或又有片行之當焉,則我之舊怨盡除,而親愛又隨之矣。若其人果賢,則初未嘗不稱道其賢,而欲其亟用之也。何也?天之生才實難,故我心唯恐其才之不得用也,易敢怨也?是以人雖怨我,而欲害我報我者終少,則以我心之直故也。」

或曰:「先生之愛才誠然矣,然其始也取人太廣,愛人太驟,其旣也棄人太急,而終之收錄入也亦太狹。曷不論定而後賞,勿以始廣而終狹乎?」籲!不然也。夫人實難知,故吾不敢以其疑似而遂忽之,是故則見以爲廣,而眞才難得,故吾又不敢以疑似而遂信之,是故則見以爲狹耳。若其人眼即得,無復疑似,則終身不忒,(始)(如)丘長孺、周友山、梅衡湘者,固一見而遂定終身之交,不待再試也。如楊定見,如劉近城,非至今相隨不舍,吾猶未敢信也。直至今日患難如一,利害如一,毁謗如一,然後知其終不肯畔我以去。夫如是,則余之廣取也固宜。設余不廣取,今日又安得有此二士乎?夫近城篤實人也,自不容以有二心;楊定見有氣人也,故眼中亦郴可一世之士。夫此二人,皆麻城人也。友山麻城人,而麻城人不知之也。衡湘麻城人,而麻城人不知之也。若丘長孺之在麻城,則麻城諸俗惡輩直視之爲敗家之子矣。吾謂周友山則世之所稱布帛菽粟是也,其不知也宜也。梅衡湘則古今所稱伯樂之千里馬,王武子之八百駿是也,其不知也亦宜也。若丘長孺雖無益於世,然不可不謂之麒麟鳳凰、瑞蘭芝草也。據長孺之爲人,非但父母兄弟靠不得,雖至痛之妻兒亦靠他不得也。蓋但妻兒靠不得,雖自己之身亦終靠他不得。其爲無用極矣。然其人固上帝之所篤生,未易材者也。觀其不可得而親疏敬慢也,是豈尋橙倫可比耶!故余每以麟鳳芝蘭擬之,非過也。若楊定見二子者,譬則樓臺殿閣,未易動搖,有足貴者。且高明之家,吉人之都,是非好惡,又自明白。

或曰:「公之知梅衡湘似矣,然人之所以下知者,以其權智太審也。夫人而專任權智,則可以生人,亦可以殺人,如江淮河海之水然矣。」余謂衡湘雖大樣,然心實細謹,非曹孟德等比也,必如曹孟德等,方可稱之為江淮河海之水,如之何而遂遽以譽衡湘也哉!嗚呼!

此數公者,我固知之,而數公固各不相知也。蓋有日月星辰洞然皎然,如郭林宗、許於將、司馬德操者出,安能兼收而並用之耶?

或曰:「如先生言,必如此數者,然後可以用於世耶?」曰:「不然也。此其可大用者也,最難得者也,未易多有者也。子但見麻城一時有此數人,便以爲易易矣,不知我費了多少心力方得此數人乎?若其他則在在皆有,時時可用,自不待費力以求之矣。猶之鳥獸草木之生,周遍大地,任人選取也。」余旣與諸侍者夜談至此,次日偶讀升庵《風賦》,遂感而論之曰:「《書》稱麟鳳,稱其出類也。夫麟鳳之希奇,實出鳥獸之類,亦猶芝草之秀異,實出草木之類也。雖曰希奇秀異,然亦何益於人世哉!意者天地之間,本自有一種無益於世而可貴者,如世之所稱古董是耶!今觀古董之爲物,於世何益也?夫聖賢之生,小大不同,未有無益於世者。茍有益,則雖服箱之牛,司晨之雞,以至一草一木,皆可珍也。」故曰《鳳賦》而推廣之,列爲八物,而鳥獸草木與焉。籲!八物具而古今人物盡於是矣。此物伊何?日鳥獸草木,曰樓臺殿閣,日芝草瑞蘭,曰杉松栝柏,曰布帛菽粟,日千里八百,曰江淮河海,日日月星晨。

夫鳥獸草木之類夥矣,然無有一羽毛一草木而不堪人世之用者。旣已堪用矣,則隨所取擇,總無棄物也。是一物也。夫宮寺樓閣,山舍茅廬,基址一也,而高低異;本植一也,而小大異,屆處一也,而廣狹異。同是鄉人而鄉不如,則以宮室業產之良矣。譬之於鳥則賓鴻,於獸則獵犬,於草則國老,於木則從繩。同於鳥獸草木,而又不同於鳥獸草木,則以其為鳥獸草木本類之獨著耳。是一物也。

夫芝草非常,瑞蘭馨香,小人所棄,君子所喜,設於世無君子亦已。譬之玩物,過目則已,何取於溫?譬之好音,過耳則已,何取於飽?然雖無取於溫飽,而不可不謂之希奇也。

是一物也。

夫靑松翠柏,在在常有,經歷歲時,棟粱遂就。噫!安可以其常有而忽之!與果木鬪春,則花不如,與果木鬪秋,則實不如。籲!安可以其不如而易之!世有淸節之士,可以傲霜雪而不可以任棟樑者,如世之萬年靑草,何其滔滔也。籲!又安可以其滔滔而擬之!此赫峰之徒也。是亦一物也。夫智者好奇,以布帛菽粟爲不足珍,賢者好異,以布帛菽粟爲無異於人。

唯大智大賢反是,故以其易飽易暖者自過吾之身,又以其同飽同暖者同過人之日。所謂易簡而得理,無為而成化,非若人之徒歟?眞若人之徒也。是亦一物也。夫馬牛麟鳳,俗眼視之,相去故甚遠也。然千里之駒,一日而致;八百之牛,一日而程。麟乎鳳乎,雖至奇且異,亦奚以異為也?士之任重致遠者,大率類此。而世無伯樂,祗謂之馬砒不知其能千里也,眞可慨也!是又一物也。夫能生人又能殺人,能貧人又能富人,江淮河海是也。利者十五,而害者亦十五。利害相半,而趨者不倦。今世用人者知其害不察其利,是欲堙塞天下之江河而不用之也。宋王介甫欲決梁山泊以爲良田,而思無置水之處。劉貢父大聲叫曰:「再鑿一梁山泊則可置此水矣!」然則今日江淮河海之士,旣以有害而不用矣,將安所置之哉?是亦一物也,今未見其人也。

夫智如日月,皎若辰星,照見大地,物物賦成,布帛菽粟者,決不責以霜杉雪柏之操;八百千里者,決不索以異香奇卉之呈。名川巨浸,時或泛濫崩沖;長江大河,實藉其舟揖榆灌∵樓涼殿,巍然煥然,誰不欲也,獨不有鳥獸魚鱉與之咸若,山川草木亦令多識乎?器使之下,可使無不獲之夫。則知日月星辰的然兼照,真可貴矣。此一物者,實用八物,要當以此物為最也。今亦未見其人也。

嗚呼!此八物湯也,以爲藥則氣血兼補,皆有益於身;以救世則百工效用,皆有益於治。

用人者其尚知此八物哉!毋曰:「彼有怨於我也,彼無德於我也。雖有千金不傳之秘,長生不老之方,吾只知娼嫉以惡之,而唯恐其勝己也已。」籲!觀於八物之說,而後知世之用人者狹也,況加以娼嫉之人歟!


 [1] 《논어》 <헌문>(憲問), [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참조.

 [2] 원문은 ‘탁고’(託孤)로, 다음에 나오는 ‘의명’(寄命)과 짝하는 말이다. 《논어》 <태백>(泰伯)에 “증자는 ‘키가 6척 밖에 안되는 나이 어린 후계자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할 만하고, 100리 땅 백성의 목숨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할 만하여, 국가를 위한 크나큰 일에 나서 그 절개를 빼앗을 수 없는 사람 정도라면 군자라고 할 수 있다, 군자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曾子曰, ‘可以託六尺之孤, 可以寄百里之命, 臨大節而不可奪也. 君子人與, 君子人也]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이 ‘탁고의명’(託孤寄命)이라는 성어의 기원이다. ‘탁고’는 ‘왕이 세상을 떠날 때 나이 어린 후계자가 뒤를 잇는 것이 염려되어 믿을 만한 신하에게 나이 어린 후계자를 잘 돌보면서 보필하라고 부탁한다’는 말이다. ‘의명’의 해석에 대해 몇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를 예로 들면 ‘100리 땅을 다스리는 제후를 임명하면서 그 곳 백성들의 목숨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한다’이다. 어쨌든 탁고의명은 ‘가장 덕망있고 신임할 만한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다, 아무나 해내지 못할 막중한 임무를 부여하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3] 《열자》(列子) <설부>(說符)에 나오는 고사로, 백락은 말의 관상을 잘 보아서, 천리마와 보통말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4] 《세설신어》(世說新語) <태치>(汰侈)에 나오는 고사이다. 왕군부(王君夫, 王愷)에게 하루에 800리를 달린다는 소가 있었는데, 이름도 팔백리박(八百里駮)이라고 했다. 왕무자(王武子, 王濟)가 왕군부에게 활쏘기 시합을 제의하며, 자기가 이기면 팔백리박을 가지고, 지면 천만 금을 내겠다고 했다. 왕군부는 활쏘기에 자신이 있었고, 왕무자가 이겨도 설마 보배같은 팔백리박을 죽이겠는가 생각하여, 이에 승낙했다. 왕무자가 먼저 활을 쏘아, 단번에 과녁을 명중시키고, 시종에게 즉시 소의 심장을 꺼내오라고 시켰다. 조금 후에 소의 심장을 구워 내오자, 왕무자는 한 조각 맛보고 가버렸다. 이로부터 팔백리박은 준마의 대명사로도 쓰인다.

 [5] 조조(曹操)를 말한다.

 [6] 승암(升菴)은 양신(楊愼, 1488~1559)으로, 자는 용수(用修)이고, 호가 승암이다. 명대(明代)에 시문을 많이 창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지는 그를 좋아하여, 문장에서 종종 그를 언급하였으며, 《분서》 권5, <양승암집>(楊升菴集)에서는 그의 인품․도덕․재능을 찬양한 바 있다. 본문에서 첫머리의 소식의 평론 역시 양신의 <논시화>(論詩畵)(《楊升菴集》, 60권)에서 인용한 것이며, 예로 든 두보(杜甫)의 시 역시 양신이 <두시입화>(杜詩入畵)(《楊升菴集》, 60권)에서 말한 것을 찬성하여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밖의 평론도 양신의 <도원도>(桃源圖)․<장승요>(張僧繇)(《楊升菴集》, 60권) 등의 문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7] 빈홍(賓鴻)은 홍안(鴻雁)․빈안(賓雁)이라고도 한다. 철에 따라 강남과 강북을 옮겨다녀, 봄 소식을 알려주는 새의 대명사로 쓰인다. 혹은 이리저리 떠도는 나그네에 비유되기도 한다.

 [8] 국로(國老)는 원래 나라의 원로 대신 또는 중신(重臣)을 일컫는 말로서, 감초(甘草)의 별명으로도 쓰인다. 거의 모든 약 처방에서 감초가 빠지지 않는데, 이는 감초가 여러 약재의 작용과 효과를 조화시키는 기능이 있기 때문으로, 마치 신하들 사이를 조화시키는 원로 대신의 역할과 같다는 뜻에서, 감초를 국로라고도 한다.

 [9] 종승(從繩)의 원래 뜻은 ‘먹줄을 따라서 재목을 곧게 가공하다’이다. 먹줄을 갖다 댈 필요도 없이 곧게 자란 나무를 말하기도 한다.

[10] 왕안석(王安石)의 자가 개보이다. 북송시대의 정치가, 사상가, 문학자이다. 호는 반산(半山)이고 무주 임천 사람이다. 신종 때에 재상으로 신법(新法)을 추진하였다. 사마광(司馬光) 등의 반대로 신정(新政)이 실패하였다. 신학(新學)을 제창하여 문예혁신을 이루었다. 저서로는 《임천집》(臨川集), 《왕문공문집》(王文公文集), 《주관신의》(周官新義) 등이 있다.

[11] 송대 유반(劉攽)의 자이다.

[12] 이 부분의 원문은 ‘기사지하 가사무불획지부’(器使之下, 可使無不獲之夫)이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여러 가지로 유추하여 “기(器)를 아래로 하여 그것을 얻지 않음이 없게 한다면”이나 “기(器)를 아래로 하여 한 사람이라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면”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