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불교 문화 유적이 곳곳에 널려 있는데, 불교 문화 유적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석굴이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이러한 석굴을 많이 접하게 된다. 이 가운데서도 널리 알려진 둔황(敦煌)의 모가오쿠(莫高窟) 석굴과 뤄양(洛陽)의 룽먼(龍門) 석굴, 다퉁(大同)의 윈강(雲崗) 석굴은 중국을 대표하는 3대 석굴로 유명하다.
하지만 드넓은 중국 땅에 어찌 석굴이 이뿐이겠는가? 위에서 말한 3대 석굴은 중국의 도처에 널려 있는 석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을 손꼽은 것일 뿐,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저마다 나름의 특색을 갖고 있는 석굴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필자가 여행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다음의 열 군데를 중국의 10대 석굴로 손꼽고 있다.
1. 간쑤(甘肅) 둔황(敦煌)의 모가오쿠(莫高窟)
2. 허난(河南) 뤄양(洛陽)의 룽먼(龍門)
3. 산시(山西) 다퉁(大同)의 윈강(雲崗)
4. 간쑤(甘肅) 톈수이(天水)의 마이지산(麥積山)
5. 쓰촨(四川) 러산(樂山) 현의 러산(樂山) 대불
6. 충칭(重慶)의 다쭈(大足) 석굴
7. 간쑤(甘肅) 우웨이(武威)의 톈티산(天梯山)
8. 간쑤(甘肅) 란저우(蘭州)의 빙링쓰(炳靈寺)
9. 닝샤(寧夏)의 쉬미산(須彌山)
10. 위구르 쿠차의 키질(克孜爾) 석굴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유명한 석굴들이 특히 간쑤성에 몰려 있는 것은 이곳이 불교가 전래된 통로인 실크로드 상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은 사막과 험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여정에서 자신들의 무사안녕을 빌기 위해 원력을 일으켜 숱한 석굴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석굴은 물론 둔황이지만, 나머지 세 곳도 한번 찾아가 볼만한 아름다움과 의미를 갖고 있다. 이번 호에는 이 가운데 란저우 인근에 있는 빙링쓰 석굴을 소개하고자 한다.
간쑤성의 성도인 란저우(蘭州)는 드넓은 중국 대륙의 가장 가운데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중국의 배꼽인 셈인데, 이곳은 실크로드 교역의 요충인 허시주랑(河西走廊)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란저우에서 차를 타고 약 2시간 남짓 달리면 1960년대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큰 댐이라 일컬어지던 류쟈샤(劉家峽) 댐이 나오는데, 우리의 소양댐 정도의 규모인 듯 보이는 이곳은 황허(黃河)를 막아 만든 댐이다. 특이한 것은 토사로 인해 누런 황허 물이 이곳 댐에 막혀 거대한 호수를 이루는 바람에 물 속의 토사가 침전되어 본래의 물 색깔을 되찾고 있다는 점이다.
빙링쓰는 이곳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더 가야 한다. 작은 모터보트를 타고 부지런히 가면 약 1시간 남짓 걸리는 곳에 빙링쓰가 나오는데, 중간에 마주치는 인근의 산들은 모두 헐벗은 민둥산으로 약간은 살풍경한 느낌을 준다.
다소 지리한 풍경이 이어지는 뱃길을 한 시간 남짓 달리다 보면 빙링쓰 초입에 있는 절벽에 빙링쓰에 다 왔음을 알려주는 글자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원래는 이곳 역시 실크로드 상의 중요한 통로였고, 송(宋)대에는 토번(吐蕃; 티벳)이나 서하(西夏)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런 까닭에 이곳을 오가는 실크로드의 상인들이나 이곳을 지키는 군인들이 위주가 된 공양객들이 줄을 이었고, 석굴의 개보수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빙링쓰는 석굴도 석굴이지만 석굴 앞에 펼쳐져 있는 돌산들의 기이한 형상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오랜 세월 풍화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의 기적이라고나 할까? 마치 병풍처럼 두르고 선 돌산들의 풍광은 그저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주변 풍광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면 정작 석굴은 눈에 차지 않는 지도 모른다. 자연이 빚어낸 경이로운 풍광이 인간들의 인위의 산물인 석굴을 압도하는 것인가? ‘빙링쓰(炳靈寺)’라는 이름은 송대에 붙여졌는데, ‘빙링’은 ‘십만 미륵불의 땅’이라는 뜻의 티벳어 ‘셴바빙링(仙巴炳靈)’을 음역한 것이라 한다. 이를테면 ‘천불동((千佛洞)’이나 마찬가지인 셈인데, 현재는 183개의 석굴이 황허 기슭을 따라 약 2킬로미터에 걸쳐 늘어서 있다.
이곳의 산들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석굴을 조성하기에 편리했을 것이다. 길게 이어진 석벽에는 수많은 석굴들이 늘어서 있으며 석벽을 따라 만들어진 순회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오랜 세월 풍상의 흔적이 느껴지는 불상들을 만날 수 있다.
불상들을 구경하며 조금 걷다 보면 당나라 때 조성된 171굴의 석조 대불을 만나게 된다. 약 27미터에 이르는 이 대불이야말로 빙링쓰의 상징인 것이다. 대불의 몸통 위쪽은 석벽을 쪼아 만든 것이고, 하체는 진흙으로 만든 소조라 한다.
대불 옆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169굴에 도달하게 된다. 이곳에서 명문이 발견되어 이 석굴이 420년 경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불의 북쪽에 있는 172굴에는 목조 삼세불이 있는데, 북주 이후에 중수된 것이라 한다. 란저우의 빙링쓰는 자연이 빚어낸 풍광과 인간의 손길에 의해 조성된 석굴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실크로드 교역로 상의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