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고측격법旁敲側擊法
【정의】
작자가 글을 쓸 때 말 속에 또 말이 있고話裏有話, 현弦 바깥에 음이 있는弦外有音 경우가 있다. 곧 표면적으로 드러난 의미뿐 아니라 자세히 음미할 때 또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말’과 ‘음’이야말로 작자가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진정한 목표라 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일러 ‘방고측격법’이라 한다.
【실례】
주지하는 대로 《홍루몽》은 쟈바오위賈寶玉와 린다이위林黛玉의 애정 비극을 주요한 정절로 삼으면서, 봉건 가족의 황음荒淫과 부패상을 폭로하고 봉건제도가 붕괴한 끝에 결국 멸망해 가는 운명을 그려낸 작품이다. 작자인 차오쉐친曹雪芹은 제2회에서 일종의 ‘국외자’인 렁쯔싱冷子興의 입을 빌려 룽궈푸榮國府의 사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방대한 규모의 《홍루몽》을 읽는 독자가 룽궈푸와 닝궈푸의 주요 인물들과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다시 소개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문장이 늘어지는 등의 폐단이 있게 된다. 이 점에 대해 이 작품을 몽골어로 번역한 카쓰부哈斯寶의 다음과 같은 말은 매우 적절한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늘어놓은 말로 룽궈푸와 닝궈푸에서 일어난 수많은 일과 수많은 사람들이 이 회(제2회)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모두 종이 위에 살아 움직이며 마치 이 회에 등장한 듯하니, 이것이 바로 ‘방고측격법’이다.”
【예문】
귀찮아진 쟈화賈化는 곧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주막에 가서 술이나 몇 잔 마시며 산야의 정취를 감상하고 흥이나 돋울 요량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그러던 중 쟈화가 물었다.
“요즘 경사에 무슨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뭐 새로운 소식이랄 건 없지만, 그래도 선생 집안에 사소하지만 이상한 일이 하나 있긴 있었지요.”
“허허 그래요? 그런데 경사에는 저희 집안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데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려.”
“하하, 선생과 성이 같으니 일가는 일가 아니겠소?”
쟈화가 어느 집안이냐고 묻자 렁쯔싱冷子興이 대답했다.
“룽궈푸榮國府 쟈 씨 집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집안의 일이 선생 가문에 누가 되지는 않겠지요?”
“허허, 그 집안이었군요. 뭐 따지고 보면 저희 집안에도 사람이 적진 않습니다. 동한東漢 때의 쟈푸賈復 이래로 자손이 번성하여 각 지역마다 터전을 잡고 있으니, 누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룽궈 공 파 榮國公派만 하더라도 일가가 맞긴 하지만 그 집안은 대단한 부귀를 누리고 있으니, 우리 같은 처지로는 가까이 지내기가 불편하지요. 그러니 지금은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렁쯔싱이 탄식하며 말했다.
“선생, 그런 말씀 마시구려. 지금 저 닝궈 푸寧國府와 룽궈 푸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집안이 적막해지고 말았답니다.”
“그 두 집안에는 식솔들이 아주 많을 텐데 어째서 적막해졌다는 겁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얘기하자면 깁니다.”
“작년에 제가 진링金陵 땅에 갔을 때, 육조六朝의 유적을 유람해볼까 하고 어느 날 스터우 성石頭城에 들어가던 차에 그 댁 대문 앞을 지나간 적이 있었지요. 거리 동쪽은 닝궈푸이고 서쪽은 룽궈푸인데, 두 댁이 서로 이어져 거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더군요. 대문 앞은 사람 하나 없이 썰렁했지만, 담 너머로 보니 안쪽에 대청이며 누각들이 여전히 으리으리하게 솟아 있습니다. 뒤쪽 정원에도 나무와 가산假山, 바위들이 아직 무성하게 윤기를 뽐내고 있던데, 그게 어디 기울어 가는 집안의 모습이란 말입니까?”
“하하, 선생은 진사 출신이니 당연히 세상사를 잘 모르시겠지요! 옛말에 ‘지네는 죽어도 굳어지지 않는다百足之蟲, 死而不僵’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비록 옛날처럼 그렇게 흥성하지 않지만, 보통 벼슬아치 가문에 비하면 아무래도 형편이 다르지요. 하지만 집안에 나날이 사람도 많아지고 일도 계속 늘어나는데, 주인이나 하인들 모두 편안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려고만 하고 살림을 꾸려나갈 계획을 세우려는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나날이 쓰는 겉치레 비용도 줄이지 못하니, 비록 밖으로 드러난 틀은 변함 없이 부유해 보여도 안쪽 주머니는 바닥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건 아무 것도 아니지요. 그보다 더 큰일이 있어요. 그렇게 위세 높은 귀족 가문이요 학식 있는 선비 집안의 아들 손자들이 대를 내려갈수록 점점 더 못났단 말입니다!”
쟈화도 그 말을 듣고 놀라며 말했다.
“그렇게 학문과 예법을 숭상하는 집안에서 교육을 잘못했을 리 있겠습니까? 다른 가문이라면 몰라도 닝궈푸와 룽궈푸라면 자녀 교육에 아주 신경 쓸 텐데요.”
“허,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게 바로 그 두 가문 아닙니까!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닝궈 공과 룽궈 공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이지요. 형 닝궈 공은 아들 넷을 두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신 후 쟈다화賈大化가 관직을 세습했는데, 그 역시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큰아들은 이름이 쟈푸賈敷인데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무렵에 죽어버리고, 둘째 아들 쟈징賈敬이 관직을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저 도를 닦으면서 장생불사의 신선이 되는 단약을 만드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는 젊은 나이에 쟈전賈珍이라는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오로지 신선이 될 생각만 하고 다른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쟈징은 벼슬을 이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쟈징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도 하지 않고 경사의 성 밖에서 도사들과 어울려 빈둥거리고 있지요. 그리고 쟈전 서방님도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이제 겨우 열여섯 살 된 쟈룽賈蓉입니다. 그런데 지금 쟈징 나리가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있으니 쟈전 서방님이 공부를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놀고 즐기기만 할 뿐 닝궈푸를 다 뒤집어 먹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감히 나서서 단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 말을 이었다.
“이제 룽궈 푸 이야기를 할 테니 들어보시구려. 방금 이야기한 이상한 일이라는 게 바로 여기서 일어난 일입니다. 룽궈 공이 돌아가신 후에 큰아들 쟈다이산賈代善이 관직을 물려받았고, 진링 땅에서 대대로 살아온 명가 훈족의 스 후史侯 댁 딸을 아내로 맞아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큰아들은 쟈서賈赦이고, 작은아들은 쟈정賈政이지요. 쟈다이산께서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태부인賈母께서는 아직 살아계시는데, 큰아들 쟈서가 관직을 물려받았습니다. 둘째 아들 쟈정은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아주 좋아해서 조부와 부친이 무척 아끼셨지요. 원래는 과거시험에 급제시켜 벼슬살이를 하게 해줄 요량이셨답니다. 그런데 뜻밖에 쟈다이산이 돌아가실 때 남긴 유표遺表를 황상께 올리니 황상께서 옛 신하를 동정하셔서 즉시 큰아들에게 관직을 물려받게 하라고 명을 내리시고, 또 아들이 몇 명 있는지 물으시며 즉시 불러들여 만나보셨습니다. 그리고 쟈정 나리에게 특별히 주사主事의 직함을 내리시면서 ‘부部’에 들어가 공부하게 해주셨지요. 현재 그 분은 원외랑員外郞으로 승진하셨습니다. 쟈정 나리의 부인 왕 씨가 낳은 첫아들이 쟈주賈珠인데, 열네 살에 수재 소리를 들었습니다. 쟈주는 스무 살이 채 안 되어 결혼하고 아들을 하나 낳은 후 그만 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지요. 왕 부인은 둘째로 딸을 낳았는데, 이 딸은 정월 초하루에 태어났으니 참 신기한 일이지요. 뜻밖에도 나중에 아들이 하나 더 태어났는데, 이 아들 얘기를 하자면 더욱 신기합니다. 이 아들은 태어날 때 입에 오색이 영롱한 옥구슬을 물고 있었는데, 그 위에 아주 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름을 쟈바오위賈寶玉라고 지었다지요. 정말 신기하고 이상한 일 아닙니까?”
( 《홍루몽》 제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