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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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루무치에 있을 때의 일이다. 관할 지역의 군리(軍吏: 오늘날의 군 보좌관)가 공문서 수십 장을 가져와서 먹과 붓을 바치면서 내게 판결을 요청하며 말했다.

“모두 이 땅에서 객사한 사람들로, 그들의 관을 본적으로 돌려보낼 때 관례에 따라 문서를 보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혼이 관내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한 저승에 가지고 가야하기 때문에 붉은 색으로 해도 안 되고 도장도 검은 색으로 해야 합니다.”

내가 그 문서를 대충 살펴보았더니, 너무나 조잡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원주: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증서를 발급합니다. 아무 곳의 누구누구는 나이가 몇 살인데, 모년 모월 모일에 이곳에서 병사했습니다. 오늘 친척들이 관을 본적으로 가져가려 함에 특별히 통행증을 발급합니다. 중요 길목을 지키고 있는 귀신은 이 패를 보면 바로 혼을 확인하고 통과시켜 주시오. 구실을 대며 지체하거나 일 처리를 어렵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하급관리가 돈을 뜯어내기 위해 만들어 낸 구실에 불과하네.”

나는 장군(將軍)들에게 알리고 이 관례를 없앴다.

열흘 뒤 누군가 나에게 성 서쪽에 있는 황폐한 묘지에서 귀신이 울면서 통행증이 없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알려왔다. 나는 허무맹랑한 보고에 대해 꾸짖었다. 다시 열흘 뒤에 누군가 귀신의 곡소리가 이미 성 가까이에서 난다고 알려왔기에 이전과 마찬가지로 꾸짖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내가 있는 거처의 담 밖에서 ‘흑! 흑’ 원주: 󰡔설문(說文)󰡕에서 “유(䰰)”는 곧 “귀신의 울음소리”이고 음은 “rú獳”이다고 되어 있다. 하는 귀신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전히 서리가 꾸며낸 짓이라 생각했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창문 밖에서 소리가 났다. 때마침 달빛이 대낮처럼 밝은 지라 혼자 밖으로 나와서 사방을 돌며 찾아보았으나 인적이라곤 없었다.

동료이자 어사(御史)인 관성(觀成)이 말했다.

“공께서 주장하는 이론은 올바르고 장군이라 해도 부인할 수 없소.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귀신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은 사실이오. 통행증을 발급 받지 못한 사람은 실제로도 공을 원망할 것이오. 공께서는 어찌하여 통행증을 지급하고 잠시 음모를 꾸미는 자들의 입을 막지 않으시오? 귀신이 이전처럼 계속 울어댄다면 공께서도 할 말이 있을 것이오.”

이에 하는 수 없이 그의 말에 따라 통행증을 발급했더니 그 날 밤에 바로 조용해졌다.

또 송길록(宋吉祿)이라는 군리가 인방(印房)에 있다가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껴 쓰러졌다. 잠시 뒤에 깨어나서는 꿈에서 어머니가 오시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잠시 후 관군이 공문서를 보내왔기에 펼쳐보았더니 하미(Hami)에서 송길록의 모친이 아들을 보러 오던 길에 길에서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천하에 없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유생들은 늘 있는 일이라 논할 따름이다! 내가 일찍이 「우루무치잡시」 160수를 지었는데, 그 가운데 다음 시가 있다.

쏴쏴 바람 불자 백초 몸소 찬 구름 맞이하는데,
관산(關山)의 경계는 누가 나눈 것인가?
하급관리의 명부에 따라 귀신들을 움직인다고 하는데,
한유(韓愈)의 「원귀(原鬼)」에도 이런 일은 없었네.
이 시는 바로 이상의 두 일에 대해 쓴 것이다.

余在烏魯木齊, 軍吏具文牒數十紙, 捧墨筆請判, 曰: “凡客死於此者, 其棺歸籍, 例給牒. 否則魂不得入關. 以行於冥司, 故不用朱判, 其印亦以墨.” 視其文, 鄙誕殊甚. 原註曰: “爲給照事: 照得某處某人, 年若干歲, 以某年某月某日在本處病故. 今親屬搬柩歸籍, 合行給照. 爲此牌仰沿路把守關隘鬼卒, 卽將該魂驗實放行. 毋得勒索留滯, 致干未便.” 余曰: “此胥役托詞取錢耳.” 啓將軍除其例.

旬日後, 或告城西墟墓中鬼哭, 無牒不能歸故也. 余斥其妄. 又旬日, 或告鬼哭已近城. 斥之如故. 越旬日, 余所居牆外需鬼需鬼有聲 原注: 󰡔說文󰡕曰: “䰰, 鬼聲.”, 余尙以爲胥役所僞. 越數日, 聲至窗外. 時月明如晝, 自起尋視, 實無一人. 同事觀御史成曰: “公所持理正, 雖將軍不能奪也. 然鬼哭寔共聞. 不得照者, 寔亦怨公. 盍試一給之, 姑間執讒慝之口? 倘鬼哭如故, 則公益有詞矣?” 勉從其議, 是夜寂然.

又軍史宋吉祿在印房, 忽眩仆. 久而蘇, 云見其母至. 俄臺軍以官牒呈, 啓視, 則哈密報吉祿之母來視子, 卒於途也.

天下事何所不有? 儒生論其常耳. 余嘗作「烏魯木齊雜詩」一百六十首, 中一首云: “白草颼颼接冷雲, 關山疆界是誰分? 幽魂來往隨官牒, 「原鬼」昌黎竟未聞.” 卽此二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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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형주(范衡洲)가 해준 이야기이다.

옛날에 그가 전당강(錢塘江)을 건널 때 한 스님이 배를 탔는데, 스님은 곧장 부들방석을 돛대 아래에 놓고 기대어 앉더니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말을 걸어도 입으로는 ‘응! 응’하면서 눈은 딴 곳을 쳐다보는데, 기상이 남달라 보였다. 범형주는 그 오만함을 탓하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서풍이 급하게 지나가기에 범형주는 시 두 구를 읊었다.

하련이 떠오르지 않아 상련만을 서너 번 읊조리고 있는데, 스님이 갑자기 눈을 감고 낮은 소리로 시구를 읊었다.

하얀 포말이 뱃머리 흔드니,
행인들은 역풍을 무서워하네.
어찌하여 붉은 소매 달린 옷 입은 아가씨는,
아직도 높은 누각에 기대고 있는가?

범형주가 그 의미를 몰라 스님에게 물었으나 스님은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다.

[배가 기슭에 도착하여] 뱃사공이 닻줄을 묶을 때, 붉은 옷을 걸친 한 젊은 아가씨가 난간에 기대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스님에게 재삼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우연히 보았을 따름이오.”

그러나 수면 위는 안개로 아득했고, 초막이 앞을 가로 막고 있어 실제로 보일 리가 없었다. 이에 범형주는 스님이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여 예를 갖추어 볼 까 했는데, 스님은 이미 석장(錫杖)을 흔들며 저만치 가고 있었다. 범형주는 스님에 대해 알 길이 없어 망연자실해하며 말했다.

“이 사람 또한 낙빈왕(駱賓王)인가!”

范蘅洲言. 昔渡錢塘江, 有一僧附舟. 徑置坐具, 倚檣竿, 不相問訊. 與之語, 口漫應, 目視他處, 神意殊不屬. 蘅洲怪其傲, 亦不再言. 時西風過急, 蘅洲偶得二句, 曰: “白浪簸船頭, 行人怯石尤.” 下聯未屬, 吟哦數四, 僧忽閉目微吟曰: “如何紅袖女, 尙倚最高樓?” 蘅洲不省所云, 再與語, 仍不答. 比繫纜, 恰一少女立樓上, 正著紅袖. 乃大驚, 再三致詰, 曰: “偶望見耳.” 然煙水淼茫, 廬舍遮映, 實無望見理. 疑其前知, 欲作禮, 則已振錫去. 蘅洲惘然莫測, 曰: “此又一駱賓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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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현(淸苑縣)의 장월(張鉞)이 일찍이 하남성(河南省) 정주(鄭州)에서 벼슬살이 할 때 관아에 오래된 뽕나무가 있었는데, 두 사람이 양팔로 껴안아도 남을 정도로 그 크기가 컸다. 사람들이 뽕나무에 신이 살고 있다고 하자, 장월은 이를 꺼림칙하게 여겨 뽕나무를 베어버렸다. 그 날 저녁 장월의 딸이 등불아래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은 얼굴뿐만 아니라 손, 발 그리고 의복까지도 모두 짙은 녹색 빛을 띠고 있었다. 그가 장월의 딸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네 아비가 함부로 권력을 휘둘렀으니 내 잠시 너를 다스려 그에게 경고하겠다!”

딸이 깜짝 놀라 고함을 치자 하인들이 달려왔으나, 이미 정신이 나간 뒤였다. 후에 그 딸은 태복(太僕) 과선주(戈仙舟)에게 시집갔으나, 얼마 지나서 죽었다. 귀신을 몰아내고 음사(淫祠)를 부수는 것은 적량공(狄梁公)이나 범문정공(范文正公)등과 같은 사람의 일이거늘! 덕행이 진실로 부족하면서 요괴를 이기려 한다면 실패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淸苑張公鉞, 官河南鄭州時, 署有老桑樹, 合抱不交. 云棲神物, 惡而伐之. 是夕, 其女燈下睹一人. 面目手足及衣冠, 色皆濃綠, 厲聲曰: “爾父太橫, 姑示警於爾!” 驚呼媼婢至, 神已癡矣. 後歸戈太僕仙舟, 不久下世. 驅厲鬼, 毁淫祠, 正狄梁公ㆍ范文正公輩事! 德苟不足以勝之, 鮮不取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