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예술기법 28 정츤법正襯法

정츤법正襯法

【정의】

마오쭝강毛宗崗은 《삼국지연의》 평점에서 소설 속 인물의 성격을 서로 대비시키는 수법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그 하나는 ‘정츤正襯’이고, 다른 하나는 ‘반츤反襯’이다. ‘정츤’은 동일한 유형의 인물 성격을 대비하는 것이고 ‘반츤’은 상반되거나 대립되는 성격을 서로 대비시키는 것이다. 마오쭝강은 ‘반츤’보다 ‘정츤’이 더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비슷한 수준의 인물을 대비시킴으로써 인물 형상이 더욱 선명하고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례】

《삼국지연의》에서 저우위周瑜는 지모가 뛰어난 장수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저우위도 주거량諸葛亮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차오차오曹操의 군대에 맞서 싸울 계획을 세울 때 저우위는 화공을 주장하고 반간계나 고육계 등을 구사했다. 이 모든 것은 매우 고명한 책략이나 저우위가 어떤 계책을 내놓더라도 주거량을 뛰어넘을 수 없고, 주거량의 견해는 항상 저우위보다 한 발 앞서 있다. 오나라와 촉나라가 연합해 차오차오에 맞서 싸울 때도 저우위는 몇 차례나 주거량과 류베이劉備를 모해謀害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뜻을 못 이루고 오히려 쑨취안孫權의 누이동생을 류베이에게 시집보내고 군사마저 꺾이게 된다. 그리고 저우위는 분을 못 이기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다.

【예문】

저우위周瑜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일을 의논하려고 쿵밍孔明을 청했다. 쿵밍이 이르자 저우위가 말했다.

“오늘 부중에서 공론을 정했소이다. 바라건대 차오차오曹操를 깨칠 계책을 말해 주시지요?”

쿵밍이 뜻밖의 말을 했다.

“쑨孫 장군(쑨취안孫權을 가리킴)의 마음이 아직 확고하지 못하시니 계책을 정할 수 없소이다.”

저우위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마음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거요?”

쿵밍이 대답했다.

“쑨 장군께선 차오차오의 군사가 많은 걸 두려워하고 계시오. 그래서 적은 병력으로 많은 수의 적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 의심하시는 것이지요. 장군께서 군사들의 숫자로 의혹을 풀어드리시오. 그 분이 확실히 깨닫고 의혹이 말끔히 없어진 다음에야 대사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저우위가 감탄했다.

“선생의 말씀이 참으로 훌륭하오.”

……

저우위는 사례하고 나와서 생각했다.

‘쿵밍은 진작부터 우 후吳侯의 마음을 환히 꿰뚫고 있었구나. 그의 계책은 나보다 한수 위에 있다. 오래 두면 강동의 우환거리가 될 게 분명하니 차라리 없애 버리는 게 낫겠다.“

……

저우위는 군사 배치를 끝내고 의논할 일이 있다며 사람을 보내 쿵밍을 청했다. 쿵밍이 중군 장막에 이르러 인사를 끝내자 저우위가 말했다.

“지난날 차오차오의 군사는 적고 위안사오袁紹의 군사가 많았건만 차오차오가 도리어 위안사오를 이긴 것은 차오차오가 쉬유許攸의 꾀를 써서 먼저 우차오烏巢의 식량을 끊었기 때문이오. 지금 차오차오의 군사는 83만인데, 우리 군사는 겨우 5, 6만이니 어찌 막아 낼 수 있겠소? 반드시 먼저 차오차오의 식량을 끊어야 깨뜨릴 수 있을 것이오. 내 이미 차오차오 군의 식량과 말먹이 풀이 모두 쥐톈산聚鐵山에 쌓여 있다는 사실을 탐지했소. 선생께선 한상에 오래 사셨으니 지리를 환히 아실 것이오. 그래서 감히 선생과 관위關羽, 장페이張飛, 쯔룽子龍 같은 이들에게 폐를 끼치려 하오. 나 역시 군사 1천 명으로 도울 터이니 밤을 도와 쥐톄산으로 가서 차오차오의 군량 수송로를 끊어주시오. 이는 피차 자기 주인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거절하지 마시기 바라오.”

……

루쑤魯肅가 은밀히 저우위에게 물었다.

“공이 쿵밍을 시켜 군량을 겁탈하게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저우위가 대답했다.

“내 손으로 쿵밍을 죽이자니 남들의 비웃음을 사지나 않을까 두렵소. 그래서 차오차오의 손을 빌려 그를 죽임으로써 후환을 없애려는 것이오.”

그 말을 들은 루쑤는 곧바로 쿵밍을 찾아갔다. 쿵밍이 저우위의 속셈을 알고 있는지 어떤지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쿵밍은 전혀 어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군사를 정돈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루쑤는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한마디 건네 보았다.

“선생은 이번에 가시면 성공하실 수 있겠소이까?”

쿵밍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수전水戰, 보전步戰, 마전馬戰, 차전車戰의 오묘한 이치를 모두 꿰뚫고 있는데 어찌 공을 이루지 못할까 근심하겠소? 강동의 공이나 저우랑周郞 같이 한 가지에만 능한 이들과는 비할 바가 아니지요.”

루쑤가 다시 물었다.

“나와 궁진公瑾이 어찌하여 능한 것이 한 가지밖에 없다고 하시오?”

쿵밍이 대답했다.

“내가 강남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지요. ‘길에 매복하고 관문을 지키는 데는 쯔징子敬이 능하고, 강에서 수전을 하는 데는 저우랑이 으뜸이라네.’ 그러니 공은 육지에서 매복하여 관을 지키는 데나 능하고 저우궁진周公瑾은 물에서 수전만 할 줄 알았지 육지 싸움에는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루쑤가 이 말을 저우위에게 그대로 전했다. 저우위가 발끈 성을 내며 말했다.

“어찌 나를 육지 싸움에는 능하지 못하다고 업신여긴단 말인가? 그를 보낼 필요 없소! 내 친히 기병 1만 명을 이끌고 쥐톄산으로 가서 차오차오의 군량 수송로를 끊어 놓겠소.”

……

루쑤가 저우위에게 물었다.

“공이 쉬안더玄德(류베이劉備를 가리킴)을 만나려는 건 무슨 계책을 의논하려는 것입니까?”

저우위가 대답했다.

“쉬안더는 당세의 효웅梟雄이므로 없애야 하오. 나는 이번 기회에 그를 이곳으로 유인해 죽여서 실로 국가를 위해 후환 하나를 제거하려는 것이오.”

……

한편 쿵밍은 우연히 강변으로 나왔다가 쉬안더가 도독을 만나러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급히 중군 장막으로 들어가 동정을 살피니 저우위의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하고 양쪽 벽의 휘장 속에는 도부수들의 빈틈없이 배치되어 있었다. 쿵밍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고?”

눈을 돌려 쉬안더를 보니 아무 것도 모른 채 태연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쉬안더의 등 뒤에 한 사람이 허리에 찬 검을 틀어쥐고 있었다. 바로 관위였다. 쿵밍은 기뻤다.

“우리 주공께서 위험하시지는 않겠구나.”

……

저우위가 다시 부탁했다.

“일전에 차오차오의 수상 영채를 살펴보니 지극히 엄정하고 법도가 있어 쉽사리 공격할 수 없더이다. 그래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보았는데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구려. 선생께서 나를 위해 결정을 내려 주시면 고맙겠소.”

쿵밍이 저우위의 말을 끊었다.

“도독께선 잠시 말씀을 멈추시오. 각자 손바닥에 글을 적어 생각이 같은지 보기로 합시다.”

저우위는 크게 기뻐했다. 붓과 벼루를 가져오게 하여 먼저 손바닥에 글자를 쓰고 나서 쿵밍에게 붓과 벼루를 넘겨주었다. 쿵밍 역시 상대가 보지 못하게 글자를 썼다. 다 쓰고 난 두 사람은 의자를 옮겨 가까이 앉아 각기 손바닥의 글자를 내밀었다. 글자를 들여다 본 두 사람은 다 같이 크게 웃었다. 저우위는 손바닥에 불 ‘화火’ 자를 적었는데, 쿵밍의 손바닥에 적힌 글자 역시 ‘화’ 자였다.

……

황가이黃蓋가 대뜸 자청했다.

“내가 그 계책을 실행하겠소이다.”

저우위가 말했다.

“상당한 고통을 당하지 않고서야 적이 어찌 믿으려 하겠소?”

황가이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쑨 씨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소이다. 비록 간과 뇌수를 땅바닥에 바르는 한이 있더라도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으리다.”

저우위는 절을 올리며 고마워했다.

“공이 만약 이 고육계를 실행해 주시겠다면 강동으로선 천만다행한 일이리다.”

……

쿵밍이 반문했다.

“쯔징께썬 궁진이 오늘 황가이를 호되게 매질한 것이 바로 계책임을 모르신단 말씀이오? 그런 걸 날더러 어떻게 말리란 말이오?”

루쑤는 그제야 깨달았다. 쿵밍이 말했다.

“고육계를 쓰지 않고서야 무슨 수로 차오차오를 속여 넘길 수 있겠소? 이제 궁진은 틀림없이 황가이를 차오차오에게 거짓 항복시키는 한편 차이중蔡中과 차이허蔡和를 통해 이 일을 알리게 할 것이오. 쯔징께선 궁진을 보시거든 절대 내가 그 일을 알고 있더라는 말은 하지 마시오. 그저 나도 도독을 원망하더라는 말씀만 하면 되오이다.”

……

저우위가 다시 물었다.

“쿵밍의 생각은 어떠하던가요?”

“그도 도독을 너무 매정하다며 원망을 하더군요.”

저우위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에는 감쪽같이 그를 속여넘겼구려!”

루쑤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저우위가 설명했다.

“오늘 황가이를 호되게 매질한 것은 바로 계책이었소. 내가 그를 거짓 항복시키려니 우선 고육계를 써서 차오차오를 속여야 했소. 그러고 나서 화공을 쓴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오.”

루쑤는 속으로 쿵밍의 높은 식견을 생각했지만 감히 입 밖으로 드러내 말을 할 수는 없었다.

……

저우위는 군사를 재촉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바츄巴丘에 당도하니 류펑劉封과 관핑關平이 군사를 거느리고 상류에서 물길을 막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저우위는 더욱 화가 치솟는데, 쿵밍이 사람을 시켜 글을 보내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글을 읽고 난 저우위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측근들을 불러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하여 오후에게 올리는 편지를 썼다. 그러고는 장수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나 하늘이 정해 준 목숨이 끝났구려. 그대들은 오후를 잘 섬겨 다 함께 대업을 이루도록 하시오.”

말을 마친 저우위는 정신을 잃고 까무라쳤다. 서서히 다시 정신을 차린 저우위는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했다.

“이미 저우위를 생겨나게 하시고선 어찌 또 주거량을 내셨나이까?”

그러고는 연거푸 몇 차례 고함을 지르더니 죽었다. 이때 나이 36세였다.

( 《삼국지연의》 제44회~5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