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법倒叙法
【정의】
‘도서법’은 사건의 서술을 시간 순서대로 하지 않고 먼저 결과를 서술하거나 중간에서 한 단락을 절취截取한 뒤 다시 이야기의 발생 원인을 하나하나 되짚어 나가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시간 순서를 뒤집어 서술하는 일종의 도치법이다.
【실례】
《삼국지연의》 가운데 차오차오曹操가 양슈楊修를 죽이는 것을 서술한 것이 가장 전형적인 예이다.
먼저 차오차오가 야간 암호로 정한 ‘계륵’을 듣고 양슈가 차오차오의 생각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이에 자신의 생각을 간파 당했다고 여긴 차오차오는 군심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양슈를 죽인다. 그 다음 대목에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에 앞서 양슈가 여러 차례 차오차오의 생각을 간파해 그를 화나게 하는 사례를 다섯 차례나 들고 있다. 양슈를 죽이기 직전에 있던 사건은 차오차오가 큰아들인 차오피曹丕와 작은 아들인 차오즈曹植의 능력을 비교하기 위해 둘을 시험할 때 양슈가 차오즈를 도와준 것이다. 양슈의 도움으로 일시적으로 차오즈는 차오차오의 신임을 얻지만, 이내 차오즈의 배후에 양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차오차오는 그를 죽일 결심을 하게 된다. 결국 양슈가 죽은 결정적인 빌미가 되었던 것은 ‘계륵’이라는 야간 암호 때문이지만, 실제로는 몇 차례에 걸쳐 양슈가 차오차오의 심기를 거슬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독자들은 처음에는 차오차오가 뭐 그 정도 일로 양슈를 죽였을까 의아해 하지만, 이야기를 거슬러 차오차오가 양슈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된 사례들이 하나씩 제시되면서 차오차오의 행동을 납득하게 된다. 이렇게 거꾸로 서술함으로써 독자는 이야기에 대해 좀더 몰입을 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예문】
차오차오曹操가 그곳에 주둔하고 여러 날이 흘렀다. 앞으로 전진하려니 마차오馬超가 버티며 지키고 있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자니 촉나라 군사의 비웃음을 살까 두려워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요리사가 닭백숙을 올렸다. 차오차오는 그릇에 담긴 닭갈비를 보고 느끼는 바가 이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데 샤허우둔夏侯惇이 군막으로 들어와 야간에 사용할 암호를 정해 달라고 했다. 차오차오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중얼거렸다.
“계륵이야. 계륵!”
햐허우둔이 관원들에게 명을 전하여 이날 밤에는 모두가 ‘계륵’이라고 암호를 불렀다. 행군주부 양슈楊修는 암호가 ‘계륵’이라는 말을 듣고는 즉시 수하의 군졸들에게 짐을 수습하여 돌아갈 채비를 하게 했다. 누군가 양슈의 행동을 샤허우둔에게 알렸다. 깜짝 놀란 샤허우둔은 양슈를 군막으로 불러다 물었다.
“공은 어찌하여 행장을 수습하시오?”
양슈가 대답했다.
“오늘밤 암호를 보면 위왕께선 며칠 안으로 군사를 물려 돌아갈 걸 알 수 있습니다. 닭갈비란 먹자니 별 맛이 없고 그렇다고 버리기엔 아까운 것이지요. 지금 우리 군사는 나아가도 이길 수 없고 물러서면 남의 비웃음을 살까 두려운 형편입니다. 하지만 여기 버티고 있어 봤자 이로울 게 없으니 차라리 일찌감치 돌아가는 게 낫지요. 위왕께서는 내일이면 반드시 군사를 물릴 것입니다. 저는 떠날 때 허둥대지 않으려고 미리 행장을 수습하는 것이지요.”
샤허우둔은 감탄했다.
“공은 참으로 위왕의 폐부를 꿰뚫어 보고 있구려!”
샤허우둔 역시 행장을 수습했다. 이리하여 영채 안의 장수들은 모두가 돌아갈 채비를 하게 되었다. 이날 밤 차오차오는 마음이 산란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여 강철 도끼를 들고 영채를 돌아보고 있었다. 샤허우둔의 영채를 살펴보니 군사들이 제각기 짐을 꾸리며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차오차오는 서둘러 막사로 돌아와서 샤허우둔을 불러 그 까닭을 물었다. 샤허우둔이 대답했다.
“주부 양더쭈揚德祖(양슈의 자)가 대왕께 돌아가실 뜻이 있음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차오차오가 양슈를 불러 물으니 양슈가 ‘계륵’의 뜻을 풀어 대답했다. 차오차오는 머리꼭지까지 화가 치밀었다.
“네 어찌 감히 쓸데없는 말을 지어내어 군심을 어지럽힌단 말이냐?”
차오차오는 즉시 도부수들을 호령하여 양슈를 끌어내 목을 치게 했다. 그리고 그 수급을 위안먼轅門 밖에 내걸어 뭇사람들이 보게 했다.
원래 양슈는 자기 재주를 믿고 거침없이 행동하여 여러 차례 차오차오의 비위를 거슬렀다. 언젠가 차오차오가 화원을 하나 만들었다. 화원이 완성되자 차오차오가 가서 보고 좋다 나쁘다 말도 없이 그저 붓을 들어 문 위에 ‘활活’ 자 한 자만을 적어 놓고 갔다. 아무도 그 뜻을 알아채지 못했는데 양슈가 말했다.
“‘문門’ 안에 ‘활活’ 자를 넣으면 넓을 ‘활闊’ 자가 되지요. 승상께서는 화원의 문이 너무 넓은 게 마음에 안 드신 것이오.”
그래서 담을 다시 쌓고 문을 고친 다음 차오차오를 청해서 보게 했다. 차오차오가 대단히 기뻐하며 물었다.
“누가 내 뜻을 알았는고?”
좌우의 측근들이 대답했다.
“양슈입니다.”
차오차오는 입으로는 칭찬을 했지만 속으로는 그를 몹시 꺼렸다.
……
차오차오는 차오피曹丕와 차오즈曹植의 재간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는 두 사람을 예청鄴城 문밖에 나가라고 하고 문지기들에게는 아들들을 내보내지 말라고 분부했다. 차오피가 먼저 성문에 이르렀다. 문지기가 앞을 막자 차오피는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물러나 돌아왔다. 차오즈가 이 말을 듣고 양슈에게 대책을 물으니 양슈가 가르쳐 주었다.
“왕명을 받들고 나가시는 길이니 앞을 막는 자는 가차 없이 목을 자르면 되오리다.”
차오즈는 그 말을 옳게 여겼다. 성문에 이르자 문지기가 앞으로 가로막았다. 차오즈는 그들을 꾸짖었다.
“내가 왕명을 받들었거늘 뉘 감히 내 앞을 막는단 말이냐?”
차오즈는 즉시 문지기의 목을 쳐버렸다. 이리하여 차오차오는 차오즈가 유능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뒤에 어떤 사람이 차오차오에게 고해 바쳤다.
“이는 양슈가 가르쳐 준 것입니다.”
차오차오는 크게 노했고 이로 인해 차오즈마저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양슈는 또 차오즈를 위해 차오차오의 질문을 예상하여 답안 10여 조목을 만들어 주었다. 차오차오가 묻기만 하면 차오즈는 그 조목에 맞추어 답변을 했다. 차오차오는 군사 일이나 나라 일을 물을 때마다 차오즈가 물 흐르듯 거침없이 대답하는 걸 보고 은근히 의심을 했다. 뒤에 차오피가 차오즈의 측근들을 매수하여 양슈가 만들어 준 답안을 훔쳐다가 차오차오에게 바쳤다. 그 내용을 본 차오차오는 크게 노했다.
“하찮은 놈이 어찌 감히 나를 속인단 말이냐!”
이때 이미 차오차오는 양슈를 죽일 생각이었는데, 지금 군심을 어지럽혔다는 죄명으로 그를 죽인 것이다.
( 《삼국지연의》 7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