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故都의 가을

위다푸郁達夫(1896∼1945)
위다푸의 본명은 위원郁文으로 저쟝 성浙江省 푸양 현富陽縣에서 태어났다. 1908년 푸양현립고등소학당에 들어가서 서양식 교육을 받았고,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장의 표창을 받음과 동시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하였다. 1913년 일본에 유학해 1919년 도쿄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였고,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 서양의 근대소설을 탐독하였다. 1921년에 도쿄에서 궈모뤄郭沫若 ·청팡우成仿吾 등과 문학단체인 창조사創造社를 결성하였고, 이듬해 귀국하여 상하이上海에서 『창조계간創造季刊』을 편집하였다. 그뒤 베이징대학과 우한武漢대학, 중산中山대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나, 1926년 국민혁명이 일어나자 그의 섬세한 신경은 혁명의 현실과 맞지 않았으므로 상하이로 돌아왔다. 이어 『창조월간創造月刊』과 『홍수洪水』의 편집을 역임하였으나, 좌경화한 창조사를 탈퇴하고 점차 문단과 멀어져 은둔적인 문인생활을 이어나갔다.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구국운동에 활약하다가 싱가포르로 건너가 『성주일보星州日報』를 편집하였는데, 종전 직후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었다고 전한다. 작품으로 『침륜沈淪』, 『과거』, 『자전自傳』 등이 있는데, 암울하고 감상적인 색채가 짙다.

가을은 어느 곳의 가을이라도 항상 좋다. 하지만 북국의 가을은 각별히 맑고 고요하며 서글프다. 내가 불원천리하고 항저우杭州에서 칭다오靑島로, 다시 칭다오에서 베이징으로 온 이유도 이 ‘가을’, 이 고도의 가을의 흥취를 맛보기 위해서이다.

강남에도 가을은 당연히 있지만 초목은 늦게 시들고, 공기도 습하며 하늘색도 담담하다. 여기에 시시때때로 비가 많이 내리고 바람도 적다. 쑤저우蘇州나 상하이上海, 항저우杭州, 혹은 샤먼厦門이나 홍콩, 광저우廣州의 시민들 중 별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그저 약간의 청량감을 느낄 뿐, 가을의 흥취, 가을의 색깔, 가을의 의경意境과 자태는 늘상 보아도 만족스럽지 않고 맛을 보아도 그저 그러하며, 완상하기에 충분치 않다. 아울러 가을은 이름난 꽃도 아니고 맛있는 술도 아니라서, 반쯤 피어 있고, 반쯤 취한 상태로 가을을 음미하기에는 적합지 않다.

베이징 교외의 명찰인 탄저쓰潭柘寺 대웅전

북국의 가을을 만나지 못한 게 벌써 10여 년 가까이 된다. 남방에서 매년 가을이 되면 늘 타오란팅陶然亭의 갈대꽃, 댜오타이釣魚臺의 버들 그림자, 시산西山의 벌레 울음소리, 위취안玉泉의 달밤, 탄저쓰潭柘寺의 종소리가 생각난다. 베이징에서는 문밖을 나서지 않더라도 황성의 사람들 사이에서 낡은 집 한 칸 세 들어 살면서 아침에 일어나 진한 차 한 잔 우려내어 정원을 향해 앉으면 높디높은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고, 그 하늘 아래 날아가는 길들여진 비둘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홰나무 잎 사이로 동쪽을 향해 새어나오는 햇빛의 수를 일일이 헤아리거나, 무너진 벽 틈 사이에 피어난 나팔꽃의 파란 꽃봉오리를 고요히 대하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가을의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나팔꽃으로 말하자면, 나는 파란색이나 흰색이 가장 아름답고, 자흑색이 그 다음이며, 담홍색이 제일 못하다고 여긴다. 가장 좋기로는 나팔꽃 아래에 드문드문한 가늘고 긴 가을 풀을 배치시키는 것이다.

북국의 홰나무도 가을이 왔다는 생각을 증폭시켜준다. 아침에 일어나면 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낙화가 땅위에 가득 깔려 있다. 발로 밟고 가노라면 소리도 없고 아무 냄새도 없이 그저 극히 미세하고 극히 부드러운 촉각만 약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청소부가 나무 그림자 아래를 한 바탕 쓸고 난 뒤 땅 위에 남겨진 빗자루 무늬를 보노라면 보드라움을 느끼게 되고, 또 청한淸閑함도 느끼고 잠재의식 속에서는 약간의 쓸쓸함도 느끼게 되는데, 옛사람이 말한 바 오동잎 하나에 온 세상이 가을이 온 것을 알겠다는 아련한 생각도 대체로 이렇듯 웅숭깊은 곳에 있는 듯하다.

가을 매미의 희미한 울음소리도 북국의 특산물이다. 베이징에는 곳곳에 나무가 자라고 있고, 집들은 낮아 어느 곳이라 할 것 없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남방에서는 교외로 나가거나 산 위에 올라야만 들을 수 있다. 가을 매미 우는 소리는 베이징에서라면 귀뚜라미나 생쥐와 마찬가지로 가가호호 집안에서 키우는 집 벌레 같다.

가을비도 있다. 북방의 가을비는 남방에 비해 기이하면서도 운치 있고 맵시 있게 내린다.

희뿌연한 하늘에서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더니 이내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한 바탕 비가 지나간 뒤 구름은 점점 서쪽으로 물러가, 하늘은 다시 파란 색을 되찾고, 해도 모습을 드러내면, 비온 뒤 다리 그림자가 비껴 있는 가운데 푸른 홑옷이나 겹저고리를 입은 도시의 한가한 사람들이 담뱃대를 물고 다리 끝의 나무 아래 서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 느릿느릿하면서도 한가로운 목소리로 가늘게 탄식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어허, 날씨가 정말 서늘해졌어요―”(이 때 요 자는 아주 높고 아주 길게 끈다.)

“그렇다마다요! 가을 비 한 번 지나가면 또 그 만큼 서늘해지는 법이지요.”

북방사람들이 말하는 한 바탕은 항상 한 층과 같이 들리는데, 평측으로 따져 볼 때 이렇게 잘못 읽는 운이 오히려 맞아떨어진다.

가을이 오면 북방의 과일나무도 기이한 경관이다. 첫 번째는 대추나무로, 집안 귀퉁이나 담장 언저리, 변소 옆이나 부엌 입구에 모두 한 그루씩 자라고 있다. 올리브 같기도 하고 비둘기 알 같기도 한 대추 열매가 작은 타원형의 가느다란 잎 사이로 옅은 누런색을 띤 녹색으로 바뀔 때가 바야흐로 가을이 무르익는 시기이다. 대추나무에서 잎이 지고, 열매가 완전히 붉어지고, 서북풍이 불기 시작하면 북방은 모래먼지와 잿빛 흙의 세계가 되며, 대추와 감, 포도가 8할이나 9할 정도 익어가는 칠팔월로 넘어가는 때가 북국의 중추가절仲秋佳節로 일년 중 가장 좋으면서도 더 없는 Golden days이다.

어떤 비평가는 중국의 문인학사, 특히 시인들은 모두 퇴폐적인 색채를 아주 짙게 띠고 있어서 중국의 시문詩文에는 가을을 찬미하는 글이 특별히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의 시인들 역시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외국의 시문을 그렇게 많이 읽어보지 않았고, 작품들을 열거해 가을에 대한 한 편의 시가산문초詩歌散文鈔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그대가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시인들의 작품집이나 각국의 시문들의 Anthology를 뒤적이다 보면 가을에 대한 송가와 비가를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다. 유명한 대시인의 장편 전원시나 사계절을 노래한 시 가운데서도 가을에 관한 부분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이것으로 감각이 있는 동물이나 정취가 있는 인류라면 가을에 대해서는 항상 각별히 깊고 그윽하며 준엄하고 쓸쓸한 감각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인만 그런 게 아니라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도 가을이 되면 스스로 억누를 수 없는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가을이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에 어찌 나라의 구별이 있고, 나아가 인종과 계급의 구별이 있겠는가? 하지만 중국에는 문장 속에 ‘추사秋士’라는 단어가 있고, 문집에도 아주 유명짜한 어우양슈歐陽修의 『추성부秋聲賦』와 쑤둥포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 등이 있어, 중국의 문인들이 가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가을의 깊은 맛,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가을의 깊은 맛은 북방이 아니면 도저하게 느낄 수 없다.

당연하게도 남국의 가을에도 그 나름의 특이한 점이 있다. 이를테면 얼스쓰챠오二十四橋의 밝은 달明月, 쳰탕쟝錢塘江의 가을 조수潮水 푸퉈산普陀山의 서늘한 안개凉霧, 리즈완荔枝灣의 시든 연꽃 등등이 있기는 하지만 색채가 짙지 않고 뒷맛도 길지 않다. 북국의 가을과 비교하자면, 바로 황주黃酒와 백주白酒, 죽과 모모饃饃, 농어와 대게, 누렁이黃犬와 낙타의 관계와 같다.

가을, 이 북국의 가을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 내 수명의 삼분의 이를 손해 보고서라도 삼분의 일의 자투리로 바꾸고 싶다.

1934년 8월 베이징에서

(1934년 9월 1일 『당대문학當代文學』 제1권 제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