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사보 唐國史補》 서序
리자오李肇[1]
【原文】
《公羊傳》曰[2]:所見異辭,所聞異辭。 未有不因見聞而備故實者,昔劉餗集小說[3],涉南北朝至開元,著爲《傳記》。予自開元至長慶撰《國史補》,慮史氏或缺則補之意,續《傳記》而有不爲,言報應,敍鬼神,征夢卜,近帷箔[4],悉去之;紀事實,探物理,辨疑惑,示勸戒,采風俗,助談笑,則書之。仍分爲三卷。
【우리말 옮김】
《공양전公羊傳》에서 말하였다. “본 것도 말이 다를 수 있고, 들은 것도 말이 다를 수 있다.” 이렇듯 견문에 의거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로 갖추어진 사례는 아직까지 없었다. 옛날에 류쑤劉餗는 남북조南北朝에서 개원開元 연간까지의 하찮은 이야기들을 모아 《전기傳記》를 지었다. 내가 개원 연간에서 장경 연간에 이르기까지의 《국사보國史補》를 편찬한 것은, 역사가가 혹시라도 빠뜨린 게 있으면 그것을 보충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전기》를 계승했지만, 그대로 따라하지 않은 것도 있으니, 응보應報를 언급하고, 귀신을 서술하고, 꿈을 풀이하고, 남녀 간의 애정에 관한 일 등은 모두 삭제하였다. 사실을 기록하고,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의혹을 변별하고, 권계勸戒를 드러내고, 풍속을 채집하고, 담소談笑에 도움이 되는 것 등을 기록하여 3권으로 나누었다.
【해설】
리자오李肇는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필기를 논하였다. 그가 지은 《당국사보》 역시 필기소설과 역사저작물의 중간쯤에 위치하며, 당대唐代의 전기에 대해서도 역사학의 각도에서 평가했다. 그는 《당국사보》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지지가 지은 《침중기》는 《장자莊子》와 같은 우언 류이다. 한위가 지은 《모영전》은 그 문장이 더욱 뛰어나니, 쓰마쳰보다 못할 게 없었다. 이 두 편의 문장은 참으로 훌륭한 사가의 재능을 드러내고 있다.沈旣濟撰《枕中記》, 莊生寓言之類. 韓愈撰《毛潁傳》, 其文尤高, 不下史遷. 二篇眞良史才也” 그는 소설가의 전범을 쓰마쳰에서 찾았고, 소설 창작의 탁월한 재능은 “훌륭한 사가의 재능良史才”으로 보았다.
아울러 그가 이 책의 서에서 “사실을 기록하고,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의혹을 변별하고, 권계勸戒를 드러내고, 풍속을 채집하고, 담소談笑에 도움이 되는” 등등으로 정리한 창작 기준은 당시의 필기 류 문장들에 대한 총괄적인 결론이다. 그의 논의를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니, 이를테면, 송대宋代의 어우양슈歐陽修가 편찬한 《귀전록歸田錄》 등은 이것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석】
[1] 리자오李肇 : 《신당서新唐書》<·예문지藝文志>에는 리자오가 일찍이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으며, 저서에 《한림지翰林志》 1권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왕딩바오王定保의 《척언摭言》에서는 그가 원화元和(당 헌종唐憲宗 806~820년) 연간에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지냈다고 하였다. 《당국사보唐國史補》는 리자오가 상서좌사랑尙書左司郞에 있을 때 지은 것이다. 책 속에 기록된 것은 모두 개원開元(당 현종唐玄宗 713~741년) 연간에서 장경長慶(당 목종唐穆宗 821~824년) 연간에 이르는 1백 여 년 간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지극히 진귀한 당대唐代의 사회풍속과 역사, 문학적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문체 또한 질박하고 생동적이다.
[2] 《공양전公羊傳》 :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혹은 《공양춘추公羊春秋》라고도 한다. 예전의 기록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궁양가오公羊高가 편찬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춘추春秋》를 전문적으로 해석한 책이다. 노 은공魯隱公 원년元年(722년)에서 시작해 노 애공魯哀公 14년(481년)에서 끝난다. 원문의 인용문은 은공 원년과 환공桓公 2년, 애공哀公 14년에 보인다.
[3] 류쑤劉餗는 류즈지劉知幾의 아들로 집현전학사集賢殿學士를 지냈으며, 국사國史를 편찬하였다. 《구당서舊唐書》 본전本傳에서는 그가 “《사례史例》 3권, 《전기傳記》 3권(또는 《국사이찬國史異纂》), 《악부고제해樂府古題解》 1권을 지었다”고 하였다.
[4] 유박帷箔은 유박帷薄과 같으며, 안과 밖을 가려 주는 가림막 등을 가리키는데, 뒤에는 가차되어 규방의 남녀 간의 이야기를 의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