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해방 직후인 1946년 김광주・이용규 공역 『魯迅短篇小說集』1,2권이 출간되었다. 또 1963년에는 이가원이 번역한 『魯迅短篇小說選-阿Q正傳』이 세상에 나왔다. 이 두 가지 판본은 일제강점기 루쉰문학 번역사를 이은 소중한 성과물이다.
그럼 1950년대에는 루쉰 문학 번역 소개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던가? 1950~1953년까지 이어진 한국전쟁으로 우리나라 번역계와 출판계가 황폐화되었지만 1953년 휴전 이후부터는 조금씩 이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55년 고금출판사(古今出版社)가 기획한 『요약 세계문학전집(要約世界文學全集)』 시리즈 총 4권도 당시 삭막한 출판계에 한 줄기 빛을 던진 쾌거였다. 우리는 지금 최소 수십 권에서 최대 수백 권에 달하는 대형 “세계문학전집”을 흔히 목도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문학전집”은 바로 1955년 고금출판사에서 간행한 『요약 세계문학전집』 네 권이 었다. “그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격언에 딱 들어맞는 사례라 할 만하다.
『요약 세계문학전집』은 본래 『제1권: 각국편』, 『제2권: 그리스, 라틴, 이탈리아편』, 『제3권: 독일편』, 『제4권: 러시아편』, 『제5권: 프랑스편』, 『제6권, 제7권: 영미편』 등 모두 일곱 권으로 기획했으나 제4권까지 나온 후 중단되고 말았다. 체제를 보면 각국의 유명 문학작품을 소개하면서 각각 「해설」, 「작자약전」, 「이야기 줄거리」 세 부분으로 구성하고 있다. 제목에서 밝힌 대로 완역이 아니라 ‘요약’ 소개임을 알 수 있다.
이중 『제1권: 각국편』에 아라비아, 인도, 중국, 스페인, 스위스, 노르웨이, 폴란드, 스웨덴, 벨기에의 문학 명편이 요약되어 있다. 중국편을 보면 고명(高明)의 『비파기(琵琶記)』와 루쉰(魯迅)의 『아Q정전』이 실려 있다. 『삼국지연의』, 『수호전』 등 4대기서나 『홍루몽』과 같은 유명 소설이 아니라 명나라 초기 극본 『비파기』를 소개한 점이 매우 특이하다.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중국문학 전공자를 빼고 명나라 초기 전기(傳奇) 극본인 『비파기』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당시 고금출판사 『요약 세계문학전집』 기획실에 중국문학에 밝은 사람이 포함되어 있었던 듯하다. 함께 소개된 『아Q정전』은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이다. 이미 일제강점기인 1930년 양백화에 의해 완역되었고, 1946년에 출간된 김광주・이용규 공역 『魯迅短篇小說集』 제2집에도 이 소설이 완역되어 있다. 『아Q정전』은 루쉰 생존 시에 이미 서국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로맹 롤랑을 비롯한 대문호들의 격찬을 받은 바 있으므로 이를 중국 현대문학 대표 소설로 소개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각종 『세계문학전집』에는 거의 대부분 『아Q정전』이 들어 있다. 이런 경향을 주도한 발원지가 바로 『요약 세계문학전집』인 셈이다.
『아Q정전』은 제1장 서(序)에서 제9장 대단원(大團圓)으로 구성된 중편소설이다. 그런데 이 책 『요약 세계문학전집』에서는 장을 구분하지 않고 전체 분량의 1/4~1/5 정도로 요약했다. 소설의 디테일은 거의 포함되어 있고 이야기의 맥락도 대략 연결되지만 전체 소설의 아우라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점은 매우 아쉽다. 요약본의 한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 이후 황폐한 출판계에서도 루쉰 문학을 소개하는 작업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이후 다양한 『세계문학전집』에 『아Q정전』이 포함될 수 있게 그 선하를 열었다는 점에서 『요약 세계문학전집』의 공헌을 낮게 평가할 수 없을 듯하다. 내가 알기로 1950년대에 거의 유일하게 루쉰 문학을 소개한 책이 바로 이 『요약 세계문학전집』 제1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