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 서발문中國古代小說序跋文 《습유기》서<拾遺記序>

《습유기》서<拾遺記序>

샤오치蕭綺[1]

【原文】

《拾遺記》者,晋隴西安陽人王嘉字子年所撰,凡十九卷二百二十篇,皆僞殘缺。

當僞秦[2]之季,王綱遷號[3],五都[4]淪復,河洛之地[5],沒爲戎墟[6],宮室榛蕪[7],書藏堙毁[8]。荊棘霜露,豈獨悲于前王;鞠爲禾黍[9],弥深嗟于玆代[10]!故使典章散滅,黌館[11]焚埃,皇圖帝冊[12],殆無一存,故此書多有亡敗。

文起羲炎[13]已來,事訖西晋[14]之末,五運因循[15],十有四代。王子年乃搜撰異同,而殊怪必擧,紀事存朴,愛廣尙奇,憲章稽古[16]之文,綺綜[17]編雜之部,《山海經》所不載,夏鼎[18]未之或存,乃集而記矣。辭趣過誕,音旨迂闊,推理陳迹,恨爲繁冗;多涉禎祥[19]之書,博采神仙之事,妙萬物而爲言,蓋絶世而弘博矣。

 世得陵夷[20],文頗缺略,綺更刪其繁紊,紀其實美,搜刊幽秘,捃采[21]殘落,言匪[22]浮詭,事弗空誣。推詳往迹,則影徹[23]經史;考驗眞怪,則叶附圖籍[24]。若其道業遠者,則辭省朴素;世德近者,則文存靡麗。編言貫物,使宛然成章。

數運[25]則與世推移,風政[26]則因時回改。至如金繩鳥篆[27]之文,玉牒虫章之字[28],末代流傳,多乖曩[29]迹,雖探硏鐫寫,抑多疑誤。及言乎政化,譌乎禎祥,隨代而次之。土地山川之域,或以名例相疑;草木鳥獸之類,亦以聲狀相惑。隨所在而區別,或因方而釋之,或變通而會其道,寧可采于一說。今搜檢殘遺,合爲一部,凡一十卷,序而綠焉。

【우리말 옮김】

  《습유기》는 진晋나라 룽시隴西(지금의 간쑤 성甘肅省) 안양安陽 사람인 왕쟈王嘉가 지은 것으로, 총 19권 220편이었으나 모두 산실되었다.

  전진前秦 말에 정권이 바뀌니 다섯 도읍五都이 몰락하였고, 황허와 뤄수이洛水 두 강의 유역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궁실에는 초목만이 무성하였고 서적들은 매몰되고 훼손되었다. 가시나무와 이슬、서리만이 어찌 쓸쓸히 선왕을 애도하는가. 황폐하여 종묘와 궁궐에 벼와 기장이 무성하니 더욱 그 시대를 깊이 탄식하도다! 옛 제도와 문물은 사라지고 학교는 불타 재가 되었다. 조정의 도서들도 거의 하나도 남지 않았으니, 이 책 또한 대부분 없어졌다.

  복희씨伏羲氏가 문자를 만든 이래 사적이 서진西晋 말에 이르기까지 왕조가 14대나 갈마들었다. 이에 왕쯔녠王子年은 동이점을 찾아 책을 편찬할 때, 특히 괴이한 것은 반드시 거론하였다. 사실의 기록은 질박하였고, 소재 수집의 범위가 매우 넓었으며 기이한 것을 지향하였다. 옛것에 합치되는 글을 본보기로 삼았고, 잡다한 글을 아름답게 다듬었다. 《산해경山海經》에 실리지 않은 것들이나, 하우씨夏禹氏의 구정九鼎에 간혹 보존되지 않은 그 당시의 이야기 등을 모아 기록하였다. [다만] 그 언사가 지나치게 황당하고 의미가 사리에 어긋나며, 옛 자취를 미루어 따짐에 있어서는 너무 번잡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상서로운 조짐에 관한 책들을 많이 다루었고 신선의 일들을 널리 채록하였으니, 기묘한 만물을 이야기한 것으로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방대할 것이다.

  세상의 덕은 점차 쇠퇴해지고 문헌들은 자못 산실되었다. [이에] 내가 다시 그 번잡하고 어지러운 것을 삭제하고, 진실하고 미덕이 될 만한 사적을 기록하였으며, 깊이 감추어진 것을 찾아내 간행하고 없어진 것들은 보충하였다. 언사言辭는 허황되지 않고 사적들은 근거 없이 지어낸 것이 아니며, 옛 사적을 미루어 살펴봄에 경사經史에 의거하였고, 진위眞僞를 검증하는 것은 도적圖籍을 근거로 하였다. 도업道業과 거리가 먼 것은 말을 줄여 소박하게 기술했고, 세상의 덕과 가까운 것은 아름답게 묘사했다. 언어를 잘 배열하고 사물을 꿰뚫어 보아 완연한 문장을 이루어내었다.

  운수와 운명은 세상과 함께 변하고, 풍속과 정치는 시대를 따라 바뀌는 것이다. 금승金繩、조전鳥篆과 같은 문文과 옥첩玉牒、충장蟲章과 같은 자字는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면서 본래의 모습과 어그러진 바가 많다. 비록 치밀하게 탐구하고 심혈을 기울여 집필했으나 의심스럽거나 잘못된 것이 많을 것이고,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교화시키는 것에 대해 언급하긴 했으나 길조吉兆에 어긋난 것이 있으되, 조대朝代에 따라 배열하였다. 토지 산천의 영역은 명칭의 용례가 의심스러운 것이 있고, 초목과 조수 류 역시 그 소리와 모습이 의혹되는 바가 있으나, 기록된 바에 따라 구별하고, 각각의 지역에 근거해서 해석하거나 혹은 변통하여서 도리에 맞도록 하였으니, 어찌 한 가지 설만 채용했겠는가. 지금 남아있는 것을 찾고 조사하여 하나로 합하여 10권이 되매  서序를 써서 여기에 기록한다.

【해설】

  샤오치蕭綺는 이 글에서 《습유기》의 세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첫 번째는 “소재 수집의 범위가 매우 넓고愛廣”, “널리 채록하여博采” 매우 “방대하다弘博”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이함을 지향하고向奇” 괴이한 것을 거론하고, 신선의 일들을 널리 채록하였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실의 기록이 질박해紀事存朴” 그 필치가 매우 간략하고 고졸하다簡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당시 유행하였던 지괴志怪의 공통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그 극단으로 치닫기가 쉽다. 즉, “방대弘博”하면 “번잡하게 되고繁冗”, “기이함을 지향向奇”하면 “허황되게 되고浮誕”, “소박朴素”하면 글이 “아름답고 화려하지靡麗” 못하게 된다. 《습유기》에 실린 진 무제晋武帝의 《박물지博物志》에 대한 견해에도 비슷한 의견이 있다.

  샤오치는 이런 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주장을 편 바 있다.  첫째,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을 기록紀其實美”해야 한다. 둘째 “진위를 검증考驗眞怪”해야 한다. 셋째 “글은 아름답게 묘사해야文存靡麗” 한다.

  “미덕이 될 만한 사적美事”들로 소설을 평가하는 것은 이미 거훙葛洪의 <《신선전》자서神仙傳自序>에 나타나 있다. 거훙은 “류샹劉向이 서술한 것이 아주 간략한劉向所述, 殊甚簡略” 데 대해 “미덕이 될 만한 사적美事”을 쓸 것을  강조하였다.

  샤오치는 또 이야기가 너무 “번잡해繁冗” 반드시 “그 번잡하고 어지러운 것을 삭제하고, 진실하고 미덕이 될 만한 사적을 기록해야刪其繁紊, 紀其實美” 한다고 생각했다. “기이한 것” 역시도 “진실해야”한다고 하였는데, 당시 사회에서는 이것이 보편적인 견해였다.

  문채文采에 대한 요구 또한 당시 문풍의 변화를 반영하였다. 청담淸談과 현학玄學을 숭상하던 때에는 시詩 역시도 질박하고 문채가 없었다. 남조南朝에 이르러 전체 문학영역 내에서 형식을 중시하게 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소설의 문자도 아름답고 화려함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소설이라는 장르 또한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발전을 이루어냈던 것이다.

[주석]

 [1] 샤오치蕭綺는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란링蘭陵(지금의 쟝수 성江蘇省 창저우常州 서북 지역) 사람이다. 왕쟈王嘉의 《습유기拾遺記》는 전란으로 없어졌다가 뒤에 불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샤오치가 10권으로 정리한 것이다. 명대의 후잉린胡應麟은 “아마도 샤오치가 짓고, 왕쟈의 이름으로 가탁한 듯하다.蓋卽綺撰而托之王嘉”고 하였다. (《소실산방필총少室山方筆叢》 32를 참고할 것)

 [2] 위진僞秦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의 전진前秦을 가리킨다. 351년 저족氐族의 귀족인 푸훙苻洪은 진왕秦王을 자칭하였고, 이듬해에는 아들 푸졘苻健이 황제라 칭하여 창안長安(지금의 시안西安)에 도읍을 정하였다. 394년 서진西秦에 의해 멸망하였다.

 [3] 왕강천호王綱遷號 : 조대朝代가 바뀜을 말한다.

 [4] 오도五都 : 창안長安、챠오譙、쉬창許昌、예鄴、뤄양洛陽 등 다섯 개의 도시를 가리킨다.

 [5] 하락지지河洛之地 : 황허黃河와 뤄수이洛水 두 강의 유역을 가리킨다.

 [6] 몰위융허沒爲戎墟 : 몰락하여 전쟁의 폐허가 된 것을 가리킨다.

 [7] 진무榛蕪 : 초목이 무성한 것이다.

 [8] 인훼堙毁 : 매몰되고 훼멸된 것이다.

 [9] 국鞠 : 곤궁한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그 뜻이 확장되어 황폐함을 가리킨다.

    화서禾黍는 “서리지비黍離之悲”, 곧 나라가 망하고 종묘, 궁전이 없어져 그 터가 기장 밭이 된 비애를 의미한다. 《시경》<왕풍王風><서리黍離>편 소서小序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주나라 대부가 사역을 나갔다가 주나라 종묘에 이르러 옛 종묘 궁실을 지나는데, 온통 기장 밭이 되어 있었다. 이에 주나라 왕실의 멸망을 가슴 아파하여, 방황하며 차마 떠나지 못하고 이 시를 지었다.周大夫行役, 至于宗周, 過故宗廟宮室, 盡爲禾黍, 閔周室之顚覆, 徬徨不忍去, 而作是詩.”

[10] 미彌 : ‘더욱 더 하다’는 뜻이다.

    심차深嗟 : 깊이 탄식하는 것을 뜻한다.

    자玆 : ‘차此’와 같은 뜻이다.

[11] 황관黌館 : 고대의 학교를 뜻한다.

[12] 황도제책皇圖帝冊 : 조정에서 소장하고 있는 도서와 그림書畵圖冊을 말한다.

[13] 희염羲炎 : 복희씨伏羲氏와 염제炎帝를 말하며, 전설 속의 중국 상고시대의 군왕이다.

[14] 서진西晋 : 265년 쓰마옌司馬炎이 진晋나라를 건국한 뒤 316년 민제愍帝가 류야오劉曜에게 사로잡힐 때까지, 모두 네 명의 황제, 52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수도는 뤄양洛陽으로, 역사상 서진으로 불린다. 샤오치가 여기에서 말하는 “사적이 서진 말까지 이르다.事迄西晋之末”는 것은 그것을 대략적으로 말한 듯하다. 왜냐하면 제9권의 스후石虎가 용을 불태우는 것으로부터 스 씨石氏가 멸망하는 것까지의 기록은, 목제穆帝 영화永和 6년(350년) 이후의 일로서 이미 동진東晋 시기로 들어간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15] 오운인순五運因循 : 고대의 음양가陰陽家는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다섯 가지의 물질 속성의  상생상극相生相克과 순환변화로 역사에 등장한 왕조의 흥망성쇠를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여기에서는 곧 왕조의 교체를 의미한다.

[16] 헌장憲章 : 여기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본받도록 한다는 뜻이다.

    계고稽古 : 옛것과 합치된다는 의미이다. 《예기禮記》<유행儒行>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옛 사람과 합치한다.古人與稽”

[17] 기종綺綜 : 아름답고 문채文采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18] 하정夏鼎 : 고대의 전설이다. 하우씨夏禹氏가 구주九州(중국을 말함)를 상징하는 아홉 개의 정鼎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삼대三代 때 대대로 전해지는 국가의 보물로 받들어졌다고 한다. 성탕成湯(은殷나라 초대 왕)이 그것을 상이商邑로 옮겼고, 주 무왕周武王이 뤄이洛邑로 옮겼다. 진秦이 서주西周(난왕赧王이 천도한 후의 서주를 가리킴)를 공격하여 구정을 뺏었는데, 그 중 하나는 쓰수이泗水에 빠졌고, 나머지 여덟 개 역시 그 종적을 알 수 없다.

[19] 정상禎祥 : 길조吉兆를 말한다.

[20] 릉이陵夷 : “릉지陵遲”와 같으며, (언덕 등이) 잇달아 뻗어 점점 평평해지는 것을 뜻하는데, 나중에 의미가 확대되어 ‘쇠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서漢書》<성제기成帝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제왕의 도가 날로 쇠미해지도다.帝王之道, 日以陵夷” 안사고顔師古는 이렇게 주를 달았다. “릉은 구릉이다. 이는 평평하다는 뜻이다. 그 쇠퇴함이 마치 구릉이 점점 평평해지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陵, 丘陵也. 夷, 平也. 言其頹替若丘陵之漸平也.”

[21] 군捃 : 골라내다, 줍다의 의미이다. 곧 ‘군채捃采’는 수집한다는 뜻이다.

[22] 비匪 : “비非”와 의미가 통한다.

[23] 영影은 물체가 투영되는 것을 말하고, 철徹은 도道와 법칙을 의미한다. 이에 ‘영철影徹’은 ‘그대로 따른다’는 뜻이다.

[24] 협叶 : ‘협協’과 같다. ‘협부叶附’는 ‘의지하여 따르다’, ‘근거하다’의 의미다.     도적圖籍은 그림과 서적을 말한다.

[25] 수운數運 : 운수와 운명을 말한다.

[26] 풍정風政 : 풍속과 정치를 말한다.

[27] 금승金繩 : 고대 제왕이 봉선封禪(봉토封土를 쌓아 하느님에게 제사 지내며 땅을 깨끗이 쓸고 산천山川에게 제사지내는 일) 의식을 거행할 때, 금으로 끈을 만들어 옥간玉簡을 엮었는데, 이를 책策이라고 부른다. 책策을 옥궤玉匱 안에 넣고 다시 금승으로 둘러매었다.

    조전鳥篆 : 고대의 새 모양의 전서이다. 쒀징索靖의 《초서장草書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창졔倉頡(전설상의  문자를 만든 인물)가 태어난 뒤 서계가 비로소 만들어졌는데, 올챙이와 새의 발자국과 같은 전서는 사물의 형상을 본뜬 것이다.倉頡旣生, 書契是爲, 科斗鳥篆, 類物象形.”

[28] 옥첩玉牒 : 고대의 제왕이 천지에 봉선封禪、교사郊祀(천지天地의 신에게 제사 드리는 것으로, 각각 교는 하늘의 신 사는 땅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다)의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던 문서이다. 《사기史記》<봉선서封禪書>에 보인다.

    충장虫章 : 충서虫書로 씌어진 글이다. 충서는 진대秦代에 규정한 여덟 가지 서체 중 한 가지로 벌레나 새의 형상으로 된 전서篆書이며, 일반적으로 번신幡信(일종의 명령을 전달하는 깃발로 부절符節과 같은 종류이다)을 쓸 때 사용하였다. 여기에서 “금승金繩”과 “옥첩玉牒”、“조전鳥篆”과“ 충장虫章”은 모두 고대의 문자 기록을 가리킨다.

[29] 괴乖 : 위배한다는 의미이다.     낭曩 : 과거, 이전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