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는 눈 속에서 바라보며雪望/청淸 홍승洪昇
寒色孤村暮 한기 감도는 외딴 마을의 저녁
悲風四野聞 싸늘한 바람 사방 들에서 부네
溪深難受雪 계곡 깊어 눈은 쌓이기 어렵고
山凍不流雲 산이 얼어 구름은 꼼짝도 않네
鷗鷺飛難辨 갈매기와 백로 분별하기 어렵고
沙汀望莫分 모래섬과 물가 구분하지 못하네
野橋梅幾樹 들판의 다리 옆 매화 몇 그루에
竝是白紛紛 모두 흰 눈이 펄펄 내리고 있네
제목의 설망(雪望)은 눈이 내릴 때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이 제목처럼 이 시는 한창 함박눈이 내리고 있을 때 자신의 집 앞에 펼쳐지는 원근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앞 두 구에서 전체를 조망한 뒤에 구체적인 경물 묘사를 나머지 6구에서 하고 있다. 춘색(春色)이 봄 풍경을, 추색(秋色)이 가을 풍경을 말한다면, 한색(寒色)은 겨울의 추운 풍경을 말한다. 찬 기운이 온통 휘감고 있는 외딴 마을의 저녁, 사방에서 구슬픈 겨울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가운데 4구는 대구를 썼다. 난수설(難受雪), ‘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은 계곡 물이 깊어 얼지 않아 눈이 내리면 녹아 버리기 때문에 눈이 쌓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산이 추위에 얼어 붙어 그 곳에 걸린 구름도 같이 얼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계곡에 떨어져 녹는 눈과 산위에 걸린 구름을 이렇게도 묘사하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갈매기와 백로는 날아가도 어떤 새가 갈매기이고 어느 새가 백로인지 전혀 분별하지 못한다는 말은 눈앞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말이며, 모래섬과 모래톱을 바라봐도 어디가 전에 섬이었고 어디가 전에 물가였는지 구분이 안 된다는 말은 눈이 쌓여 온통 은백색의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것을 말한다. 눈이 펑펑 많이 내려 금방 눈이 쌓인 것을 알 수 있다.
앞의 6구가 다소 어둡고 황량한 겨울 풍경이라면 마지막 2구는 이런 풍경에 돌연 생기를 주는 부분이다. 들판의 다리 부근에 서 있는 몇 그루 매화나무가 눈을 맞으며 서 있는데 마치 이른 봄에 매화가 핀 것 같은 풍경을 지금 드러내고 있다. 326회에서 소개한 잠삼(岑參)의 시 <백설가(白雪歌). 귀경하는 무 판관(武判官)을 송별하면서[白雪歌送武判官歸京]>에 호지(胡地)에는 8월에 눈이 내리는데 그 때 숲에 내린 눈 풍경을 “홀연 밤사이 봄바람이라도 불어와, 천 그루 만 그루 배꽃 피어난 듯.[忽如一夜春風來, 千樹萬樹梨花開]”이라고 묘사한 대목이 있었다. 이 시 역시 흰 매화꽃과 흰 눈의 유사성을 이용해 생동감 있는 표현을 만들고 있다.
특히 여기 매화나무에 핀 눈꽃은 첫 구의 고촌(孤村)과도 호응하여 풍경 묘사 속에 시인의 심경(心境)을 투영하고 있으며 시 전체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옛날 사람 언어로 표현하면 천기(天機)에서 나오고 신운(神韻)이 약동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인 역시 그런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첫 2구에는 근경을 묘사하고 가운데서 원경을 묘사한 다음, 다시 근경의 묘사로 돌아오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제목에서 말한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는 시인 나름의 방식인 셈이다. 이 시인이 이런 구도를 사용한 것은 아마도 이 시인이 유명한 극작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시를 쓰는 사람은 언어 감각이 있고 글씨를 쓰는 사람은 필획에 대해 민감하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색채 감각이 뛰어나기 마련이다. 또 건축을 하는 사람은 구조에 밝기 마련이고 극본을 쓰는 사람은 구성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가까운 데서 멀리 갔다가 다시 가까운 데로 돌아오는 구성과 마지막에 와서 생기 있는 말을 구사하여 지금까지 묘사한 것에 생명을 불어 넣고 처음을 돌아보게 하는 회룡고조(回龍顧祖)의 구성 방식은 아마도 이 시인에게는 평소의 습관일 가능성도 있다.
이 시는 눈이 내리는 설경을 묘사한 시로 높이 평가되리라 본다.
홍승(洪昇, 1645~1704)은 청나라 시대의 희곡 작가이다. 항주 출신으로 자는 주사(疇思), 호는 패휴(稗畦), 패촌(稗村), 남병초자(南屏樵者) 등이다. 몰락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1668년 북경 국자감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20년 동안 과거에 응시하였지만 낙방하여 백의로 생을 마쳤다. 대표작에 <장생전(長生殿)> 등이 있다. 홍승은 주로 항주서 활동하였는데 당시 북경에는 공상임(孔尙任)이 유명하여 남홍북공(南洪北孔)이라 부른다.
365일 한시 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