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개어 저물녘 멀리 바라보며雪晴晩望/당唐 가도賈島
倚杖望晴雪 지팡이 짚고 개인 눈을 바라보니
溪雲幾萬重 계곡의 구름 몇 만 겹 쌓여 있네
樵人歸白屋 나무꾼은 하얀 띳집으로 돌아오고
寒日下危峰 겨울 해는 험한 산봉에 내려오네
野火燒岡草 들불은 언덕의 마른 풀을 태우고
斷煙生石松 운무는 바위의 소나무에 피어나네
卻回山寺路 산사로 가는 길로 발길을 돌리니
聞打暮天鍾 저녁 종을 치는 소리가 들려오네
이 시는 816년 가도(賈島, 779~843)가 과거에 낙방하고 승려인 사촌 동생 무가(無可)가 있던 장안 서남쪽 규봉(圭峯) 아래의 초당사(草堂寺)에서 지낼 때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가도가 한유를 만나 환속하기 전 승려 시절 법명은 무본(無本)이었다. 가도는 시노(詩奴)라는 별칭이 있다. 그만큼 시에 탐닉하고 각고의 공력을 들이기 때문이다. 이 시 역시 청랭(淸冷)한 고음(苦吟)의 시인 가도의 본색을 잘 보여준다.
눈이 개어 저녁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해가 질 무렵 다시 산사로 돌아온다는 것이 이 시의 구도이다. 앞의 6구는 주로 시각적으로 바라본 풍경을 차고 맑은 언어로 묘사하고 있고, 마지막 두 구는 산책을 마치고 발길을 돌릴 때 산사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를 말하였다. 마지막 여운 속에 시인의 서정도 미묘하게 들어있다.
지팡이를 짚고 계곡을 바라보니 계곡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땔감을 구하러 산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은 나무를 지고 눈이 수북이 쌓인 초가로 돌아온다. 짧은 겨울 해도 겨울이라 더욱 험해 보이는 산으로 떨어지고 있다. 산 그림자가 길게 내려왔다.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리니 들 언덕에는 들불이 일어나 잡초를 태우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에는 운무가 바위곁에서 자라는 소나무 사이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이제 어느덧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산사로 가는 길로 발길을 돌린다. 그 무렵 시인이 머물러 있는 산사에서 저녁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단연(斷煙)’은 따로 떨어진 안개나 구름의 조각을 말한다. 앞에 마침 들불이 있어 타다 남은 연기가 소나무에서 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소나무 아래서 피어나는 간헐적인 운무를 말한다. 구름이나 안개를 연(煙) 자로 많이 표현한다. 가도가 이 절을 전에 방문했을 때 지은 시에 “벼루 가운데에 마른 잎 떨어지고, 베개 위에는 조각구름 한가하네.[硯中枯葉落, 枕上斷雲閒]”라고 한 시에서 ‘단운(斷雲)’이라 한 것과 그 실체가 같은 말이다. 석송(石松) 역시 지금의 양치식물 석송을 말한 것이 아니라 바위 곁에서 자란 소나무를 말한 것이다.
앞 2구만 제외하고 모두 대구를 쓴 것도 묘미를 준다. 마지막 2 구는 동사 두 글자와 명사 3글자를 나란히 놓은 대구이다. ‘각회산사로(卻回山寺路)’는 ‘산사의 길로 발길을 돌린다.’는 말이니 결국 산사로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고, ‘문타모천종(聞打暮天鍾)’은 ‘모천의 종을 치는 소리를 듣는다.’이니 결국 저녁 종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이다.
성당시의 정열과 기백과는 달리 담백하고 딱딱하기까지 한 시이다. 그런데 시라는 것이 본래 외로운 사람이 혼자 있을 때 펼쳐 보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시는 매우 음미할 만한 시이다. 음미해 보면 적적한 기분에서 산책을 나서 이리저리 먼 곳을 보며 쌓인 회포를 풀고 다시 마음을 다지기도 하는 우리의 체험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욱이 눈, 구름, 겨울 해, 소나무, 종소리 이런 시어들이 번갈아 가며 우리의 마음을 위무해 주는 느낌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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