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권 오장군은 밥 한 끼 은혜도 꼭 보답하고
진대랑 등 세 사람이 다시 모이다
烏將軍一飯必酬 陳大郎三人重會
높으신 양반들 중에 도적이 많음에 놀라곤 하지만
도적 중에도 영웅호걸이 있음을 누가 알리오
그 옛날 급시우(及時雨) 송강(宋江)을 보라
그 높은 의기는 길이길이 전해지도다
이야기인즉슨 세상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강도’라는 두 글자라 사람을 욕하는 나쁜 말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단지 한쪽 면만 보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천하 어느 곳이 강도가 없겠는가? 만약 어떤 관리가 나라를 그르치고 임금을 업신여기고 백성을 착취한다면, 비록 관직이 높고 봉록이 많다 하더라도 큰 도적이 아니겠는가? 또 어떤 귀공자가 부형(父兄)의 세력을 믿고 위력으로 사람을 위협하여 양민을 속이고 해치며 뇌물을 받고 장물을 은닉하는 등 못하는 짓이 없는데도 백성들은 감히 원통함을 호소하지 못하고 관가에서도 감히 심문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큰 도적이 아니겠는가? 또 거인(擧人), 수재(秀才)의 신분으로 작당을 하여 관아를 좌지우지하면서 송사를 기각시키고 선량한 가정을 파탄시키는 자가 있다면, 이 또한 대도(大盜)가 아닌가? 신분이 높으신 양반들만 해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장사꾼이나 관청의 미관말직 등 각종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나쁜 마음을 가지고 못된 행동을 하는 강도처럼 흉악한 사람이 많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하여 옛날 이섭(李涉) 박사1가 강도를 만난 일을 두고 지었다는 이런 시도 전해진다.
저녁 비 소소히 강가 마을에 나리는데
녹림호객이 밤에 나타나네
마주친 바에야 이름은 감춰 무엇하리
세상은 지금 반이 도적인 것을
이것은 세인들을 조롱하는 말이다. 세상의 이와 같은 사람들은 가까운 육친이나 절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무정히 배반하거늘 하물며 고작 밥 한 끼 얻어먹은 은혜나 일면식이 있을 뿐인 관계에서랴. 이는 오히려 수호전(水滸傳)에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들 스스로 영웅호한이라 자칭하며 오로지 녹림 속에서 의기투합하여 세상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만 못한 것이다. 이 녹림 중에는 가난하여 어쩔 도리가 없어 거기 몸담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몸을 숨긴 자도 있으며, 또 조정의 쓰임을 받지 못해 강호를 떠돌다가 모인 자들도 있다. 비록 나쁜 사람들이 많다고는 해도, 그 중에는 의를 중히 여기고 재물을 가볍게 보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옛날 조례(趙禮)가 자신의 몸을 양보하여2 오히려 곡식을 선사 받은 것이나, 장제현(張齊賢)이 도적을 만나3 더욱 많은 금과 비단을 얻은 것은 모두 사실이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근래 소주(蘇州)에 왕생(王生)이란 한 평민이 있었는데, 장사를 하는 부친 왕삼랑(王三郞)과 모친 이(李)씨, 그리고 과부이면서 자식도 없는 작은어머니 양(楊)씨 네 식구가 같이 살았다. 왕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기민하여 작은어머니는 그를 매우 아꼈다. 그런데 그가 예닐곱 살 때 양친이 잇따라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다행히도 양씨가 장사를 마친 후에 왕생을 아들로 삼아 키운 덕에 점차 장성하여 금세 열여덟 살이 되었다. 왕생은 장사하는 일에도 매우 영리했다.
하루는 양씨가 왕생에게 말했다.
“너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집에서 먹고 놀기만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내가 가진 재산과 네 아버지께서 남긴 것으로 충분히 장사를 할 수 있다. 그래 내 너에게 천 냥을 만들어줄 테니, 네가 객지에 나가서 장사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왕생이 기뻐하며
“그게 바로 저의 천직입니다.”
하고 말하자 양씨는 천금을 챙겨서 그에게 주었다. 왕생은 장사치 한 무리와 계획을 정했는데, 남경(南京)이 장사하기 좋다고 하여 우선 은 몇 백 냥으로 소주의 물건들을 샀다. 그리고는 날을 택하고 장거리 가는 배를 빌려 짐과 보따리들을 모두 싸서는 양씨와 작별하고 배에 도착하여 사업운을 기원하는 지전을 태우고 출항하였다. 가는 길에 있었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하루가 못되어 경구(京口)4에 도착하였고, 동풍을 타고 강을 건너 황천탕(黃天蕩)5에 이르렀을 때였다. 별안간 일진광풍이 몰아치더니 강에는 온통 큰 물결이 솟구쳐 배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사방이 온통 갈대숲인데 주위에 다른 객선은 없었다. 왕생과 같이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 당황해 하는 차에 갑자기 갈대숲 속에서 바라소리가 들리더니, 서너 척의 작은 배가 노를 저어 나오는 것이었다. 각 배에는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우르르 왕생의 배 위로 올라왔다. 왕생 등은 숨을 헐떡이며 머리를 조아리고 애원했는데, 그 사람들은 말을 하지도 않고 목숨을 해치지도 않으며 그저 금은보화들만 깡그리 약탈해서 배에 옮기고 ‘폐 많이 끼쳤소!’ 하고 소리치고는 물살을 헤치며 쏜살같이 가버렸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놀라 혼비백산하여 그저 멍할 뿐이었다. 왕생은 자기도 모르게 통곡을 하며 말했다.
“내 명이 이리도 박하단 말인가?”
그리고는 동행하는 사람에게 상의를 했다.
“이제 노자고 짐이고 아무것도 없는데 남경엔 가서 뭣하겠소? 차라리 각자 집으로 돌아가 다시 궁리를 해보는 게 낫겠소.”
이러쿵저러쿵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날이 점차 밝아왔다. 그때는 이미 바람도 멎고 파도도 가라앉아, 뱃머리를 빼내어 진강(鎭江) 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진강에 이르자 왕생은 뭍에 올라 친척집으로 가서 노자로 쓸 은 몇 냥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다. 양씨는 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돌아온 데다 또 옷은 엉망이고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는 벌써 대략은 알아차렸다. 그러던 차에 왕생이 자기 앞으로 다가와 인사를 하더니 그대로 울며 바닥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양씨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그는 앞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 주었다. 양씨는 왕생을 위로해 주었다.
“얘야. 이것도 다 너의 명이란다. 네가 신중하지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돈 좀 잃어버렸다고 이렇게 걱정할 게 뭐가 있니? 일단은 마음 놓고 집에서 며칠 있다가 다시 본전을 마련해 가지고 나가서 이번에 잃었던 것까지 벌어오면 되잖아?”
“앞으로는 그냥 근처에서만 장사해야지 그렇게 책임을 지고 멀리 가지는 말아야겠어요.”
장생의 말에 양씨는 이렇게 되받았다.
“사내대장부가 장사를 하려면 크게 놀아야지 무슨 소리냐?”
장생은 집에서 한 달 남짓 지내다가 다른 사람과 또 이렇게 상의를 했다.
“양주(揚州)에서는 베가 잘 팔린다고 하니 송강(松江)에서 베를 사다가 양주에 내다 판 다음 쌀하고 콩을 사가지고 오면 이득이 많을 겁니다.”
양씨는 또 은 몇 백 냥을 마련해서 그에게 주었다. 장생은 송강으로 가서 옷감 백여 필을 사고 혼자서 돛단배 한 척을 세내고 또 쌀과 콩을 살 은 백 냥을 챙겨가지고 하인 한 명과 같이 날을 택해 길에 올랐다.
상주(常州)에 다다르니 앞쪽에서 오는 배들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한숨을 쉬며 다 죽어가는 소리로
“미어터져요, 미어터져!”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급히 그 까닭을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양곡 수송선들이 단양(丹陽)으로 가는 길을 막고 들어차서 청양포(靑羊鋪)에서 영구(靈口)6까지 물샐 틈도 없어요. 상선들은 들어갈 생각도 못해요.”
“어쩌면 좋지?”
왕생의 말에 뱃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까지 들어가서 막히는 거나 보고 있겠어요? 제기랄 그냥 맹하(孟河)7 쪽으로 가야죠.”
“맹하 쪽은 길이 위험할 텐데.”
“날 밝을 때 부지런히 가면 안 될 거 있겠습니까? 그러지 않고 길이 뚫릴 때까지 기다리자면 하세월일 텐데요?”
이렇게 해서 왕생은 뱃사람 말에 따라 맹하 쪽 길로 갔다. 과연 하늘은 맑고 날은 밝아 맹하를 벗어나게 되자 왕생은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좋아! 됐어! 만약 그쪽 운하에 그냥 있었더라면 어떻게 빠져나올 수가 있었겠어?”
막 좋아하고 있는데 문득 배 뒤편에서 물소리가 들리면서 커다란 배 한 척이 쏜살같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바짝 다가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갈고리로 두 배를 연결시키고는 십여 명의 강도가 날카로운 칼이며 쇠몽둥이, 철퇴 등을 들고 들이닥쳤다. 원래 맹하의 동쪽은 바로 양자강(揚子江)이어서 낮에도 강도들이 출몰하여 오직 빈 배만이 지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배는 물건을 잔뜩 실은 상선인 데다가 또 마침 재수 없게 걸려들고 말았으니 곱게 보내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마음대로 물건들을 옮겨갔다. 게다가 뱃사람이 여전히 손에 노를 쥐고 있다고 트집을 잡았는데, 뱃사람이 노를 버리기도 전에 벌써 쇠몽둥이가 날아갔다. 왕생은 황망한 가운데서도 눈여겨보고는 그들이 바로 전날 황천탕에서 노략질을 해갔던 자들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왕생은 이렇게 소리쳤다.
“나으리, 전에도 당신한테 한 번 당했는데 오늘 어떻게 또 여기서 만난 거죠? 제가 전생에 당신한테 이만큼 빚을 지기라도 했나 보죠?”
그러자 강도들 중에 몸집이 커다란 한 사람이
“과연 그렇다면 저 자에게 여비나 하게 좀 돌려줘야겠군.”
하고는 작은 보따리 하나를 던져주고는 다시 배를 빼내서 강 앞쪽을 향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왕생은 그저 한탄만 하고 있다가 그 보따리를 주워 펼쳐보니 안에는 부스러기 은 십여 냥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쓴웃음을 지으며
“그래도 이번에는 여비를 빌리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다행이군 다행이야.”
하고는 뱃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가 당신한테 이 길로 가라고 해서 나를 이 꼴로 만든 거야? 돌아갑시다.”
“세상이 변했어요. 대낮에도 강도짓을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이렇게 해서 할 수 없이 오던 길을 되밟아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양씨는 왕생이 빨리 돌아온 것을 보고는 또 한 번 질겁을 했다. 왕생은 눈물을 글썽이며 양씨 앞으로 다가가 울면서 사연을 말해주었다. 참으로 드물게도 양씨는 사람됨이 매우 어진 데다 또 사람 볼 줄을 알았기에 속으로
‘조카는 틀림없이 크게 성공할 날이 있을 거야.’
하고 생각하고는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고 다만 그를 위로해주면서 그에게 본분을 지키며 다시 방도를 생각해보도록 할 뿐이었다.
얼마 후 양씨는 또 돈을 모아서 왕생에게 장사하러 나가기를 재촉하였다.
“두 번 강도를 만났던 것도 다 운명으로 정해졌던 게다. 재물을 잃어야 할 운명이라면 집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집까지 쳐들어와 약탈해가는 법이야. 그 두 차례 사고로 가업을 망쳐서는 안 된다.”
왕생은 그래도 그저 겁이 날 뿐이었다. 이에 양씨는
“얘야 그래도 의심이 나면 한번 점쟁이를 찾아가서 길흉을 물어 앞날을 알아보면 되지 않겠니?”
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점술가 하나를 집으로 불러와 연이어 몇 곳 장사 점을 쳐보니 모두 점괘가 안 좋았는데, 오직 남경만큼은 아주 좋았다. 그 점쟁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남경에 갈 필요도 없이 그저 남경 쪽으로 길을 가기만 하면 자연 횡재를 하게 될 겁니다.”
이에 양씨는
“얘야 대담하면 천하를 누빌 수 있지만, 소심하면 몇 발자국도 가기 힘든 거란다. 소주에서 남경까지는 그다지 멀지도 않고 사람들이 허다하게 지나다니는 데다, 옛날 네 아버지와 네 작은아버지께서 모두 늘 다니시던 길이다. 네가 운수가 사나워 우연히 두 번 강도를 당하긴 했지만, 설마 그놈들이 너 하나만 기다리고 있다가 약탈을 하겠니? 점괘도 좋고 하니 그저 안심하고 가 보거라.”
왕생은 그 말에 따라 예전처럼 다시 차비를 하고 길을 떠났다. 역시 그의 운수는 결국 이렇게 되도록 미리 정해졌던 것이다.
상자 속 물건은 운명으로 정해진 재물
모두 귀신이 안배해놓은 것이로구나
강도가 까닭 없이 닥친 게 아니라
교묘히 그들을 써 복을 가져다준 것이네
1 이섭박사(李涉博士) : 이섭은 만당(晩唐) 때 사람으로, 태학(太學) 박사를 역임하였다. 이섭과 관련하여 당대(唐代) 범터(范攄)의 <운계우의(雲溪友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진다. “이섭박사가 일찍이 구강(九江)으로 가다가 환(晥) 땅에 이르러 홀연 도적을 만나 배를 습격당했다. 수십 명이 모두 병기를 들고 들이닥쳤다. 그의 종자(從者)가 ‘이박사님의 배이다’라고 말하자 그중 두령이 ‘만약 이섭박사라면 우리들은 금품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시 한 수를 부탁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박사가 절구 한 수를 바쳐 두령이 크게 사례하니, 이박사도 감히 거절하지 못했다.” 이 기록에 실린 시는 본문의 시와 자구에 다소 차이가 있다.
2 조례양비(趙禮讓肥) : 《원곡선(元曲選)》 가운데 진간부(秦簡夫)의 잡극 《조례양비》가 있는데, 그 고사는 《후한서(後漢書)》 <조효열전(趙孝列傳)>에 근거한 것이다. <조효열전>에서 왕망(王莽) 이야기를 서술할 때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천하가 어지러워 사람이 서로 잡아먹었다. 효(孝)의 아우 예(禮)가 아적(餓賊)에게 붙잡히자, 효가 그것을 듣고는 스스로 결박하여 아적에게 찾아가 ‘예는 오랫동안 굶어서 말랐으니 내가 살진 것만 못하다’라고 말하였다.” 이로 인해 그들은 풀려나게 된다. 원곡(元曲)에서는 조효를 그 동생인 조례로 바꾸고 조효를 약탈하는 마무(馬武)라는 인물을 꾸며내어 나중에 그들을 풀어줄 때 곡식을 선사하는 것으로 그렸다. 여기서는 원곡 중의 고사를 말하고 있다.
3 장제현우도(張齊賢遇盜) : 이 이야기는 《이각박안경기(二刻拍案驚奇)》 27권의 전반부 입화(入話)에 나온다.
4 경구(京口) :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진강시(鎭江市).
5 황천탕(黃天蕩) :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남경시(南京市) 동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양자강 강폭이 매우 넓은 곳을 가리킨다.
6 영구(靈口): 곧 능구(陵口)로, 지금의 단양시(丹陽市) 경내에 있으며 남운하의 항구 가운데 하나이다.
7 맹하(孟河): 지금의 상주시(常州市) 동북쪽에 있는 강으로, 양자강과 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