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暮江吟/당唐 백거이白居易
一道殘陽鋪水中 한 줄기 석양빛 강물에 깔리니
半江瑟瑟半江紅 강물 절반은 벽록 절반은 홍색
可憐九月初三夜 사랑스러운 구월의 초사흘 밤
露似真珠月似弓 이슬은 진주 같고 달은 활 같네
이 시는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822년 51세 때 항주 자사로 부임하는 도중에 지은 시이다.
슬슬(瑟瑟)은 솔솔 부는 바람 소리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벽록색(碧綠色)을 말한다. 가련(可憐)은 불쌍하다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여기서는 사랑스럽다는 말이다. 수중(水中)은 수면(水面)의 의미이다. 운자를 맞추기 위해 이렇게 쓴 것뿐이다.
2구와 4구는 구 자체에서 전후가 대를 이루고 있다. 강의 푸른색과 홍색이 색채의 대를 이루고, 진주 같은 이슬방울과 활 같은 달이 물건의 대를 이루고 있다. 대구는 전후의 구가 대를 이루는 것이 많지만 이처럼 한 구 안에서 대를 이루는 것도 많다. 이렇게 하면 구절에 리듬감이 생기는데 이 시는 2구와 4구가 같은 형식이라 시에 경쾌하면서도 반복적인 리듬을 주고 있다.
이 시는 전체가 경관의 묘사만 있어 시인이 무슨 생각으로 이 시를 지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저물어가는 가을 강의 경치를 즐겁게 감상하고 이슬과 달에 대해서도 찬탄하는 것이라든지 앞에서 말한 2, 4구의 구절 자체에서 대를 이루는 방식 등은 시인의 기분이 나쁘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 이런 시를 쓸 정도면 혼자 있으면서 고독을 즐기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혹 조정에서 벗어나 항주의 지방관으로 가게 되어 마음 한구석에 흐물흐물 웃음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좋은 음식을 만나거나 좋은 풍경을 보면 찬탄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SNS에 올리기도 한다. 저마다의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지금 혹 이 시인의 마음도 이런 것이 아닐지?
예전 시인들의 시심을 돋구는 가을이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 좋은 계절로 변한 것 같다. 그런데 옛 시인들이 경물을 시로 그리고 그 안에 담은 마음을 후인들이 다 알지 못하듯이 지금도 자신이 느낀 감탄과 감격이 나중에 사진에는 제대로 담기지 않는 것은 어째서일까?
365일 한시 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