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제5권 1

제5권 신의 중매로 장덕용은 호랑이를 만나고
길일에 맞춰 배월객이 사위가 되다
第五卷 感神媒張德容遇虎 湊吉日裴越客乘龍

먼저 시 한 수를 소개한다.

혼인이란 전생의 인연이라 말들 하는데, 월하노인(月下老人)이 끈으로 맺어줘야 이뤄지는 법. 짝이 잘못 맺어질 리도 없고, 그 시일 또한 늦추거나 앞당길 수 없네.

말인즉슨 혼사라는 것은 모두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인데, 예부터 전해오기를 월하노인이 붉은 끈으로 발을 묶어놓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결국에는 서로 만나게 된다고 한다. 만약 인연이 없다면 바로 눈앞에 있어도 억지로는 맺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연이 있다고 해도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 단 하루라도 앞당길 수가 없고, 때가 되었다면 단 하루라도 늦출 수가 없다. 이 모두가 중매의 신이 암암리에 주재하는 것이니 사람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나라 때 홍농현(弘農縣)에 성이 이씨인 한 현령(縣令)이 있었는데, 이미 성년이 된 딸이 있어 노생(盧生)이란 사람에게 짝을 지어주었다. 노생은 훌륭한 외모에 수염을 길게 길렀고, 풍류스럽고 소탈하여 이씨 집안에서는 모두 아주 괜찮은 사윗감이라고들 하였다. 그리하여 날을 택해 그를 데릴사위로 집에 들였다. 당시 그 마을에는 한 무녀가 있었는데 미래의 일을 잘 예언하였고 꽤 영험이 있었다. 그 무녀는 이씨 집안과 왕래가 많아 서로 잘 알고 지냈는데, 이 날 이씨 집안에 혼례가 있다고 하여 그녀 역시 구경삼아 놀러왔다. 이씨의 부인은 평소 그녀를 매우 신임하던 터라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자네가 보기에 우리 사위 노군의 관직 운과 봉록 운이 어떨 것 같은가?”

“노랑이 저기 수염 기른 젊은이 아닙니까?”

“맞네.”

“저 사람이라면 부인의 사위가 될 수 없습니다. 부인의 사위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내 사위는 어떻게 생긴 사람이란 말인가?”

“보통 체격에 얼굴이 희고 수염은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무녀의 말에 이씨 부인은 대경실색하여 말했다.

“자네 말대로라면 우리 딸이 오늘밤 결혼할 수가 없다는 것이잖아?”

“결혼을 못할 리가요. 오늘밤 틀림없이 결혼합니다.”

“허튼소리 작작 하게! 오늘밤 결혼을 할 수 있다면 어찌 노군이 아닐 수가 있단 말인가?”

“저도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문득 바깥에서 요란스런 음악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노생이 들어와 납채의 예를 올리고 대청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이씨 부인은 무녀의 손을 잡아끌고 뒤뜰로 가서 문 틈새로 노생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절 올리는 사람을 좀 보게나. 이제 곧 오늘밤이면 결혼을 하게 되는데, 어째서 내 사위가 아니란 말인가? 정말 웃기네 웃겨!”

곁에 있던 하녀들은 부인의 말을 듣고는 모두들 킥킥거리며

“이 할망구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니까 이번에도 틀렸을 거야.”

라고 했지만 무녀는 그저 잠자코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친지들이 다 와서 혼례를 지켜보았다. 원래 당나라 때는 신분 높은 집안의 혼례는 매우 중대한 일이어서 혼례의식이 있는 밤에는 양가 친지들 가운데 오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중에는 신랑을 데리고 오거나 혼례의 사회를 맡아보는 빈상(儐相)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아랫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의 절친한 친구들 중에서 예의법도가 몸에 익고 용모가 출중하며 목소리가 우렁찬 사람을 추천하여 시키는 것으로서 상당히 비중 있는 일이었다. 이때 노생은 두 명의 빈상과 함께 대청 위에서 절을 올렸고, 혼례를 마치자 신랑신부는 신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노생이 등불 아래서 이소저(李小姐)의 면사포를 들춰보고는 화들짝 놀라 몸서리를 치며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무슨 일인가고 그에게 물었으나, 입을 열지도 못하고 곧장 문밖으로 달려가서는 말을 타고 연거푸 채찍질을 하며 나는 듯 달아났다.

하객들과 친구들 가운데 그 까닭을 묻고 싶어 하는 노생과 친한 몇 사람과 또 이씨의 가까운 친척들 중에 혹시 안 좋은 소문이 나서 좋은 날을 놓칠까봐 그를 도우려는 사람들은 모두 노생을 쫓아갔다. 어떤 이는 따라잡지 못해 도중에 그만두었고 따라잡은 사람은 그에게 무슨 일인가고 묻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했지만, 노생은 그저 절레절레 손을 내저으며 “안돼! 결혼 못해!” 하면서 무슨 까닭인지조차 말하려 하지 않으며 기어코 돌아가려 하질 않았다. 사람들은 별 수 없이 돌아와 노생의 상태를 알려 주었다. 이현령은 화가 나서 눈을 둥그렇게 뜨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무슨 꼴!”

자신이 생각하기에 딸의 모습은 꽃처럼 예쁘기만 한데,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그는 일단 친지들 앞에서 해명을 하고 그들에게 똑똑히 보도록 하였다. 사람들을 데리고 신방 앞으로 가서 딸에게 나와서 인사를 하게 하고는 그녀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애가 바로 노군에게 허락한 제 딸이외다. 어찌 사람을 놀랠 만큼 추악한 용모란 말이오? 방금 노군이 보자마자 도망쳤는데, 만약 저 애를 보이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은 끝까지 괴물로 여기셨을 거요.”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보니 과연 아리따운 자태의 둘도 없는 절색이었다. 친지들 중에는 “노랑은 복이 없어”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노랑은 인연이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날을 잘못 잡아서 살이 낀 거야”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의론이 분분했다. 이현령은 잔뜩 화가 나서 식식거렸다.

“보아하니 그 자식은 출세도 못할 놈 같으니, 나도 순순히 내 딸을 내주지는 않겠소. 허나 내 딸을 이미 하객들에게 선보였으니, 오늘 밤 혼례를 헛되이 끝내버릴 순 없지. 하객들 중에 내 딸을 맞이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오늘밤이 좋은 때인 데다 여러 사람이 증인이 될 수 있고 또 중매인이 되어주실 수가 있소이다.”

그러자 빈상 중 한 사람이 앞으로 걸어나와

“소인은 아무 재주도 없사옵니다만, 원컨대 저를 사위로 삼아주십시오.”

하고 침착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성이 정(鄭)씨이고 역시 관직을 수여받은 사람이었다. 얼굴은 분을 바른 듯하고 입술은 마치 붉은 칠을 한 듯하며, 아래턱에는 정말로 수염 하나 나지 않은 매우 수려한 외모였다. 사람들은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그렇게 아리따운 아가씨에겐 저런 재자가 어울리지. 게다가 나이며 용모도 알맞고 집안도 비슷하고.”

그리하여 곧 연령이 높은 두 사람을 추천해서 중매인으로 삼고 또 한 젊은이를 뽑아 대신 빈상으로 삼고는 딸을 나오도록 하여 혼례를 올려 일단 좋은 때는 맞추게 되었다. 그 외의 미비된 모든 의례는 후에 다시 보충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날 밤 결국은 정생과 혼인을 하게 된 것이다. 정생의 용모는 과연 무녀가 말한 것과 딱 맞았으므로 그제서야 그 무녀의 신통함을 믿게 되었다.

결혼을 한 후 정생은 우연히 노생을 만났는데, 그들 두 사람은 원래 서로 친하게 지냈던 사이인지라 전날 왜 그렇게 도망쳐버렸는지 그 까닭을 물었더니 노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면사포를 들추고 딱 보니까 신부의 두 눈이 시뻘건데 크기는 마치 등잔만 하고, 이빨은 길이가 몇 치나 돼서 입 양쪽으로 삐져나왔더라고. 그게 어디 사람인가? 불당 벽에 그려놓은 야차하고 다를 바가 없었어. 놀라서 간이 떨어질 지경인데 도망치지 않고 배기겠나?”

그러자 정생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이미 내 마누라가 됐네.”

“자네 그걸 어떻게 견디나?”

“그럼 잠깐 우리 집으로 가세나. 집사람더러 나오라고 해서 자네와 만나게 해주면 되잖겠나?”

노생이 정생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가니 이소저가 단장을 하고 나와 인사를 하는데, 전혀 아무렇지도 않고 아름답기만 할 뿐 전날 방안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닌지라 후회막급이었다. 나중에 그 무녀가 앞서 말한 대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듣고 정해진 인연이 있음을 알고는 그저 한숨만 쉴 뿐이었으니 그야말로 옛말 그대로였다.

인연이 있으면 천리나 떨어져 있어도 만날 수 있지만, 인연이 없으면 코앞에 있어도 엮어지지 않네.

이제 당나라 때 얘기를 하나 더 해 보자. 건원(乾元) 년간에 장호(張鎬)라고 하는 이부상서(吏部尙書)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덕용(德容)이라는 둘째 딸이 있었다. 장상서가 서울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배면(裴冕)이라고 하는 복야(僕射)와 가장 가깝게 지냈다. 배복야의 셋째 아들은 남전현(藍田縣) 현위(縣尉)를 지낸 바 있는데 배월객(裴越客)이라고 불렀다. 두 집안은 수준이 잘 맞아 장상서는 곧 덕용을 배씨 집안에 허혼하여 이미 혼사 날까지 잡아놓았다.

한편 장안(長安) 서시(西市)에는 이지미(李知微)라고 하는 한 점쟁이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이순풍(李淳風)의 친족으로 점술에 뛰어났다. 그가 운명을 점쳐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말했다 하면 반드시 그 날짜까지 짚어내는데 언제나 틀림이 없었다. 또 부친의 공덕을 이어받은 유(劉)씨 성을 가진 공자가 있었는데, 음직(蔭職)을 구하러 서울에 왔다가 몇 년째 관직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 해에는 이미 시험관에게 뇌물을 먹여 잘 봐달라고 부탁을 해놓았다. 그리하여 이부(吏部)의 시험이 끝나자 틀림없이 뽑힐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서시 이지미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 결과가 어떻게 될지 물었다. 그러자 이지미는 점괘를 보더니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금년에는 아무리 해봐도 안 되고, 내년엔 안 하려고 해도 저절로 될 거요.”

유생은 믿지 않았으나 이부에서 방문을 냈는데 시험지에 빠뜨린 글자가 있었던 까닭에 과연 그의 이름은 올라있지 않았다. 이듬해 또 이부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은 데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성적도 안 좋아서 꼭 붙게 될 것 같지가 않아 다시 서시로 가서 이노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작년에 말씀드렸듯이 당신은 틀림없이 될 테니 걱정하실 필요 없소이다.”

“만약 관직을 얻게 된다면 어느 곳으로 부임하게 되겠소?”

“봉록은 대량(大梁) 지방에 있소이다. 관직을 얻고 나서 다시 나를 만나러 오십시오. 드릴 말씀이 있으니까.”

이부에서 방을 냈는데 과연 선발되어 개봉현(開封縣) 현위를 제수받게 되었다. 유생은 놀랍고도 기뻐서 이노인을 마치 신처럼 믿게 되어 다시 이노인을 만나러 갔다.

“가서 부임하시면 청렴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실컷 챙기셔도 아무 문제없을 겝니다. 임기가 끝나갈 때 차사로 가겠다고 자원해서 다시 서울로 오면 제가 다시 점괘를 봐 드리지요.”

유생은 그 말을 기억해 두고는 작별하고 임지로 떠났다. 개봉현이 속해 있는 주(州)의 자사(刺史)는 그가 훌륭한 집안의 자제라는 것을 알고는 그에게 일을 믿고 맡겼다. 유생은 이노인의 말을 생각하고는 아무 거리낌 없이 닥치는 대로 재물을 긁어모았다. 하지만 상하 관리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임기가 끝나갈 때가 되자 모은 돈이 천만 냥이나 되었다. 그리하여 곧 자사를 만나 차사로 갈 것을 청하였다. 자사는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고 그에게 주(州)의 세금을 서울로 호송하도록 하였다. 이에 서울로 올라와 또 이노인을 만났다.

“나리께서는 3일 내에 관직을 옮기시게 됩니다.”

“이번에 서울로 올라오면서 기회를 보아 어떻게든 자리를 꼭 옮기려고 합니다만, 3일 안에 어떻게 될 수가 있겠소? 게다가 지금은 조정에서 관직을 조정하는 시기도 아니니 이번만은 꼭 맞을 것 같지가 않소.”

“절대로 틀림없습니다. 관직이 바뀌어도 지금 계시는 그 지역입니다. 옮기시게 되면 다시 만나러 오십시오. 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튿날 유생은 주의 세금을 좌장고(左藏庫)1에 납부하러 갔다. 막 창고 앞에 다다르자 문득 동남쪽에서 오색빛깔의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창고 지붕 위로 날아와 앉았는데 그 무늬가 휘황찬란하였고, 또 수많은 새들이 지저귀면서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날아왔다.

“우와! 정말 희한하네!”

유생은 감탄하여 크게 외쳤다. 일시에 내관(內官), 태감(太監) 등 상하 모든 사람들을 떠들썩하게 하여 모두들 와서 보고는 소리쳤다. 그 중에 그 새를 알아본 사람은

“저게 봉황이야!”

라고 했다. 그 큰 새는 한참이나 머물러 있다가 소란스런 소리를 듣고는 곧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고, 다른 수많은 새들도 점차 흩어졌다. 이 소식은 결국 황제에게까지 전해졌고, 황제는 대단히 기뻐하며 ‘가장 먼저 본 사람에게 원래 관직보다 한 등급을 높여 주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

내관이 철저히 조사해 보니 다름 아닌 유생이 가장 먼저 본 사람이었다. 이에 곧 이부에 명하여 그를 준의현(浚儀縣) 현승(縣丞)으로 임명하였다. 과연 3일이었고, 같은 주에 속한 현이었다. 유생은 더욱 이노인을 존경하고 믿게 되어 다시 찾아가 이번에는 임지로 가서 또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물었더니 이노인은

“그냥 이전처럼 그대로 하셔야 합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유생은 그 말에 따라 계속해서 마음대로 재물을 취하여 또 천만 냥을 모았고, 임기가 차자 발령을 받으러 서울로 가서 다시 이노인을 만났다.

“이번에는 한 고을의 원님이 되실 터인데, 추호라도 함부로 취하셔서는 안 됩니다. 아무쪼록 신중하셔야 합니다!”

유생은 과연 수춘현(壽春縣) 현령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벌써 두 번의 임기동안 해오던 버릇이 몸에 밴 터이니 어찌 참을 수가 있었겠는가? 도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옛날 근성이 되살아나 이지미의 말은 한쪽으로 제쳐두게 되었다. 오로지 전날 닥치는 대로 긁어모으라는 말만은 듣기 좋은 말이라 열심히 그 분부를 따라야 하는 것이고, 이제 함부로 취하지 말라는 말은 사실상 불가능하여 그저 믿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오래지 않아 상부에서는 그 과실을 가려내고 모은 재물을 추징하여 관직을 삭탈하였다. 그리하여 유생은 또 이노인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지난 두 번의 임기 동안은 그저 마구잡이로 취하라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함부로 취해선 안 된다고 하셨는데, 결국 세 번 모두 말씀하신 대로였으니 대체 무슨 까닭이오?”

“이제 제가 털어놓아야 되겠군요. 나리께선 전생에 대상인으로 이천 만 냥의 재산을 가지고 계셨는데 변주(汴州)에서 돌아가시고 그 재산은 속세에 흩어졌지요. 나리께서 지난 두 번의 임기동안은 본래 자신의 옛 재산을 거둬들인 것이라 함부로 취한 것이 아니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허나 수춘현 사람들은 나리께 빚진 적이 없으니 어찌 지나치게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지금 강요하다 보니 곧 탈이 난 게지요.”

이에 유생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며 떠나갔다.

이노인의 용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으나 그 많은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으니 이제는 본 이야기로 들어가기로 하자. 그 배복야의 집안에서는 결혼 날짜를 잡고 나서 중매인더러 장상서 댁에 가서 소식을 전하도록 하였다. 장상서는 이지미가 매우 용하다는 말을 듣고 곧 사람을 시켜 그를 데리고 와서는 딸의 팔자와 혼기를 맞춰보도록 해서 혹시 무슨 살이 끼지나 않았는지 보게 했다. 이노인은 사주를 건네받고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사주로는 경사가 금년에 있지 않을 뿐더러 지역도 이곳이 아니올시다.”

“날짜가 안 좋으면 다른 날짜로 바꾸면 그만이지 금년은 안 된다는 말이 어디 있나? 하물며 두 집안이 다 서울에 있는데 여기가 아니라면 또 어디란 말인가?”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대로라면 금년엔 절대 결혼할 수 없습니다. 길일은 내년 삼월 초사흘입니다. 먼저 크게 놀랄 일이 있고나서야 혼사를 올릴 수 있고, 지역은 남쪽입니다. 운수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날짜는 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하루도 앞당길 수 없고 늦출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장상서는 반신반의하며 이렇게 말하고는 집사를 시켜 사례를 한 후 이노인을 보냈다. 이노인이 막 문을 나서자마자 이번에는 배복야의 집에서 이노인을 데리고 가서 혼사가 다가오니 길흉을 좀 봐달라고 하였다. 이노인은 배가로 가서 점괘를 한 번 보더니

“거 참 이상하네! 이 점괘는 장대감 댁 운수와 똑같습니다 그려.”

하며 곧 지필을 꺼내 글을 한 장 썼다.

1 좌장고(左藏庫): 전국의 세금을 관리하는 조정의 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