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호 앞에서臨洞庭/당唐 맹호연孟浩然
八月湖水平 팔월에 동정호 물이 불어나
涵虛混太清 비친 하늘과 하나로 되었네
氣蒸雲夢澤 안개는 운몽택에 피어나고
波撼岳陽城 파도는 악양성을 뒤흔드네
欲濟無舟楫 건너자니 나에겐 배가 없고
端居恥聖明 가만있자니 세상에 부끄럽네
坐觀垂釣者 낚시하는 사람 보고 있자니
徒有羨魚情 부질없이 고기를 잡고 싶네
이 시는 과거에 낙방하여 오월 지방을 떠돌던 맹호연(孟浩然, 689~740)이 733년 45세 무렵 장안에 두 번째로 갔을 때 당시의 재상인 장구령(張九齡)에게 올린 시이다. 그래서 제목이 <동정호를 바라보며 장 승상에게 올리다[望洞庭湖上張丞相]>라고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이 시는 지금까지 소개한 다른 시들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다른 시들은 상징과 함축, 표현 기법과 구성이 다양해도 대부분 순수한 자신의 서정을 토로하였다.
이 시도 그런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본질적인 작시의 목적은 벼슬을 청탁하는 것이다. 당나라 시대에 고위 관료에게 시나 문장을 올리는 것은 대개 자신의 문장력을 드러내고 벼슬을 청탁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 많다. 고고한 은자로 살다가 나중에 다시 은자로 돌아가긴 하지만 이런 시를 보면 은거하는 것이 맹호연의 본래 마음은 아니었던 듯하다. 하긴 젊은 학자나 문인 중에 처음부터 은거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호수가 평평하다는 말은 물결이 잔잔하다는 말이 아니고 호수물과 제방의 높이가 같아질 정도로 물이 불어난 것을 의미한다. 여름의 장마가 지나 가을이 왔기 때문이다. 허(虛)와 태청(太淸)은 모두 하늘이다. 물이 이 허공을 머금어 물과 하늘이 혼연히 한 덩어리가 되었다는 표현은 동정호의 원시적 풍광을 장엄하게 드러내었다.
운몽택은 이곳에 근거한 초나라 시대에 동정호를 부르던 말인데 그 호수에 안개가 자욱이 피어나고 있다. 또 거친 동정호의 물결이 높아 파도가 치면 악양성을 삼킬 듯이 요동을 친다. 이 3, 4구는 동정호의 광활한 장관을 기세 있게 그려내고 있는데, 고인들은 증(蒸)과 감(撼) 자를 특히 높이 평가하였다.
이런 정경 묘사와 달리 아쉬운 소리를 글에 담으려 해서 그런지 후반 4구는 기세가 다소 가라앉은 느낌을 준다. 좋게 말하면 온후하다. 동정호를 건너가고 싶다는 말은 자신도 관직에 나가 세상을 구제하고 싶다는 말이며 배가 없다는 말은 자신을 천거해 줄 사람이 없다는 말로 해석된다. 지금은 성명한 세상, 즉 밝고 성스러운 천자가 다스리는 세상인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논어>> <태백(泰伯)>에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럽다. [邦有道, 貧且賤焉恥也]’라는 말에 근거하고 있어 당당한 태도는 이어가고 있다.
낚시하는 사람을 보고는 부러운 마음이 든다는 말은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에 “강에 가서 물고기를 부러워하는 것이 집에 돌아가 그물을 만드는 것만 못하다.[臨河而羡魚, 不若歸家織網.]”라는 말을 응용한 것이다. 지금 물고기를 낚는 사람은 관직을 구해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며 자신은 이를 보면서 하릴없이 부러운 마음만 든다는 말로 강한 구직 의사를 표현하였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몇 년 지나 737년에 장구령이 형주의 지방관으로 왔을 때 맹호연을 불렀으나 이내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한다. 이윽고 형주 일대를 여행하고 고향 양양으로 돌아와 740년에 죽는다.
맹호연의 일생을 두고 보면 만유(漫遊)와 은거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 시는 그런 맹호연의 인생과 시풍을 잘 보여준다. 맹호연이 여행을 통해 기른 호연지기가 앞 4연에, 그리고 관직에 나가 뜻을 펴고 싶은 바람이 뒤 4구에 잘 드러나 있다. 맹호연의 이 시를 보면 은거한다는 것은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이상을 꿈꾸는 고결한 삶의 한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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