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한나 아렌트의 분노에서부터從漢娜‧鄂蘭的憤怒開始 2
오늘날 벤야민에 대한 우리의 기본 인식은 정확한 편이다. 깊이와 세밀함에는 다소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러나 룩셈부르크에 대해서는 백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렌트가 말한 대로 오해가 가득하다. 그녀는 아직도 ‘붉은 로자’라고 불리며 난폭하고, 걸핏하면 자제력을 잃고, 말을 그칠 줄 몰랐던 무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사실 룩셈부르크는 부드럽고 차분했으며 새와 꽃을 사랑했다. “단순하고 감동적인 인자함과 시적 아름다움의 소유자로서” 그녀는 문학과 시에 대해 빼어난 감상 능력과 독서 습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아렌트는 말하길, “그녀는 선천적인 ‘책벌레’일 뿐이었으므로 만약 이 세계가 자유와 공정함에 대한 그녀의 감수성을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동물학이나 식물학, 혹은 역사학이나 경제학, 수학에 더 몰두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사후의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가장 근사한 찬사는 레닌에게서 나왔고 이미 역사적인 발언이 되었다. 그는, “오래된 러시아 속담에, 매는 닭보다 낮게 날 때도 있지만 닭은 영원히 매보다 높이 날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비록 과오도 있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항상 매였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룩셈부르크 자신이 택한 것은 매가 아니라 평범한 박새였다. 1917년 2월, 그녀는 베를린의 감옥에서 마틸다 야콥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제 묘비에는 ‘zwi-zwi’ 두 음절만 적어주세요. 이 두 음절은 박새가 지저귀는 소리예요. 저는 이 소리를 꽤 그럴싸하게 흉내 내죠. 제가 이 소리를 내기만 하면 즉시 박새들이 날아오곤 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두 음절은 보통 빛나는 쇠못처럼 솔직하고 담담한데 요 며칠은 조심스러운 떨림과 미세한 가슴소리가 섞여 있었어요. 미스 야콥, 당신은 그게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나요? 그건 곧 다가올 봄이 살며시 보내오는 첫 번째 숨결이랍니다. 얼음과 눈, 외로움의 고통을 겪고서도 우리(박새와 저)는 봄이 오는 것을 느꼈어요! 만일 제가 조급한 나머지 그날까지 살지 못한다면 부디 잊지 말아주세요. 제 묘비에 ‘zwi-zwi’라고 새겨주는 것을 말이에요. …… 이것 말고는 다른 어떤 말도 적지 말아주세요.”
박새이고 싶었던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3월 5일에 태어나(그래서 남쪽물고기자리였다) 1919년 1월 15일에 죽었다.
부디 한나 아렌트의 분노를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녀는 명성이라는 그 쓸모없는 것을 깨부수려던 게 아니었다. 정반대로 마음에 두고 또 지키려 했다. 아렌트는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어떤 것, 기본적인 진상과 진상에 뒤따르는 정의와 공정함에 대한 역사적 중시 등과 관련이 있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최대한 정확하고 정당한 명성에 의지해야만 우리가 비로소 어떤 기억할 만한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 작품 따위를 기억하고 찾아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렌트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달지 않았을까? 그들이 아직 살아 있을 때, 서둘러 그들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해냈는지 마음 편히 돌아보게 하고, 또 좀 더 잘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