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와 북조 – 역자 후기

이중톈의 글쓰기를 추동하는 원동력

그저께 베이징국제도서전에 갔다가 우연히 저장浙江출판그룹 부스 앞을 지나게 되었다. 막 점심시간이 끝나서인지 부스 안의 대형 테이블에 편집자 십여 명이 담소를 나누며 앉아 있었다. 저장출판그룹 산하에는 저장인민출판사, 저장문예출판사, 저장미술출판사 등 10여 개 출판사가 있고 그중 저장문예출판사가 중국어판 《이중톈 중국사》를 출판하는 곳이다. 나는 혹시나 싶어 그 테이블 앞에 가서 입을 열었다.

“저는 《이중톈 중국사》 한국어판의 역자입니다. 혹시 여기 저장문예출판사 분이 계신지요?”

즉시 이십대 중반의 여성이 반색을 하며 벌떡 일어섰다.

“제가 저장문예출판사 저작권 담당자예요. 너무 반갑습니다!”

그녀는 친절하게 저장출판그룹 특별 전시 코너로 나를 데려가, 그곳 중앙에 《이중톈 중국사》 한국어판이 당당히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나는 방금 전 ‘중국 해외수출도서 특별관’에 가서도 《이중톈중국사》 한국어판을 보았다. 그렇다고 아주 자랑스럽거나 뿌듯하지는 않았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모처럼 중국에 와서도 나는 에어비앤비로 얻은 방에서 매일 밤늦게까지 《이중톈 중국사》 13권 원고의 마무리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이중톈 선생은 《중국사》를 지금 몇 권까지 냈지요?”
“20권이요. 한국에서는 아마 11권까지 나왔지요?”
“네. 12권과 13권이 같이 나올 것 같아요. 지금 13권 교정을 보고 있습니다.”

그 저작권 담당자는 왠지 동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조금 울컥했다.

《이중톈 중국사》는 중국과 한국에서 모두 2013년에 1권이 나와서 벌써 6년째 출간 중이다. 중국어판 《이중톈 중국사》는 이미 원나라 시대에 이르렀다. 나는 이제 겨우 당나라 시대를 마쳤으니 권수로는 6권, 햇수로는 300여 년을 쫓아가야 한다. 그리고 애초에 36권으로 완간 예정이었던 이 시리즈는 6년간 20권이 나왔으니 산술적으로는 앞으로 5년은 더 지나야 끝이 난다. 그때, 저자 이중톈 선생은 77세가 된다. 아무래도 이 시리즈가 과연 무사히 완간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그런데 그 우려의 목소리 중 상당수는 뜻밖에 이중톈 선생의 노령이나 건강은 문제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중국의 ‘국민 학자’인 이중톈이 다른 일을 하면 더 많은 돈과 더 큰 명성을 얻을 수 있는데 과연 《이중톈 중국사》 집필에 계속 매달리겠느냐고 의구심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중톈 선생은 돈도, 명성도 필요 없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중국사가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이 책이 일으키는 반응이 그리 강렬하지 않고 매체의 관심도 크지 않아서 제가 동기 부족으로 힘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그럴 리 없습니다. 왜냐고요? 간단합니다. 저는 갈채를 받기 위해 이 책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돈을 벌려고 이 책을 쓰지도 않습니다. 돈을 벌려고 하면 더 쉬운 방법이 많습니다. 사실 정반대로 이 책을 쓰기 위해 저는 대단히 많은 돈을 손해보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한 차례 외부 강연을 나가서 받는 돈이 이 책의 인세보다 훨씬 많습니다. 2시간이면 벌 돈을 2달에 걸쳐 버는 격이죠. 이처럼 갈채도 바라지 않고 돈도 바라지 않고 단지 자기의 꿈을 이루려고만 하는데 어떻게 용두사미가 되겠습니까?”

3년 전의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위와 같이 말했다. 오랫동안 꿈꿔온 이 필생의 역작을 마치기 위해서라면 돈도 명예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과 명예는 확실히 우리가 어떤 일을 추진할 때 대단히 직접적인 원동력이 돼준다. 따라서 이중톈이 돈도 명예도 멀리한다면 과연 무엇이 그의 중국사 집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제게 더 중요한 것은 글쓰기의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입니다. 그리고 저는 한 작가가 글을 쓸 때 쾌감을 못 느낀다면 독자도 그의 글에서 쾌감을 느낄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쾌감은 그 자체로 제 원동력입니다.”

옳은 말이다. 작가의 글쓰기는 외부적인 목표가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본래 글쓰기 자체에서 얻는 쾌감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이런 쾌감이 존재하기에 이중톈은 남방의 어느 작은 도시에 따로 비밀 장소까지 얻어 《이중톈 중국사》의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저는 중국사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티브이와 각종 이벤트의 출연 요청도 다 사절하고 있습니다. 인터넷도 위챗도 끊었고 뉴스도 안 봅니다. 시사평론도 안 하고 일과 무관한 책도 안 봅니다. 추리소설만 빼고 말이죠.”

그래도 추리소설을 읽는 취미 정도는 그에게 허락해줘야 할 것 같다. 그는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좀 더 드라마틱하게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아무쪼록 그가 그 ‘글쓰기의 쾌감’을 실컷 만끽하면서, 덩샤오핑 시대에 관해 이야기할 《이중톈 중국사》 36권까지 무사히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