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보논어 1

지루가 물었다. “옛날에 공자는 평생 동안 새길 만한 단 한 마디 말로 ‘충서(忠恕)’를 꼽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단 한 마디 말로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팔보가 말했다. “우선 사실 관계를 정확히 하고 넘어가자. 공자가 직접 그 말을 한 건 아니다. 공자는 증삼에게 ‘나는 일이관지(一以貫之)한다’라고 했었다. 공자가 나가고 다른 동창생이 증삼에게 방금 선생님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증삼이 ‘충서’라고 대답한 것이었다.”
“그렇군요. 하여튼 선생님께서도 그런 한 마디가 있습니까?”
“있다. 나는 ‘예상왕래(禮尚往來)’라는 말을 꼽겠다.”
“어디서 나온 말입니까?”
“지루야!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구나. 저기 자판기에 가서 한 잔만 빼와라. 동전은 내가 줄께.”
“예, 선생님.”
(지루 이 짜식이 많이 컸네. 출전을 물어보다니… 나도 너무 오래 전에 봐서 출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하여튼 지루가 커피 뽑아오기 전에 빨리 구글하고 백도(百度)에서 찾아봐야겠다.)
“선생님 커피 뽑아왔사옵니다.”
“그래 여기 책상 위에 놔라. 아까 하던 말을 계속 하마. ‘예상왕래(禮尚往來)’는 <예기>에 나오는 말이다. ‘예(禮)는 왕래(往來)하는 것을 중시한다’라고 풀 수 있겠다. 무슨 말인지 감이 오겠지! 나는 이 말을 좀 더 폭넓게 적용해서 사회생활의 지표로 삼아도 충분하다고 여긴다.”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오가며 인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그래 일차적으로 그런 말이다. 나는 여기에다 인사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알 듯 모를 듯 합니다.”
“예를 한 가지 들어보겠다. 지금까지 내가 네게 몇 번 밥을 샀는지 너는 기억하느냐?”
“너무 셀 수 없이 많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럼 너는 내게 밥을 몇번 샀는지 기억하느냐?”
“……”
“왜 말을 못하는 것이냐?”
“기억나지 않습니다.”
“너무 많아서냐?”
“아닙니다. 거의 없어서입니다.”
“내가 너를 탓하려고 이 예를 든 것은 아니니 너무 개의치 말아라. 너와 나는 학생과 선생으로서 그럴 수 있으니 괜찮다만, 만약 네가 사회생활에서 이랬다면 너는 낙제점이니라. 누구한테 열 번 얻어먹었으면 너도 열 번 사는 것이 좋다. 경제적 형편상 차이가 있다면, 두세 번 얻어먹으면 한 번 쯤은 사는 것이 좋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고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너도 너무하기는 했다. 어떻게 그동안 한번도 내게 밥을 산 적이 없었단 말이냐!”
“사실 저도 그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주로 <아무개식당> 삼겹살, <거시기식당> 우렁쌈장, <맛나요식당> 생선구이 등을 좋아하시는데, 제가 그것들을 대접하기에는 용돈이나 알바비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알면서 모른 척 입 싹 씻고 지낸 면이 없지 않았음을 핑계삼아 말씀드립니다.”
“그건 나도 이해한다. 나도 그랬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구나.”
“아니, 선생님께서도 얻어먹기만 하셨던 인간관계가 있으셨다는 말씀입니까?”
“가만 있자, 스케쥴상 나갈 때가 되지 않았느냐?”
“아니 왜 말씀을 피하시려 하십니까? 아직 시간이 좀 있습니다.”
“그래 나도 그런 적이 있다. 다음에 기회 있으면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정도만 얘기하자. 하여튼 난 누가 사주는 건 라면이나 햄버거도 잘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