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요적주는 수치를 면하려다 도리어 수치를 야기하고
정월아는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계속 잘못을 저지르다
姚滴珠避羞惹羞 鄭月娥將錯就錯 3
각설하고, 요씨 집안에는 주소계(周少溪)라고 하는 매우 절친한 인척이 있었다. 한번은 절강성(浙江省) 구주(衢州)에 장사를 나갔다가 우연히 유곽거리에서 한 기녀가 문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매우 낯이 익었다. 자세히 생각을 더듬어 보니 뜻밖에도 요적주와 똑같이 생긴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집에서는 이태 동안이나 죄 없이 송사를 겪고 있는데, 그 애가 여기에 있었다니.’
그리고는 앞으로 다가가 확실한지 한번 물으려다가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야, 안돼. 그 애에게 묻는다고 꼭 진실을 말하리란 보장도 없지. 기루의 삶이란 뿌리가 없는 것인데 그런 비밀이 발각되어 밤을 틈타 도망치면 어디 가서 찾을 수 있겠나? 차라리 집에다 알려서 그들이 직접 찾으러 오게 하는 것이 나을 거야.’
원래 구주와 휘주는 각각 절강성과 직예성(直隸省)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 경계선은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다행히 며칠 되지 않아 도착하여 요공에게 자세히 말해주었다. 그러자 요공은
“그렇다면 뻔한 거야. 틀림없이 나쁜 사람을 만나서 창녀로 팔려간 거라고.”
라고 말하고는 아들 요을(姚乙)을 불러 몰래 백여 냥의 은자를 싸가지고 구주로 가서 몸값을 지불하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또
“몰래 몸값을 내고 데리고 오려면 일이 잘 안될 수도 있겠지.”
하고는 다시 휴녕현에 그 곡절을 알리고 돈을 좀 써서 체포문서를 발급받아 주면서 만약 일이 잘 안될 시에는 관가에 고발을 하도록 했다. 요을은 분부대로 따르기로 했다. 요공은 다시 주소계에게 동행해 달라고 부탁하여 둘은 함께 구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주소계에게는 그곳에 옛 주인이 있어 요을에게 따로 숙소를 마련해주어 짐을 풀도록 하였다. 주소계가 그 유곽으로 안내하여 문 앞에 이르니, 마침 그녀가 문밖에 있는 것이었다. 요을이 보니 과연 누이동생인지라 그녀의 아명을 연거푸 몇 번 불렀다. 그런데 그 기생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요을은 주소계에게 이렇게 말했다.
“틀림없이 내 동생인데 계속 불러도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설마 그 애가 여기서 즐기다 보니 친오빠도 아랑곳하지 않는 건 아니겠죠?”
“잘 모르나 본데, 대개 기생어멈이란 게 백이면 백 악독하거든. 자네 동생의 과거가 어땠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으니까, 그들은 틀림없이 사실이 탄로 나지 않도록 미리 훈계를 해 놓았겠지. 그래서 저 애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챌까봐 감히 면전에서 알은체하질 않는 거라고.”
“그러면 지금 어떻게 소식을 전하죠?”
“그게 뭐 어렵나? 자네가 그녀와 놀려고 온 사람인 것처럼 해 가지고 술자리가 차려지면 은 한 냥을 주고, 거기다 가마 삯으로 은 한 봉지를 더 줘서 그 애를 숙소로 데리고 가서 자세히 보는 거야. 만약 자네 동생이라면 몰래 만나서 다시 방법을 강구해야지. 만약 동생이 아니라면 하룻밤 같이 자고 보내면 그만이고.”
“아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요을은 맞장구를 쳤다. 주소계는 구주에서 오랫동안 객상을 했는지라 그곳 길에 훤했다. 그래서 어린 하인 한 명을 불러다가 돈을 가지고 가게 했다. 그러자 금세 가마 한 채가 숙소로 왔다. 주소계는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그 여동생이라면 여기서 같이 있기가 멋쩍겠지.”
그리고는 일을 핑계대고 밖으로 나갔다. 요을도 그의 여동생이라면 조금 불편할 것이라 생각하고 역시 주소계를 만류하지 않았다. 그 가마에서 한 기생이 자늑자늑하게 걸어 나오는데 그 모습은 이러했다.
한 사람은 누이동생이 왔다 하여 두 눈으로 뚫어져라 바라보고, 또 한 사람은 귀한 손님 오셨다고 만면에 생기가 도는구나. 한 사람은 어찌하여 어서 빨리 곁으로 다가와 오빠인 걸 알아보지 않을까 의아해 하고, 또 한 사람은 어째서 황급히 가마를 맞이하며 아가씨라 부르지 않을까 의심하네
요을이 다가가 보니 분명히 누이동생이었다. 그런데 그 기생은 꽃같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나긋나긋하게 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요을은 하는 수 없이 앉으라고 권하면서 감히 곧바로 확인해보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아가씨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 사람이오?”
“저는 성이 정(鄭)씨이고 아호는 월아(月娥)이며 이곳 사람입니다.”
요을이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구주 말씨였고 목소리도 요적주와는 달라서 의아스러웠다. 이번에는 정월아가 요을에게 물었다.
“나으리께서는 어디서 오셨습니까?”
“나는 휘주부 휴녕현 손전에서 온 요을이라고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함은 이러이러하오.”
요을은 마치 그의 내력을 조사라도 받는 듯 삼대에 걸친 본적을 모두 말해주었다. 그는 여전히 그녀가 분명 자신의 여동생고 틀림없이 스스로 그렇다고 인정할 것이라고만 생각했기에 이와 같이 말해준 것이다. 그러자 정월아는 그가 그렇게 장황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나으리의 출신을 심문하는 것도 아닌데 왜 삼대에 걸친 이력을 알려주시는 거죠?”
하고 묻자 요을은 그만 얼굴이 온통 새빨개져서 그녀가 적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술상이 차려지자 두 사람은 권커니 잣거니 하며 마셨다. 정월아는 요을을 보면서 그의 관상을 살펴봤다가 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면서 속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물었다.
“저는 나으리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일전에 문 앞에서 나리가 왔다 갔다 하시는 걸 보았어요. 그때 저를 보시더니 손짓발짓 해가며 말씀을 하시길래 저는 뒤에서 동생들과 몰래 웃었어요. 오늘은 이렇게 정성스런 초대를 받아서 왔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쳐다만 보시니 아무래도 뭔가 주저하시는 일이 있으신 것 같아요. 무슨 사연이 있는 거죠?”
요을은 말을 얼버무리며 속 시원하게 말해주질 않았다. 정월아는 손님을 접대하는 데 익숙한지라 매우 약삭빨라 이런 상황을 보고는 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계속해서 캐물었다. 그러자 요을은 이렇게 말했다.
“말하자면 기니까 침상에 올라가 이야기하지.”
두 사람은 각자 정리를 하고 침상에 올라 한차례 운우지정을 나눴다. 그리고 월아가 다시 앞서 말했던 화제를 끄집어내자 요을은 그녀에게 말해 줄 수밖에 없었다.
“집안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여차여차 해서 그쪽이 매우 닮은 걸 보고 당신을 청하는 것처럼 해서 확실히 알아보려 한 것인데 동생이 아닐 줄은 몰랐소.”
“정말로 닮았어요?”
“행동거지나 겉모습은 전혀 틀림이 없는데 표정이 조금 달라. 친가족이 아니라면 하루 종일 바로 앞에서 애써 잘 살펴야 겨우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아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목소리가 달랐기에 망정이지 나조차도 방금 전까지 잘못 알았다니까.”
“그렇게 닮았다면 제가 당신의 누이동생을 하면 되잖아요?”
“또 농담이군.”
“농담이 아녜요. 나하고 잘 상의를 해 봐요. 당신네 집에서 동생이 없어져서 송사에 걸리고 아직 해결이 되지 않은 걸 보면, 동생은 틀림없이 어느 관가에 살고 있을 거예요. 저는 이 지방의 양가집 딸이었는데 강수재(姜秀才)라는 사람의 첩이 되었었어요. 그런데 큰마님이 용납하질 않았고, 나중에는 강수재마저도 재물에 눈이 어두워 은혜를 저버리고 저를 이곳 정(鄭) 할멈네다 팔아 버렸어요. 그곳 포주 년놈들이 잘하든 못하든 걸핏하면 때려서 저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 마침 도망갈 계책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신이 지금 저를 잃어버린 여동생으로 인정해주고 제가 당신을 오빠로 인정해서 둘이서 짜가지고 관아에다 고소를 하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 거예요. 그러면 제 몸도 자유로워져서 원수를 갚을 수도 있고, 당신네 집에 가서 당신 동생 노릇을 하면 송사도 잘 마무리될 거예요. 정말 완벽한 생각 아니에요?”
“그렇긴 하네. 근데 목소리가 너무 달라서 일단 우리 집에 가서 동생으로 인정한다 해도 친척들까지 모두 알아야 진짜 같을 텐데, 그게 좀 걸려.”
“사람들은 생김새만 따져요. 그리고 목소리를 그녀한테 맞게 바꾼다고 해도 어떻게 똑같게 할 수 있겠어요? 당신 동생은 잃어버린 지 두 해나 됐으니 만약 정말로 구주에 있었다면 저하고 똑같은 사투리를 쓰지 않으리란 법도 없어요. 친척들은 당신이 나에게 가르쳐 주면 되고요. 그리고 당신은 일을 다시 시작하고 그러면서 송사 결과를 기다리는 거예요. 시간은 많으니까 당신과 계속 같이 있으면서 말씨는 좀 배워서 고칠 수 있을 거고 집안일도 점차 배우면서 익숙해질 텐데 뭐가 어렵겠어요?”
요을도 마음속으로 집안의 송사를 마무리 짓는 것이 급했고, 또 월아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월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는 체포문서를 지니고 있으니 관아에 고발만 하면 너를 빼내는 건 어렵지 않아. 다만 네가 끝까지 내 누이동생이라고 해야지 차질이 생기면 안돼.”
“저도 제 자신이 이곳을 벗어나길 바라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말을 번복하겠어요?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당신네 매부는 어떤 사람이죠? 제가 그 사람하고 살 수 있을까요?”
“내 매부는 객상인 데다 젊고 성실해서 당신이 함께 살아도 좋을 거야.”
“하긴 그가 어떻다 해도 기생질이나 하는 것 보단 낫겠죠. 게다가 어엿한 부인이니 전에 첩으로 있었던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저로서는 밑지는 건 없겠네요.”
요을은 또 그녀와 이렇게 맹세를 했다.
“두 사람은 한마음으로 이 일을 행하되 서로 배신하지 않는다. 만약 비밀을 누설하는 자가 있다면 천지신명께서 죽음을 내리실 것이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서 기분이 들떠 또 한 차례 일을 치르고는 서로 끌어안고 날이 밝도록 잤다. 요을은 일어나서 머리도 빗지 않고 주소계를 찾으러 가서 그에게조차 거짓말로 이렇게 말했다.
“정말 내 동생인데 이제 어떡하죠?”
“기생집은 못돼먹어서 사사로이 몸값을 치러주겠다고 하면 틀림없이 안 된다고 할 거야. 그러니 내가 가서 이곳에 있는 고향사람 십여 명을 모아서 소장을 하나 만들어 태수한테 바치겠네. 일단 사람이 많으면 유리한 데다 자네는 휴녕현에서 발급한 수배 문서를 가지고 있으니 효과가 있을 거야. 그러니 걔를 빼내는 건 시간문제야. 다만 자네가 은자 몇 냥 더 줘 보내서 그 애한테 자네 거처에서 며칠 더 머물러 있으라고 하게. 이렇게 해서 의심하지 않게 만들어 놓으면 우리가 일하기가 수월해질 걸세.”
요을은 그의 말을 그대로 따라 적절히 처리했고, 주소계는 휘주 사람 한 무리를 모아 요을과 함께 부(府) 관아로 가서 사건의 전말을 모두 고하였다. 요을은 또 수배 문서를 그 자리에서 증거로 제시하였다. 태수는 즉시 문서에 서명을 하고 정가(鄭家) 포주 내외를 모두 체포해오도록 했다. 정월아 역시 관아에 와서 요을을 오빠라고 인정하고, 요을도 정월아가 누이동생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 휘주사람들 가운데서도 주소계 말고도 요적주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일제히 “맞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기부(妓夫)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끌려왔으므로 어리둥절하여 소리소리 질러댔다. 그러자 태수는 그저 따귀를 쳐주라고 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또 다그쳐 물었다.
“어디서 납치해 왔느냐?”
기둥서방은 감히 속이지 못하고 털어놓았다.
“실은 강수재의 첩이었는데, 제가 은자 여든 냥을 주고 데리고 왔습니다. 하지만 결코 납치한 건 아닙니다.”
태수는 다시 강수재를 데리고 오게 했으나, 강수재는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숨어서 나타나질 않았다. 그리하여 태수는 요을로 하여금 기부에게 은자 사십 냥을 몸값으로 주고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판결을 내렸다. 그 기부는 양가집 규수를 사다가 창기로 만들었으므로 그 마땅한 죗값을 받게 되었고, 강수재 역시 그 자격이 박탈되었다. 이렇게 해서 정월아는 일단 마음속의 원한을 다 풀게 되었다. 요을은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데리고 거처로 돌아와 관아에서 문서가 발급되기를 기다렸다가 몸값을 납부하고 자질구레하게 쓸 것들을 모두 준비한 후 길을 떠났다. 가는 동안은 정월아와 잠자리를 같이 했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남매 사이라고 하고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부부처럼 지냈다. 요을은 월아와 베갯머리를 맞대고 속닥거리면서, 말을 하는 것이며 여러 가지 사전지식에 대해서 모두 꼼꼼하게 가르쳐 주었다.
길을 떠난 지 하루가 못되어 손전(蓀田)에 가까이 이르렀는데, 어떤 사람이 그들 남매가 오는 것을 보더니 손뼉을 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유, 잘됐네. 그놈의 송사가 이젠 끝나겠네.”
또 어떤 이가 그들보다 먼저 요을의 집으로 가서 소식을 알려, 요을의 부모가 모두 문밖으로 맞으러 나왔다. 정월아는 마치 알아보는 듯하는 체하며 기세 좋게 문을 들어서며 아버지 어머니 하고 불렀는데, 이게 다 요을이 가르쳐 준 덕분이었다. 게다가 유곽 출신이라 눈치가 빨라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요공이
“얘야 그 동안 어딜 갔었냐? 애비 속을 이렇게 태우다니.”
라고 하자 월아는 엉엉 우는 체하며 어쩔 수 없이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 동안 평안하셨어요?”
요공은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듣고는
“두 해 동안 나가있더니 목소리까지 변했구나.”
하고 말했다. 요적주의 모친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두어 번 만져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손톱이 많이 길었구나. 떠날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러고는 모두들 한바탕 곡을 했지만, 진실을 아는 것은 요을과 정월아뿐이었다. 요공은 이태 동안 송사를 겪으면서 진절머리가 났던 터라, 딸이 돌아와 마음속의 큰 짐 하나를 덜게 되었으니 자세히 따지고 들 리가 없었다. 게다가 너무도 닮았으니 전혀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의 일에 대해서는 요공도 이미 그녀가 유곽에서 몸값을 내고 돌아온 것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자세히 묻기도 뭣했던 것이다. 그럭저럭 다음날이 되자 아들을 불러 누이동생과 현 관아에 가보도록 했다. 지현이 당상에 오르자 사람들은 이번 일에 대해서 모두 말해 주었다. 지현은 2년 동안 겪어오면서 이미 깨달은 바가 있어 정월아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를 납치해 간 자가 어떤 사람이었더냐?”
“이름을 모르는 남자이온데 밑도 끝도 없이 강제로 저를 구주의 강수재에게 팔았습니다. 강수재가 저를 다시 팔았기 때문에 처음에 납치했던 자는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대답하자 지현은 사건이 다른 성(省)에 속해 있는 구주에서 일어나 일을 크게 벌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그냥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반갑과 그의 부모를 데려오도록 명하였다.
반공과 반씨 부인은 관아에 와서 가짜 적주를 보고
“아이고 우리 며느리! 이렇게 오랫동안 어딜 갔었냐?”
라고 하고, 반갑도
“다행이야! 이렇게 다시 만나는 날이 오다니.”
라고 말하며 모두 확인을 마치고는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아문을 나서면서 양가의 부모는 각자 사죄를 하고 잘못을 인정하며 이제야 일이 완전히 끝났다고들 하였다.
그런데 하룻밤이 지나고 이튿날 이지현은 당상에 올라 막 반갑의 처와 관련된 문건들을 말소하려 하는데, 반갑이 또 와서 이렇게 고하는 것이었다.
“어제 데리고 간 사람은 진짜 처가 아닙니다.”
지현은 대노하여
“교활한 자식! 네가 처가를 연루케 한 것으로 이미 족할 것이어늘, 어찌 아직도 그만두려 하질 않는단 말이냐?”
하고 소리치고는 끌어다 곤장 열 대를 때리도록 호령하였다. 그러자 반갑은 그저 억울하다고 소리칠 뿐이었다. 이에 지현은 이렇게 물었다.
“구주의 공문에 명백히 적혀있고 네 처남이 직접 데리고 간 데다, 네 장인과 장모도 확인을 했고 네 부모와 네놈도 그 자리에서 확인을 하고 데리고 갔거늘 어찌 또 토를 다는 것이냐?”
“소인이 소송을 건 것은 단지 제 처를 찾으려 했던 것이지 다른 사람의 처를 원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 분명히 소인의 처가 아닌 이상 소인도 그녀를 받아들이기가 뭣하고 나으리께서도 저에게 억지로 받아들이라고 하실 수는 없을 겁니다. 만약 제가 꼭 가짜를 진짜로 여겨야 한다면 원컨대 소인은 아내를 원치 않겠습니다.”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더냐?”
“생김새는 퍽이나 닮았습니다만, 저와 함께 지내는 동안 뭔가 상당히 다른 구석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라! 기생 노릇을 했던 사람이 양가집 규수였을 때와 같겠느냐?”
“나으리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부부간에 늘 하는 사사로운 말조차 한마디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신체의 은밀한 부분에서도 많이 다릅니다. 소인 자신은 심적으로 분명히 알지만, 나으리께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습니다. 만약 정말로 제 아내라면 소인과 그녀가 부부생활 겨우 두 달 만에 헤어져서 보고 싶어 안달이었는데 설마 가짜라고 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겠습니까? 하늘같은 나으리께서 자세히 살피시어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시기 바라나이다.”
지현은 그가 이렇게 사리에 맞게 말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지만, 또 한편으로는 잘못 판결했다는 것을 자인할 수가 없어 몰래 반갑에게 이렇게 분부했다.
“너는 잠시 자중하면서 성급하게 굴지 말아라. 부모나 친척들 앞에서도 대충 얼버무리고 사실을 말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 다 방법이 있으니까.”
이지현은 관련 담당자에게 다음과 같이 공고문을 써서 도처에 붙이도록 하였다.
‘요적주는 모월 모일에 이미 찾아 관아에 와서 두 집안이 각기 소송을 취하하였으니 다시 고소할 수 없다.’
그런 후 자신은 비밀리에 큰상을 내걸고 십여 명의 나졸을 보내 사방을 수색하여 만약 방문을 보고 뭔가 동정이 있으면 곧 자세히 정탐해서 잡아와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쪽에서 정탐하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다시 요적주 이야기를 해보자. 요적주와 오대랑이 함께 지낸 지 두 해가 지나면서 오대랑의 집에서 약간 눈치를 채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를 마음대로 나다니게 놔두려 하질 않아 점차 그의 발길도 뜸해지게 되었다. 적주는 곁에 시중을 들 하녀가 필요해 오대랑에게 말해서 다시 왕석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왕석은 납치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었으니 돈을 내서 사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 꾀를 생각해 내서 또 하나를 납치해 오려고 하였다. 마침 일전에 흡현(歙縣) 왕여난(汪汝鸞)의 집 하녀 하나가 늘 냇가에 와서 빨래를 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점찍어놓은 터였다. 하루는 왕석이 밖에서 길을 가다가 현에서 이미 적주를 찾아냈다고 공고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급히 돌아와 왕할멈에게 말해 주었다.
“누가 대신 들어갔는지 우리 그년은 인제 확실히 우리 게 됐어요.”
왕할멈은 믿지 않고 직접 눈으로 사실을 확인해야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함께 현청 앞에 가서 방문을 보았다. 왕석은 손짓발짓 해가며 똑똑히 짚어가며 왕할멈에게 들려주었는데, 옆에 있던 나졸이 그것을 눈여겨보다가 그들을 미행했다. 그들은 조용한 곳으로 가더니 둘이서 몰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잘됐어. 이젠 편히 잘 수 있겠어.”
이때 갑자기 그 나졸이 뛰어나와 소리쳤다.
“너희들 잘 하는 짓이다! 지금 이미 탄로가 났으니 꼼짝 말아라.”
왕석은 놀라 허둥대며 이렇게 말했다.
“괜히 겁주지 마시고 잠시 주막에 가서 좀 앉으시지요.”
그리하여 왕할멈과 함께 나졸을 청하여 주막에 가서 술을 마셨다. 왕석은 음식을 주문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그 길로 도망쳐 왕할멈과 나졸만 달랑 남게 되었다. 한참 앉아 있으려니 술도 안주도 나오지 않아, 물으러 갔을 때는 왕석은 이미 도망한 지 오래였다. 나졸이 곧장 왕할멈을 포박하고는
“넌 나와 관가로 가야겠다.”
라고 말하자, 왕할멈은 꿇어앉아 이렇게 말했다.
“나으리 노여움을 푸시고 이 늙은이를 따라 저희 집에 가시면 제가 사례금을 드리겠습니다.”
나졸은 그저 그들의 행적을 보니 수상쩍어 몇 마디 을러댔던 것이지 사실은 무슨 연고가 있는지 알지 못하였기에, 안타깝게도 마음이 약해져 엉뚱한 욕심을 드러내게 되었다.나졸은 뭔가 짭짤한 게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왕할멈을 풀어주지 않았다. 왕할멈을 따라 왕석의 집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니 한 부인이 나와 문을 열었는데, 나졸은 그녀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아니 이건 얼마 전 구주에서 속량해 데리고 온 부인이잖아?”
그리고는 불현듯
‘틀림없이 이게 진짜 요적주일 거야.’
라고 떠올렸지만, 말은 하지 않고 그냥 차만 마시고 왕할멈에게서 술값을 받고 그만두었다. 왕할멈은 무사히 지나갔다고 생각하고는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이튿날 나졸은 결국 현 아문에 가서 신고를 했다. 지현은 나졸 여나문 명을 더 보내어 속히 잡아들이라고 명하였다. 나졸들은 사나운 맹수처럼 왕석의 집으로 달려가 문 앞에서 한 차례 고함을 치고 쳐들어갔다. 왕할멈은 초초해진 나머지 들보에 목을 매달았다. 그리하여 나졸들은 요적주를 붙잡아 관아로 데리고 갔다. 지현은 그녀를 보고
“바로 옛날 그 여인이다.”
하고는 다시 첨령(簽令)을 날려 반갑과 그의 아내를 불러오게 하였다. 가짜 요적주도 와서 함께 관아에 있는데 정말로 똑같이 생긴 것이었다. 지현은 분간할 수가 없어 반갑에게 스스로 알아내게 하였다. 반갑은 물론 확실히 알고 있었으므로 진짜 적주와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지현은 진짜 적주를 불러다 심문하여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진짜 적주는 왕석에게 사기 당한 사연을 처음부터 빠짐없이 모두 자백하였다. 그러자 지현은 다시 이렇게 물었다.
“너를 간음한 자는 없었더냐?”
적주의 마음속에는 오대랑이 맴돌았지만 이름을 말하지는 않고 그냥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지현이 다시 가짜 적주를 부르자 그녀는 이렇게 진술했다.
“제 이름은 정월아인데, 저는 사사로운 원수를 갚으려 했고 요을은 집안의 송사를 마무리지으려 하던 차에 그의 여동생과 외모가 비슷하여 서로 상의해서 이 일을 꾸몄습니다.”
지현은 왕석을 잡아오게 했으나 이미 도망쳐, 이번 사건에 관해 상부로 올리는 공문을 작성하고 서류를 갖춰 범인들을 부로 압송하게 하였다.
한편 왕석은 주막에서 도망쳐 나온 후 한 패인 정금(程金)을 만나 함께 흡현으로 갔다. 거기서 왕여난 집의 하녀가 냇가에서 발싸개를 빨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녀를 붙들고
“넌 우리 집 하녀인데 도망쳐 나와 여기 있구나!”
하고는 발싸개를 빼앗은 후 그녀를 묶어 도망쳐 뗏목에 태우려 하였다. 그런데 그 하녀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왕석이 소매로 그녀의 입을 막았으나 하녀는 더욱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자 정금이 목을 졸랐다. 그런데 너무 힘껏 졸라 숨이 통하지 않게 되어 하녀는 금세 죽고 말았다. 그래서 그 지방 사람이 몰려와 두 사람을 잡아다가 현 아문에 넘겼다. 흡현의 방지현(方知縣)은 정금에게 교수형을 선고하였고, 왕석은 충군(充軍)토록 하여 부로 압송시켰다. 그런데 부에는 마침 적주도 함께 압송돼 와있었기로 같이 재판을 받을 때 진짜 적주는
“이거 왕석 아니야?”
하고 소리쳤다. 부의 태수는 양(梁)씨 성을 가진 매우 공명정대한 사람이라 두 문건을 보더니 모두 왕석 때문이었음을 알고는 대노하여 소리쳤다.
“왕석은 주모자이거늘 어찌 충군으로 끝난단 말이냐?”
그리고는 노비들에게 명하여 곤장 60대를 치자 왕석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였다. 진짜 적주는 본래 남편의 집으로 돌려보내고 가짜 적주는 관기(官妓)로 있게 하였으며, 요을은 가짜를 진짜로 속이고 관권에 기대 사람을 유괴하였으므로 역시 충군죄를 물었다. 단지 오대랑만은 발이 넓은 데다 일이 생긴 것을 알고 아래위로 손을 써서 그의 이름이 새나가지 않았던 까닭에 연루되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갔다. 반갑은 요적주를 데리고 와서 예전처럼 함께 살았다. 요을은 복역할 곳이 정해져 충군하러 보내지게 되었다. 배우자도 함께 압송해 가도록 하였으나, 요을은 아직 장가도 들지 못한 형편이었다. 정월아는 그 사실을 알고 엉엉 울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몸을 빼내서 원한을 풀려고 그런 계책을 만들어 낸 것인데, 도리어 요을이 피해를 입게 되다니요. 지금 저는 죽어도 그를 따라갈 거예요. 그래야 억울하지나 않지요.”
요공은 속으로 차마 아들을 떠나보낼 수가 없었는데, 이 말을 듣고는 곧 돈을 써서 우선 정월아를 불러낸 다음 신분을 속여 그녀의 몸값을 지불하고 빼내서는 성을 바꾸어 아들을 따라 군처(軍妻)로 함께 가도록 하였다. 이들은 후에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결국 부부가 되었다. 이 역시 정월아에게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어 올케와 시누이가 결국 서로 닮은꼴이 된 것인데, 휘주에서는 지금까지 웃음거리로 전해진다.
똑같이 생긴 양가집 규수가 기녀가 되더니, 다시 똑같이 생긴 기녀가 양가집 규수가 되었네. 얼굴 생김 과연 서로 닮아 관상술로 봐도 틀림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