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백거이白居易 시원한 초가을을 반기며新秋喜凉

시원한 초가을을 반기며新秋喜凉/당唐 백거이白居易

過得炎蒸月 무더운 여름철을 지나가니
尤宜老病身 늙고 병든 이 몸에 참 좋네
衣裳朝不潤 의복은 아침에 윤나지 않고
枕簟夜相親 대자리는 밤에 자기 편하네
樓月纖纖早 누각 위에 초승달 일찍 뜨고
波風嫋嫋新 물결 위 가을바람 솔솔 부네
光陰與時節 세월 따라 계절도 변하나니
先感是詩人 먼저 느끼는 사람 시인이네

이 시는 834년 백거이가 63세로 낙양에서 태자빈객(太子賓客)이라는 한직에 있을 때 지은 시이다. 830년 12월 28일부터 맡았던 하남 윤(河南尹)의 중책을 833년 4월 25일에 벗어버렸으니 이즈음은 아주 한가한 때라고 할 수 있다.

늙은 나이라 초가을이 와서 몸으로 그 날씨의 변화를 체감하는 기쁨이 잘 나타나 있다. 어제와 오늘 아침에 보니 이제 가을 기운이 나는 것 같은데 지금 이맘때 아주 잘 맞는 시로 보인다.

의상에 윤이 난다는 것은 습기를 머금었다는 말이다. 여름에 습기가 많으니 아침인데도 옷에 습기가 차 번들거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비단옷이라 그런 모양이다. 대자리가 친(親)하다는 말은 그 자리가 눅눅하거나 불편하지 않고 아주 보송보송하고 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각 위에 달은 저녁 일찍 가느다랗게 하늘에 뜨고 물결을 스치는 바람은 새롭게 솔솔 불어온다. 초가을의 초승달과 가을 바람을 묘사하였다이 말에 시인의 기쁨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예전에 민음사 시인 선집을 보면 책 표지의 뒷면에 『오늘의 시인 총서』 발간의 변이라 하여 이런 말이 있었다.

“문학이 그것을 산출케 한 사회의 정신적 모습을 가장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면, 시는 그 문학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性感帶)를 이룬다.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한 사회의 이념과 풍속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개인의 창조물 속에서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이해하는 것이 지식인들의 중요한 작업이 되어 있는 오늘날, 시인들의 창조적 자기 표출을 예리하게 감득하지 못하는 한, 그것도 한낱 도로에 그칠 가능성을 갖는다.”

이 말은 시인이 인문학자나 사회과학자와 달리 직관적으로 그 사회의 모순을 가장 예민하게 먼저 느끼고 말한다는 의미이다. 지금 백거이는 시인이 계절을 가장 먼저 느낀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사회의 문제를 예민하게 느끼는 것과 맥락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남들보다 먼저 감지한다는 면에서는 통한다.

실제로 한시를 많이 접하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매우 세밀하게 알게 되는 면이 있다. 계절뿐이 아니라 수목의 이름이나 생태적 특성도 더 잘 알게 된다. 나아가 시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의 제도, 언어, 인물, 풍속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점점 세밀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받게 되고, 또 알아가게 되니, 결국 한시는 그 창작물이 탄생 된 사회와 인간의 창과 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시는 그 형식과 구성, 기교가 표면적으로는 많은 변화가 있지만, 그 근본 원리는 고금과 동서에 서로 통하는 듯도 하다.

趙伯駒, <江山秋色圖>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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