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하가 출사표를 발견하다 4
이만은 아주 씩씩거리며 대청으로 들어갔다. 대청 앞 가림벽을 힘껏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심소하, 그래 어디를 도망가겠다는 거냐?”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만이 여러 차례 소리를 질러대니 안에서 나이 어린 가동 하나가 나와서 짜증을 내었다.
“아니 문지기는 어디 갔기에 이렇게 아무나 들여보내서 행패를 부리게 만들어!”
이만이 그 가동에게 가서 뭔가 물어보려는데 그 가동은 목을 쏙 빼고 가림벽 안쪽을 바라보더니 서쪽으로 가버렸다. 이만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 서재가 서쪽에 있는 모양이구먼. 그럼 일단 내가 직접 가보지 뭐. 지금 내가 이것저것 따질 계제야!”
이만은 대청 뒤를 돌아 서쪽 방향을 잡아갔다. 그러고 보니 긴 복도가 연결되어 있다. 보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라 이만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보이나니 깊숙이 안채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고 수많은 방문들이 이곳저곳에 나 있으며 아낙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만이 더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하고 갔던 길을 되짚어 대청으로 돌아오는데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왔다. 이만이 대문 쪽으로 다가가보니 장천이 이만을 찾아왔다가 이만이 보이지 않자 문지기와 입씨름을 심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장천은 이만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욕을 해대기 시작하였다.
“잘한다, 임마! 그래 술 얻어먹고 밥 얻어먹는 데 정신 팔려서 할 일을 팽개쳐두다니! 그래 아침 아홉 시도 안 돼서 성문 안에 들어가 놓고는 지금은 다섯 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한가롭게 여기서 이렇게 놀고 자빠졌으니 언제 범인을 데리고 출발할 거냐고?”
이만이 대답하였다.
“술은 무슨 술, 밥은 무슨 밥? 지금 그 잘난 범인 코빼기도 뵈지 않는구먼!”
“아니 너랑 같이 성안으로 들어갔었잖아?”
“아니, 내가 잠시 측간에 간 사이에 그 놈이 내쳐 앞서 달려가 버렸는데 내가 아무리 그 뒤를 쫓아가려고 해도 잡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 내가 곧장 여기까지 달려와 문지기한테 흰옷 입고 찾아온 남자가 있었냐고 물으니 그 남자가 서재에서 자기 나리랑 점심을 먹고 있다대. 그래서 아 그놈이 그놈인가 보다 생각하고 기다리는데도 여태 나오질 않는 거라. 문지기한테 안에 들어가 한 번 알아봐달라고 해도 꿈쩍도 안 하고 젠장, 아직까지 물 한잔도 못 얻어먹었다고. 그래 네가 잠시 여기서 좀 기다리고 있으라고. 나는 객점에 가서 요기 좀 하고 돌아올게.”
“아니 어떻게 일을 이따위로 할 수가 있어. 그 범인이 어떤 범인인지 알고 혼자서 가게 내버려둔 거야? 그 놈이 서재에 들어간다고 하면 같이 따라 들어갔어야지. 지금 서재에 있는 놈이 그놈인지 아닌지는 또 어떻게 알고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입을 놀려! 하여간 지금 이 사단은 네 책임이지, 내 책임은 아니라고.”
말을 마치고 장천이 횅하게 자리를 뜨니 이만이 황급히 뒤쫓아 가 장천을 붙잡아 세워 놓고는 말하였다.
“아니 저 안에 있는 게 확실하다니까. 어디 다른 데 갈 데가 없다고. 우리가 여기서 같이 그놈한테 어서
나오라고 재촉하는 게 낫다니까. 너는 밥도 배불리 먹어놓고는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렇게 잽싸게 가는 거야?”
“그놈 첩이 있는 곳에 가봐야지. 내가 객점 주인한테 단단히 일러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맘이 안 놓여. 그년은 우리가 심소하를 다시 잡아 올릴 수 있는 낚싯줄이라고. 그년이 있으면 아마 심소하도 다시 오지 않고는 못 배길 거야.”
“하긴 네 말도 일리가 있네.”
장천은 곧바로 먼저 객점으로 달려갔다.
이만이 밥도 못 먹고 기다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해는 이제 서산에 걸리고 이만의 뱃가죽은 아예 등에 붙을 지경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근처에 간식거리를 파는 곳이 있는지라 저고리를 벗어서 전당포에 맡기고 구운 빵을 사 먹으러 갔다. 잠시 후 문고리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만이 황급히 달려와 보니 풍주사 집의 대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이만이 중얼거렸다.
“내가 평생 관리 생활하면서 이렇게 어이없고 화나는 일은 처음이네. 아니 일개 주사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문 앞에서부터 이렇게 위세를 떨어! 그리고 그놈의 심소하라는 놈은 또 뭐야. 처랑 짐이랑 다 객점에 있으니 여기서 하루 잘 거면 무슨 연락이도 해줘야 할 거 아냐. 기왕 이렇게 된 거 처마 밑에서라도 하룻밤 지내고 내일 아침 말이 좀 통하는 집사라도 나오면 새로 이야기 좀 해봐야지.”
때는 바야흐로 10월, 비록 추위가 아직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한밤중의 바람은 옷깃을 파고들어 사람을 오슬오슬 떨게 하였다.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옷까지 다 젖으니 사람 신세가 참 처량하기도 하여라 날이 밝을 무렵 비도 그쳤다. 장천이 다시 나타났다. 사실 문씨가 장천에게 어서 자기 남편있는 곳으로 가보라고 보챘기에 장천이 이렇게 다시 나타난 것이다. 공문서를 들고 왔으니 그걸 믿고 이만과 장천은 그냥 바로 문을 밀쳐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호들갑스럽게 놀라며 마구 소리를 질렀다. 문지기가 어떻게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집 안에 있는 남녀노소가 모두 몰려와 모두들 한 마디씩 해대니 무슨 난리라도 난 것 같았다. 길 가던 사람도 풍주사 댁에서 무슨 일이 났다 보다며 문가에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이런 소란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인자하며 의기로우며 부친상을 당하여 집에 와 있던 풍주사가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 풍주사의 모습이 어떠하였던고?
치자꽃 마냥 하얗고, 치자꽃 마냥 평평히 겹쳐 접은 상주 두건을 쓰고,
거친 삼베로 뒤집어 접어 바느질한 상복을 입고,
삼베 허리띠를 차고,
짚으로 만든 신발 신었네.
사람들은 어험 하는 기침소리를 듣고선 모두들 “나리 나오셨습니까!”라고 외치더니 양옆으로 도열하였다. 풍주사가 대청에서 나와 물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소란스러운 게냐?”
장천과 이만이 한 발 앞으로 나오며 인사를 올렸다.
“풍주사 나리, 소인들은 선부와 대동을 관할하는 총독의 공문을 받들어 소흥부에서 천자께 죄를 지은 심소하를 압송하다가 나리 댁을 경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가 나리가 바로 자신의 숙부가 되니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감히 막지 못하고 한번 찾아뵈라고 하였습니다. 하여 어제 정오쯤 나리 댁에 도착하였사온데 아직도 나오지 않아 이러다간 일정을 맞추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나리댁 하인들에게 부탁하여도 제 말을 전해드리려 하질 않아 이렇게 직접 말씀드리니 어서 그 자에게 길을 떠나라고 채근하여 주시옵소서.”
말을 마무리하며 장천은 품에서 심소하를 압송하라는 문서와 다른 공문서를 꺼내어 보여드렸다.
풍주사가 받아보더니 물었다.
“이 심소하가 바로 천자호위부대의 문서담당관 심련의 아들 그 심소하인가?”
이만이 대답하였다.
“아, 맞습니다.”
이 말을 들은 풍주사는 두 손으로 두 귀를 감싸고 혀를 내밀며 말했다.
“이 바보 같은 호송원들 같으니라고. 아니 어쩜 그렇게 물정을 몰라! 그 심련은 조정의 중죄인 아냐. 아니 그건 그렇다고 쳐. 그 심련은 엄재상 부자의 원수인데 누가 감히 그런 자의 아들을 집에 들이겠나? 아니 그 심소하란 자가 어제 우리 집에 온 일 자체가 없어. 이러다가 괜히 엉뚱한 말이 관부에 알려지고 엄재상 부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그 화를 어떻게 감당하겠나? 니놈들이 호송을 제대로 못 하였거나 아니면 그 심소하한테서 뇌물을 받아 처먹어 이런 중죄인을 놓쳐 버리고는 괜히 왜 나한테 와서 따지는 건가?”
말을 마치고 풍주사는 하인들에게 저 두 놈들을 당장 내쫓고 문을 잠가버리라고 하였다. 괜히 쓸데없는 일이 일어나 엄재상 부자의 귀에 들어가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호통을 쳤다. 풍주사는 욕하고 호통을 치면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인들은 주인나리 말대로 몇 놈은 밀치고, 몇 놈은 끌어당겨서 장천과 이만을 문밖으로 쫓아내고 문을 닫아버렸다. 문 안쪽에선 하인 놈들이 시끌벅적 떠들고 욕하는 소리가 여전히 새어 나왔다. 장천과 이만은 서로 마주 바라보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장천이 이만을 원망하였다.
“어제 네놈이 그렇게 심소하놈이랑 같이 성안에 들어가겠다고 바득바득 우겼으니 네가 어서 그놈을 찾아내라고.”
“그렇게 원망하지 말라고. 그놈 마누라한테 같이 가보자고. 그놈이 어디로 갔을지 그놈 마누라한테 캐어보고 그런 다음에 뒤쫓아 가면 되잖아.”
“그려, 네 말이 그래도 일리가 있어 보이네. 그놈 마누라가 그놈을 참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어젯밤에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니 마누라가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자지도 않고 밤새 혼자 앉아있더라고. 남편의 행방을 마누라가 모를 리가 없어.”
장천과 이만은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쏜살같이 성을 빠져나와 객점으로 돌아갔다. 한편, 심소하의 둘째 부인 문씨는 호송원 장천과 이만이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서 황망히 달려나와 물었다.
“제 남편은 어찌하여 같이 오지 않는 거죠?”
장천이 이만을 가리키며 대답하였다.
“저놈한테 물어봐.”
이만은 어제 심소하랑 길을 나섰다가 측간에 들르느라 뒤처졌던 일, 풍주사집에 달려갔다가 처음에 이러쿵저러쿵 나중에 이러고저러고 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말해주었다. 장천이 입을 열었다.
“내가 아침부터 밥도 안 먹고 성안에 다녀왔지만 결국 이렇게 속만 답답하고 더부룩해졌다고. 니 남편은
풍주사네 집에 있는 게 아닌 거 같아. 필시 다른 곳으로 간 거야. 설마 마누라한테 어디로 간다고 말을 안했을까? 자 어서 우리들한테 털어놓으라고 우리가 가서 잘 모셔 와야 할 거 아냐!”
장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씨의 두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문씨는 장천과 이만의 옷자락을 잡아 흔들면서 소리쳤다.
“어서, 어서 내 남편을 돌려주라고!”
“아니 네년 남편이 무슨 숙분지 뭔지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해서 우리가 특별히 호의를 베풀어 데려가 준 거 아냐? 이제 남편이 사라졌다고 우리한테 떼를 쓰다니. 여기서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봐야 네년 남편을 찾을 길이 있냐고? 아니 우리한테 남편을 돌려달라니 우리가 네 남편을 숨기기라도 했다는 거냐? 웃기고 자빠졌네.”
장천과 이만은 자신들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던 문씨의 손을 매몰차게 떼 내고 버럭 화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문씨는 밖으로 나가 객점 출입구를 가로막고 발을 동동 구르며 목을 놓아 울었다. 객점 주인이 울음소리를 듣고 황망히 뛰어나와 달랬다. 문씨가 객점주인에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몰라요. 우리 남편이 나이 서른이 되도록 아들이 없어서 저를 첩으로 들였죠. 제가 남편의 첩으로 들어온 지 2년째, 다행히도 지금이 임신 3개월째입니다. 제 남편이 한시도 제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니 제가 남편을 따라 이렇게 먼 길을 나서게 된 겁니다. 우리는 먼 길을 오는 동안 단 하루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데 어제는 제 남편이 노자가 떨어져 가니 숙부를 찾아가 봐야겠다고 하며 저 호송원 이만과 함께 길을 떠났던 겁니다. 그런데 어제 밤이 다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들었어요. 한데 오늘 아침에 저 두 사람만 돌아온 것을 보니 필시 우리 남편을 도중에 어떻게 한 것이 분명해요. 쥔장 나리께서 제 대신 제 남편 좀 찾아주세요.”
객점주인이 대답하였다.
“젊은 낭자가 왜 이리 성질이 급하셔! 저 호송원 나리들이 당신 남편하고 평소에 무슨 원한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무슨 원수가 진 것도 아닌데 무슨 연고로 그렇게 당신 남편을 죽이려 한단 말이요?”
문씨가 울다가 이젠 애절하게 하소연한다.
“쥔장 나리, 몰라서 그렇지 제 남편은 엄씨 부자와 원수가 된 사람이오. 저 두 호송원은 엄씨 부자의 명령을 받고 여기 온 거요. 아 물론 자기들 스스로 나서서 공을 세운 다음 엄씨 부자한테 가서 대가를 요구하려고 하는 수작인지도 모르죠. 하니 설사 제 남편이 혼자서 내빼려고 하여도 함께 따라간 이만이 어찌 가만 놔두었겠습니까? 틀림없이 저놈들이 엄씨 부자에게 잘 보이려고 제 남편을 죽여 놓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지요. 그럼 저는 청상과부가 되어 버린 셈인데 이제 누구를 의지해서 살아간단 말입니까? 저놈들은 사람을 죽인 도적놈들입니다. 쥔장 나리, 저랑 같이 관가에 가서 제가 저의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장천과 이만은 문씨가 울면서 하소연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어떻게든 도중에 말을 자르고 끼어들고 싶었으나 도대체가 그럴 틈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객점 쥔장이 들어보니 문씨의 말이 딴은 일리가 있는지라 장천과 이만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문씨를 불쌍히 여기기 시작하였다.
“여보쇼, 젊은 아낙 당신 말을 들어보니 당신 남편이 꼭 죽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니 며칠만 더 기다려보쇼.”
“쥔장 나리의 말대로 하루 이틀 더 기다려보는 거야 어렵지 않겠습니다만 저놈들을 누가 붙잡아둔단 말입니까? 저놈들이 도망가 버리면 어떡하죠?”
장천이 끼어들었다.
“만약에 우리가 네 남편을 죽이고 도망갈 요량이었다면 우리가 다시 여기를 왜 찾아 오냐?”
“네놈이 내가 아녀자라서 아무런 물정을 모를 줄 알고 여기 와서 나마저도 어떻게 하려는 거 아녀? 어서 제발 사실대로 말해줘. 내 남편의 시체를 어디다 버렸어? 정말 관청에 가서야 입을 열 셈이야?”
객점 쥔장은 문씨가 입에 거품을 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선 더 이상 뭐라 말하지 못하였다. 이러는 동안 객점 주변에는 뭐 좋은 구경 생겼나보다 하고 몰려든 사람이 벌써 4,50명을 넘어섰다. 아낙네가 이렇게 절절하게 이야기하는 걸 듣고는 호송원 장천과 이만을 질책하였다. 모두들 만약 관청에 갈 요량이라면 자기들도 같이 도와주겠노라고 하였다. 문씨는 그들에게 고개숙여 감사하였다.
“여러분 이렇게 저의 억울한 사정을 봐주시고 저의 외롭고 슬픈 사연을 동정해주셔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저 두 놈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저와 같이 저 두 놈을 데리고 관가로 가주셔요.”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들이 도와주리다.”
장천과 이만이 사람들을 헤치고 빠져나가려고 하니 사람들이 막아섰다.
“여보쇼 그렇게 내뺄 필요 없수다. 저 아낙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관가에 가면 다 밝혀질 것 아니요. 만약 당신들이 떳떳하다면 관가에 가는 게 뭐가 두렵겠소이까?”
문씨는 울면서 관가로 걸어갔다. 동네 사람들은 장천과 이만을 에워싸고서 관가로 갔으나 아직 관가는 문을 열지 않았더라. 그날은 마침 아문에서 억울한 일을 들어 처리하는 날이더라. 문씨는 하얀 치마가 너풀거리지 말라고 질끈 동여매고서 아문의 대문을 향하여 냅다 달려갔다. 대문에는 큰 북이 걸려있고 그 옆에 북채를 달아놓았더라. 문씨는 왼손으로 북채를 들고서 있는 힘껏 북을 두드렸다. 북소리가 온천지를 가득 메웠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북소리에 아전들의 정신이 다 나가고 위병들의 귀가 다 떨어질 정도였다. 아전과 위병들이 동시에 달려 나와 문씨를 오랏줄로 묶으며 소리쳤다.
“아이고 이 아낙 참 배짱도 좋네!”
문씨는 바닥에 주저앉아 하늘도 무심하다며 소리를 질렀다. 안에서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들려오면서 바로 대문이 열렸다. 안을 보니 지역의 군사 책임자 왕씨가 아문의 집무소에 앉아 있었다.
“그래 북을 울린 자가 누구인가?”
위병이 문씨를 데리고 들어왔다. 문씨는 울면서 심련 삼부자가 불행하게 목숨을 잃었으며 그나마 하나 남아 있던 남편 심소하가 어제 호송원들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전말을 그 줄거리뿐만 아니라 소상한 속사정까지를 일일이 아뢰었다. 왕씨는 장천과 이만을 불러들여 연유를 물었다. 문씨는 장천과 이만이 한 마디 하면 한 마디 끼어들고 두 마디 하면 두 마디 끼어들었다. 장천과 이만은 도저히 문씨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왕씨는 생각에 잠겼다.
“엄재상 댁은 권세가 막강하니 개인적인 일로 사람을 죽이려 드는 일이 있을 법도 하지 그럼 지금 이 일이 모두 거짓말이라고만 볼 수도 없지 않은가?”
왕씨는 장천과 이만 그리고 문씨를 주로 압송하여 지주가 추가 심문을 하도록 조치하였다. 그곳의 지주는 성은 하씨로, 이 건을 보고받고는 감히 허투루 처리할 수 없어 즉시 객점의 주인을 불러오게 하고 네 사람의 자백을 받아보았다. 문씨는 호송원 두 놈이 자기 남편을 모살하였다고 계속 주장하였다. 이만은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죄수 심소하가 도망쳐버렸다고 주장하였다. 장천과 객점주인은 모두 자기가 보고 들은 대로 자백하였다. 지주는 도저히 판결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하나, 그 부인이 너무도 애절하게 호소하는 것이 그래도 좀 사실과 더 가까워보였다. 하지만 장천과 이만은 그 부인의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지주는 하는 수 없어 네 사람을 모두 하옥시키고 몸소 가마를 타고 풍주사댁을 방문하여 그가 뭐라 하는지 한 번 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풍주사는 하지주가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고서 황망히 맞이하였다. 서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나자 하지주가 심소하의 일을 꺼냈다. 하지주가 말을 꺼내자마자 풍주사는 머리를 감싸 쥐며 입을 열었다.
“그놈은 바로 엄재상의 원수 집안 아뇨! 소인과 비록 같은 해에 과거 급제하였기는 하나 지금은 전혀 왕래가 없소이다. 나리께서는 그런 말씀을 꺼내지도 마십시오. 만약 엄재상 댁에서 이런 일을 알게 된다면 소인에게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풍주사는 말을 마치고 일어나 지주를 향하여 작별인사를 하였다.
“지주 나리께선 처리할 공무가 많으실 것이니 제가 더 이상 붙잡기 어렵겠습니다.”
하지주는 풍주사의 쌀쌀맞은 태도를 보더니 더 이상 뭐 앉아 있기 그러하여 다시 가마를 타고 길을 되짚어왔다. 가마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풍주사가 엄재상 댁이란 말만 듣고도 저렇게 겁을 집어먹는 것을 보면 풍주사가 심소하를 숨겨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호송원 둘에게 모살당하였을지도 모르겠군. 아니면 풍주사집을 찾아갔으나 거절당하여 다른 아는 사람을 찾아갔을지도 모르지.”
하지주는 주 청사로 돌아와 네 사람 그러니까, 문씨, 장천과 이만 그리고 객점주인을 불렀다. 먼저 문씨에게 물었다.
“니 남편은 풍주사 말고 이 근방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
“제 남편은 이 근방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니 남편은 언제 성안으로 들어갔느냐? 장천과 이만이 언제 돌아와 니 남편이 사라졌다고 말해주었느냐?”
“제 남편은 어제 점심도 먹기 전에 갔습니다. 그리고 이만이 제 남편을 감시하느라 같이 갔습니다. 그러다가 오후 세 시가 좀 넘어 장천이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이만과 제 남편한테 어서 길 떠나도록 재촉하러간다며 성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장천이 해 저물녘에야 돌아와서는 ‘내 동료 이만이 니 남편과 함께 풍주사 집에서 오늘 저녁에 잔다네. 내가 내일 아침에 가서 어서 빨리 길을 나서자고 독촉하여야겠어.’ 이렇게 말했습니다요. 오늘 꼭두새벽에 장천이 성안에 들어가더니 이만과 둘이서 돌아오는데 유독 제 남편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저놈들이 제 남편을 모살한 게 아니라면 누가 그랬겠습니까? 만약 제 남편이 풍주사 댁에 있지 않았더라면 이만이 그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고 장천 역시 제 남편의 행적을 좇느라 바빴을 것입니다. 뭐 하러 제 남편이 풍주사 댁에 있다고 말하며 저를 안심시키려 하였겠습니까? 이만과 장천이 미리 약조를 하고는 이만이 밤에 제 남편을 죽이기로 한 것이지요. 오늘 새벽같이 장천이 다시 성안에 들어가 이만과 같이 제 남편의 시체를 묻어버리고는 다시 돌아와 저에게 이러쿵저러쿵 감언이설을 한 거지요. 지혜로우신 나리 제발 굽어 살피시옵소서.”
하지주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그래 네 말이 참으로 그럴듯하도다.”
장천과 이만이 뭔가를 말하려는 순간 하지주가 호통을 쳤다.
“그래 나라의 녹을 먹는 호송원이란 놈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거냐? 니들이 심소하를 모살하였거나 아니면 돈을 받고 풀어주었음이 분명하다. 니놈들이 도대체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냐?”
하지주는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저 장천과 이만에게 곤장 30대를 치라 하니 장천과 이만의 살갗이 다 터져 피가 흥건했다. 장천과 이만은 그렇게 곤장을 맞으면서도 끝끝내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문씨는 옆에 서서 그저 애절하게 울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주는 문씨가 애절하게 우는 소리를 듣고는 마음이 짠하여 마침내 봉을 집어넣어 두 놈의 주리를 틀라 하였다. 하나 심소하를 죽인 일이 없는 장천과 이만이 아무리 고통스럽기로서니 어떻게 하지도 않은 일을 자백할 수 있으랴? 두어 번 연거푸 주리를 틀어도 장천과 이만은 도시 자백을 하지 않았다. 하지주가 다시 또 주리를 틀라 하니 장천과 이만이 사정을 한다.
“저희들은 심소하를 절대 죽이지 않았습니다. 나리 저희들에게 기한을 정해주시고 심소하를 찾아오라 하시면 저희들이 심소하를 다시 찾아와 저 문씨에게 돌려주겠나이다.”
하지주 역시 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지라 일단 장천과 이만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하지주는 문씨를 비구니 암자로 보내어 거기서 지내도록 하였다. 아울러 장천과 이만을 사슬로 묶고 장정 네 명을 붙여 감시하게 한 다음 닷새 기한 안에 심소하를 찾아내도록 하였다. 아울러 객점 주인은 석방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사건 처리 결과를 왕씨에게 알리니 왕씨는 사건 처리 결과에 전적으로 수긍하였다. 장천과 이만은 쇠사슬에 묶였다. 네 명의 장정이 번갈아 그들을 감시하였다. 장정들은 장천과 이만의 품을 뒤져서 노자 몇 푼까지 다 빼앗아버렸다. 그 돈을 술과 안주값으로 쓸 요량이었다. 장정들은 장천과 이만이 지니고 있던 일본도마저 빼앗았다. 역시 술과 안주로 바꿔먹을 요량이 었다. 심소하가 지금은 꼭꼭 숨어버린 마당에 임청주臨淸州가 무슨 작은 동네도 아니고 망망대해와도 같은 그 넓은 곳에서 어찌 쉽게 심소하를 찾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