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 심소하가 출사표를 발견하다沈小霞相會出師表 2

심소하가 출사표를 발견하다 2

한편, 보안주의 관리나 유지들 사이에 심련이 엄씨 부자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이곳까지 유배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관리나 유지들은 모두 심련을 경외하여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자 앞 다퉈 찾아왔다. 그 중에는 쌀을 실어오는 자, 땔감을 실어오는 자, 술과 안주를 마련해오는 자들이 있었다. 또 어떤 자들은 자제들을 보내어 심련에게 가르침을 청하게 하는 자들도 있었다. 심련은 날마다 보안주의 사람들에게 충효에 대하여 강론하고 고래의 충의지사 이야기를 설파하기도 하였다. 나름 힘주어 이야기하는 대목에 이르면 머리가 쭈뼛 서서 관을 뚫고 나올 듯하기도 하며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려치기도 하며, 어떤 때는 비탄에 잠겨 장탄식하기도 하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도 하였다. 보안주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심련의 이야기를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심련이 혹여 엄씨 부자를 도적놈이라 침을 뱉고 욕을 하면 사람들은 모두들 동조하였고 자기들 가운데 동조하지 않는 자들이 있으면 외려 그 자들에게 비겁하고 의롭지 못한 놈이라고 욕하였다. 이런 심련의 강론과 청중들의 반응은 처음에 그저 재미로 시작하였다가 마침내 하나의 전통처럼 되어버렸다. 또한 심련이 문무를 겸비한 것을 알고는 심련을 활쏘기 모임에 초청하기도 하였다.

심련은 지푸라기로 인형을 만들고 그 위에다 천을 덮어씌우고는 각각 ‘당나라의 간신 이임보李林甫’, ‘송나라의 간신 진회秦檜’, ‘명나라의 간신 엄숭嚴嵩’ 이렇게 써놓게 하였다. 그리고는 각각 과녁으로 삼았다. 이임보 과녁을 향해 쏠 때면 “간신 이임보 화살을 받아랏!” 이렇게 외쳤다. 진회, 엄숭의 과녁을 향해 쏠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방 사람들은 성격이 화통한지라 자신들이 이런 식으로 활쏘기를 하면서 엄씨 부자가 알건 말건 상관도 하지 않았다. 옛말에 ‘남이 알까 두려우면 아예 그런 일을 하지를 말라’고 하지 않던가. 세상의 권문세가한테 이런저런 소식을 물어다 주는 입들이 어디 적든가? 심련과 보안주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어울리는 것을 엄씨 부자에게 일러바치는 입이 진즉에 있었던 것이었다.

엄씨 부자는 그 말을 듣고서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심련을 죽여 후환을 없애려고 하였다. 마침 선부宣府와 대동大同을 관할하는 총독자리가 비었는지라 재상 엄숭은 이부에 분부하여 그 자리에 자신의 양아들 양순楊順을 보내게 하였다. 이부는 엄숭의 말대로 시랑侍郎 양순을 선부와 대동을 관할하는 총독에 임명하였다. 양순이 엄숭에게 출발인사를 하러 찾아오니 엄숭은 주위 사람을 물리고는 양순에게 임지에 가거들랑 심련의 허물을 캐내어 보고하도록 당부하였다. 양순은 그저 예예하고 말을 받을 따름이었다. 정말로:

독약을 다 준비하여 놓고 술에 타 넣을 때만 기다리고,
날카로운 검을 마련하여 놓고 손에 들고 휘두를 때만 기다리네.
가련하다, 저 충성스럽고 의로운 심련이여,
아무것도 모른 채 지푸라기 인형을 과녁 삼아 박장대소하고 있다니!

한편, 양순이 임지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대동 타타르 알탄 칸(俺答, Altan Khan)이 군사를 이끌고 응주應州지역을 침공하여 크고 작은 성 40여 개를 연파하고 무수한 백성들을 노예로 잡아갔다. 양순은 알탄 칸을 맞아 싸울 엄두가 도저히 나질 않아서 알탄 칸의 군사들이 물러나기를 기다려 장병들을 파견하여 그 뒤를 쫓는 시늉이나 할 요량이었다. 북을 치고 징을 울리고 깃발을 들고서 포를 쏘아도 그건 다 시늉에 불과할 뿐 적병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적병을 제때에 맞아 싸우지 못하였다는 죄가 무서워 양순은 적을 피해 숨어든 백성들을 색출하여 목을 베어 그게 다 적병의 수급이라고 우겨댔다. 이런 식으로 상부에 보고하느라 당시 무고한 백성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모른다.이 상황을 알게 된 심련은 울화가 치밀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편지를 써서 양순 휘하의 장교에게 양순에게 전달하라고 부탁하였다. 심련이 너무 강직하고 직설적인 것을 잘 알고 있는 그 장교는 편지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몰라 양순에게 전달하기를 거절하였다. 심련은 의관을 정제하고서 직접 군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양순이 나올 때 직접 전달하였다. 양순이 그 편지를 받아보니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였다.

“한 사람의 공명이야 지극히 사소한 것이고, 백성들의 생명은 지극히 중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을 죽여 공명을 이루려 하니 이를 차마 어찌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타타르 오랑캐가 이미 노략질을 그친 마당에 외려 우리 백성들을 도륙하다니요. 이는 정말로 우리 장수의 악독함이 타타르 오랑캐보다 더욱 심한 것입니다.”

아울러 편지 말미에는 시가 한 수 붙어 있었다. 그 시에 이르기를:

백성을 죽여 공훈을 이룬 양 천자에게 보고하다니요?
그 공훈 뒤에 수만 백성들의 해골이 숨겨져 있음을 같이 보고하였던가.
사막에 비바람이 부는 밤,
억울한 혼령이 떨어져간 머리 찾는 곡성이 들리는가.

양순은 이 편지를 보고 대노하여 이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한편 심련은 제문을 지어 문하의 자제들을 대동하고는 하늘을 향하여 억울한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다. 아울러 변방의 노래라는 의미의 「새하음塞下吟」이란 시를 지었다.

봉화가 구름을 뚫고 치솟으니,
변방의 장수는 죽을 힘을 다하는구나.
오랑캐 장수의 목을 베지 아니하고 백성들의 목을 베니,
억울한 피만 날선 검에 묻었도다.

아울러 시 한 수가 더 이어지니:

오랑캐를 피하여 살고자 도망하였더니,
오랑캐를 피하긴 하였으나 산 자를 목 베는 칼은 못 피하였구나.
백성의 머리로 오랑캐 머리를 대신함을 진즉 알았더라면,
오랑캐를 따라나섰을 것을.

양순의 휘하의 장교 가운데에서도 심복인 나개羅鎧가 심련이 지은 제문과 시를 몰래 베껴서 양순에게 바쳤다. 양순이 이걸 보니 더욱 화가 치밀었다. 양순은 첫 번째 시의 몇 글자를 제멋대로 바꿔버렸다. 하여 이렇게 만들었다.

봉화가 구름을 뚫고 치솟으니,
변방의 장수 아무리 애를 써도 헛수고로구나.
오랑캐 장수가 간신배의 목을 베어버린다면,
굳이 천자께 주청하여 탄핵할 일은 없으리라.

양순은 또 밀서를 작성하여 개작한 시와 같이 봉하여서는 나개에게 주어 엄세번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그 밀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심련은 엄재상 부자를 원망하여 은밀히 죽음까지도 함께할 검객들을 모아 복수의 칼을 갈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타타르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때 심련은 시를 지어 오랑캐의 칼을 빌려 간신배를 베어버리고 싶다 하였는 바 그 의도가 심히 불순합니다.”

엄세번은 이 밀서를 보고 대경실색하여 즉시 심복인 어사 노해路楷를 불러 상의하였다. 노해가 엄세번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소인이 비록 재주는 없지만 그곳으로 달려가 나리를 위해 이 건을 해결하겠나이다.”

엄세번은 바로 도찰원에 분부하여 노해를 선부 대동 지역의 순찰사로 파견케 하였다. 노해가 떠나기 직전 엄세번은 이별주를 권하며 이렇게 당부하였다.

“가거든 양순과 협조를 잘하도록 하라. 만약 이 목의 가시 같은 골칫거리를 제거하여 준다면 내가 조정의 높은 관작으로 그대들에게 보답할 것이라. 내가 결코 이 약속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니라.”

며칠 후 노해는 천자의 임명장을 수령하고선 선부로 떠나 마침내 양순을 만났다. 노해는 양순에게 엄세번이 한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달하였다. 양순이 그 말을 듣고선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 역시 이 일 때문에 늘 걱정이 태산입니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를 정도입니다. 하나 그 놈을 처단할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 그게 답답할 따름입니다.”

“우리 함께 노력해봅시다. 첫째는 엄공 부자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기 위함이요. 둘째는 그게 바로 우리의 출셋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양순이 이 말을 듣고서 다시 대답하였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손쓸 만한 일이 있으면 우리 둘이 서로 알려주기로 합시다.”

이날 이들은 이렇게 말을 마치고 헤어졌다.

양순은 노해의 말을 듣고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음 날 아침 집무를 시작하려니 양순의 부관이 달려와 보고하였다.

“울주蔚州의 경비가 요사한 도적 둘을 붙잡아왔습니다. 지금 군문 밖에서 기다리면서 나리의 처분을 바라고 있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 일러라.”

호송원이 머리를 조아리며 문서를 바치니 양순이 문서를 열어보고선 가가대소하였다.

이 두 명의 요사한 도적은 한 녀석은 염호閻浩, 다른 한 놈은 양윤기楊胤夔로서 요망한 술사 소근蕭芹을 추종하는 무리였다. 소근은 백련교의 지도자로 타타르 지역을 출입하면서 향을 피우고 예불을 드려 사람들을 미혹시켰다. 소근은 타타르의 알탄 칸에게 자기는 신비한 마술을 지니고 있어 주문을 외워 사람을 세워놓은 채로 죽일 수 있으며, 주문을 외워 성곽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자랑하였다. 알탄 칸은 우매한지라 소근에게 속아 소근을 국사로 우대하였다. 아울러 소근을 추종하는 무리들 백여 명을 별도의 부대로 편성하였다. 알탄 칸이 몇 차례 중국에 침입할 때 소근의 무리가 길잡이 역할을 담당하였다. 양순의 전임 총독이었던 사시랑史侍郞이 오랑캐 두목 탈탈脫脫에게 통역사를 보내 금은보화를 건네면서 화의를 제안한 바 있었다.

“우리 중국은 그대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고 있소. 우리 중국의 베와 곡식을 그대들의 말을 교환하는 馬市를 열면 전쟁이 그치고 평안이 도래하리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소! 다만 소근의 무리가 중간에서 이간질하여 화의가 성립되지 못할까 걱정이오. 소근은 본디 우리나라에서 떠돌던 무뢰배에 불과한 자로 무슨 기묘한 술법 같은 것은 애당초 없으며 그저 교활하게 그대들을 속여 그대들의 땅을 편취하여 이익이나 꾀하려는 것이오. 그대가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소근에게 그가 자랑하는 술법을 한번 시연하여보라고 하시오. 주문을 외워 사람을 세워놓은 채로 죽일 수 있으며, 주문을 외워 성곽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땐 그에게 후한 상을 내리면 될 것 아니오. 그러나 주문을 외워 사람을 세워놓은 채 죽이는 것을 못하거나 주문을 외워 성곽을 무너뜨리는 것을 못한다면 그가 사기꾼임이 분명하니 그를 묶어 중국으로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소이까? 그럼 우리 중국은 그런 사기꾼을 잡아준 그대 은혜에 후히 보답할 것이오. 마시가 한번 열리면 세세토록 그 이익이 전수될 것이니 재물을 약탈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나을 것이오.”

탈탈은 그 말을 듣고 그럴듯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실을 알탄 칸에게 고하니 알탄 칸 역시 크게 기뻐하였다. 알탄 칸은 소근을 불렀다. 더불어 기마병 천 기를 붙여 소근을 호송하여 같이 도성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알탄 칸은 소근이 자랑했던 그 술법, 즉 주문을 외워 사람 죽이고 성을 허문다는 요술이 사실인지 시험해보도록 하였다. 소근은 이 시험을 죽어도 통과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아는지라 옷을 바꿔 입고 변장하여 밤을 도와 도망하다가 거용관居庸關을 지키던 수비대장의 검문에 걸려 자신의 졸개 교원喬源, 장반융張攀隆 등과 같이 붙잡혀 사시랑의 관아에 끌려왔다. 그들을 심문하니 그들의 잔당이 산서山西, 섬서陝西, 기남畿南 등지에 널리 퍼져 있음을 자백하였다. 그 후로 이곳저곳을 뒤져 잔당을 체포하였으니 오늘 잡혀온 염호, 양윤기 역시 그 소근 잔당 가운데 유명한 지도자였다.

이 둘이 잡혀 오는 것을 보고서 양순은 소근 잔당을 잡았다고 보고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이걸 빌미로 심련을 얽어매어 제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양순은 노해를 자기 안채로 불러 상의하였다.

“다른 거로는 심련을 제거할 수 없을 것이오. 다만 이 백련교 이 건만큼은 성상께서도 격노하실 것이오. 지금 염호, 양윤기 두 사람을 심문한 조서에 심련이란 이름 두 글자를 집어넣기만 하면 되오. 염호, 양윤기 등이 평소에 심련을 사사하였으며 심련은 관직을 잃은 원망에 사로잡혀 염호, 양윤기 등에게 요술을 부리라 선동하고 오랑캐 무리와 결탁하여 역모를 꾀하였노라고 적어놓으면 되오. 천만다행으로 염호, 양윤기 무리가 우리에게 잡혔으니 성상께 아뢰고 심련의 주살하실 것을 간청하여 후환을 제거하도록 합시다. 조서를 보낼 때는 엄재상 부자에게 먼저 보내어 형부에서 이 건을 지체 없이 판결하고 처리하도록 손을 쓰게 해놓으면 심련 저놈은 빠져나갈 길이 없을 것입니다.”

노해가 손뼉을 치며 대답하였다.

“정말 묘책이오, 묘책이고 말고!”

두 사람은 즉시 조서의 내용을 상의하고 더불어 엄씨 부자에게 보내는 사신도 작성하였다. 엄숭은 양순과 노해가 보낸 조서와 사신을 받아들고서는 아들 엄세번에게 형부에 미리 말을 전해두도록 하였다. 형부 상서 허론許論은 능력 없고 나이만 많은 노인네라 엄씨 부자의 분부를 받잡고는 지체 없이 양순, 노해가 올린 조서 내용 그대로 결재하여버렸다. 천자의 비준이 내려졌으니 요망한 무리들은 각 지방 관서에서 지체 없이 처단하라는 내용이었다. 양순에게는 그 아들 가운데 하나를 천자호위군의 장교로 특임될 수 있는 상을 내리고 노해는 특별한 공을 세워 3계급을 특진시키니 서울에 와서 빈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였다.

이야기는 여기서 갈린다. 한편 양순은 조서를 보낸 다음 아무도 몰래 심련을 잡아 하옥시켰다. 당황한 심련의 아내 서씨는 어찌할 줄 몰라 아들 심곤, 심포에게 가석을 모셔와 상의하게 하였다. 가석이 이렇게 말하였다.

“이건 양순, 노해 두 놈이 엄씨 부자를 위해서 원수를 갚아주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다. 기왕에 자네 부친을 하옥시켰으니 무고한 죄를 뒤집어씌울 것이다. 자네들은 어서 멀리 피하도록 하여라. 엄씨 부자의 위세가 좀 수그러들기 전에는 절대 나타나지 마시라. 자네들이 이곳에 머무는 한 양순과 노해는 이 일을 여기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심곤이 대답하였다.

“아버님의 소식도 모르는데 어이 저희만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자네 부친은 이 세상의 내노라하는 권세가를 건드렸으니 목숨을 보전하기 힘들 것이야. 아들이라면 당연히 가문을 이을 것을 생각해야지, 작은 효도에 얽매어 멸문의 화를 자초하려고 하는가? 어서 어머님의 모시고 멀리 도망가 목숨을 부지할 계책을 세워야지. 자네 부친은 내가 사람을 써서 나름 보살필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심곤과 심포는 어머니에게 가석의 말을 전했다. 서부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네 아버지가 무고하게 하옥되었는데 어찌 그냥 두고 떠나가겠느냐? 가석이 비록 우리에게 잘해주시기는하나 그래도 우리 피붙이는 아니지 않느냐? 양순과 노해는 엄씨 부자에게 잘 보이려고 네 아버지와 저렇게 척지고 있는 것이니 그 가족에게까지는 해를 입히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들이 벌을 받을까 두려워 도망가버리면 네 아버지가 죽었을 때 누가 그 유골이라도 수습한단 말이냐! 그럼 너희들은 두고두고 불효자식이라고 욕을 먹을 텐데 어떻게 세상에서 얼굴 들고 살 수 있겠느냐?”

서부인은 말을 마치고 통곡하였다. 두 아들 역시 어머니를 따라 방성대곡하였다. 가석은 서부인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자 함을 알고 애석해하며 돌아갔다.

며칠 지나서 가석이 이리저리 알아보니 양순, 노해는 심련이 백련교당과 패거리를 이뤘다면서 사형에 처하고자 하였다. 심련은 옥중에서도 양순과 노해를 욕하고 꾸짖고 있었다. 양순은 자기 스스로 뒤가 구린 것을 잘 알고 있는지라 어쨌든 바로 심련을 공개적으로 처단하고 일을 끝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심련이 처형당하면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에게 욕하고 따지고 들면 체면을 구길 게 분명하였다. 양순은 옥리에게 심련이 욱중에서 병을 알고 있음을 보고하게 만들었다. 양순은 심련이 병사한 것처럼 꾸며 심련을 살해하였다. 가석이 이 사실을 서부인에게 전달하니 서부인은 아들들의 목을 부여잡고 애달프게 통곡하였다. 다행히도 가석이 아는 사람들 편에 부탁하여 시신 하나를 사서 옥리에게 주고 만약 심련의 목을 효수하여 걸어놓아야 한다면 자기가 구입한 이 시신으로 대체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가석은 심련의 아들들에게 비밀로 하고 자신이 심련의 시신을 수습하여 관을 사고 염을 하고난 다음 빈 땅을 찾아 묘를 썼다. 모든 일을 다 마친 다음에야 가석은 심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자네 부친의 시신은 내가 잘 수습하여 장사하였느니라. 일이 잠잠해지면 내가 그 장소를 자네에게 알려주겠노라. 지금은 자네에게 알려줄 때가 아니니 그리 알라.”

심곤 형제는 가석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다. 가석은 또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어서 이 자리를 떠나 도피할 것을 권하였다. 심곤이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숙부님의 집에서 오랫동안 신세를 지고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다만 어머님께서 일이 가닥이 잡히고 나면 아버님의 유해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하시는지라 아직 떠나고 못하고 있습니다.”

가석이 버럭 화를 내며 말하였다.

“나란 사람은 한번 일을 벌였다 하면 온 정성을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내가 지금 너에게 어서 도피하라고 하는 것도 너희 가문을 보전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지 너희 모자가 우리 집에 머무는 게 불편해서 너희가 떠나가기를 바라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형수님의 의견이 그러하시다면 내가 뭐 재삼재사 강권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일이 좀 있어서 어디를 다녀와야 하니 아마 1년 반 동안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 사이에 어머님을 모시고 잘 지내도록 하여라.” 가석이 바라보니 벽에 심련이 적어 놓은 「전후 출사표」가 붙어 있었다. 가석이 말하였다.

“저 「전후 출사표」를 적은 종이를 떼어 내어 나에게 다오. 내가 기념으로 가져가련다. 나중에 우리가 다시 만나면 이거로 신표로 삼고자 한다.” 심곤은 부친 심련이 적은 「전후 출사표」 각각 한 장을 조심스레 떼어 두 손으로 정성스레 접어 가석에게 건넸다. 가석은 받아서 소매에 넣고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나눴다. 가석은 양순과 노해가 워낙 불량한 놈들이라 심련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자기도 평소 심련과 가깝게 지냈으니 자기에게도 화가 닥칠 것이 분명하여 미리 몸을 피하고자 하였다. 하여 하남 지방의 친척 집에 잠시 몸을 의탁하고자 하였다.

한편, 양순은 자기가 심련을 죽여 공로를 세웠음에도 자기 아들에게 음서로 벼슬자리를 주는 것 정도에서 그치는 것을 보고서 적이 실망하였다. 양순은 노해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엄세번이 나에게 이번 일을 잘 처리하면 조정의 중책을 맡기겠노라 하였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니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소.”

노해가 한참을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심련은 엄씨 부자의 원수 덩어리 아니요. 근데 겨우 그 심련 하나만을 제거하고 그 아들을 그대로 놔두었으니 풀은 베었으되 그 뿌리는 그대로 놔두는 격이라 나중에 다시 싹이 나면 어떡하겠소? 재상 나리께서우리에게 만족하지 못하신 것은 아마도 이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하오.”

양순이 이 말을 듣고 대답하였다.

“만약 그런 이유라면 어려울 게 뭐가 있겠소? 다시 조서를 만들어 보고합시다. 심련이 비록 죄를 받고 죽었으나 그의 아들들 역시 그 일에 가담하였으니 같이 죄를 물어야 하고 가산을 몰수하여야 국법이 엄정함을 사람들이 알아서 비로소 두려워할 것이라고 합시다. 아울러 심련과 같이 지푸라기 인형을 만들어 활쏘기를 하던 몇 놈과 심련에게 집을 빌려주었던 놈을 같이 잡아들여 치죄하면 엄재상 부자의 화가 좀 풀릴 것이니 그 때 우리가 다시 우리 공을 아뢰고 상급을 바라면 우리를 모른 체할 수는 없을 것이오.”

노해가 맞장구쳤다.

“참으로 좋은 계책이외다. 일을 미룰 필요 없이 심련의 가족이 여기 아직 있을 때 바로 일망타진합시다. 한데 그의 아들들이 낌새를 채고 이미 내뺐으면 골치 아픈데.”

양순이 대답하였다.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외다.”

그들은 조서를 써서 조정에 상신하는 한편 편지를 써서 엄재상 집에 보내어 자신들의 의도를 미리 알렸다. 한편 보안주의 지주에게 공문을 보내어 죄인들이 도망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라고 일렀다. 조정에서 조서를 비준하기만 하면 바로 잡아들일 기세였다. 시에 이르기를:

둥지가 깨지면 알이 어이 온전히 배겨낼 수 있으랴,
풀을 없애려면 뿌리까지 뽑으려고 함은 당연지사.
충신이 억울하게 죽임당한 것도 애석한데,
그 가족마저 죽여 권신에게 아부하려 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