齋居재계를 하고 지내며/당唐 백거이白居易
香火多相對 향불을 마주 대하는 날은 많고
葷腥久不嘗 훈채와 날 것 안 먹은 지 오래
黃耆數匙粥 황기죽은 숟갈로 자주 떠먹고
赤箭一甌湯 천마탕은 사발로 한 번 마시네
厚俸將何用 많은 녹봉이 무슨 소용이겠나
閑居不可忘 한가로이 지낼 꿈 잊을 수 없네
明年官滿後 내년 하남 윤 임기를 마친 뒤에
擬買雪堆莊 설퇴장을 매입해 볼 생각을 하네
이 시는 831년 백거이(772~846)가 60세 때 낙양에서 하남 윤(河南尹)을 할 때 지은 시이다.
재계(齋戒)는 제사나 전쟁 등 큰일을 앞두고 있거나 병이 걸렸을 때, 성생활, 음주 등을 삼가면서 행동과 음식을 절제하고 사람도 제한적으로 만나는 등 심신을 정결히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생활을 하며 지내는 것이 재거(齋居)이다.
시 내용을 보면 당시 백거이가 병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 황기는 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데 주로 쓰는 약재이고, 적전(赤箭), 즉 천마는 고혈압이나 중풍 이런 뇌질환에 주로 쓰는 약재이다. 이것으로 보아 당시 백거이는 더위를 먹었거나 머리가 아팠던 것이 아닐까. 192회에 소개한 시 <피서>는 이 시 보다 1년 앞서 지은 시인데 이 시를 보면 어디 나 돌아다닐 기력이 달려 집에 가만히 있었던 것도 같다. 백거이가 이런 병이 걸린 것은 어쩌면 술을 과도하게 마시고 그전 중앙 정계에서 자신의 뜻대로 안 풀린 일이 쌓여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백거이는 실제로 2년 뒤인 833년 62세가 되던 2월에 50일 병가를 낸 데 이어 4월 25일에는 두풍(頭風 고질적인 두통)으로 하남 윤에서 물러나 한직인 태자빈객분사(太子賓客分司)를 제수 받는다.
이런 연유로 향불을 피우고 빌면서 향채나 파, 이런 훈채와 생선이나 짐승의 날고기 등을 먹지 않고 있다. 마지막 2구만 제외하고 모두 대구를 쓰고 있어 중간에 한약을 먹는 대목이 좀 어렵지만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황기는 죽으로 쑤었으니 숟가락으로 여러 번에 걸쳐 나누어 떠먹어야 하고 천마는 탕으로 달였으니 쓴 약이라 한 번에 들이마실 것이다.
마지막에 있는 설퇴장(雪堆莊)은 낙양 남쪽 교외에 있던 장원 이름이다. 백거이가 쓴 <평천의 설씨 집안의 설퇴장에 대해[題平泉薛家雪堆莊]>에 보면, 이 장원에는 괴석과 영천(靈泉)이 있는데 특히 그 샘은 가물 때에는 긴 푸른색의 뱀 같고 물을 뿜을 땐 백설이 쌓인 것 같은데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도 비가 오는 것 같다고 묘사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낙양에서 거리가 멀어 가마를 타고 매일 올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샘이 백설처럼 쌓인다고 해서 장원 이름이 설퇴장인 것이다. 백거이가 자기 몸이 안 좋으니 관직을 그만 두고 이 좋은 장원을 사서 요양을 해 봐야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 시에는 황기 등 한약재가 등장해 여름철 보양식이 떠오르기도 하고 한 시인의 건강에 대한 물질적 정신적 풍속이나 생각이 나와 있어 당시 문인의 구체적인 일상을 살펴볼 수 있다.
365일 한시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