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주의 남루에 올라鄂州南樓書事/송宋 황정견黃庭堅
四顧山光接水光 사방을 둘러보면 산빛 물빛 접하였고
憑欄十里芰荷香 난간 너머 십리 장강 마름과 연꽃 향
清風明月無人管 맑은 바람 밝은 달은 주인이 없으니
並作南樓一味涼 모두 남루에 시원한 풍경이 되어주네
악주(鄂州)는 오늘날 호북성(湖北省)에 이 지명이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남루(南樓)는 오늘날 무한시(武漢市) 남쪽 사산(蛇山) 정상에 있는 누각이며 그 아래 강변에는 황학루가 있다. 이 곳에선 장강이 조망되며 멀리 남쪽 상류에는 동정호가 있다. 이 시는 동일 제목에 4수의 시가 있는데 이 시가 그 첫수이다.
구판본 《천가시》에 이 시를 왕안석의 작품이라 하였는데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의 작품이 분명하다. 다만 제목을 <저물녘 누각에 한가로이 앉아[晩樓閒坐]>라고 한 것은 이 시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어 황정견이 정한 것 보다 나아 보인다. 다만, 황정견이 제목을 저렇게 한 것은 4편을 염두에 둔 것이고 후인이 이렇게 고친 것은 이 단일 작품에 특화하였기 때문이다. 제목에 서사(書事)라 한 것은 ‘누각에 올라 보고 느낀 감상을 적는다.’는 말이니, 번역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잘 번역하는 것이다.
이 시에 마름이 나오는데 요즘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지난번에 무슨 일로 동탄 호수 공원에 갔더니 이 마름이 있어 아주 반가워 조카에게 신이 나서 설명하였다. 한문의 경서나 시에는 마름이 자주 나온다. 사찰 서까래에 찍힌 문양도 이 마름에 기원한 것이고, 우리가 흔히 마름모라고 하는 것은 이 식물의 잎 모양에서 유래하였으며, 한적의 표지에서 능화문이라 하는 것도 이 마름 문양에서 나온 것이다. 마름은 물주머니가 있어 물 위에 떠 있는데 뿌리에 열매가 달린다. 중국의 시골을 여행하다 보면 손이 새까만 농부들이 이 마름 열매를 까서 파는 것을 만나게 된다. 맛이 밤처럼 고소하다. 이 마름 열매의 모서리에는 본래 뿔이 나 있는데 이 모양에서 전쟁 때 적의 전진을 억제하기 위해 뿌려 놓는 마름쇠라는 말이 나왔다.
달 뜬 여름밤에 누각에 오른다. 사방을 둘러보니 모두 물이 아니면 산이다. 밤이라 모두 푸르게만 보인다. 난간 가에서 쳐다보면 10 리에 걸쳐 너른 장강에 온통 마름꽃과 연꽃이 피어 향기가 그윽하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만드는 밝은 달과 시원한 바람은 특별히 관리하는 주인이 없다. 그러다 보니 오늘 이 곳 남루의 특색 있는 아름다운 밤경치를 만들어 나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 소동파의 시 <서호(西湖)>와 <적벽부(赤壁賦)>가 떠오른다. 하늘에 닿는 연잎과 햇빛에 빛나는 연꽃은 낮에 눈으로 보기 좋지만 이처럼 밤 시간은 그 향기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알겠다. 또한 조물주가 주는 무진장한 혜택인 강위에 부는 맑은 바람과 산간에 뜬 밝은 달은 가을도 좋지만 이처럼 여름에도 좋은 줄을 알겠다. 머지않아 연꽃과 마름향이 풍겨오는 여름밤 호수가의 정자에 내가 앉아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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