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 부부 9
“안 돼…… 난 돈을 벌어야 해!”
샤오놘은 컴퓨터 화면의 시간을 보았다. 새벽 2시 반이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레이례가 힘없이 몸을 뒤척이며 그 말을 되풀이해 중얼거리는 것을 보았다. 조금 망설였지만 그래도 레이례를 흔들어 깨웠다. 그녀는 호기심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함께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의 잠꼬대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병에 걸려서 치료비로 돈을 다 날리는 꿈을 꾸었어. 대출도 못 갚고 집도 몰수당해 우리는 길거리로 나앉았어……”
잠에서 깬 레이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직 꿈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는 꿈속의 병과 파산에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상상력도 대단하셔라.”
샤오놘은 조금 우습다는 듯 자기 남편의 혼비백산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절대 병에 걸려서는 안 돼. 당신이랑 메이메이랑 춘상, 저 애들까지 다 먹여 살려야 한다고.”
레이례는 결심이라도 한 듯 또박또박 말했다.
“선배는 진짜 의리가 있어.”
그 말을 했을 때 그녀는 이미 몸을 일으켜 컴퓨터 앞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레이례의 잠꼬대에 벌써 흥미를 잃었다. 촌스러워도 그렇게 촌스러운 꿈이 없었다. 그야말로 낮에 하던 생각이 밤에 고스란히 꿈으로 나타난 것이었으며 그저 위태위태한 생존에 대한 슬픈 노래일 뿐이었다! 하지만 계속 인터넷을 하면서도 그녀는 조금 마음이 어지러웠다. 레이례의 꿈이 머릿속에 파고들어 이상하게 그녀의 생각들과 뒤섞였다.
창밖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건너편 건물의 창들도 하나같이 컴컴했다. 마치 영원히 불이 안 켜질 것처럼 균일한 어둠이었다. 그곳 동쪽 교외는 이미 베드타운이라 불리고 있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내로 출근하는 샐러리맨이었다. 다들 아침에 나가 자신들의 성실한 노동을 번영하는 시내에 바친 뒤, 저녁에 힘들게 먼 길을 달려와 다시 원기를 회복했다. 그래서 그곳은 꼭 군대처럼 불이 일찍 꺼졌다. 열 시만 되면 점차 불이 꺼지기 시작해 열한 시가 넘으면 천지가 다 조용해졌다. 샤오놘은 마치 그 지역의 밤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그 거대한 정적 속에서 홀로 깨어 있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시간에 쫓기는 일 없이, 평생 출근할 필요가 없을 듯한 나날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면 조금 비참하고 구차해질 법도 하건만 샤오놘은 그런 대로 말짱하게 지냈다. 그것은 꿈속에서도 병이 걸릴까, 직장을 잃을까 염려하는 남편이 뒤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결국 최악의 상황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덕분에 그렇게 살 수 있었다.
“선배, 선배가 지켜줘서 나는 직장이 없어도 괴롭지 않은 거야.”
샤오놘은 다시 잠든 레이례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 꿈에서 벗어나 몇 시간을 더 잔 뒤, 레이례는 몸을 뒤척이다가 샤오놘이 자기 옆에 없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벌떡 일어났고 그녀가 아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봐, 벌써 자고 일어난 거야?”
“설마. 당연히 아직 안 잔 거지.”
그녀는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레이례는 장작개비처럼 마른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뭐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그녀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빨리 와봐, 이거 예쁘지 않아?”
샤오놘이 컴퓨터 화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화면에는 기이한 디자인의 양장 한 벌이 떠 있었다. 천이 이리저리 겹쳐진, 어지럽고 도전적인 스타일이었다. 면과 삼베와 또 뭔지 알 수 없는 두세 가지 재료를 결합한 그 옷의 가격은 49위안이었다. 그 복잡한 손품과 해괴한 재료들을 생각하면 과하지 않은 가격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레이례는 아무리 봐도 눈에 거슬렸다. 그는 샤오놘이 왜 밤을 꼴딱 새며 타오바오에서 그런 쓸데없는 물건들을 구경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는 출근도 안 하면서 왜 이런 옷을 입고 싶은 거야? 시내에 나가 돌아다니려고?”
“모르는 소리. 나는 출근을 안 해서 이런 옷을 입고 싶은 거라고!”
샤오놘은 토라져서 한 마디 했다. 그녀는 여전히 화면에서 눈을 못 뗀 채 등 뒤의 남편도, 또 그가 불쾌해하는 것도 무시했다.
“너 정말 조금 심하다. 밤새 잠도 안 자고 말이야.”
“선배가 한밤중에 잠꼬대를 해서 그런 것 아냐. 그것 때문에 잘 마음이 싹 가셨다고!”
샤오놘은 정말로 레이례의 꿈 때문에 잠을 못 잤다. 그의 스트레스가 꿈결에 노출되어 깊은 밤 그녀에게 커다란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그 꿈은 너무나 생생했다. 그는 힘없이 병상에 누워 있고 샤오놘은 울고만 있었으며 시곗바늘 소리가 똑딱똑딱 울리는데 바닥에는 흰 천이 가득 덮여 있었다. 이미 꿈에서 깼는데도 그 스산하고 고통스러운 분위기가 손에 닿을 듯 느껴져서 레이례는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그는 외벌이 가장으로서 어떻게든 버텨내야 했다. 하지만 혹시나 뜻밖의 변고라도 생긴다면 두 사람과 네 마리 고양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레이례는 그녀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와 결혼 신고만 하고 결혼식은 하기 귀찮아하는 이 아가씨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그에게 무거운 짐을 떠맡겼다. 그는 매일 있는 힘을 다했고 조금도 긴장을 풀지 못했으며 뜻밖의 실수로 이 보잘것없는 행복을 깨뜨릴까 두려워했다. 그런데 그녀 자신은 밤새 잠도 안 자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예쁘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은 옷 나부랭이나 끝없이 뒤지고 다녔다. 이런 사람을 아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녀는 딸에 더 가까웠다. 귀엽고, 순진하고, 제멋대로이고, 좀 더 나아질 수는 없을까 사람을 화나고 안타깝게 만드는 딸 말이다.
‘너, 평생 이러고 살 거야?’
레이례는 이 말을 하려다가 꾹 눌러 참았다.
레이례가 집을 나설 때까지도 샤오놘은 흥미진진해 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잘 생각도 없고 례이례를 알은 체도 안 했다. 번잡하지만 값싼 그 옷들에 유혹당해 모든 정신을 화면 속에 쏟아 붓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레이례를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잠들지 못한 그 밤에 끝내 못 참고 눈시울을 적셨기 때문이었다. 레이례는 아무 말 않고 나가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완전히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출근길 버스에서 그는 젊은 아가씨들을 보고 갑자기 존경심이 느껴졌다. 원기왕성하거나 축 처진 그 아가씨들은 아침 해와 함께 일어나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버스에 몸을 싣고 시내를 향해 씩씩하게 나아갔다. 그녀들도 샤오놘처럼 잠에서 깨면 신경질이 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졸음을 감추고 회사를 향해, 사장을 향해, 예상 못한 갖가지 골칫거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레이례는 조금 케케묵긴 했어도 사실은 친근한, 하지만 거의 말할 기회가 없는 단어인 여성 노동자라는 말이 떠올랐다.